무적호위 26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0화
삼 년 정도는 되어야 실컷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계산 하에 한 말이었다.
비공은 수정된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은 삼 년 동안 비공의 졸개가 되고 말았다.
창피해서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사부님이 아시면 눈알을 빼버리겠다고 하실지도…….’
“다 왔군. 들어가지?”
장천운은 건성으로 한마디하고 일향루로 들어갔다.
앉아서 졸고 있던 남궁창이 실눈을 뜨고 고개를 들더니 장천운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
“대형!”
“잘 있었냐?”
쪼르르 달려온 남궁창이 힘차게 대답했다.
“옙!”
“내가 알려준 건 열심히 익히고 있겠지?”
“헤헤, 물론입죠. 이제 곧 광산의 뒷골목 똘마니들은 제가 다 휘어잡게 될 겁니다요. 대형도 어릴 때 무창의 뒷골목을 꽉 잡았다면서요?”
“흐흐흐, 내 또래에선 나를 이길 놈이 없었지.”
단승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이 흑도의 뒷골목 이야기나 하는 자의 졸개가 되다니.
장천운이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런데 주인장은 어디 갔어?”
남궁창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슬쩍 장천운의 뒤로 눈길을 주었다.
생긴 것만 봐서는 한가락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비 맞은 생쥐처럼 축 처져있지?
“저분 공자는 뉘십니까?”
“앞으로 함께 일할 사람이야.”
그제야 남궁창이 말했다.
“주인 양반은 뒷방에 있습니다. 제가 가서 말씀드리고 올 테니 쫌만 기다리십쇼.”
남궁창은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왔다.
“들어가십쇼, 대형. 손님이 와 계시는데, 합석해도 상관없답니다요.”
장천운은 단승을 주루에 남겨 놓고 남궁창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조당은 전에 장천운과 만났던 방에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그와 비슷한 나이의 장한이 앉아 있었다. 장천운이 들어가자 둘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수? 이 사람은 제 밑에 있는 석가요.”
조당이 장한을 소개했다.
장한은 힘차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거에 무창 일대는 물론 귀룡문까지 굴복시킨 흑월령주는 그에게 하늘이나 다름없었다.
“암월당 소속 사조장 석중이 흑월령주께 인사드립니다.”
“앉으쇼.”
장천운은 손짓으로 두 사람을 앉히고 문의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석가는 구천성에 있다가 조금 전에 왔소.”
“그래요?”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러잖아도 구천성에 대한 걸 묻고자 왔다. 때를 잘 맞춘 듯했다.
“잘 됐군요. 안 그래도 구천성의 내부 사정을 좀 더 상세히 알고 싶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수?”
조당이 뭔가를 눈치 채고 물었다. 게으르게 생긴 생김새와 달리 눈치는 빨랐다.
“은밀하게 조사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단 수상한 움직임이나 평소와 다른 일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예, 령주.”
석중은 즉시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주었다.
장천운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처음에는 조당이 전에 설명했던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몇 가지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끼리 은밀하게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래도 파벌이나 형성하려고 나선 것이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조목조목 짚어서 말하는 게 여간 치밀한 게 아니었다.
설명을 다 들은 장천운은 조당과 석중에게 두어 가지 지시를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는 구천성에서 듣겠습니다. 나도 구천성에 들어갈 생각이니까.”
* * *
“놈들이 꼬리에 달라붙었습니다, 어르신.”
장산의 보고를 받은 무 노인은 이마를 찌푸렸다.
“귀찮게 됐군.”
“생각보다 끈질깁니다. 저희를 찾기 위해서 예상 외로 많은 인원을 동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하군. 구천성과 무림맹을 상대하면서도 일부 소수만 나서게 한 놈들이 우리를 잡겠다고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다니.”
“그만큼 파천회를 위협적인 대상으로 봤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냐, 아냐.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전부터 적극적으로 나섰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시종일관 한발 뒤로 물러서서 대응했다.
왜?
“그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번부터야. 그럴 만한 동기가 있다는 것이겠지.”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하던 무 노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장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죽원장에 도착해서 무엇부터 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저와 어르신에 대해서 물어봤겠지요.”
“그래, 우리의 정체를 알고 싶어 했겠지.”
“그래봐야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을 겁니다.”
“알아냈다면?”
“저나 어르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도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설령 알아냈다 해도 자신들을 구천성이나 무림맹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장산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 노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천외의 세 노괴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 만약 그가 나에 대해서 알아냈다면 놈들의 행동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설마…… 천외삼성 중 하나가 세상에 나왔단 말씀입니까?”
“죽기 전에 세상 구경하려고 나왔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구천성과 무림맹의 싸움이 자신들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을지도 모르고.”
“으으음.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무 노인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놈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이곳을 찾아낼 거다. 어차피 버릴 거라면 이곳에서 한바탕 판을 벌여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구나.”
장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인 즉 정면대결을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번 드러나면 더 이상 숨을 수 없을 테니까.
“너무 빠르지 않겠습니까?”
“계획보다는 조금 빠르지만 어쩔 수 없지. 놈들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찾아보는 수밖에.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이 기회에 놈들의 정확한 무력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회주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천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두도록 해라.”
* * *
무창 홍구로로 들어선 초광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통나무집에 대한 보고를 올리자, 일령주의 명령이 떨어졌다.
“무창으로 가봐라. 그가 만약 살아 있다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으로 갔을지 모른다.”
그래서 왔는데 이전과는 느낌이 달랐다.
