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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8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8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1화

홱, 몸을 돌려서 서탁으로 간 그는 작은 종이를 펼치고 세필에 먹을 묻혀서 빠르게 글을 써내려갔다.

일필휘지로 한달음에 글을 다 쓴 그는 내용을 검토한 후 종이를 접었다.

이중으로 서찰을 봉인한 그가 밖을 향해 말했다.

“정오, 밖에 있으면 들어와라.”

“예, 군사!”

대답과 함께 정오가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구천성 감시를 누가 맡고 있지?”

“종원상 대협이 이끄는 정첩단 제 이향이 맡고 있습니다.”

종원상은 화산의 속가제자로 능히 일류 상급 실력을 지닌 고수로, 판단력이 뛰어나서 정보를 취급하는 정첩단의 이향을 맡고 있었다.

“잘 됐군. 즉시 이 서신을 종원상에게 전해라.”

“예, 군사.”

 

* * *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동백현 풍원객잔에 무사로 보이는 자들 둘이 들어섰다.

점소이 왕칠은 그들을 보며 얼마 전에 떠난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저것들도 어디서 뒈지게 두들겨 맞았나보군.’

무사들은 입고 있는 옷이 너덜너덜했다. 옷 곳곳에서 말라붙은 핏자국도 보였다.

안색은 풀죽조차 먹지 못한 사람처럼 해쓱했고, 축 처진 어깨는 세상살이 힘들어서 강물에 몸이라도 던질 사람 같았다.

그때 그자처럼.

‘돈이 있을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없으면 저번처럼 장작이나 패라고 하지 뭐.

 

탁자에 자리를 잡은 대운은 점소이가 가져온 엽차로 목부터 축이고 요리를 시켰다.

“이제 어디로 갈 건가?”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돌아가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무경이 물었다.

목소리가 전과 달리 힘이 없었다.

힘이 없는 것은 대운도 마찬가지였다.

통나무집에서의 싸움으로 일행 넷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하루가 지난 후 상황을 살피고, 마차를 사서 시신을 실을 후 허창으로 보냈다.

그런 연후에 남쪽으로 내려왔다.

마차와 함께 돌아가자니 죄스럽기만 했다.

공연한 고집을 부려서 생사람만 죽게 만든 듯했다.

그렇다면 뭐라도 들고 가야 죽은 사람에게 덜 미안할 것 아닌가.

“무창으로 가볼 생각이네.”

언젠가 장천운이 무창 뒷골목의 흑도 새끼건달 출신이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을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사실이라면 죽음 직전에 이른 그가 남쪽으로 내려갔을지도 몰랐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여우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돌린다지 않던가.

그때 옆자리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들었나? 구천성의 대령주인 공손백과 대장로 나극이 성으로 귀환했다고 하더군.”

“그게 정말인가?”

“내가 자네에게 왜 거짓말을 해?”

“자네 말이 사실이면 남궁세가와 정파 쪽이 깨졌다는 거잖아?”

“그건 아닌 것 같아. 얼핏 들었는데, 협정을 맺었다고 하더군.”

“그래?”

흠칫한 대운은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다보았다.

표사로 보이는 자들 셋이 앉아 있었다.

표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면 사실이라고 봐야 할 터. 만약 공손백과 나극이 구천성으로 귀환했다면 또 다른 바람이 불 것이 분명했다.

“이보시오. 구천성의 대령주 공손백이 귀환했다는 게 사실이오?”

삼십대로 보이는 표사는 이마를 찌푸리고 대운 쪽을 바라보았다.

대운과 무경의 복장이 엉망이긴 해도 눈빛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표사는 젊은 두 사람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세가 느껴지자 말을 조심했다.

“그렇소. 신풍에서 섭가장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요. 뭐, 대장로인 마제도 곧 돌아온다고 했으니 지금쯤은 도착했을 거요.”

그 말을 들은 대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무경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런가?”

