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6화
사마경은 독고민과 동행할 마음이 없었다. 함께 가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미안해요. 함께 가기로 한 호위대만 해도 지나치게 많아요. 독고 공자는 이곳에 남아서 독고 단주를 도와주세요.”
“어차피 무림맹은 피해가 커서 바로 공격할 수 없는 상황이라 들었소. 나 하나 없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을 거요.”
“본 성의 적이 무림맹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파천회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게다가 천외의 무리도 수상한 수작을 부릴지 모른다.
“이전의 독고민을 생각하고 있는 거라면 걱정할 것 없소. 전처럼 소성주에게 매달리지 않을 거요.”
독고민의 말에 사마경은 물론이고 소연추와 구양명, 심지어 백리우진조차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말이어서 더 이상했다.
사람의 천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독고민처럼 어려서부터 떠받듦만 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더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의 독고민은 전과 너무나 달랐다.
단지 말만 달라졌다는 게 아니었다. 은연중 행하는 모든 것이 달라진 듯 느껴졌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의 경험이 천성을 바꾸어놓은 걸까?
하지만 독고민을 잘 모르는 용화성은 그런 독고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하하하, 소성주, 독고 공자께서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함께 가시지요?”
정말 눈치가 눈곱만큼도 없는 용화성이다.
사마경은 눈을 가볍게 찡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생각을 바꾸었다.
“좋아요. 함께 가요. 대신 쓸데없이 나서는 경우가 없었으면 해요. 그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돌려보낼 거예요.”
“걱정 마시오. 폐를 끼치지는 않을 거요.”
“백천대와 함께 하도록 하세요.”
“그렇게 하리다.”
사마경은 독고민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
그러나 겉모습만 그럴 뿐, 속으로는 강하게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하지 않았다.
‘확실히 전과는 많이 달라졌어.’
자신만만한 말투며, 오만함이 느껴지는 표정.
그뿐이 아니다. 내면에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거대한 기운이 잠재된 듯했다. 그리 썩 기분 좋은 기운은 아니지만.
그녀가 생각을 바꾼 것은 순간적으로 그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수상한 기운이야. 어쩌면 독고민이 달라진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97장: 바로 저 친구요
이글거리는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진 신시 말.
철컥, 철컥, 철컥…….
무기를 든 귀룡문 무사 수십 명이 홍구로로 들어섰다. 이열로 늘어선 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며 길을 텄다.
그들이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홍구로의 일반 양민들은 어깨를 움츠리며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무사들 중앙에서는 십여 명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십대 중후반의 초로인을 중심으로, 우측에 서서 걷는 사람은 한평도였다.
그의 반대편에서 걷는 자는 나이가 마흔쯤 될 듯했다. 얼굴에 기다란 자상(刺傷)이 나있었는데, 그 자상 때문인지 몰라도 잘 벼린 한 자루 검을 보는 듯했다.
혈섬검객 유강. 한때 호북 서부의 강호를 종횡하며 내로라하는 고수 삼십여 명을 삼검 안에 꺾었다는 쾌검의 달인이 그다.
두 사람을 좌우에 거느린 중앙의 초로인은 장대한 체격이었다. 이마에 푸른 옥이 박힌 영웅건을 매고 청색 비단장포를 걸친 그는 걸음걸이가 위맹한 장수처럼 당당했다.
그가 바로 귀룡문의 문주인 청룡비검 한경도였다.
세 사람의 뒤를 여덟 명이 따라가고 있었는데, 귀룡문의 사대호법과 장로 넷이었다. 그들은 불만이 많은 듯 주위를 둘러보며 구시렁거렸다.
“우리가 왔는데도 마중 나오는 놈이 없다니, 여차하면 싹 쓸어버리자고.”
“그 동안 너무 놔두어서 간덩이가 탱탱 부었어.”
“궁천도가 왜 이런 놈들과 함께 있는지 모르겠군.”
홍구로를 빠르게 통과한 그들은 흑월회 정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다렸다는 듯 흑월회의 커다란 정문이 양쪽으로 열렸다.
