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7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6화
대주들은 대부분 장천운에 대해서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았다.
장로인 상두한과 빈객 중 고수로 정평 난 나승관을 때려잡아서 체포해온 사람이 그였다.
게다가 아교로 붙여 놓은 것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던 그의 입을 연 사람 아닌가.
대주들보다 오히려 그 일을 잘 모르는 몇몇 조장이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안휘에서 막 돌아온 이대의 대주 산평과 두 조장은 얼굴에 그런 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저 새끼가 뭔데? 그런 표정.
그래봐야 장천운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대항하기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전무궁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으음, 너라면 그래도 방법이 있을 줄 알았거늘.”
“대신 간접적으로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래? 어디 말해봐라.”
“맞불을 질러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기다 차도살인까지 더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 * *
구천무전에서의 회의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었다.
무림맹과의 전쟁과 나극을 따라간 간부를 제외하면 사 할에 불과했지만, 그 숫자만도 오십여 명에 이르렀다.
지금의 무력만으로도 무림맹 외에는 대적할 세력이 없었다.
게다가 소성주마저 출정한 상태 아닌가.
구천무전 안은 마치 공손백이 성주라도 되는 듯했다.
“소성주가 없으니 당연히 대령주께서 지휘하셔야 합니다.”
“당연한 말을 왜 하나? 하하하하.”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망정이지, 원래 대령주께서 성의 주인이 되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척 위험한 말도 서슴없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말싸움도 벌어졌다.
“어허! 말이 심하군. 그럼 소성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누가 소성주를 인정하지 못한다고 했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자기 의견을 말한 것뿐인데, 뭐 그리 열을 내시오?”
“뭐야? 이 사람들이 진짜!”
하지만 소성주파 간부들도 기세가 오른 공손백파 간부들을 그 이상 다그칠 수 없었다.
전무궁도 입을 꾹 다문 채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머릿속에만 새겨 넣었다.
그렇게 공손백파의 기세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대령주께서 듭십니다!”
공손백이 나타났다.
성주의 위세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폭풍의 시작에 불과했다.
단상에 선 그가 말했다.
“이 공손백은 대 구천성의 대령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이오! 소성주가 없는 동안 모든 단체의 간부들은 매일아침 업무 상황을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시오!”
그 말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구천성의 전권을 휘어잡겠다는 의지의 표출.
공손백파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고, 소성주파는 표정이 바싹 마른 바위처럼 굳어졌다.
전무궁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움켜쥐었다.
‘소성주께서 돌아오기 전까지 많은 피가 흐를지도 모르겠군.’
* * *
기다란 탁자 양편에 스물다섯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불문의 승려와 도문의 도인, 속가의 고수…….
무림맹의 맹주와 군사를 비록해서 장로들이 모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는 한 손을 가슴 높이로 들고, 일부는 손을 올리지 않은 채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 동안 제갈승조가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처음에만 해도 협정을 찬성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줄 알았다.
구천성의 무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고, 사상자도 너무나 많았다.
이대로 싸움이 지속되면 몇몇 문파는 존립자체마저 위협받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의견이 팽팽했다.
“순순히 협정에 응하는 것은 항복이나 다름없소이다! 안 되오!”
“협약서를 찢어버리고 당장 공격해야 합니다!”
“아미타불, 저들이 먼저 싸움을 멈추자는데 굳이 거부할 건 또 뭐요? 형제들이 죽어가는 게 보이지 않소이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섰거늘, 목숨을 어찌 아까워한단 말이오! 협정은 말도 안 됩니다!”
“마도나 다름없는 구천성과의 협정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사!”
“어허! 그럼 어느 한쪽이 끝장날 때까지 계속 싸우자는 말이오?”
“솔직히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으시오? 패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 잘 아시잖소? 일단 협정을 받아들입시다!”
“죽어간 제자들의 복수를 포기하겠다는 거요?”
“말조심 하십시오, 도장! 누가 복수를 포기하겠다고 했습니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말도 있지 않소이까!”
근 두 시진 동안 설전이 벌어졌다.
이러다 무림맹이 둘로 나누어져서 싸우는 것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만약 구천성이 분열을 노렸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결국 무림맹의 최고 원로인 소림사의 전대 장로 숭유대사가 나섰다.
