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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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5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7화
“나는편에 걸겠지?”
한경도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룡문 간부들의 전신에서 거센 오늘 우리 귀룡문이 무창의 흑도를 쓸어버릴 수 있다는 쪽에 걸겠다. 그대는 당연히 반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문주!”
“오늘 이놈들을 쓸어버리지요!”
“곽 선배만으로는 우리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저 건방진 애송이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리라!
대부분이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평도만은 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다.
곽교진 때문이었다.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혀 있었다. 마치 그물에 걸려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때 장천운이 호양청을 불렀다.
“호 형.”
호양청이 일어나더니 두 손을 맞잡고 공수의 예를 취했다. 그는 눈치도 빠르게 장천운을 급조한 호칭으로 대했다.
“예, 령주.”
“정리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무창성 밖의 이백현에 있는 자들까지 처리하려면 한 시진 정도는 주셔야 하오.”
“한 시진이라…… 그럼 이 안에 있는 사람들만 처리하면 우리가 내기에서 이기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우리 누가 먼저 정리를 끝내는지 내기해볼까요? 이기는 사람이 ‘형’하는 겁니다. 우리 흑도에서는 나이를 떠나 힘 쎈 놈이 대형이거든요.”
“싫소. 나는 질 것을 뻔히 아는 내기는 하지 않소.”
한경도의 냉랭하던 얼굴에 균열이 갔다.
이백현은 귀룡문의 무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다. 장소를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한 시진 안에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이후의 말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 그들보다 자신들이 더 빨리 질 거라는 말이니까.
허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담담하고 흔들림 없는 말투.
평소였다면 분노에 치를 떨며 당장 검을 뽑아서 상대의 목을 쳤을 그다. 하지만 오늘은 검을 뽑는 대신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귀룡문을 장난감 취급하는 놈이 누군지는 알아야할 것 아닌가.
아니, 그것은 핑계고, 실제로는 원인 모를 불길함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흑월령주라는 놈을 보고 있는 동안 솜털이 곤두서 있었다. 손바닥에는 땀이 차 있었고.
“너는 누구냐? 이름 없는 놈은 아닌 것 같다만?”
“호양청이라 합니다.”
“호양청?”
한경도는 이름을 되뇌며 눈살을 찌푸렸다. 언젠가 들어본 이름 같은데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평도가 먼저 호양청의 정체를 떠올리고 눈을 홉떴다.
“혹시 천은방의 천은공자 호양청?”
“그렇습니다. 우리 천은방은 흑월회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그 말에 홍화승이 벌게진 얼굴로 코웃음 쳤다.
“흥! 구천성에 반기를 든 천은방답구나! 흑도무리를 움직여서 본 문을 어떻게 해보려는가 본데, 어림없다, 호양청!”
“뭘 잘못 아셨습니다. 본 방이 흑월회를 움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흑월회의 뜻에 따르기로 한 것이지요.”
“천은방도 갈 데까지 갔군. 흑도무리의 말에 좌우되다니.”
“그에 대한 판단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 다시 뵙겠습니다, 령주. 저는 이백현으로 가기 전에 현풍장부터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이만.”
호양청은 한경도를 행해 포권을 취하고는 문 쪽으로 향했다.
“멈춰라!”
한경도가 버럭 소리치며 일어섰다.
호양청이 말한 현풍장은 몰래 들어온 귀룡문 일백 무사가 있는 곳이다. 그곳의 일을 처리하겠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순순히 내 보낼 수 없었다.
“허락 없이 이곳에서 나가는 자는 누구든 용서치 않겠다!”
살기 띤 목소리.
귀룡문의 장로와 호법들이 좌우로 쫘악 갈라지더니 입구와 창문을 막아섰다.
한경도 곁에 남은 사람은 한평도와 유강뿐.
그때였다.
“이곳은 귀룡문이 아니외다!”
짧게 외친 장천운이 탁자의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콰앙!
폭발음이 귀청을 터트릴 것처럼 울리고, 거대한 탁자가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한경도 쪽을 향해 밀려갔다.
한경도와 한평도, 유강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밀려가던 탁자가 그들이 뻗은 손에 막혔다.
그 순간, 세 사람은 벼락이 관통하는 충격에 눈을 치켜떴다.
