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7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7화
계곡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다섯.
손우곤과 상천단 무사들이었다.
사마경을 놓친 손우곤은 정양에서 머물며 상천단의 부상자를 치료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정보 하나를 얻었다.
암천문 서열 오위인 혈마령주 모진태가 은천궁 근처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당시 은천궁에서 일꾼 하나가 죽었는데, 살해범이 모진태인 것 같다는 게 보고의 핵심내용이었다.
추적의 대가인 그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터. 장천운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손우곤은 몸이 성한 상천단 무사 중 넷을 데리고 은천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침석산 계곡의 통나무집을 찾아 나섰다.
‘선객이 있다더니, 저자들이군.’
손우곤은 통나무집 앞에 있는 자들을 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이었다면 마찰을 빚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은 천외를 세상에 드러낼 때가 아니니까.
하지만 사마경을 놓친 대신 뭐라도 건져야 했다.
그 바람에 실수를 하나 저질렀지만, 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대운은 마당으로 날아든 사람들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칙칙한 군청색 무복을 입은 자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하긴 해도 자신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갈색 장포를 걸친 초로인이었다.
“뉘신지요?”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네. 진짜 중요한 것은 자네들이 얻은 것을 말해주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
“아…… 말씀이 과하시군요.”
하마터면 입에서 불호가 흘러나올 뻔했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 대운은 공력을 끌어올리며 손우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과한지 아닌지는 곧 알 수 있을 게야.”
“저희는 이곳을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아쉽군. 요즘 피를 너무 많이 봐서 오늘은 그냥 넘어갔으면 했는데…….”
손우곤은 끝까지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고집을 꺾지 않겠다면 목을 꺾어주는 수밖에.
스스스스스스.
계곡 안으로 불어오던 바람이 마당에서 회오리치며 휘돌았다.
상천단 무사 넷은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움직였다.
검과 도, 권처럼 생긴 기형병기를 빼든 그들은 좌우로 퍼지며 대운 일행을 향해 다가갔다.
무경과 팽수, 청기, 언홍두, 추명락도 무기를 빼들고 대운의 좌우로 늘어섰다.
무경의 눈은 손우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손우곤의 강함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데 저리도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단 말인가.
“시간이 없으니 시작하자. 구천성 놈들이라도 오면 귀찮아지거든.”
냉랭히 말한 손우곤이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두 손을 뻗었다.
순간, 금빛을 띤 강맹한 기운이 대운과 무경 쪽을 향해서 해일처럼 밀려갔다.
고오오오오오!
대운과 무경은 상대의 무위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걸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체를 숨기겠다고 힘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해서 상대하게!”
다급히 소리친 대운이 전 공력을 끌어올렸다.
무경도 황급히 공역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손우곤의 공세에 마주쳐갔다.
콰아앙!
굉음이 계곡을 무너뜨릴 것처럼 울렸다.
세 사람 사이에서 먼지구름이 폭발하듯 피어났다.
대운과 무경은 눈을 부릅뜬 채, 튕겨나가듯 밀려났다.
허공으로 솟구친 흙먼지가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전면을 노려보는 그들의 눈빛이 세차게 떨렸다.
가슴이 만근 바위에 짓눌린 듯 답답했다.
온몸의 신경과 근육이 놀란 듯 머리에서 발끝까지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렸다.
심지어 목구멍을 타고 비릿한 피 냄새마저 올라왔다.
반면 상대는 큰 충격이 없는 듯 두어 걸음 물러선 뒤 쌍장을 다시 가슴 높이로 올리고 있었다.
이를 악다문 무경은 손잡이를 헝겊으로 싸놓은 송문고검을 빼들었다.
대운도 반야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손우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목소리에서 짜증이 묻어나왔다.
“소림과 무당의 제자들이었나?”
앞에 있는 애송이들이 무림맹 무사라면 죽이기가 애매했다.
아직은 무림맹과 원수로서 대립할 때가 아닌 것이다.
그때 한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억!”
언홍두가 가슴에서 핏줄기를 분수처럼 뿜어내며 비틀거렸다.
상천단 무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언홍두에게 다가가며 목에 검을 꽂았다.
“언 형!”
팽수가 악을 쓰며 칼을 휘둘렀다.
청기도 종남의 자랑이라는 태을검을 펼치고, 초명락도 전력을 다해서 쌍권을 내쳤다.
그들도 구문팔가의 청년무사 중에서 알아주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상천단에서도 강자로 꼽히는 무사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우곤은 언홍두의 죽음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죽여서 입을 막는 수밖에.’
그는 태천금룡공을 끌어올렸다.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린 그의 쌍장에서 금빛 용이 꿈틀거렸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대운과 무경은 십성 공력을 끌어올리고서 손우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다.
선공을 놓치면 공격할 기회조차 없을지 몰랐다.
그들은 그날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깨달았다.
또한 그 높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해야만 했다.
십여 초식이 흘렀을 때 청기가 상천단 무사들의 검에 심장이 뚫렸다.
초명락과 팽수도 차례차례 죽어갔다.
대운과 무경은 태양을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생각했다.
상대는 너무나도 강했다. 도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등을 보이면 벼락이 그들의 심장을 부술 것만 같았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
악다문 입술이 찢어졌다.
그때였다. 일단의 무리가 계곡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그로 인해서 손우곤이 멈칫한 사이, 두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곳을 벗어났다.
손우곤은 계곡으로 진입하는 자들의 정체를 알고 대운과 무경에 대한 공격을 포기했다.
‘청산궁도 놈을 찾아 나섰군.’
