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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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2화
“선공?”
“저들이 딴 생각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어떻게 말이냐?”
“그 동안 좌 대주께서 여철숭 총호법의 살해사건을 조사해왔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다만…… 아쉽게도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증거가 없더라도 하루 정도는 구천성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거기다 증인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증인?”
“어제, 일전에 진행했던 문인동 장로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읽어보았습니다. 문인동 장로가 총호법의 방에 다녀온 걸 본 사람이 있더군요.”
“그건…….”
전무궁이 말을 얼버무렸다.
없는 목격자를 있는 것처럼 조작했다는 말을 나중에서야 들었다.
비공은 그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정말 목격자가 있는 줄 아나보다.
쓴웃음을 지은 그가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사실 목격자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네.”
“목격자는 제가 확보했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뭐? 그게 정말인가? 설마…… 거짓 증인을……?”
“거짓 증인이 아닙니다. 실제 보긴 했는데, 그 동안 확실하게 기억하지를 못했을 뿐이죠.”
담담히 말한 장천운이 씩, 미소를 짓고 말을 이었다.
“돈의 힘은 확실히 대단하더군요. 가물가물하던 기억을 되살려 냈으니까요.”
“무슨……? 혹시… 나에게 가져간 돈으로……?”
전무궁은 그제야 사실을 간파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천운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말할 겁니다.”
* * *
술시(戌時:오후7시~9시) 초.
율검당 무사들이 장로원에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또 무슨 일이지?
상두한 장로가 잡혀간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더구나 이번에는 전무궁이 직접 나섰다. 율검당 당주가.
장로원 사람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율검당 무사들이 향하는 곳을 주시했다.
그도 잠시, 사람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전무궁을 위시한 율검당 무사들이 문인동의 거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설마?
사람들의 눈이 커질 즈음, 율검당 무사들은 문인동의 거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좌홍,”
전무궁이 이름을 부르자, 그의 좌측 일보 뒤에 서 있던 좌홍이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문인동 장로! 장로를 총호법 여철숭 살해혐의로 조사하고자 하오! 장로께서는 순순히 조사에 응해주시기 바라겠소!”
문인동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느긋했다.
이제 대세는 공손백에게 넘어갔다. 소성주도 자신을 어찌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태연히 문을 열고 나가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전무궁을 바라보았다.
“당주, 증거가 있소이까?”
“문인 장로는 저번 조사에서, 총호법을 만나 일각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방을 나섰다고 했네. 총호법이 살해당하신 시각 전에 말이야. 맞나?”
“그렇소.”
“그런데 우리가 새로 찾아낸 목격자는 그게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더군. 그는 총호법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이후에 장로가 나왔다고 하지 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조사해보면 알 터! 일단 구천률에 의거해서 장로를 압송하겠네.”
“흥! 지금 거짓 증인을 세워서 이 문인동을 몰아붙이고 싶나 본데, 어림없소이다!”
“무슨 말인가? 그럼 우리 율검당이 지금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는 건가?”
“나로선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소이다!”
전무궁이 발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감히! 지금 구천률을 집행하는 율검당을 모욕하겠다는 거냐, 문인동!”
“모욕하겠다는 게 아니라, 없는 목격자를 갑자기 찾아냈다고 하니 우스운 일 아니오?”
“없는 목격자? 흥! 그대가 어찌 그걸 확신하느냐? 단순히 총호법을 만나고 나왔다는 사람이 목격자가 있고 없고를 살펴보기라도 했단 말이냐?”
“그게 아니라…….”
“더욱 수상하군! 분명히 말하겠다, 문인동. 만약 조사를 거부한다면, 그대가 아무리 장로라 해도 구천률에 따라서 처리할 것이니라!”
전무궁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강하게 몰아붙이자, 문인동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필이면 공손백이 독고광을 만나러 갔을 때 오다니.
‘빌어먹을…….’
그때였다.
“어찌 이리도 시끄러운가?”
나극이 냉랭히 말하며 다가왔다.
‘후우, 다행이군.’
문인동은 내심 안도했다.
대장로라면 전무궁의 억지주장을 막을 수 있겠지.
전무궁도 공손백이 자리를 비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장로원을 감시하고 있던 대원에게서 그 사실을 보고 받았기 때문에 지금 쳐들어온 것이기도 했다.
또한 나극이 방해할지 모른다는 것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대장로,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총호법 살해사건 때문에 문인동 장로를 조사하고자 왔는데…….”
전무궁은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나극이 이마를 찌푸렸다.
주름진 이마에 깊은 골이 파였다.
그러다 문인동의 뒷골을 때리는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증인이 나타났다면 어쩔 수 없지.”
화들짝 놀란 문인동이 커진 눈으로 나극을 바라보았다.
“대장로?”
“구천률을 어길 수는 없는 일, 조사에 응해주게. 죄가 없다면 풀려나지 않겠나?”
‘이, 이런!’
문인동은 입술을 질끈 씹었다.
전무궁도 속으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극이 방해할 거라 생각하고 나름대로 대책을 준비했다.
그런데 대책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되어버렸다.
어쨌든 그 덕분에 일이 더 수월해졌으니 그로선 나쁠 게 없었다.
냉소를 지은 그가 문인동을 더 강하게 압박했다.
“순순히 따라오겠다면 포박은 하지 않겠네.”
* * *
공손백은 맞은편의 독고광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함부로 날뛰지 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로 알아들어도 되겠습니까?”
“맞아. 자네로 인해서 우리 암천이 곤란해지는 걸 원치 않네.”
