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8화
눈살을 찌푸린 사마경은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독고민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사마경은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를 무시했다.
입가에 냉소를 띤 독고민이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있던 혁련기가 그의 앞을 막았다.
“독고민, 더 이상은 접근을 허락할 수 없다.”
독고민은 멈출 생각이 없는 듯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다가왔다.
혁련기도 물러서지 않고 막아섰다.
독고민은 다섯 자쯤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췄다.
“좀 비켜주겠나?”
“흑월대는 소성주님의 호위를 맡고 있다. 허락 없이 다가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게 누구든.”
“나는 단지 소성주께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이야기나 나누어보려는 거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군. 소성주께선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다. 돌아가라.”
“그래?”
입술을 비틀며 차가운 조소를 지은 독고민이 사마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성주,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소.”
그래봐야 사마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령주에 대한 이야기요.>
이번에는 전음이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마경은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아예 패왕거 쪽으로 몸을 돌렸다.
독고민은 그 모습을 보고도 똑같은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대령주 뒤에 누가 있는지 아시오?>
막 발을 떼려던 사마경이 그대로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소성주도 뭔가를 눈치 챘을 거라 생각하오만.>
사마경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일각의 시간을 주겠어요. 어디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들어보죠. 혁련 조장, 길을 터줘요.”
혁련기는 독고민이 사마경과 독대하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가봐라. 대신 수상한 행동을 하면 후회할 일이 벌어질 거다.”
독고민의 냉소가 짙어졌다.
지그시 혁련기를 응시한 그는 아무 말 없이 사마경을 향해 걸어갔다.
혁련기는 입을 꾹 다문 채 독고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등줄기를 타고 송충이가 기어가는 듯했다.
‘정말 전과는 많이 달라졌어. 눈동자가 푸르스름한 것과 연관이 있나?’
사마경은 정확히 일각 동안 독고민과 대화를 나누었다.
독고민이 한 말은 세 가지였다.
공손백의 배후가 천외와 관련이 있다는 것, 이번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공손백이 야욕을 드러낼 거라는 것, 그의 야욕을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필요하게 될 거라는 것.
“……이전의 독고민은 잊으시오. 현명한 소성주라면 어느 쪽을 택하는 게 이득이 될 것인지 잘 아실 거요.”
사마경은 서너 번 질문을 던질 때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듣기만 했다.
독고민은 정말 놀라운 말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주먹을 얼마나 세차게 쥐었는지 손가락 끝이 손바닥을 구멍 낼까봐 걱정될 정도였다.
또 하나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독고민 자신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이전의 독고민은 없었다. 말투나 표정, 전신에서 흐르는 기운, 그 어느 것도 과거의 독고민과 닮지 않았다.
사람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지만 그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고,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놀랍긴 해도 당장 모든 것을 뒤집어 놓을 정도는 아니었다.
독고민의 이야기에는 핵심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 말은 할 수 없었겠지.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테니까.’
장천운을 통해서 독고태가 천외와 관련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독고민 역시 관련되었을 것은 당연한 일.
그는 분명히 더 깊은 이야기를 알고 있을 텐데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야기를 듣던 중에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걸 말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더 깊은 이야기를 해서라도 자신의 관심을 끌려고 하지 않았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위험한 모험이었다.
“이야기 잘 들었어요. 믿기 힘든 이야기도 있지만 그거야 언젠가는 밝혀질 일, 독고 공자의 제안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겠어요.”
독고민으로선 만족할 만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요할 수도 없는 일.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머지않아서 알게 될 거요. 내 진심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만 가보세요.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알겠소.”
독고민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포권을 취하고 몸을 돌리던 그가 구양명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천한마검 구양 선배가 소성주 곁에 계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입술이 미묘하게 비틀렸다. 조소처럼 느껴지는 표정.
구양명은 차갑게 굳은 눈으로 독고민을 노려보았다.
무림맹과의 대격전 이후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독고민이 알았다고 해서 놀랄 건 없었다.
그 사실이 알려졌을 때 많은 사람이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적이나 다름없던 구양명이 언제, 왜 소성주의 사람이 되었을까?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일부는 소연추 때문일 거라고 했다. 구양명이 그녀와 단짝이 되어서 돌아다니는 걸 본 사람들은 그 말에 한 표를 던졌다.
당하의 전쟁이 참여했던 사람들은 장천운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다. 술에 취한 그와 함께 들어온 장본인이 장천운이니까.
어쨌든 구양명이 구천성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고수 중 하나가 자신들 편에 있다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소성주 사람이라는 것을 못마땅해 할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독고민 역시 후자 중 하나라고 봐야 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할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부디 그 이유가 나쁜 쪽이 아니길 바라마.”
“언제 시간이 되면 선배의 검을 한번 구경하고 싶군요.”
“원한다면 얼마든지 보여주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니 돌아가도록 해라.”
독고민은 여전히 입술을 비튼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구양명은 그가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뭐, 마음에 걸리는 것 있어요?”
소연추가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놈의 몸속에 전에 없던 기운이 살모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소. 문제는 독을 가득 품고 있는 기운이라는 거요. 아무래도 소성주의 호위에 좀 더 신경을 써야할 것 같소.”
