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5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50화
“저, 그런데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이름을 모릅니다. 대령주의 거처를 들락거린 자들에 대한 보고서에서 보긴 했는데,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아서 알지 못합니다.”
대령주 공손백의 사람이 대운사의 방화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는 뜻.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사마경은 청목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청목이 말한 자는 비영곡의 무사일 가능성이 컸다. 그들이라면 자신을 해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쩌면 백부의 배후에 있다는 자들도 나왔을지 모르겠군.’
그녀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 무너진 천장에 깔려 있던 위패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운사 승려들이 합장하며 불호를 외었다. 모두들 어두운 표정이었다.
영혼이 거센 불길에 몸을 맡기고 하늘로 승천했는지, 잿더미에 짓눌려 고통을 느끼는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위패가 쇠도 녹일 불길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손길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위패는 대부분 새카맣게 탄 상태였다. 그 불길에서 온전하기를 기대한 것부터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지 몰랐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묵묵히 재를 치웠다.
“어?”
작업하던 수혼대 무사 하나가 손을 멈추었다.
모두들 그 무사 쪽을 바라보았다.
무사가 조심스럽게 재를 치우고 반쯤 탄 위패를 집어 들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무로 된 위패가 그 불길 속에서 절반이라도 남았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졌다.
사마경도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조심해서 재를 치워 봐요.”
폐허나 다름없는 주위의 상황과 상관없이 활기가 돌았다.
승려들의 불호소리도 점점 커졌다.
덜 탄 위패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아래쪽에서 눌린 위패들은 공기가 없다 보니 불길이 덜 미친 듯했다.
그러나 두 시진이 지나고 바닥이 나왔음에도 사마경이 원하던 위패는 나오지 않았다.
어깨가 축 처진 사마경은 늘어놓은 위패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덜 탄 위패는 백여 개나 되었다. 개중에는 귀퉁이만 살짝 탄 위패도 이십 개쯤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마경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오, 소성주.”
용화성이 나름대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래봐야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지만.
“실망하지 않아요. 어차피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실망은 아니어도 아쉬움은 남았다.
“중요한 것은 위패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께서 편안히 지내고 있느냐 하는 것 아니겠소, 소성주?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오. 그분들은 소성주가 마음을 추스르길 바라고 계실 거요. 그러니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앞날을 생각하시오. 방화를 한 자들이 소성주를 노릴지 모르니 말이오.”
이번에는 독고민이 말했다. 확실히 그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마경은 그를 돌아다보았다. 표정은 전과 다름없이 차가웠다. 그러나 눈빛에는 새삼스러워하는 마음이 은은히 드러나 보였다.
“걱정 말아요. 그럴 생각이니까. 여하튼…… 고마워요.”
“별 말씀을.”
독고민은 진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비틀어졌지만, 그 모습을 신경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저놈이……!’
백리우진은 치켜뜬 눈으로 독고민을 노려보았다. 그는 독고민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린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조소? 만족한 미소?
워낙 빨리 사라져서 그 표정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절대로 좋은 의도의 미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흥! 네놈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지만, 쉽진 않을 거다.’
용화성 역시 독고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찮아 보여서 가까이 하려 했는데, 자신을 무시하고 사마경을 욕심내지 않는가 말이다.
‘이 용화성의 친구자리보다 사마경의 미모가 더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들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구양명이 그들의 표정과 행동을 철저히 살펴보고 있다는 걸.
‘웃기는 놈들이군. 장천운이 없으니 별 놈들이 다 소성주를 욕심내네.’
백리우진이야 문제될 것 없었다. 자신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니까.
문제는 독고민이었다.
‘저 새끼, 뭔지 몰라도 분명히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은데…….’
* * *
대별산맥을 넘은 장천운은 다음 날 오후 늦게 광산에 도착했다.
왕규는 하남에 모두 다섯 곳의 정보 거점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신양에서 동쪽으로 이백여 리 떨어진 광산에 있는 것이다.
