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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5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1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3화

앉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종리성학은 그 말을 듣고 벌떡 일어섰다.

‘금룡?’

갑자기 나타난 자가 자신이 아는 그 금룡이라면 천군만마가 온 셈이었다.

“비켜드려라.”

숲속에서 나타난 자는 오십대 중노인이었다.

기세가 삼엄한 무사들 사이를 걸어오면서도 눈썹 한 올 흔들림 없었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기운에 오히려 청의무사들이 잔뜩 긴장했다.

종리성학은 굳은 표정으로 그자를 맞이했다.

‘역시 그 금룡이 분명해.’

금룡이 비록 아군은 아니지만 적도 아니었다. 목적이 같다면 함께 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말하겠네. 사마경을 제거할 동안 손을 잡았으면 하는데. 어떤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사마경을 제거하다니요?”

종리성학은 일단 부정했다. 온갖 모사가 횡행하는 강호에서는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했다.

“부정할 것 없네. 멀리서 자네들이 싸우는 걸 봤으니까. 조금 늦게 도착해서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자네들이 후퇴한 직후에 도착했거든.”

‘제기랄.’

종리성학은 속으로 욕을 했다. 조금만 후퇴를 늦게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 아닌가 말이다.

“좋습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지요. 그런데 뉘신지 알려주셔야 말하기가 더 편할 것 같습니다만.”

중노인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손우곤이라 하네.”

 

* * *

 

장천운이 그 소문을 들은 것은 신시가 되기 전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강가의 작은 객잔에 들어갔는데, 옆 좌석에서 보부상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더군.”

“도대체 어떤 놈들이 구천신녀를 죽이려고 암습을 한 거지?”

“나도 몰라. 아는 사람이 없더군. 하긴 누가 감히 정체를 밝히고 구천신녀를 죽이려 하겠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그냥 그렇게 끝난 거야?”

“이건 내 생각인데, 암습자들이 또 구천신녀를 노릴 거 같아. 손을 댄 이상 끝장을 보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을 테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장천운이 물었다.

“싸움이 처음에 어디서 벌어졌는지 아쇼?”

슬쩍 장천운을 살펴본 보부상이 말했다.

“저쪽 길로 오십 리쯤 가면 초하가 나온다오. 바로 그 초하 근처의 관도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오.”

“그 후에는 어느 쪽으로 갔다고 합니까?”

“뭐 길 따라서 이창 쪽으로 갔지 않겠수?”

그때쯤 요리가 나왔다. 장천운은 요리를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객잔을 나섰다.

 

격전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가로부터 멀지 않은 갈대숲에서 까마귀 수백 마리가 배회하고 있었다.

장천운이 다가가자 살점을 뜯던 까마귀들이 눈치를 보며 한쪽으로 날아갔다.

시신을 묻을 때 적의 시신까지는 제대로 챙기지 못한 듯했다. 까마귀들이 얕게 묻은 시신을 용케 찾아내서 포식하고 있었다.

혈전의 현장을 둘러본 장천운은 패왕거가 멈춰 섰던 곳에 서서 주위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나중에 생긴 발자국으로 흔적이 흐릿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눈에 익숙한 흔적이 상당수 남아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 흔적과 연관된 동작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사마경이 봉황검을 펼치던 광경도 재현되었다.

“많이 좋아졌는데?”

봉황검 중에는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적을 덮치며 발톱으로 좌우로 쓸어가는 초식이 있다.

그 흔적이 바닥에 남아 있는데, 그가 봐도 완벽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상대가 설령 절대경지의 고수라 해도 그녀를 쉽게 제압할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소성주의 강함이 위기를 벗어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군.”

암습자들은 사마경이 그렇게까지 강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 변수라면 위기를 극복하는데 훌륭한 이유가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구양명의 무공도 적지 않은 발전을 이룬 듯했다.

칠팔 장 떨어진 곳에 한천팔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전보다 범위가 넓었고, 검강이 훑고 가며 파인 흔적도 매끈하고 깊었다.

문제는 구양명이 상대한 자가 남긴 흔적이었다.

기의 파장이 물결처럼 퍼진 흔적.

장천운은 그 흔적을 보고 표정이 무겁게 굳어졌다.