소연추의 표정이 굳어졌다.
구양명이 그리 말할 정도면 정말로 위험한 존재라는 말이었다.
“독고민이 중독되어서 쓰러진 건 기껏해야 한 달이에요. 그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군요.”
“기간이 짧다는 게 더 마음에 걸리는구려. 뭐든 지나치게 빠른 변화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이니까.”
그때 패왕거로 들어가려던 사마경이 냉랭히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제 허락을 구하지 말고 구양 대협의 판단대로 하세요.”
* * *
“사마경이 대운사로 향했습니다. 아마 내일 오후쯤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장산의 보고를 받고도 무 노인은 태연히 차를 마셨다.
그는 입술을 가볍게 적신 후 찻잔을 내려놓고 파문이 이는 찻잔 속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때가 되어 가는가?’
고요히 흐르던 강호의 흐름이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후덥지근하게 불어대는 바람에서 비릿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마치 강호 전체가 헤어날 수 없는 구덩이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듯했다.
“누가 대운사를 태웠을 거라고 보느냐?”
“대운사에는 사마경의 조부와 부모의 위패가 있습니다. 부친의 시신마저 사라진 지금 위패마저 모두 불에 탔으니 당연히 대운사로 달려갈 수밖에 없겠지요. 공손백 쪽에서 그걸 노린 것처럼 보입니다.”
“사마경을 끌어내서 죽이려고 대운사를 불태웠다?”
장산은 대답을 미리 준비해놓기라도 한 듯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안휘에 있는 동안 무림맹과 싸우던 사마경이 죽으면 공손백도 의심을 덜 받지 않겠습니까.”
무 노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말이 맞다. 어쩌면 그래서 더 중요한 때일지 모르겠구나.”
“하명을 하시지요.”
“무림맹이야 걱정할 것 없다. 지금 자만에 가득차서 고집피운 대가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
“하오면…….”
“문제는 천외 놈들이다. 그들은 사마경이 죽거나 중상을 입어서 더 이상 소성주 역할을 못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구천성을 장악하기 위해서 모습을 드러낼 거다. 결국 천하의 흐름이 천외 늙은이들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지.”
장산이 살짝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었다.
“그렇게 놔두실 겁니까?”
“구천성이 아무리 싫더라도, 그 늙은이들이 바라는 대로 되는 걸 보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무 노인이 콧등을 씰룩이며 말하고는 지시를 내렸다.
“그 늙은이들은 파천회에 심어놓은 촉수가 모두 떨어져나간 걸 알고 우선적으로 나를 찾아내서 제거하려고 할 거다. 그 늙은이들이 보낸 자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할 것 같구나. 상대할 방법은 가면서 생각해 보자.”
* * *
대운은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강호무사들의 싸움이 길어질 경우, 그날그날 벌어서 먹고 사는 양민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위험해도 길거리로 나오는 수밖에.
‘아미타불.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힘없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어하는데.’
명분은 있다. 하지 않으면, 악의 무리가 권력을 잡으면 더 오래도록, 더 심하게 힘들어진다는 것. 그러니까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구천성이 강호를 휘어잡은 수십 년 동안 양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나? 더 많은 강호무사들이 마인이 되었나? 정파가 견딜 수 없는 핍박을 받았나?
글쎄다. 잘 모르겠다.
그럼 그들이 먼저 칼을 휘둘렀나?
십여 년 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 싸움은 무림맹이 먼저 칼을 겨누었다.
의협을 위해서?
말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아니라는 걸 알만 한 사람은 안다.
그저 옛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칼을 겨누었다는 걸.
그래도 무사들은 사문을 지켜야하고, 형제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칼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나중 문제다.
어쩌면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의협과 정의는 명분일 뿐이기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게 진짜 목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마경이 돌아오려면 며칠 걸릴 것 같은데?”
이십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 조금 작은 듯 느껴지는 키에 갸름한 얼굴, 맑은 눈빛을 지닌 청년이 말했다.
그가 바로 ‘무당파의 미래’라 불리는 무경이었다.
대운은 창문에서 눈을 떼고 몸을 돌렸다.
일곱 명의 일행 중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넷. 그와 무경, 황보세가의 황보상, 화산파의 청기가 있었다.
하북 팽가의 팽수와 진주 언가의 언홍두, 종남파의 속가제자인 추명락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밖에 나가 있었다.
그런데 대운과 무경, 청기는 승복과 도복이 아닌 속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떠나올 때부터 구천성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변복한 것이다.
문제는 머리였다. 무경과 청기야 머리 모양만 바꾸면 되었지만, 대운의 빡빡 깎은 머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대운은 머리를 천으로 감싸고 초립을 썼다.
“아쉽군. 하필이면 장천운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이창에 없다니.”
대운이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다고 기다릴 수만은 없잖아?”
“일단은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철기보 내부의 정보를 취해 보세.”
그때 창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다시 고개를 돌려서 창문 밖을 내려다 본 대운의 표정이 급변했다.
“저런! 아미타불.”
무경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