“아무래도 구천성으로 가보는 것이 나을 것 같군.”

“구천성에?”

“공손백과 나극이 돌아왔다면 구천성의 상황이 급변할 거네. 장천운의 생사확인보다 구천성의 변화를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

“흐음, 그것도 그렇군. 장천운이 살아 있다면 구천성으로 갔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 말도 맞네. 부상이 심해서 구천성으로 돌아가 치료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동료들의 죽음으로 축 처졌던 어깨가 펴졌다.

이제는 속가의 말투도 익숙해졌고, 대운의 머리도 한 치 정도 길어났다.

자신들이 승려와 도인이라는 걸 알아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구천성이 있는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 *

 

바람은 무창에서도 불고 있었다.

사방 문이 꽉 닫힌 흑월전 안.

호양청이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모두 이백 명을 추렸습니다.”

왕규는 그 숫자가 불만이었다.

“숫자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어설픈 실력으로는 목숨만 잃을 뿐입니다. 그래서 령주도 일류 수준이 되는 무사만 선별하라고 했을 겁니다.”

천은방의 무사 중에서 추려낸 무사가 일백오십, 나머지 오십 명은 흑월회 무사들로 꾸렸다.

그나마도 나중에 흑월회에 합류한 무사 중 고수라 불릴 만한 자들이 있어서 겨우 오십 명을 맞춘 것이었다.

그 중 절정고수만 해도 열 명이 넘었으니 사실 만만치 않은 무력이었다.

무창 수백 리 이내에서만 따진다면 최강의 전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천운이 원하는 전력과는 차이가 컸다.

그들 정도는 천외에서 고수 몇 사람만 나서도 끝장날 테니까.

다행인 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가 천외의 주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귀룡문과 함께 대별산을 넘어가는 자들을 막는 게 우선입니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해라 했으니 령주의 명대로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둘러앉은 흑월회 간부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호양청은 대충 회의가 마무리되자 왕규에게 물었다.

“회주, 초광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초광은 흑월회에 들어온 첫날밤에 붙잡혔다.

그것도 잠자다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오가는 그를 왕규가 먼저 알아본 것이다.

왕규도 처음에는 그를 만나서 사실을 말해줄 것인지 고민했다.

그런데 건물을 돌아간 초광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중얼댔다.

 

“도대체 회주라는 놈이 어떤 새낀데 이런 수상한 세력을 만든 거지? 오늘밤에 몰래 목을 따버려?”

 

조금은 짜증이 나서 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왕규는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자신을 찾아오기 전에 미혼약을 듬뿍 먹였다.

그러고는 점혈을 한 후 쇠사슬로 꽁꽁 묶어서 감옥에 가두어버렸다.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왕규는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완전하게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 자식은 고생 좀 더 해야 돼. 사밀령 령주라는 놈이 그 따위니 구청성도 엉망으로 돌아가지.”

아마 초광이 그 말을 들었다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싶었을 것이다.

사밀령 사령주가 미혼약이 든 약을 먹고 잠들다니.

아마 그 사실이 알려지면 위곤에게 먼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을지 몰랐다.

“그래도 령주와 연락하기에는 초광만 한 적임자가 없습니다만.”

“아직은 연락할 일 없잖아? 령주도 중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고.”

호양청은 미소를 지었다.

그도 왕규가 왜 화가 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감옥에 가두어 놓은 날, 초광은 하루 종일 왕규의 욕을 해댔다. 오죽했으면 다음 날 목이 쉬어서 씩씩거리는 소리만 났다.

그 중에서도 한 마디가 왕규의 코털을 건드렸다.

 

“회주 새끼 오라고 해! 그 새끼, 고자지? 남자새끼면 떳떳이 대가리 내밀어라!”

 

고자라니! 머리카락과 바꾼 정력이 밤마다 불길처럼 솟구쳐서 걱정인데.