일단, 사람들의 표정이 밝았다.
‘이상하군.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표정이 이렇게 밝다니. 오면서 들은 소문이 사실인가?’
무창의 뒷골목이 흑월회에 의해서 평정되었다고 했다.
강호의 문파들조차 함부로 건들지 못한다고 했다.
제깟 놈들이 변해봐야 얼마나 변했겠어?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생각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어깨에 힘주고 다니면서 건들거리는 자들 대신 정식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자주 보였다.
그들의 가슴에는 ‘흑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보통 놈들이 아닌데? 어떻게 된 거지?’
그때 흑월회 무사로 보이는 자가 말을 걸었다. 흑도놈들답지 않은 말투로.
“여긴 어떻게 왔소?”
잠깐 사이 머리를 굴린 초광이 대답했다.
“흑월회에 들어가 볼까 해서 왔소.”
“그래요? 흐으음. 생긴 건 딱 어울리는데…….”
흑월회 무사 한 놈이 쓰윽, 초광을 훑어보고 말했다.
얼굴에 난 상처가 뒷골목과 무척 어울려 보였다.
“따라오쇼. 우리 흑월회는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이자식이, 내 얼굴이 뭐 어때서?’
초광은 기분이 상했지만, 묵묵히 뒤를 따라갔다.
그의 얼굴은 상처 때문에 전과 다르게 보였다. 게다가 귀도 반쪽이 잘려서 인상도 건달 노릇하기에는 그럴 듯했다.
102장 그래도 원한다면……
대규모 무사대가 빠져나간 구천성은 적막감이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다.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거대한 정문 앞을 오가긴 했지만 모두 벙어리라도 되는 듯 말이 거의 없었다.
언제 출정할지 모르는 상황. 긴장감이 입을 막아버린 듯했다.
“정지! 무슨 일로 왔소?”
장천운과 단승이 정문으로 다가가자 위사가 앞을 막았다.
장천운도 몇 번 본 자였다. 하지만 그자는, 수염과 머리가 제멋대로인 데다 약간의 역용까지 한 장천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긴 사마경조차도 장천운을 보고 ‘너 누구냐?’하는 표정이었으니…….
“구천성의 무사가 되기 위해서 왔소.”
위사는 장천운을 쓱 살펴보고는 고갯짓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서 접수하시오.”
무사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찾아왔다. 많을 때는 백 명도 넘었다.
구천성은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고수라면 금상첨화지만, 삼류무사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디든 할 일은 있으니까.
장천운과 단승이 이름과 사문을 적자 일단 방이 배정되었다.
혼천권문. 수라검문.
두 사람이 적은 사문이다. 물론 가짜였다.
당연히 이름 없는 문파다 보니 구석진 방이 주어졌다.
그 방에는 선객이 다섯이나 있었다.
장천운과 단승이 들어가자, 그들이 두 사람을 잘 익은 고기 보듯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단승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사람도 있었다.
장천운이 씩 웃으며 우드득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꺾었다.
“일단 정리부터 해야겠군.”
다섯 중 누구도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단승도 마찬가지였고.
장천운은 그로부터 일각 동안 방안을 정리했다. 정확히는 선객들의 정신 상태를 정리했지만.
일각 후,
“불만 있으신 분?”
장천운이 그렇게 묻자 선객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없습니다!”
안색이 파리해진 그들의 눈빛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고기가 아니라 수라귀를 본 눈빛.
“언제 들어왔소?”
장천운이 묻자, 강태라는 자가 답했다.
“오늘 아침에 들어왔습니다.”
장천운이 오기 전까지 방장 역할을 하던 자였다.
나이는 서른. 남검문이라는 삼류문파에서 십오 년간 무공을 배웠다고 했는데, 큰 덩치에 비해서 동작이 굼떴다.
그래도 힘은 좋아서 검신이 넉 자나 되는 거검을 사용했다.
“내가 하는 일에 간섭만 하지 않으면 이 방은 어느 방보다 평화로울 거요. 무슨 말인지 알겠소?”
“예, 대형.”
서른 살이나 먹은 자가 대형이라고 하니 조금 어색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역용을 해서 서른 살쯤으로 보였다.
“혹시 구천성의 상황을 잘 알고 있소?”
강태가 한쪽 구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대나무처럼 빼빼 마른 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강태의 시선을 받고 흠칫 몸을 떨었다. 꼭 누가 대나무 밑동을 발로 툭 차기라도 한 듯했다.
“저보다 저 친구가 잘 알 겁니다. 생긴 건 열흘 굶은 놈 같은데 대갈통 속에 자질구레한 것이 엄청 들어 있습니다.”
빼빼 마른 사내의 이름은 산교였다. 경공술과 신법이 장기인 자.
그는 어제 오후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구천성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첩자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
장천운은 그에게서 구천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본적인 것이야 산교보다 장천운이 열 배는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최근의 분위기였다.
산교는 장천운이 알고자 하는 부분을 족집게처럼 짚어서 말해주었다. 말이 잘 통하는 자였다.
덕분에 일이 수월해질 듯했다.
‘운이 좋군. 청목하고 붙여놓으면 괜찮겠는데?’
* * *
술시 말경, 방을 나온 장천운은 서쪽 담을 넘었다.
그는 담을 넘자마자 강련곡을 향해서 신형을 날렸다.
예전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강련곡이다. 그런데 막상 경공을 펼쳐서 달려가니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교관님은 잘 계신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