“구천성을 암천의 세상으로 만들기 위함이어도 말입니까?”
“그로 인해서 청산과 금룡이 손을 잡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해지는 일이 발생할 거네.”
“답답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지금 치고 나가지 못하면 앞서 나갈 수 없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네. 좀 더 완벽한 기회를 노리는 게 나아.”
독고광은 냉랭히 말하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공손백은 들끓는 분노를 가까스로 제어했다.
완벽.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단어다.
그런데 바로 그 완벽을 기하기 위해 한발 늦추었다가 지금 이 꼴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말이다.
“때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네.”
공손백의 두 눈에서 파란 광채가 번뜩였다.
아마 대호라 해도 그 눈과 마주치면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갈 것이다.
그러나 독고광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기회란 왔을 때 잡지 않으면 날아가는 법이지요. 암군께서는 암군의 뜻대로 하십시오. 저는 제 방법대로 행하겠습니다.”
공손백은 고저 없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자리에서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독고광의 서열이 자신보다 높은 이상 더 이상의 반발은 위험했다.
‘당신 스스로 택한 결정, 후회하지 마라, 늙은이.’
방을 나온 공손백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자 고개를 돌려서 옆 건물의 지붕을 바라보았다.
독고광의 침실이 있는 건물인데, 지붕 한쪽이 뻥 뚫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공손백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왔던 독고광이 그 말을 듣고 어색한 표정으로 답했다.
“별 일 아니네. 비가 새서 고치는 중이야.”
뭔가 미심쩍었지만, 동백의 전음이 들리는 바람에 공손백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주군, 문인동 장로가 총호법 살해사건 용의자로 율검당에 잡혀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공손백의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충천했다.
‘전무궁, 이놈이 하필 지금…….’
* * *
하늘이 핏빛 석양으로 인해 붉게 타오를 즈음, 공손백이 율검당 구역으로 들어섰다.
율검당 무사들은 물론이고, 그 광경을 본 구천성 무사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 속에서 율검당을 주시했다.
곧장 전무궁의 집무실로 들어간 공손백은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전 당주, 문인동 장로를 내주시게.”
“그럴 수 없다는 걸 대령주가 잘 아시잖소?”
“문인동은 범인이 아니네.”
“조사를 해서 죄가 없다면 당연히 돌려보낼 것이오.”
“후회할 일은 안 하는 게 좋은 법이지.”
“전모는 율검당의 당주로서 구천률에 따라 일을 처리할 뿐이오.”
공손백은 차가운 눈빛으로 전무궁을 응시하며 오른발을 들어 바닥을 찍었다.
쿵!
두 사람 사이의 탁자가 부서질 것처럼 진동했다.
그 진동의 여파가 그대로 전무궁을 덮쳤다.
‘크읍!’
전무궁은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심장이 터지는 듯했다.
새삼 공손백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느낀 그는 두 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이 정도였단 말인가?’
공손백과 단 둘이 맞대면한 경우는 서너 번에 불과했다.
그 마저도 공손백이 별 다른 반응을 표하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직접 대해본 공손백의 기세는 그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몇 배나 무서웠다.
“소성주를 너무 믿는군.”
냉랭한 목소리.
전무궁은 이를 악다문 채 잇새로 답했다.
“소성주를 믿는 게 아니라…… 구천률을 지키고자 하는 거요.”
공손백은 지금 당장 전무궁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들끓었다.
하지만 율검당 당주는 일반 간부와 다르다.
구천률을 지키는 율검당주를 죽이면 그 어떤 명분도 힘을 잃는다.
구천성 내의 적대적인 세력은 물론이고, 지부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될 것이다.
결국 사마경에게 반격할 기회만 줄 뿐.
더구나 독고광 늙은이도 함부로 일을 저지르지 마라며 압박하고 있지 않은가.
빌어먹을 늙은이!
분노를 짓눌러 놓은 그는 미소를 지었다.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미소였다.
“좋아, 아주 좋아. 과연 전 당주군. 부디 그 마음이 변치 않길 바라겠네.”
전무궁은 손가락 끝이 잘게 떨리는 두 손을 들어서 포권을 취했다.
“일이 많이 남아서 멀리 배웅하지는 못하니 이해해주시오.”
축객령.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공손백은 전무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본 후 몸을 돌렸다.
‘사마경을 믿고 버티는 거라면 실수하는 거다, 전무궁.’
* * *
장천운은 공손백이 멀어지는 모습을 한 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라보았다.
그가 왜 왔는지, 그가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알면서도 나서지 않았다.
어차피 문인동을 잡아올 때부터 각오했던 바였다.
“오늘 밤에는 피냄새가 진동하겠군.”
한발 뒤에 서 있던 사공명신이 중얼거렸다.
장천운의 입꼬리에 하얀 냉소가 떠올랐다.
“쉽진 않을 걸?”
독고광을 만났다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무리해서 피를 보려 한다면 금룡과 청산의 무리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살살 긁어서 싸움이나 붙여볼까?’
장천운이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두심이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조장, 할 말이 있어.”
고개를 돌린 장천운의 눈에서 이채가 반짝였다.
오늘따라 저두심의 표정이 기이했다.
왠지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흥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누가 오늘 밤에 조장을 좀 만나고 싶데.”
“누군데?”
“선복이란 아이야.”
“선복?”
“백삼이 친동생처럼 생각하는 아이인데, 사라진 노회현 장로의 방을 담당했던 하인이야. 무슨 일 때문이냐고 했더니, 꼭 조장에게만 말하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