팔다리 다 부러뜨리겠다고 방방 뜨는 왕규를 자신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팔다리 중 한두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가운데가 부러졌을지도 모르고.

“그럼 때가 되면 풀어주겠습니다.”

왕규도 그것까지는 말리지 못했다.

“알았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남사명이 말했다.

“내가 먼저 구천성으로 가볼까 하네.”

“남 노선배님께서요?”

“전에 령주에게 뇌혈산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네. 그때만 해도 아는 걸 다 말해줬다고 생각 했는데, 나중에 생각난 것이 하나 더 있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먼저 만나 이야기를 해줄까 하네.”

“하면 남 소저도 데려가실 겁니까?”

“이곳에 남겨둘 생각이네. 일반적인 독에 대해서라면 나 못지않은 아이니, 만약의 경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거네.”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인 여인이 독의 대가라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호양청은 꼭 그 이유 때문이 아니더라도 남초초가 남는다는 것에 내심 안도했다.

‘후우, 다행이군.’

구천성은 지금 용담호혈이었다.

화산의 분화구 위에 있는 상황. 그런 위험한 곳에 남초초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얼굴에 너무 표가 났나 보다.

왕규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남 선배님이 초초를 이곳에 두고 간다는데, 왜 호 공자가 좋아하나?”

“예? 아…… 그게… 혹시라도 독상을 입은 사람이 생길까 봐…….”

안타깝게도(?) 여자를 사모해본 적 없는 왕규는 호양청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 얼굴까지 빨개졌군. 정말 이상한데?”

“…….”

 

 

109장 운이 좋은 날

 

 

쾅!

두꺼운 원목 탁자가 공손백의 일장에 박살나며 주저앉았다.

탁자 위에 있던 찻잔과 찻주전자도 간접적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듯 부서졌다.

“사마경이 돌아온다고?”

으르렁거리는 공손백의 전신에서 살기가 폭사했다.

보고를 올린 문인동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숙였다.

“예, 대령주.”

“영악한 계집.”

공손백이 사마경을 ‘계집’이라는 호칭으로 부르자, 그러잖아도 만장 심해 밑바닥 같던 분위기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무림맹과 협정을 맺은 것이 확실하더냐?”

“예, 대령주.”

공손백은 이를 갈았다.

협정에 대해서는 토를 달 수가 없었다. 협정은 자신이 먼저 맺었으니까.

더구나 무림맹으로부터 사평까지 양보 받았으니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영악하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 위치는?”

“지금쯤 의현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럼 내일 도착하겠군.”

“별 일만 없다면 정오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일 정오쯤이라…….”

공손백의 눈에서 일렁거리던 살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렇다면 몇 놈 없앨 시간은 충분하군.”

흠칫한 문인동이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아마 어제였다면 그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 내린 명령에 따라서 율검당의 내부 상황을 조사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저…….”

문인동이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동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전음 한줄기가 공손백의 귀청을 울렸다.

<주군, 암군 어르신이 술시쯤 만났으면 한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공손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늙은이가 무슨 일이지?’

어쨌든 만나자고 하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다.

‘만나는 김에 뒤에서 엉뚱한 짓을 못하도록 뒷문부터 단속해 놓아야겠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문인동에게 말했다.

“사마경 쪽의 움직임을 한시도 놓치지 마라.”

“예, 주군.”

결국 문인동은 마지막 보고를 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보고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인 것일 수도 있었다.

‘설마 율검당의 대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지는 건 아니겠지.’

 

* * *

 

율검당도 사마경의 귀환 소식을 듣고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전무궁은 유진생과 장천운을 불러들였다.

“비공, 소성주의 귀환을 대령주와 대장로가 구경만 하고 있을 거라 보느냐?”

장천운이 차가운 조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 없지요.”

“어떻게 나올 것 같으냐?”

“소성주의 힘을 최대한 줄이고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 할 겁니다.”

전무궁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힘으로는 공손백과 나극을 막을 수 없었다.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선공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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