‘흡!’
“헉!”
“크읍!”
그들은 거의 동시에 신음을 삼키고, 내질렀다.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부릅떠졌고, 안색은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그그그그극.
탁자는 그들 셋을 다섯 자나 밀어낸 후 멈춰 섰다.
“피를 보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꼭 봐야만 한다면 어쩔 수 없지요.”
장천운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괴이한 울림이 있었다.
“이노오옴!”
홍화승이 노성을 내지르며 몸을 날려서 탁자를 타넘었다.
덩치가 한경도 못지않게 큰 그였다. 그의 손은 짙은 갈색이 돌아서 마치 쇠로 된 듯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성질 급한 그에게 철장호(鐵掌虎)라는 별호를 붙여주었다.
홍화승은 바로 그 갈색 쌍장을 앞세우고 장천운을 덮쳤다.
그의 손이 갈색인 것은 익힌 무공 때문이었다. 실질적으로도 그의 손은 쇠만큼이나 단단했고, 수공은 무쇠조차 부술 정도로 강력했다.
장천운은 마주 한 발을 내딛고 두 손으로 원을 크게 그리며 뇌정무극수를 펼쳤다.
그가 염라전에 발을 딛기 이전의 뇌정무극수가 아니었다.
손을 뻗자 우르릉거리는 뇌음이 동반되었다.
뇌정무극의 기운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가면서 진짜로 벼락이 치듯 눈부신 빛이 터졌다.
쿠구궁!
뇌정의 공명이 흑룡전을 뒤흔들었다.
첫 번째 손짓에 홍화승의 철장이 무력화되고, 두 번째 손짓이 홍화승의 몸을 북처럼 두들겼다.
떠더덩!
“크허억!”
날아들던 홍화승의 몸뚱이가 튕겨져서 탁자 너머로 날아갔다.
“헛! 홍 장로!”
호법 중 하나인 인청도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두 발을 바닥에 굳건히 딛고 선 그는 두 팔을 뻗어서 날아드는 홍화승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공력을 끌어올려서 충격을 최대한 완화하려 했다.
그러나 홍화승은 몸무게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장천운이 쏟아낸 뇌정무극수의 여력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이를 악물고 뒤로 주르륵 물러선 인청도는 쾅! 하며 벽에 부딪친 다음에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의 안색은 회칠을 한 듯 창백했고, 홍화승을 안은 두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갑자기 흑룡전 안이 고요해졌다.
바락바락 욕을 하던 장로와 호법들도 입을 꾹 닫았다.
장천운이 탁자를 밀치고, 한경도 등 세 사람이 탁자를 막고, 홍화승이 공격했다가 튕겨져 날아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한 호흡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숨을 쉬지도 않고 그 광경을 모두 보았다.
꿈을 꾸는 듯했다.
“마지막 기회요, 문주. 호 형이 이 흑룡전을 나가기 전까지 결정을 내려주시오.”
무엇을 결정하라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까.
한경도는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아직도 탁자를 막은 두 손이 얼얼했다. 혼자도 아니고 셋이 막았는데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절정경지에 이른 홍화승이 일수에 튕겨져 날아간 걸 보고도 놀라지 않은 것은.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때 호양청이 흑룡전 입구를 향해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한경도의 귀에는 호양청의 발걸음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한경도는 눈을 돌려서 곽교진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난리가 났음에도 곽교진은 조금 전과 같은 표정이었다.
조금 전에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곽 형이 산을 만났다고 했을 때 신중히 생각했어야 하거늘…….’
곽교진은 패배했다고 해서 마음까지 주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아는 한, 지금까지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산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산을 숭앙하는 그에게 산(山)은 곧…… 하늘(天)이었으니까.
한경도는 다시 시선을 장천운에게로 돌렸다.
그 사이 호양청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입구 근처까지 다가간 상태였다.
귀룡문의 호법과 장로들은 눈치를 보았다.
저 자식을 막아야 해, 놔둬야 해?
호가 놈도 저놈처럼 무식하게 강한 것 아닐까?
