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7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3화
무 노인이 뒤로 훌훌 날아서 물러선 순간, 허공을 날아오던 소천이 청산자를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고오오오오오!
청산자와 소천의 거리는 약 사 장 정도.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비명을 내지르듯 기음을 토해내며 이지러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산자를 중심으로 반경 삼 장의 대지가 원을 그리며 파여서 밀려났다.
근처에 있던 자들도 이를 악물고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청산자는 그 한가운데 서서 묘한 웃음을 지었다.
“헐헐헐, 정말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나. 그 늙은이들 말고도 노도를 흥분시킬 인간이 있다니. 정말 직접 오길 잘했어!”
그도 천천히 손을 들어서 소천을 향해 뻗었다.
그때부터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일대 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저 멀리 만송림이 보였다.
충천한 살기에 날짐승들이 기겁해서 도망치듯 날아오른다.
능선 위에서 한참 동안 만송림을 바라보던 모용문태는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
“정말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옆에 고요히 서 있던 사십대 중년인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눈매는 모용문태와 많이 닮아 있었다.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느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십니까?”
“후회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지금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구나.”
입술을 깨문 모용문태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야는 그에게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뜻이 달랐다. 방향도 달랐다.
복수하는 것만으로 끝내기에는 자신의 가슴에 쌓인 한이 너무 컸다.
아니 그보다도, 돌아가지 않으면 복수의 길조차 멀어질지 몰랐다.
‘미안하오, 노야. 굳이 이해해 달라고는 않겠소. 오늘의 죄는 나중에 저승에서 갚으리다.’
이곳까지 오는 일만 해도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노야에게 끌려 다닐 건가!”
“파천회를 일구는데 그의 공의 크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파천회가 그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의 힘이 그토록 강하다면 자칫 모든 걸 잃을지 모릅니다. 그때 가서는 무슨 힘으로 저들을 상대할 겁니까?”
“생각해 보게. 어떻게 만든 파천회인가? 저들만 무너뜨리면 파천회를 해산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이야긴가? 구천성은 어떡하고? 나는 그렇게 못하네!”
“저들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뭉치면 상대하지 못할 것 없소이다.”
“노야도 이제 늙어서 판단력이 흐려졌어. 군사를 잃는 게 아깝긴 한데, 그 정도 지모가 뛰어난 사람은 우리 측에도 얼마든지 있잖은가?”
회주는 간부들의 의견이 나오는 동안 입을 닫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간부들의 의견에 따르겠다면서.
노야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파천회를 해산시킬 수 없다는 것.
노야는 천외를 무너뜨리게 되면 본 목적을 다한 파천회를 해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 자들은 쉽게 놓지 못하는 법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야의 참견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파천회를 만들 때는 그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커질 만큼 커진 지금은 그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노야는 그저 고집 센 늙은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대들은 모른다. 노야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그럼에도 모용문태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노야보다 파천회가 더 필요했다.
답답함과 분노에 심장이 타들어가지만, 가문과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을 지옥에 던질 수 있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죽어가던 자식과 손자들의 얼굴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악문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이여, 나를 용서치 마라!’
* * *
지하뇌옥에 갇힌 상두한과 나승관은 반나절 동안의 심문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전무궁으로서는 너무 독하게 손을 쓸 수도 없어서 그들의 입을 여는데 한계가 있었다.
상두한은 장로고, 나승관은 빈객이다. 적이 아니다.
게다가 상두한은 단순히 반발을 했을 뿐이고, 나승관의 말은 장천운만이 들었다.
독하게 손을 쓰고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공손백과 나극을 따르는 자들에게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장천운은 심문이 지지부진하다는 말을 듣고 전무궁을 찾아갔다.
“당주, 제가 그들의 입을 열어보겠습니다.”
전무궁이 무거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할 수 있겠느냐? 입을 열지 못할 경우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저에게 모두 떠넘기십시오. 어차피 제가 잡아왔으니까요.”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내린 명령이다. 욕을 먹어도 내가 먹는다.”