왕규가 어깨를 떡 펴고 안쪽에 서 있다가 문이 열리자 포권을 취했다.
“어서 오십시오, 문주. 흑월회의 왕만이라 합니다.”
흑월회의 회의전에는 기다란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를 중심으로 이십여 명이 양쪽으로 나누어져서 앉았다.
귀룡문 쪽은 문주인 한경도가 가운데 앉았다. 그의 좌우에 한평도와 유강이 앉고, 사대호법은 오른쪽에, 장로 넷은 왼쪽에 자리했다.
반대편에는 곽교진과 왕문이 중앙에 앉아 있었다. 잔뜩 긴장한 단혈방주 만대평과 혈수문주 오서는 왕문 옆에 앉았고, 곽교진 옆에는 호양청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천은방의 고수 둘이 앉았다.
그 와중에도 장천운은 맨 구석에 앉아서 존재감을 내드러내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곽교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한경도였다.
“곽 형이 이곳에 계신 줄은 몰랐소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소.”
“흑월회가 본 문을 능멸하려 한다면 아무리 곽 형이 있다 해도 용서치 않을 거요.”
“이 곽교진이 왜 이곳에 있는 줄 아시오?”
“말씀해 보시오.”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오.”
“내기? 곽 형이 저들과 무슨 내기를 했단 말이오?”
“무사가 무슨 내기를 하겠소?”
한경도의 눈이 점점 커졌다. 안색도 굳어져서 위맹한 형상의 장군상이 눈을 부릅뜬 채 앉아 있는 듯했다.
“설마…… 무공으로 내기를 했다가 지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래도 붕천을 얻었으니 손해는 아니었소.”
한경도의 부리부리한 눈이 더욱 커졌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곽교진이 말한 붕천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칠 년 전, 그는 곽교진과 손을 나눈 적이 있었다. 당시 백 초를 겨루고도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그때 곽교진이 마지막으로 펼친 초식이 미완성의 붕천도였다. 아마 곽교진이 붕천도를 완성했다면 자신은 그때 패배의 쓰라림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럼 붕천을 완성하고도 졌단 말이오?”
“붕천으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소.”
“도대체 상대가 누군데…… 혹시 총회주 왕만?”
한경도는 왕규를 앞에 두고도 거침없이 말했다. 본래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안에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정보장사꾼인 왕규도 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피식 웃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오. 그와의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왕 회주와 함께 무창으로 온 거요.”
이어진 곽교진의 말에 한경도는 곤혹한 표정이 되었다.
결국 누군가가 곽교진과 왕규를 움직여서 무창의 흑도를 정리했다는 뜻 아닌가 말이다.
“경화는 아닌 것 같고…….”
장강팔련의 주인, 장강수왕 경화. 신분만 따지면 그도 자격은 되었다.
“그가 강하긴 하지만 붕천도를 단숨에 꺾을 정도는 아니오.”
“그럼 혹시…… 삼장무적?”
“단리황 선배라면 당연히 붕천도를 꺾을 수 있소. 하지만 내가 그 분을 만난 것은 오 년 전이 마지막이었소.”
“그럼 도대체 누가 곽 형의 붕천도를 꺾었단 말이오?”
한경도가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소리쳐 물었다.
귀룡문의 장로와 호법들도 곽교진의 입만 주시했다. 건방진 흑룡회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속으로 별렀거늘,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곽교진이 천천히 시선을 돌려서 한쪽 구석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겠나?”
구석에 앉아 있던 장천운이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제가 진행하죠.”
한경도와 귀룡문 간부들의 눈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곽교진이 방점을 찍었다.
“바로 저 친구요, 문주.”
한경도는 어이가 없었다. 얼굴이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반쯤 가려졌으나 새파랗게 젊은 놈이란 것을 완전히 감출 순 없었다.
궁천도가 정말 저 새파란 놈에게 패했단 말인가?
자신도 감당할 자신이 없는 완전한 붕천도를 펼쳤는데도?