문주가 명령을 내리면 당연히 막아야 하지만, 홍화승처럼 성질 급하게 나서서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흑룡전 바깥에는 귀룡문의 무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을 나간다 해서 자신들의 손을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내심 그런 핑계를 대고 한경도의 결정을 기다렸다.
덜컹.
호양청이 흑룡전의 문을 열었다. 눈부신 황금빛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져 들어왔다.
한경도의 입도 열렸다.
“조건이 있다.”
“말씀해보시지요.”
“내기의 방법을 바꾸자.”
한경도는 낯이 달아오르려는 걸 억지로 눌렀다.
강호에 뛰어든 후 ‘일구이언 이부지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 그였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는 말도 많이 했다.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면 물건을 떼어버려야 해.’라고 자신만만하게 다그친 적도 있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을 반각도 지나지 않아서 바꾸게 생겼으니 낯이 뜨거워지는 것도 당연했다.
다행히 장천운은 그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흐르는 피를 줄일 수만 있다면 일구삼언인들 어떠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너와 나, 단 둘이 대결을 해서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의 부탁을 뭐든 하나 들어주기로 하자.”
그럼 패한다 해도 명분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귀룡문의 무사들도 무사할 것이고.
그런데 장천운이 말했다.
척,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두 개 뻗으며.
“두 가지 들어주기로 하죠.”
“…….”
하나든 둘이든, 지금 그게 중요한가?
‘빌어먹을 놈.’
한경도는 한마디 쏘아주고 싶은 걸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두 가지로 하지. 그럼 나갈까?”
밖으로 나온 귀룡문 사람들은 놀란 듯 굳어진 표정으로 흠칫했다.
밖의 상황은 자신들이 예상하고 있던 것과 판이했다.
담장 위와 아래에 고요히 서 있는 무사들의 숫자가 이백여 명은 될 듯했다.
흑월회 복장이긴 하나 흑도의 건달들이 아니었다. 모두 정식으로 수련한 무사들이었다.
그들이 귀룡문 호위대를 완벽하게 포위한 상태로 퇴로마저 차단하고 있었다.
만약 문주가, 자신들이 고집을 피웠다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언제 흑룡회가 이토록 무섭게 변했단 말인가.
그때 왕규가 어깨를 펴고 척, 손을 들더니 가볍게 좌우로 저었다.
흑룡회 무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포위망을 풀었다.
귀룡문 간부들의 경악한 얼굴을 슬쩍 훔쳐본 왕규는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흐흐흐, 이 짓도 할 만하군.’
그 사이 한경도는 장천운의 뒤를 따라서 흑월전 뒤쪽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만약 패한다면 구천성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벌써부터 고민이었다.
‘제길,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내 목숨 하나로 끝내는 수밖에.’
* * *
철기보에서 대운사까지 가는 길은 평탄했다. 큰 강도 없었다.
패왕거도 불필요한 모든 짐을 내려놓은 터라 말들이 다른 때보다 가볍게 질주했다.
심지어 류화와 연송하마저 한 사람씩 교대로 타고 한 사람은 경공을 펼쳐서 달렸다.
덕분에 다음 날 시뻘건 석양이 서산에 걸쳤을 즈음에는 대운사에서 백여 리 떨어진 응포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포진은 큰 마을이 아니었다. 객잔이라고는 탁자 서너 개가 놓은 작은 객잔 하나뿐.
사마경 일행은 응포진 근처의 들판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인원이 분산되어서 위험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사마경도 패왕거가 있으니 불편할 것은 없었다.
음식이야 응포진의 객잔에서 조달받으면 될 듯했고.
어둠이 짙어지자 군데군데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패왕거 근처에서도 상당히 큰 모닥불이 넘실거렸다.
사마경은 패왕거에서 나와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노로 인해 새카맣게 탔던 가슴이 응포진까지 달려오는 동안 싸늘하게 식었다.
분노 자체가 풀렸다는 말이 아니었다.
가슴만 싸늘하게 식었을 뿐이다.
오히려 대운사에 불을 지른 자들의 목적을 차분히 생각해보면서 분노가 더욱 차갑게 얼어붙어서 만년빙처럼 단단해졌다.
‘내 가슴에서 자비심을 지우려 했다면 당신들은 성공했어.’
그때 오른쪽에서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군. 안 그렇소, 소성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