전무궁은 책임을 수하에게 떠넘길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장천운은 남의 욕설을 개의치 않았다.
“괜찮습니다. 제 얼굴이 두꺼워서 어지간한 욕설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으니까요.”
전무궁은 장천운을 빤히 쳐다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좋아, 너에게 맡기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니, 그리 알고 하는 데까지 해봐.”
“고집이 세시군요.”
“이 자리는 고집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느니라.”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피어났다.
전무궁의 방을 나선 장천운은 뇌옥으로 가서 상두한을 만났다. 그로부터 일각 후.
“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뇌옥을 뒤흔들었다.
“끄아아아아악!”
장로 상두한의 입에서 나오는 비명이었다.
그는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한 사람처럼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비공이라는 놈이 말했다. 하얗게 웃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비명을 일각만 내지르면 내보내줄 수도 있다고.
그는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살아생전 가장 처절한 비명을 일각 동안 내질렀다.
목이 쉬어서 쇳소리가 나올 정도로.
잠시 후, 장천운은 또 다른 뇌옥으로 들어갔다.
끼이이익.
경첩 끌리는 소리가 음산하게 울렸다.
터벅, 터벅, 터벅…….
묵묵히 걸음을 옮겨서 나승관 앞에 선 그는 피 묻은 손을 털었다.
옷도 털었다. 옷자락에 묻어 있던 뭔가가 툭 떨어져 나갔다.
살점이었다. 피가 엉겨 붙은 자잘한 살점.
허리를 숙인 그는 짜증내듯 이마를 찌푸리고 신발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게 왜 여기 들어가 있어?”
곧 손가락을 뺀 그는 작은 물체를 한쪽에 던졌다.
나승관의 눈이 저절로 그 물체를 향해 움직였다.
보지 않으려 해도 신경이 쓰였다.
손톱이 보였다. 하얗게 부서진 것은 손가락뼈고, 짓뭉개져서 피와 뭉쳐 있는 것은 살점이었다.
손가락을 완전히 부순 듯했다.
망치로 자잘하게 부수면 저렇게 될까 싶었다.
그때 허리를 세운 장천운이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 꽤 바쁘군. 하루에 두 사람을 고문하는 것은 처음인데…….”
쇠사슬에 묶여서 앉혀져 있는 나승관의 앞에는 철판이 덧대진 탁자가 놓여 있었다.
장천운은 그 탁자 위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망치를 내려놓았다.
“자 시작해보자고. 전에 최고 많이 부순 것이 손가락 열 개와 발가락 네 개였는데, 오늘은 그 기록이 깨질지도 모르겠군.”
무심한 표정,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한 그는 한쪽에 걸려 있는 집게도 빼서 가져왔다.
“힘줄도 뺄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해 놓고 시작하지.”
그러고는 나승관의 양팔을 탁자에 올려놓고 묶었다.
“난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이 싫어서 이런저런 것 다 따지다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죽으면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거든.”
나직이 중얼거리며 팔을 다 묶은 그는 망치를 잡고 나승관을 쳐다보았다.
“말을 하고 싶으면 고개를 끄덕여.”
나승관은 입술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네깟 놈의 그런 공갈협박에 내가 넘어갈 줄 아느냐? 웃기는 놈.’
조소를 짓는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고문에도 순서가 있다.
협박, 회유, 그래도 안 통하면 고통을 주면서 서서히 강도를 높인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버티느냐는 순전히 본인의 인내에 달려 있다.
‘하루만 버티면 주군께서 사람을 보낼 거다.’
그도 나름대로 계산이 서 있었다.
고통을 견딜 자신도 있었다.
아마 상대가 일반적인 고문기술자였다면 그 계산이 맞아 들어갔을지 몰랐다.
하지만 상대는 장천운이었다.
답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무식한 방법도 동원할 수 있는 사람.