광산의 동쪽에 있는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서 처음 들어간 사람은 길을 잃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바로 그 골목 입구에 주인과 점소이 하나가 일꾼의 전부인 작은 주루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흑월회의 광산지부였다.
주루를 경영하며 정보장사꾼 노릇을 한 왕규답게 거점도 주루로 택한 것이다.
“여기군.”
장천운은 주루의 기둥에 새겨진 조잡한 초승달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일향루의 주인이자 숙수인 삼십대 장한이 주방에서 나오며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쇼. 창아야! 손님이 왔는데 어디 갔냐? 똥 싸냐?”
고함을 빽 지른 장한이 다시 장천운을 향해 씩 웃었다.
“뭐 드실려우?”
주루는 술과 요리를 파는 곳이다. 그런데 손님 앞에서 ‘똥’이야기를 그렇게 크게 하다니.
‘돈 벌기는 틀렸군. 적자나 안 나면 다행이겠는데?’
피식, 실소를 지은 장천운이 태연히 말했다.
“무창에서 유명한 홍구로의 흑월편을 먹고 싶은데.”
아무리 요리 종류가 수만 가지라 하지만, 세상에 그런 요리는 없다.
그런데도 장한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알겠수. 저쪽 안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슈. 창아야, 이놈아! 뭔 똥을 그렇게 오래 싸냐!”
손가락으로 뒷문 쪽을 가리킨 장한이 또 다시 빽 고함을 내지르고 돌아섰다.
‘그래도 눈치는 빠른데? 능력이 없지는 않은 것 같군. 밥값은 하겠어.’
장천운은 몇 마디 말로 장한의 능력을 측정하고 뒷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별 말이 없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가면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그런데 막 뒷문으로 나가려 할 때, 장한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아참! 그리 나가면 왼쪽에 방문이 하나 보일 거요. 그 방에 가서 기다리슈.”
장천운은 장한에 대한 능력을 다시 평가했다.
‘성격이 조금 급하군, 꼼꼼하지도 않고. 뭐, 그래도 시원시원한 것은 마음에 드네.’
그러고는 언제 기회가 나면, 정보책임자들에 대한 특별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장한은 자신이 지옥에 한발 내딛었다는 것도 모르고 세 번째로 빽 소리쳤다.
“창아야! 그만 끊고나와, 인마! 손님 왔다니까!”
그때 뒷마당 오른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씨, 설사 났다니까요! 설사가 끊는다고 끊어져요? 기다렸다 먹기 싫으면 가라고 그래요!”
그 주인에 그 일꾼이었다.
장한은 일 각쯤 지났을 때 장천운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흑월회 암월당 소속인 장한, 조당은 장천운의 정체부터 알아보았다.
“뉘슈?”
“흑월령주요.”
조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자가 총회주를 손가락 하나로 움직인다는 흑월령주?’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점소이로 보이는 소년이 차를 가져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창이 너, 똥 싸고 손은 씻었냐? 왜 손에 물기가 없어?”
“누군 씻기 싫어서 안 씻은 줄 아세요? 하도 서두르니까 우물에 갈 시간도 없잖아요. 왜 그렇게 성격이 급하세요?”
소년은 조금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장천운은 그 소년을 보며 이채를 반짝였다.
나이는 열대여섯 살쯤?
말투와 달리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총기 넘치는 눈빛은 아기처럼 맑았고, 나름대로 고집도 있어 보였다.
거기다가 무술을 익히는데 최적의 골격까지.
마치 오래 전, 홍구로를 돌아다니던 자신을 보는 듯했다.
“이름이 뭐냐?”
소년은 힐끔 장천운을 살펴보고 눈이 점점 커졌다.
무창에서 온 손님이 무창 흑도를 장악한 흑월회 사람이라는 걸 알고 단순한 흑도의 건달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말하는 본새나 모습이 단순한 건달 같지 않았다.
‘오, 이 쉐끼. 제법 생겼는데?’