“솔직히, 믿기가 힘든 말이구려.”
그때 장천운이 일어서며 포권을 취했다.
“흑월령주 운이라 합니다.”
흑월령주는 급조한 호칭이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제법 그럴 듯했다. 가명인 ‘운’도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작명에 만족한 장천운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주, 흑월회와 귀룡문의 자존심을 걸고 내기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
한경도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흑월회와 귀룡문을 판돈으로 내놓고 내기를 하자?
참으로 건방진 말 아닌가.
그가 가만히 있자, 귀룡문 장로인 홍화승이 버럭 꾸짖었다.
“어허! 젊은 사람이 예의가 없군! 감히 그딴 말을 함부로 내뱉다니, 우리 귀룡문을 능멸하겠다는 건가!”
“저는 귀룡문을 능멸한 적이 없습니다. 동등한 조건으로 내기를 하자는 게 어찌 능멸입니까?”
“흑월회 따위를 본 문과 동일시 한 것이 능멸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동일하게 말씀드린 것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말입니다만.”
탕!
탁자를 친 홍화승이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럼 우리 귀룡문이 흑월회보다 못하단 말이냐?”
“못하다고는 안했습니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동일하게 말했다는 것이지요.”
“흥! 지금 말장난을 하겠다는 거냐?”
홍화승은 짐짓 코웃음을 치며 장천운을 다그쳤다.
의도된 도발이었다. 흑월회의 자존심을 건드려서 실질적인 무력을 파악해보겠다는 뜻.
그러나 장천운은 그 정도에 코털 하나도 끄떡하지 않았다.
“말장난인지 아닌지는 내기를 해보면 알겠지요.”
그에 대해선 한경도가 말했다.
“하지 않겠다면?”
“싫다면 어쩔 수 없지요.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단, 이 시간 이후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저희에게 책임을 묻지 마십시오.”
“본 문과 전면전이라도 벌이겠다는 건가?”
“저는 피를 두려워하진 않습니다만, 괜한 피를 보는 것 또한 싫어합니다. 전면전은 최악의 선택이지요.”
“그럼 무슨 일을 벌여서 우리를 곤란하게 할 생각이냐?”
“별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가려면 아무래도 새로운 사업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귀룡문의 사업과 부딪치는 것이 많지 뭡니까.”
한경도의 두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장천운은 그 눈에 기름을 바가지로 부었다.
“해서 말씀입니다만, 앞으로 귀룡문은 무창의 선창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무창과 관련된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셔야 할 겁니다.”
귀룡문의 수입 중 칠 할이 무창의 사업에서 나온다. 무창에서 사업을 하지 말라면 망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말만 전면전을 피하겠다는 것이지 대판 붙어보자는 뜻.
장로와 호법들이 먼저 대노해서 악다구니를 써댔다.
“뭐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새파란 애새끼가 입이 뚫렸다고 못하는 말이 없구나!”
“문주, 더 들을 것 없습니다!”
몇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당장 공격할 것처럼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한경도는 차가운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기만 했다.
“젊은 친구가 배짱하난 좋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장천운 역시 간부들의 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한경도였다.
“배짱만 갖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럼 우리가 호랑이굴 안에 들어온 양처럼 보였나?”
“그럴 리가요? 무창성 근처에서 대기 중인 무사들만 해도 이백이고, 안으로 들어온 귀룡문의 삼당 정예무사가 백 명이 넘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한경도의 새파랗게 번뜩이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협상결과를 보고 결단을 내리기 위해 대규모 무력을 움직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움직임을 모두 파악한 듯하다.
하긴 무창의 흑도를 모두 움직였다면 파악하지 못할 것도 없다.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할 때는 그만한 자신감이 있단 말이겠지. 흠, 오늘 피가 많이 흐를 것 같군. 벌써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가시려고 하는군요. 내기를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 같습니다만.”
장천운의 그 말에 한경도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내기라…… 좋아,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군. 그런데 그 내기의 방법은 내가 정하겠다.”
“말씀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