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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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44화
서문주경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가 아는 이천릉은 과거의 패배 때문에 복수를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도 삼십 년 전의 일 아닌가.
“왜 그들과 싸운단 말입니까? 설마 삼십 년 전에 패한 원한 때문은 아닐 것이고…….”
“그들은 지난 삼십 년 동안 강호의 큰일에 관여해서 결과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았네. 한마디로 강호를 뒤에서 좌우했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들에 의해서 죽어갔다네.”
“예?”
“구천성이 저리 큰 것도, 사마중천이 혈풍을 일으키며 천하를 휩쓴 것도, 이십 년 전에 강호를 뒤흔들었던 삼대의혹사건도, 모두 그들이 뒤에서 조종했던 일이었지.”
“허어…….”
삼대의혹사건은 세 문파의 혈겁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이십 년 전, 한때 강호에서 잘 나갔던 문파가 하룻밤 사이에 몰살당했다.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개새끼 한 마리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 문제는 범인도 모르고, 원인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삼사 년 간격으로 살겁이 벌어져서 강호를 공포로 짓눌렀다.
무림맹도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조사를 한다며 변죽만 울리다 조용해졌다.
오히려 구문 팔가 중 몇몇 문파는 행여나 자신들이 혈겁의 대상이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그 공포의 사건이 천외에 있다는 자들의 소행이라니.
하지만 경악할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아나?”
“…….”
“그들에게는 그게 즐거운 놀이에 불과했거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놀이 말일세.”
“…….”
서문주경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반쯤 벌린 채 말을 못했다.
이천릉이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말을 맺었다.
“그들에 대한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면서 힘을 모았네. 드러나면 그들에게 사냥을 당할 테니까. 그리고 그들을 찾기 시작했지. 다행히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그들에 대한 것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네.”
겨우 정신을 차린 서문주경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구천성을 조종할 힘이라니…… 소제는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런 정도의 힘이라면 천하일통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할만도 했다. 천하의 누가 이천릉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군가가 천하를 뒤에서 조종했다니.
그런데 모용문태가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믿기지 않아도 믿어야 하오.”
서문주경의 눈이 그에게로 향했다. 두 눈에는 불쾌감이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모용 아우도 알고 있었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나?”
“아시잖습니까? 십오 년 전에 우리 모용가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그럼…… 그 일도…… 그들이……?”
“그 날 아버님의 가슴에 검을 쑤셔 넣은 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여동천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친동생보다, 자식보다 더 신임했던 자.”
“으으음.”
“얼마 전에야 그가 천외에 속해있다는 걸 알았지요.”
서문주경은 모용문태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다 해도 자신을 믿지 못해서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은 서운했다.
“가슴이 아프군. 함께 있으면서 이 우형을 믿지 못하다니.”
“그 일은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안에도 그들의 수족들이 있는 판이니까요.”
“뭐야? 그게 무슨 말인가?”
“오늘 사실을 밝힌 것도 그놈들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냉랭히 말한 모용문태가 쓱, 고개를 돌려서 좌중을 노려보며 몸을 일으켰다.
“나머지 이야기는 쥐새끼들을 때려잡은 후 하지요.”
그때였다.
앉아 있던 자들 중 셋이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팔기주 중 청기주와 녹기주,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파천회의 내부 살림을 담당한 내삼당의 당주 중 하나인 금경당주 나궁이었다.
“갈!”
“흥! 어딜 도망가려고!”
기다렸다는 듯 모용문태와 이천릉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도주하는 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도주하지 못하게 막아라!”
팔기주 중 삼기주가 도주하는 자들의 앞을 막았다. 제갈승우도 엉겁결에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도주하는 자들의 무공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콰광!
퍽!
“크억!”
주르륵 밀려난 악조백은 이를 악문 채 겨우 버텼고, 제갈승우는 뒤로 일 장 이상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그래도 그 대가로 도주하는 자들의 속도는 줄일 수 있었다.
“갈!”
일성을 내지르며 뻗은 이천릉의 장력이 청기주를 덮쳤다.
쉬아아악!
모용문태의 도기가 녹기주의 몸통을 가를 듯이 허공 삼장을 가르며 밀려갔다.
청기주와 녹기주는 몸을 빙글 돌려서 이천릉과 모용문태의 공격을 막아냈다.
콰과광!
굉음이 전각을 무너뜨릴 듯이 뒤흔들었다.
청기주와 녹기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들이 비록 알려진 것보다 강하다 해도 무제와 북천도왕의 적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 금경당주 나궁은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도주했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로구나!”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서문주경은 치를 떨었다.
청기주는 자신의 수하라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껍데기조차 모르고 있었나보다.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가 솟구친 그는 노성을 내지르며 청기주를 공격했다.
“이놈! 네놈이 감히 나를 속였더란 말이냐!”
나궁은 전각만 벗어나면 도주할 자신이 있었다.
파천회 간부들의 모임은 비밀에 속했다.
파천회 일반 무사들은 모임이 어디서 벌어지는 지도 알지 못했다.
청운궁에서의 모임은 더욱 그러해서 전각만 벗어나면 막을 자가 몇 없었다.
창문을 부수고 일층으로 뛰어내린 그는 다시 몸을 날렸다.
“아무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소이다!”
전각 주위를 호위하고 있던 무사들이 그의 앞을 막았다.
모묭문태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배치한 무사들이었다.