‘구양 선배보다 더 강한 자다.’

그러한 고수는 강호에 많지 않다. 굳이 꼽는다면 열 명 정도? 전대의 고수까지 꼽는다 해도 이십 명을 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단, 천외의 인물들을 제외했을 경우에.

문제는 그런 고수들이 노리고 있다면 아직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장천운은 일각 정도 흔적들을 더 살펴본 후 사마경 일행의 이동 흔적을 뒤쫓았다.

‘내가 갈 때까지만 버텨라, 사마경.’

 

* * *

 

사마경은 중상자들의 치료를 위해서 패왕거를 인근 마을로 보냈다.

적의 목적은 자신을 척살하는 것.

중상자들이 실린 패왕거를 치겠다고 무사들을 따로 빼서 보낼 가능성은 희박했다. 적이 대가리에 똥만 찬 멍청이들이라면 모를까.

패왕거가 없으니 속도는 더 빨라졌다.

사마경을 비롯한 구천성 무사들은 태양이 떨어지고 있는 지평선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어쩌면 속도가 빨라진 덕에 암습자들도 추적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희망이 싹텄다.

그로부터 두 시진 후.

사마경 일행은 황토협곡 사이로 난 길을 달렸다.

황토로 뒤덮인 대지가 누 만년에 걸쳐서 빗물에 파이고 파여 형성된 곳이었다.

협곡의 양쪽에는 십여 장 높이의 황토절벽이 펼쳐져 있고,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이 절벽 사이를 관통했다.

협곡을 관통하는 길 중간 중간에는 좌우로 가지처럼 뻗어나간 골짜기가 있었다.

사마경 일행은 빠른 속도로 오백여 장에 달하는 기다란 황토협곡을 가로질렀다.

중간 지점을 지나서 삼십여 장쯤 더 갔을 때였다.

저만치 이십여 장 앞에 있는 오른쪽 골짜기에서 수십 명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협곡 위에서 직접 몸을 날린 자도 있었다.

폭이 이십 여 장인 협곡의 길이 그들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후후후, 하마터면 놓칠 뻔했군.”

뒷짐을 지고 있던 여홍이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사마경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초하 근처에서 봤던 자들 속에 처음 보는 자들이 섞여 있었다.

인원은 이십여 명에 불과했지만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냥 치고 나가!”

사마경이 차갑게 소리쳤다.

“흑월대는 나와 함께 선두에서 소성주를 보호한다!”

구양명이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흑월대원들은 구시렁거리면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젠장, 여차하면 골로 가겠군.”

“저 새끼들은 우리하고 무슨 웬수를 졌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시끄러! 말할 힘 남았으면 한 놈이라도 더 물어뜯어!”

장로와 호법들이 사마경과 나란히 달리고, 백천대가 사마경의 후위를 지켰다.

이십여 장의 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사마경 일행이 멈추지 않고 돌진하자 앞을 막아선 자들이 흔들렸다.

사마경이 저렇게 무모하게 나설 줄이야!

그들이 흔들린 시간은 잠시잠깐에 불과했지만, 사마경 일행에게는 단 한 번 있는 기회였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그들은 곧장 적의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놈들을 막아라!”

“사마경을 잡아!”

넓게 퍼져서 길목을 막아섰던 자들 중 양 옆쪽에 있던 자들이 중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약간 뒤로 처졌던 수혼대와 백천대가 그들을 공격했다.

중앙을 지원하려던 자들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그 사이 사마경과 흑월대, 장로와 호법이 쐐기처럼 돌진하며 중앙을 공격했다.

먼저 저두심이 남은 비도 열다섯 자루 중 네 자루를 날렸다.

비도가 제멋대로 춤을 추며 날아갔다.

몇 사람이 멈칫한 순간, 이번에는 은명객들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비켜, 이 개자식들아!”

“확 가랑이를 찢어버리기 전에 안 비켜!”

“죽어! 죽어어어!”

강호의 고수들과 전혀 다른 그들의 행동은 상대를 혼란케 했다.

“어디서 감히!”

불같이 노한 여홍이 쌍장을 휘두르며 앞을 막았다.

이번에도 그는 구양명이 맡았다.