나이 아흔이 넘은 노승은 고요한 눈으로 사람들을 돌아보며, 무림맹의 법에 따라 표결로 정하고, 무조건 결정에 따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행히 그 안건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로부터 반각.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뒤 표결에 임했다.
‘열, 열하나, 열둘…….’
숫자를 다 센 제갈승조가 결과를 말했다.
“찬성이 열하나, 그리고 열두 분이 반대하셨습니다.”
반대가 한 명 많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욱 더 열기를 발산했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마를 찌푸리며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모두 각각의 마음이 담긴 눈으로 제갈승조를 바라보았다.
아직 표결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제갈승조는 숨을 들이쉰 후 천천히 손을 들었다.
“저는…… 찬성합니다.”
여기저기서 탄식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갈승조가 순서를 다음으로 넘겼다.
“그럼 이로써 각각 열두 명이 되었습니다. 이제 맹주께서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 직후, 장로들의 시선이 상석에 앉아 있는 종무진인을 향해 집중되었다.
화산파의 원로인 종무진인은 사실상 이름뿐인 맹주나 다름없었다.
나이도 팔십이 넘어서 어지간한 일에는 나서지도 않았다.
아마 이번 전쟁도 상대가 구천성이 아니었다면 총단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량수불.”
나직이 도호를 왼 종무진인이 장내를 한번 죽 둘러보았다.
불문과 도문, 속가의 내로라하는 정파고수들이 모두 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불만 가득한 사람도 있었고,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종무진인은 반대하는 사람들이 왜 반대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그들의 말을 듣고, 하는 행동을 봐왔는데 어찌 모를까.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뜬 종무진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의협을 지키려는 것도 결국은 죄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것 아니겠소? 만인을 위해 협정을 체결하도록 하겠소이다. 원시천존…….”
모든 책임을 원시천존에게 떠넘긴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장로회의가 끝난 후, 무림맹 임시총단의 몇 곳에서 비둘기들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제갈승조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둘기들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한 비둘기가 아니라 전서구였다.
전서구들이 날아가는 방향은 모두 남쪽이었다. 중간에서 방향을 틀지도 않고 곧장 날아갔다.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라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의 주축을 이루는 구문팔가 중 사천성의 문파를 제외하면, 허창 남쪽에 있는 문파는 점창파와 남궁세가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껏 군사의 허락 없이 전서구를 날린 적이 없었다.
어차피 점창파는 전서구를 날리기에 너무 멀었고, 남궁세가는 차라리 사람을 보내는 게 나았으니까.
그렇다면 저 전서구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어쩌면…… 그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대운이 장천운이란 자의 말을 전했었다.
그때만 해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아마 저번 구천성과의 전면격돌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면 여전히 우스갯소리로 치부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도 느끼고 있었다.
하늘 아래에 자신이 모르는 거대한 암류가 존재한다는 걸.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다.
무림맹의 군사인 자신이 여태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대운이 돌아오면 좀 더 자세한 걸 알 수 있겠지.’
그때 호위무사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군사, 맹주께서 부르십니다.”
“알았다.”
제갈승조는 협정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종무진인의 방을 찾아갔다.
그런데…… 표정이 굳어 있는 종무진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왔다.
“군사에게 하나 묻겠네. 만약…… 누가 군사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 무림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나?”
“맹주?”
“무량수불, 노도는 지금 노도의 목숨뿐만 아니라, 화산의 운명까지 걸고 말하는 거네. 만약 군사가 그쪽 사람이라면 내일의 해를 볼 수 없을 테니까 말일세.”
맙소사!
참으로 경악할 말.
제갈승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찰나에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두들겼다.
‘정말 그자의 말대로 우리가…… 무림맹이…… 꼭두각시 춤을 추고 있었단 말인가?’
사실이라면 군사인 자신이 암류를 모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눈과 귀가 통제되고 있다면 자신이 그 너머를 모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저 우리 안에서 똑똑한 척하는 돼지일 뿐이었나?’
입 안이 썼다.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화도 났다. 자신에게, 눈과 귀를 가린 자들에게.
