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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5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9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4화

노도인은 거리가 오 장쯤 되었을 때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 길이 네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장천운은 몇 걸음 더 걸은 다음 멈춰 섰다.

거리가 삼 장쯤 되었다. 길이 갈라지는 곳 양쪽에 서 있는 형태.

도관 옆으로 늘어진 노도인의 하얀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백설처럼 하얗고 기다랗게 뻗은 눈썹 아래에는 흑백이 뚜렷한 눈이 있었다. 노인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맑은 눈이.

“젊은 시주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노도인이 물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였다. 젊은이의 목소리처럼 낭랑하진 않아도 듣는 이를 잡아끄는 힘이 느껴졌다.

“친구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서 도우러 가는 길입니다.”

“허허허, 친구를 돕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

노도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네 갈래 길 중 남쪽으로 꺾어진 길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먼 길에 지친 나그네들이 앉아서 쉬기 좋게 높이도 적당했다.

“바쁘진 않다면 저기서 잠깐 쉬어가세. 쉬면서 이 늙은 말코의 말 친구도 좀 되어주고 말이야.”

바쁘다. 그것도 단순히 바쁜 게 아니라 마음이 엄청 급하다. 사마경이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장천운이 바로 대답을 못하자 노도인이 미소를 지었다.

“노도가 길흉화복을 조금 볼 줄 아는데, 시주의 친구는 무사할 것 같구먼. 뭐, 어려움이야 좀 있겠지만.”

왠지 몰라도 믿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

장천운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그다. 노도인은 목소리만으로도 수천수만의 신자들을 따르게 만들 수 있을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도장님의 말씀을 믿고 잠깐 쉬었다 가지요.”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았다. 거리는 이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늙은 말코에게는 친구가 둘 있네.”

노도인이 먼저 미소를 지은 채 말문을 열었다.

“아주 오랜 친구들이라네. 처음 만난 지 오십 년이 넘었으니까.”

“정말 오래 되셨군요. 좋은 친구 분들인가 봅니다.”

“글쎄. 좋은 친구라고 하긴 좀 그렇고, 능력이 대단한 친구들인 것만은 분명하지. 그런데 그 친구들과 노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기를 즐겼다네.”

“저도 내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허허허, 그런가?”

담담히 웃음을 흘린 노도인이 장천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좋은 눈을 지녔군.

“도장님의 눈에 비하면 썩은 생선 눈이나 다름없지요.”

“허허허허, 젊은 시주가 너무 스스로를 비관하는군.”

“저는 도장님처럼 맑은 눈을 가진 분을 처음 봤습니다.”

“그런가? 칭찬해줘서 고맙군. 허허허허.”

“게다가…… 바다처럼 넓고 깊은 기운을 지닌 분이 있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담담히 말하는 장천운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그는 바위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도인이 품은 기운은 넓고도 깊었다. 인간이 정말로 저런 기운을 지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

‘정말 강호는 넓군. 기인이사가 장강의 모래알처럼 많다더니…….’

하늘 아래 저런 고수가 있을 줄이야.

나름대로 가졌던 자부심이 노도인 앞에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때 문득, 노도인이 조금 전에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만난 지 오십 년 된 대단한 능력을 지닌 두 친구.

그 이야기를 잘근잘근 곱씹던 장천운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설마……?’

자연스럽게 말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손등에 핏줄이 툭툭 불거졌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얼굴이다. 비록 머리카락이 백설처럼 하얗게 변했고 얼굴도 조금 더 말라서 다른 듯 보였지만, 분명 그다.

꿈속에서 봤던 도인, 천외의 세 괴물 중 하나.

청⦁산⦁자!

‘빌어먹을! 설마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겠지?’

장천운은 급격히 거세지는 심장박동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선 안 된다. 싸움이 벌어지면 승패를 떠나서 사마경을 구할 기회가 사라진다.

이길 확률도 희박하고.

그때 노도인이 말했다.

“어쨌든 노도는 이번에도 내기를 했네.”

장천운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노도인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주 재미있는 내기지. 무슨 내기인 줄 아나?”

“제가 어찌 그걸 알겠습니까?”

“아마 곧 알게 될 거네. 세상이 조금 시끄러워질 테니까.”

노도인은 그 말을 하고 염화시중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장천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위에서 일어났다.

“그만 쉬고 일어나봐야겠습니다. 친구가 걱정되어서 더 앉아 있을 수가 없군요. 그럼 쉬었다 가십시오.”

포권을 취해서 작별인사를 한 장천운은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뒷덜미에 청산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온몸의 미세한 근육 하나하나가 머리에서 발끝까지 경련을 일으키듯 당겨졌다.

등이 쩍쩍 갈라져서 심장이 밖으로 드러나는 느낌.

저 늙은이는 지금 자신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챈 것은 아닐 것이다. 알았다면 이렇게 보내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길로 올라서자 두 사람이 길을 가로막은 채 다가왔다.

둘 다 나이가 사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키가 크고 마른 듯 보이는 자는 백의를 입었고, 키가 작은 대신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체격이 탄탄해 보이는 자는 갈의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장천운과 삼 장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백의를 입은 자가 먼저 차가운 눈으로 장천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아직 가라하지 않으셨다.”

장천운은 세 걸음을 더 걸어간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평범한 무사들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장천운조차 경지를 제대로 평가하기가 힘든 고수였다.

절대경지에 올라선 진정한 고수.

청산자의 호위인가?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두 사람에 대한 정보는 그의 머릿속 어디에도 없었다.

절대경지에 올라 있는 나이 사십대의 고수라면 모를 리 없거늘.