숫자는 이십 명. 모두 일류 이상의 고수들이었다. 한 방위에 다섯 명씩 배치된 그들은 명령을 받고도 ‘설마?’했던 상황이 벌어지자 무기를 빼들었다.
나궁은 이를 악물고 돌진했다.
간부들의 발길이 청기주와 녹기주로 인해서 잠시 막혔을 때 빠져나가야 했다.
콰아아아아!
그의 쌍장에서 광풍폭우와 같은 공세가 쏟아졌다.
호위무사들도 전력을 다해서 나궁을 막았다.
그들의 임무는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었다. 모용문태는 그들에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대의 발길을 붙잡아 놓아라!’고 했다.
내심 그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하물며 상대는 내삼당 중 금경당의 당주. 발길을 붙잡는 정도가 아니라 무릎 꿇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나궁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그의 마음은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빠져나가려고 할 만큼 절박했다.
콰과광! 떠덩!
호위무사 중 하나가 나궁의 장력에 날아갔다.
다른 하나는 머리가 부수어졌다.
순식간에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나궁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구멍을 뚫는 대가로 등과 어깨에 상처를 입은 그는 고통을 참고 몸을 날렸다.
단숨에 이십 장을 내달린 그는 땅을 박차고 담장을 넘어갔다.
‘됐어!’
그런데 담장을 넘어간 그가 막 땅에 내려설 때였다.
누군가가 앞에서 나타났다.
나궁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서 장력을 쏟아냈다.
앞을 막는 자는 누구든 적이었다.
그때 앞을 막은 자가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그자는 대낮인데도 복면을 쓰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노랗게 변했다.
예상치 못한 가공할 장력!
‘헉! 누구……!’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쾅!
천둥치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몸이 이 장 밖으로 날아가서 나뒹굴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나궁은 눈을 부릅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복면인이 다시 덮쳐오고 있었다.
시야에 온통 그자만 보였다.
그자가 다시 손을 뻗는다.
나궁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맞받아쳤다.
떠덩!
몸 속에서 천둥치는 소리가 났다. 훌훌 날아간 몸뚱이가 담장에 처박혔다.
나궁은 온몸이 분해되는 충격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세상에 어찌 저런 자가…….’
그러다 결국 공포에 물든 표정으로 정신을 잃었다.
휘익!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복면인은 담장에 처박힌 나궁을 놔둔 채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산도 몸을 돌렸다.
굳이 자신이 처리할 것도 없었다. 서문주경과 호위무사들이 담을 넘어오고 있었다.
‘소천의 능력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하군. 해볼 만하겠어.’
* * *
“시작해.”
멀리서 대운사를 바라보며 서 있던 종리성학이 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네 사람 중 둘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숙이고는 대운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종리성학은 두 사람이 대운사 앞에 있는 숲속으로 사라지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마경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그의 입가로 하얀 조소가 번졌다.
아직까지 공손백에게 자신 있게 말했던 일을 완수하지 못했다.
철통같은 호위가 사마경을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신경마저 곤두서 있었다.
그 바람에 암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그만큼 힘들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기회가 나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만들기로.
마침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대운사에 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마경이 올 거라고 보나?”
“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창에 말을 전해라. 만약 사마경이 망설이면 무조건 가게끔 만들라고 해.”
“예, 공자.”
바로 그때, 대운사 쪽에서 연기가 뭉클뭉클 솟구쳤다.
승려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자신들 있는 곳까지 들렸다.
“불이다! 극락전에 불이 났다!”
“맙소사!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이 대웅전으로 옮겨 붙는다!”
“불을 꺼라!”
곧 대운사 쪽에서 시뻘건 불길이 연기와 함께 솟구치기 시작했다.
불길이 커질수록 종리성학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도 점점 짙어졌다.
“흐음, 잘 타는군.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나?
* * *
허창으로 후퇴한 무림맹 본진은 한겨울의 꽁꽁 언 땅도 파고들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철기보에서 입은 피해를 수습하는데 보름이나 걸렸다.
인원의 피해보다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이만큼 힘을 키웠으면 구천성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겠지!
—사필귀정(事必歸正)! 하늘이 정을 수호하는 무림맹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일부 신중파 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맹도들이 그렇게 승리를 자신했다.
그러나 구천성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사마경은 무후(武后)가 환생한 듯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을 신의 계시처럼 받든 무사들은 사자와 같이 사나웠다.
장천운이 없었음에도 사나운 폭풍은 자만에 차 있던 무림맹 무사들을 날려버렸다.
결국 무림맹 무사들은 피와 주검, 그리고 가슴 저 깊은 곳에 똬리를 튼 두려움만 간직한 채 물러서야 했다.
그 후로도 사마경은 잔재마저 깨끗하게 제거하겠다는 듯 이창 북쪽 백 리 이내를 철저히 쓸어버렸다.
구천성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남겨 졌던 오백 무사가 그 혈풍에 휩쓸려서 죽어갔다.
‘사마경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어.’
제갈승조는 그날을 떠올리기만 하면 몸서리가 처졌다.
공손백에 눌려서 힘도 제대로 못 쓰는, 명색만 임시성주인 줄 알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그랬으니까.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착각도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직도 그는 장천운의 죽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죽은 것으로 알려진 날 파천회가 대대적으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 이후 파천회는 수십 명의 고수들을 잃었다.
문제는 파천회가 공격한 대상이 장천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일이 이상할 정도로 신경 쓰였다.
‘분명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긴 한데…… 가만, 혹시?’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누군가가 그를 향해 다가오며 기척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