‘대운, 어쩌면 그대의 손에 무림맹의 운명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종무진인의 결의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노도는 이제 살 만큼 살았네. 화산의 운명도 화산이 헤쳐 나가야 할 일이지. 허허허, 아쉽게도 그걸 너무 늦게 알았어.”
“맹주…….”
“군사가 그쪽 사람이 아니라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하네.”
* * *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던 시기.
대운은 무경을 비롯한 여섯 명의 동료와 함께 은천동으로 갔다.
사마경이 돌아온 후 무경과 청기가 철기보에 들어가서 사실 확인을 해보았다.
구천성 사람들은 대부분 장천운이 죽은 것으로 믿고 있었다.
믿지 않는 자도 있었다.
흑월대원들은 피식 웃으며 ‘그 인간이 죽었으면 시체를 내놔봐. 그럼 내가 술 한 잔 살게.’라는 이상한 제의를 했다.
‘그 인간은 안 죽었어. 죽었으면 꿈속에서 나타났을 거야.’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고.
심지어 ‘나하고 내기할까? 은자 열 냥. 어때?’하며 내기를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돈을 내보이는 자마저 있었다.
하지만 증거도 없는 막연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자신 역시 그가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은천동에서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야 다 알려진 사실. 그런데 무기조차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인에게 무기는 수족과 같았다.
시체도 없고, 무기도 없고.
그런데 죽었다고?
그 후 은천궁에 도착한 대운은 작은 정보를 하나 얻었다.
은천궁의 사람이 의문의 피살을 당한 날, 삼십 리 떨어진 계곡에 있는 통나무집 주인이 집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었다.
대운은 곧장 통나무집으로 가보았다.
통나무집은 두 채였다.
그 중 뒷문 쪽이 부서진 통나무집은 벽만 수리해도 사람이 지낼 수 있을 듯했다.
멀쩡한 통나무집에는 주인이 급히 떠난 듯 남은 음식들이 썩어서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 크게 싸운 흔적이 남아 있다.’
싸운 흔적은 절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남긴 것이었다.
왜 그런 고수들이 이곳에서 싸웠을까?
은천동과 멀지 않은 이곳에서.
그것도 장천운이 죽었다고 알려진 며칠 뒤에.
그뿐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곳을 샅샅이 뒤져서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아주 깨끗이 훑어갔다.
왜?
“대운, 뭐 좀 찾았나?”
무경이 대운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약간 의문이 들어서…… 아미타불.”
“어떤 의문 말인가?”
“강호의 고수가 왜 여기서 싸웠을까?”
“흐음, 그거야 싸울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뭔가를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가 부딪쳤을 수도 있고.”
대운은 무경의 말을 들으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대상이 장천운이었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내가 봐선…… 반반 정도일 것 같네.”
“아미타불, 자네가 그리 생각했다면 일단 살아 있다고 봐야겠군.”
“이 젊은 말코의 말을 너무 믿진 말게.”
“최소한 이런 일에 있어서 빈승보다 자네의 판단이 낫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네.”
“하하하하, 이거 쑥스러운데? 원시천존께서 들으시고 비웃지나 않으실지 모르겠군.”
한바탕 맑은 웃음을 터트린 무경이 대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장천운이란 자, 꼭 살아 있으면 좋겠군. 얼마나 강한지 보게 말이야.”
단순한 호승심 때문에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당의 칠성검 중 한분인 청인 사숙이 장천운에게 패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일개 호위무사에게 패했다는 걸 치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장천운의 행적은 치욕이란 단어를 지우기에 족했다.
최근에는 화산의 현오자와 대운마저 그에게 패했다고 했다. 그것도 허무하게.
사실일까? 정말 몇 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한 게 맞을까?
대운도 무경의 마음을 알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미타불. 그가 살아 있다면 만나게 되겠지. 그럼 알게 될 거네. 내가 왜 이러는지.”
무경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상대가 강할수록 더 피가 끓는 성격이었다.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
그때였다.
“잠깐.”
대운이 고개를 쳐들고 감각을 집중했다.
“왜……?”
의아한 표정으로 대운을 바라보던 무경도 고개를 돌려서 계곡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셋을 셀 시간이 지날 즈음, 숲속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자들이 보였다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분명한 점은 호의를 갖고 오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