“갈 길이 바빠서 먼저 일어선 것뿐이오.”

충돌하기 싫어서 굽혀주었다. 그런데 상대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결정은 주군께서 내리신다.”

“내 발길에 대한 결정을 왜 당신의 주인이 내린단 말이오?”

“주군께선 하늘이시니까. 그래도 가겠다면 네가 갈 곳은 하나뿐이다.”

“저승으로 보내주지.”

또 다른 길을 흑의인이 정해주었다.

청산자보다 먼저 일어나서 등을 보인 것만으로도 장천운은 그에게 ‘죽일 놈’이었다.

물론 장천운은 저승에 갈 생각이 없었다. 저승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가?

“저승에 가봤소?”

“뭐라?”

“나는 가봤소. 별로 기분 좋은 곳은 아니더군.”

“미친놈.”

“맞아. 미친놈이지.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 같거든.”

상대에 대한 존중은 여기까지다. 상대가 먼저 자신을 미친놈 취급한 이상 진짜 미친놈처럼 군다 해서 뭐라 할 건가.

스르릉.

백의인이 먼저 검을 뽑았다. 맑은 소리와 함께 하얀 검신이 드러났다.

우두둑.

흑의인은 소리가 나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폈다. 그의 손은 일반인에 비해서 두 배는 될 정도로 컸다.

장천운은 두 손을 늘어뜨린 채 두 사람을 응시했다. 무심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에선 열기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노도는 뛰어난 젊은이를 좋아하니라. 노도를 따른다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을 게야.”

뒤에서 노도인, 청산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뒤통수에 바짝 대고 속삭이는 듯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 꿈이 뭔지 아십니까?”

“말해보아라.”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씨 예쁜 색시 얻어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사는 겁니다.”

“젊은 시주가 욕심이 없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강호에서 칼을 맞대고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욕심나는 삶이죠.”

“정말 그게 꿈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글쎄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마 노도장께서는 들어주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노도장께서는 도만 닦으며 사셨을 테니, 그런 삶이 어떤 건지 모르실 거 아닙니까?”

“도만 닦으며 산 노도는 모른다? 흐으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청산자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장천운은 할 말 다했다는 듯 더 이상 청산자를 상대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사마경의 상황이 걱정된 그는 촌각이 아까웠다.

그러나 백의인과 갈의인은 다리가 땅에 박힌 듯 비켜서지 않았다.

“비켜주시겠소?”

“이미 말했을 텐데? 주군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갈 곳은 하나뿐이라고.”

일 장 거리.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백의인이 반사적으로 검을 뻗어서 장천운을 가리켰다.

“정말 해보겠다는 거냐?”

그 순간, 장천운의 두 손이 거짓말처럼 허공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예리한 경력이 백의인을 향해 밀려갔다.

백의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검으로 원을 그렸다. 그의 검에서 푸른 기가 뻗어 나오더니 둥근 막을 형성하며 장천운의 장력을 차단했다.

벼락처럼 내쳐진 혼천수라권이 석 자 간격을 두고 검막을 두들겼다.

떠더덩!

굉음이 귀청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강력한 충격에 두어 걸음 밀려난 백의인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강호에서 자주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내로라하는 고수들과 무공을 겨뤄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상대는 소위 절정고수라는 자들이었다. 개중에는 한 지방의 패주로 군림하던 자도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십초 공격을 받아내지 못했다. 자신을 물러서게 만든 자는 더더구나 없었다.

그런데 약관의 애송이에게 밀리다니!

“어린놈이 제법이구나!”

자존심이 상한 그는 검에 공력을 집중시켰다.

석 자 길이 검강이 검첨에서 쭉 뻗어 나오더니 음산한 빛을 발했다.

약간 뒤로 처져 있던 갈의인이 천천히 좌측으로 이동했다. 그의 몸에서도 일대를 짓누르는 가공할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옆에 있던 갈대가 진저리를 치며 밀려났다.

장천운은 상대가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선공을 취했다.

신법은 귀원신법을 변형해서 사용했다. 환귀자의 신법은 일절 응용하지 않았다.

공격 역시 혼천수라권만 사용했다.

혼천수라권을 제대로 상대해본 사람은 교왕과 대운 정도다. 나머지는 일부 변화만 맛보았을 뿐.

게다가 경지에 이르면 형이 따로 없는 권법이 바로 혼천수라권이다.

청산자가 아무리 견문이 넓고 깊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알아본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지.

콰아아아아!

두 주먹에서 일어난 권풍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백의인을 덮쳤다.

백의인도 뒤질세라 검을 내뻗으며 찰나에 허공을 열여덟 번이나 난자했다.

두 사람의 권과 검이 허공을 격하고 뒤엉켰다.

허공이 커다란 권영과 시퍼런 검영으로 가득 찼다. 대지가 들썩이며 먼지구름이 피어났다.

팽팽한 접전.

장천운은 검을 사용하지 않고도 절대경지에 이른 백의인과 대등하게 싸웠다.

그러한 결과가 장천운에게는 오히려 득이 되었다.

갈의인은 두 사람이 대등하게 싸우자 끼어들지 못했다. 자신이 뛰어들면 백의인의 자존심만 더 상할 거라 생각한 듯했다.

청산자도 담담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정말 대단한 놈이군.’

이제 겨우 약관을 넘긴 젊은 놈이 절대경지에 이른 백운과 대등한 싸움을 벌이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전력을 다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얻지 못하면 없애기로.

다른 친구들에게 넘겨주기는 싫으니까.

“여강, 너도 함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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