“여 선배는 나하고 놀아봅시다!”

“이놈!”

구양명이 밀린다 해도 몇 초식에 날 승부는 아니었다.

둘이 격돌하면서 약간의 빈틈이 만들어졌다.

사마경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차피 여홍을 제외하면 크게 우려될만한 자는 없었다.

“뚫어!”

사마경의 일갈과 함께 흑월대 조장들이 선두에서 치고 나갔다.

장로와 호법들은 좌우를 책임졌다.

일원장, 정확히는 금룡장의 고수들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손우곤은 밀려오는 사마경 일행을 보며 냉랭히 소리쳤다.

“놈들을 막아라!”

금룡장 전위조직 중에서도 최정예인 상천단 무사 스물을 데려왔다.

파천회에 당한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마경을 잡아갈 작정이었다.

그러나 구천성 무사들도 반드시 살아서 나가겠다는 절대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냈다.

지옥수련을 밥 먹듯이 해온 흑월대는 특히 극한의 상황에 익숙했다.

아무리 상대가 독하다 한들 장천운만 하랴.

그 생각을 하면 없던 힘도 솟아났다.

그렇게 흑월대가 정면을 뚫는 동안 장린과 호문대곡이 좌측을, 서두향과 진철평이 우측을 맡았다.

그들은 상천단 무사들을 상대하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자들도 손우곤에 비하면 달빛 아래 반딧불이었다.

처음에는 장린이 혼자 그를 상대했다가 일장에 내상을 입었다. 뒤늦게 호문대곡이 합세했는데도 형편없이 밀렸다. 결국 진철평까지 합세한 후에야 겨우 균형이 맞추어졌다.

상대의 가공할 무위에 공포마저 느낄 지경.

더 어이없는 것은 상대가 절대경지에 올라 있는 고수인데도 정체조차 모른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빌어먹을 일 아닌가.

구양명과 철무, 장로, 호법들이 여홍과 손우곤을 막는 동안 사마경과 흑월대가 전면의 벽을 기어이 뚫고 나갔다.

“뚫었다!”

“튀어!”

“소성주, 가쇼!”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날렸다.

“사마경을 쫓아!”

종리성학이 악을 썼다.

놓치면 끝장이다.

그는 공손백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되는 비영곡과 마혼객까지 동원한 판이다. 사마경을 잡지 못하면 공손백은 제일 먼저 자신의 다그칠 것이었다.

자신을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쾅!

폭음이 터져 나오더니 구양명이 주르륵 밀려났다.

여홍은 승기를 잡고도 더 이상 구양명을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은 구양명보다 사마경을 잡는 게 먼저였다.

“흥! 운 좋은 줄 알아라!”

코웃음을 친 그는 즉시 허공으로 솟구쳐서 황토협곡 입구 쪽으로 날아갔다.

그보다 한발 앞서서 손우곤이 사마경의 뒤를 쫓았다.

남겨진 자들도 싸움을 포기하고 입구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구양명과 장린을 비롯한 호법, 장로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사마경을 쫓아가는 것은 같았지만 목적은 완전히 반대였다.

한쪽은 죽이기 위해서, 한쪽을 구하기 위해서.

그들이 황토협곡을 빠져나왔을 때는 어느새 핏빛 붉은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100장: 청산자

 

 

장천운은 핏빛 태양을 보며 빠르게 이동했다.

한 번씩 땅을 차고 나아갈 때마다 칠팔 장을 날아갔다.

암습자들은 패해서 도주한 게 아니다. 분명히 기회를 노려서 이차 공격을 감행할 것이었다.

‘어둠이 밀려들기 전에 찾아내야 해.’

그때 저 멀리서 핏빛 태양을 등지고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장천운은 그 자를 보며 속도를 늦추었다.

노인이었다. 쪽빛으로 물들인 도복을 입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는 노도인.

키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깨를 편 자세가 당당했다.

걸음걸이는 느린 듯했는데, 일정한 보폭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규칙적으로 내딛었다.

장천운은 노도인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급했던 마음도 노도인을 보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속도를 늦춘 그는 가까워지는 노도인을 보며 한발, 한발 걸음을 옮겼다.

자신도 모르게 손 안에 땀이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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