그도 마음을 다잡고 점소이로 취직하기 전까지는 광산에서 제법 날리던 새끼건달이었다.
장천운이 마음에 든 그는 순순히 이름을 말해주었다.
“남궁창이요.”
“자식, 눈빛이 마음에 드는데?”
“헤헤.”
“너, 형 있냐?”
“친형은 없는데요?”
“그래? 그럼 이제부터 내 동생해라.”
“정말요?”
“싫음 말고.”
“아뇨! 앞으로 대형이라고 부를 게요.”
“좋아, 그럼 너는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내 동생이다.”
“예, 대형!
그날, 장천운은 그렇게 뜬금없이 동생 하나를 얻었다. 그때만 해도 장천운은 새로 얻은 동생에게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소년이 싱글벙글 웃으며 밖으로 나가자, 조당이 소년의 뒤통수를 째려보았다. 그는 두 사람이 호형호제 하는 게 무척 못마땅했다.
‘아, 씨발. 쓸 만해 보여서 한번 키워보려고 했더니, 홀라당 뺏겨버렸네.’
그가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는데, 장천운이 물었다.
“들어온 소식 없소?”
조당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채 불퉁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구천성에 남은 무사들의 움직임이 수상쩍수.”
첫 번째 소식부터 신경을 바짝 당겼다. 불퉁거리는 목소리 따위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뭐가 수상합니까?”
“최근 들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구천성에 가입했수. 그런데 그들을 중심으로 구천성 무사들이 또 다른 파벌을 형성하는 것 같수.”
확실히 수상한 일이다.
장천운은 그 말을 듣고 한 가지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 소성주가 없는 동안 내부를 암중으로 장악하려고……?’
그런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당연히 천외일 것이다. 어차피 세상으로 나올 작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부를 장악해 놓으면 사마경과 공손백이 무사히 돌아온다 해도 제거하기가 쉬워지겠지.
“좀 더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시오.”
조당은 더 이상 불퉁거리지 못했다. 장천운과 눈이 마주치자 간이 오그라드는 듯했다.
“알겠수.”
“대운사 쪽의 소식은 들어온 것 없소?”
“구천성의 소성주가 대운사에 갔수. 그 여자를 지키려고 수혼대와 흑월대, 백천대가 움직였다는 소식이우.”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호위였다.
‘문제는 소성주를 노리는 자들의 무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하는 건데…….’
장천운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장한이 고개를 슬쩍 쳐들며 말했다.
“아! 그리고 대운사와 관계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 백여 명이 북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걸 본 사람이 있수.”
“북쪽? 어디서 북쪽으로 갔다는 거요?”
“정확히는 모르고, 구치에서 온 장사치가 그렇게 말했수.”
구치라면 동쪽으로 삼백여 리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서 북쪽이라면…… 대운사 쪽이다.
‘그들이 정말 대운사로 갔을까?’
무사가 백 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 정도면 대문파에서나 움직일 수 있는 무력이다.
‘장사치가 대문파 무사의 복장을 모를 리는 없고…….’
세상에 알려진 강호문파 중 구천성 외에 구치 인근에서 무사 백 명이 움직일 만한 곳은 없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면?
마침 장천운은 그런 곳을 알고 있었다.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이나.
일원장, 그리고 비영곡.
‘어느 쪽에서 움직인 거지?’
어느 쪽이든, 그들이 움직였다면 강호는 혼돈에 빠질 것이다.
천외의 노괴들이 원하는 대로!
“밥 좀 주쇼. 먹고 바로 출발해야겠습니다.”
* * *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아침.
사마경은 아픔을 가슴에 묻고 대운사를 출발했다.
주지에게 대운사가 재건되면 다시 위패를 봉안해 달라는 부탁을 해놓았으니 그에 대해선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대운사를 출발한 사마경 일행은 유시 초쯤 응포진에서 이십 리쯤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길 양쪽은 갈대로 뒤덮인 들판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동안 세찬 바람이 쉴 새 없이 갈대를 흔들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