청산궁 무사들이 그곳에 나타난 것은 청산자의 명령 때문이었다.
정체불명의 청년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그가 장천운의 생사를 철저히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미 많은 공력을 소모한 손우곤은 청산궁 무사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우리도 이곳을 떠나자.”
* * *
짙은 안개가 흐르는 대별산맥의 이름 모를 계곡 안쪽.
장천운은 능선에 서서 안개에 잠겨 있는 장원을 바라보았다.
십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그 장원은 환마 우곡이 두 번이나 방문했던 금룡신군의 거처였다.
“저곳이 어딘데 이리 조심하는 거지?”
단승이 이마를 찌푸리며 물었다.
“공손백에게는 목에 걸린 가시 같은 곳이지.”
조소를 지으며 대답한 장천운은 몇 마디 설명을 덧붙였다.
“저곳의 주인이 공손백을 향해 이를 드러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야.”
“주인이 누군데?”
“금룡신군.”
“금룡신군? 그가 그렇게 대단한 자인가?”
“아주 무서운 자지. 만약 그자가 우릴 죽이려 한다면, 무조건 도망쳐야 해.”
장천운은 단승과 사공명신만 데리고 왔다.
다른 사람들은 데려온다 해도 의미가 없었다.
금룡신군이 죽이려 작정하면 그들은 빠져나갈 기회조차 없을 것이다.
“자네도 상대할 수 없나?”
“전력을 다하면 도망칠 수는 있을 거야.”
“…….”
단승은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일까? 자신을 놀리려고 한 말 아닐까?
입을 다물고 있던 사공명신도 장천운의 대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외의 주인들에 대해서 사마경에게 들었다.
절대경지의 고수라 해도 그들의 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거라 했다.
그럼 저자가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란 말인가?
아무리 머릿속을 뒤적거려도 젊은 자들 중 그런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저자의 진정한 정체는 뭐지? 누군데 소성주가 그런 믿음을 주는 거지?
‘그럴 만한 사람은 장 대주뿐인데…….’
골똘히 생각하던 사공명신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런 바보 같은……!’
그때 전음이 들렸다.
<두심 형은 눈치 챈 것 같던데, 사공 형도 신경이 꽤 둔하다니까.>
비공이란 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전까지 들었던 목소리와 달랐다.
‘진짜로 그인가?’
사공명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표 내지 말라니까요.>
사공명은 입술 끝을 씰룩이며 겨우 표정을 관리했다.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알려지면 안 됩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모른 척하쇼.>
사공명신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올 때 소성주의 표정이 달라져서 이상하다 했더니…….’
장천운이다. 그가 살아 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천성 안에서 적의 등을 향해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진정하려 해도 흥분한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단승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가 않는군.”
“만나보면 믿기 싫어도 믿게 될 거야.”
“자넨 만나보았나?”
“다른 사람을 만나봤지. 그와 비슷한 사람을.”
“누군데?”
“청산자.”
그건 또 누구야?
단승은 슬쩍 장천운을 흘겨보았다.
표정이 제법 진지한 걸 보면 거짓말 같진 않은데…….
“그럼 가보자고.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야 한다는 점, 잊지 말고.”
씩 웃으며 말하고 돌아선 장천운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제아무리 간이 커도 오늘만큼은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청산자에 이어서 금룡신군을 만나는군.’
108장 금룡신군(金龍神君)
“장원의 주인을 만나려고 왔습니다.”
“주군을?”
경비대 책임자인 부원강은 아침 일찍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세 사람이 장원 앞에 나타날 동안 아무런 보고가 없었던 것도 수상한데 대뜸 주인을 만나겠다고 한다.
“일전에 사람을 시켜서 서신을 보낸 적이 있으니 말씀드리면 아실 겁니다.”
서신을 보냈다고?
그럼 왕래가 있었던 자란 말인가?
하지만 자신은 앞에 있는 자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금선장에 방문한 적이 있으셨소?”
“처음입니다. 서신을 전한 분이 차를 잘 마시고 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인사 차 들린 것이니 기별을 넣어주시지요.”
말뜻도 묘하고, 당사자는 더욱 기이한 자들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기운을 지닌 자들이라는 것이다.
부원강은 일단 세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들어오셔서 잠깐 기다리시오.”
보고를 받은 노인의 금빛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올해 들어서 자신이 외부인의 서신을 받은 건 한 번뿐이었다.
서신을 갖고 와서 차를 마시고 간 사람도 한 사람뿐이었고.
물론 그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보낸 사람은 알고 있었다.
묘한 웃음이 그의 입가에 떠올랐다.
멀쩡한 일원장을 문 닫게 하고 손우곤의 기마저 꺾어놓은 놈이 자신을 찾아오다니. 정말 재미있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를 데려와라.”
장천운은 사공명신과 단승을 밖에 놔두고 혼자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방 안에는 태사의에 앉아 있는 노인밖에 없었다.
그 노인을 본 장천운은 일단 숨부터 골랐다.
노인은 금실로 용이 수놓아진 백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육십이나 되었을까 싶었다.
주름이 거의 없는 얼굴, 눈썹과 머리카락이 은은한 금빛을 띠었고, 눈마저 은은하게 금빛이 돌아서 신비함마저 느껴졌다.
‘비슷하군.’
얼굴은 꿈속에서 봤던 금포중년인과 닮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몸에서 풍기는 가공할 무형의 기세만큼은 몸에 배인 듯 익숙했다.
“비공이라 합니다. 금룡신군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장천운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금안의 노인, 금룡신군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반갑구나. 지난 날 노부에게 서신을 보낸 사람이 그대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