그는 고문에 대한 전문적 기술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망치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린 장천운이 씩 웃었다.
“뭐 고통을 즐기고 싶다면 어쩔 수 없고. 내 방법이 좀 무식해도 이해해. 몇 번 써봤는데, 이 방법이 제일 편하고 확실하더군.”
그러고는 왼손으로 탁자 위의 검지를 잡은 장천운이 들고 있던 망치를 그대로 내리쳤다.
치켜뜬 나승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뭐야, 이 새끼? 설마……?’
쾅!
검지 첫마디가 박살나며 살점이 튀었다.
덧대진 철판 때문인지 소리가 유난히 더 컸다
‘끄어어억!’
나승관은 목구멍이 터지도록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아혈이 제압된 상태여서 밖으로는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천운이 다시 망치를 들어서 내리쳤다.
쾅!
검지 두 번째 마디가 박살났다.
나승관의 시뻘게진 얼굴에서 핏줄이 툭툭 튀어나왔다.
목구멍에서는 기괴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새어나왔다.
“커커, 커, 커, 커!”
공황상태에 빠진 나승관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렸다.
이놈은 미친놈이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협박과 회유를 건너 뛴 것은 그렇다 치자.
찢고, 지지고, 볶고, 빼고.
그러면서 질문을 던지는 게 고문의 정석 아닌가.
이 미친놈은 고문의 ‘고’자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미처 말을 못했는데, 마디를 하나, 하나 부술 거야. 처음에는 손가락, 그 다음에는 발가락. 그러고 나서 힘줄을 뽑을 생각이야. 못 견디고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장천운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하고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쾅!
세 번째 마디가 부서졌다.
탁자의 철판이 쪼개질 듯이 날카로운 소리를 터트렸다. 음향효과 하나는 끝내줬다.
나승관은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덜덜 떨었다.
탁하게 쉬어버린 바람소리가 목에서 쉑쉑거리며 흘러나왔다.
그는 장천운이 다시 망치를 들자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 그만…….’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신체가 훼손되는 충격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지독한 공포였다.
끝까지 버텨서 살아난다고 해도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부서지고 힘줄이 빠져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병신이 될 게 뻔했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벌레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죽는 게 나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티끌만큼 남은 갈등 때문에 움직임이 작긴 했지만.
그런데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듯 중지를 잡아서 폈다.
“이제 두 번째 손가락을 시작해볼까?”
그러고는 망치를 들어서 내리쳤다.
‘아, 안 돼에에에!’
쾅!
나승관은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마지막 남았던 갈등도 중지 첫 마디와 함께 완전히 뭉개져버렸다.
* * *
상두한은 전과 달리 순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아는 것은 많지 않네. 금룡장의 비밀유지가 워낙 철저해서…….”
말하는 그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처음에 비명을 내지르라고 할 때만 해도 ‘별 웃기는 놈이 다 있군.’ 했다.
그래도 어쨌든 내보내준다고 하니 하라는 대로 했다.
그런데 어디서 시체를 가져다가 자신의 앞에서 망치로 손가락을 잘근잘근 부수는 것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체에서 나온 죽은피와 살점을 자기 몸에 바르고 손가락 부순 것도 챙겼다.
그 후 자신의 몸에도 발라주었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 분장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는 꼴이 유치하고 우스웠지만 놈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못할 것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살려준다지 않는가 말이다.
그 후 놈은 피범벅이 된 자신을 질질 끌고 가서 다른 뇌옥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뇌옥의 철문에 난 구멍으로 건너편 뇌옥을 보게 했다.
그가 보는 뇌옥에서는 조금 전에 시신을 대상으로 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망치질 대상이 시신에서 산 사람으로 바뀌었을 뿐.
그로부터 이각 후.
놈이 다시 자신의 뇌옥에 들어왔다.
부하로 보이는 놈이 탁자를 들고 그놈을 따라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