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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7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6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2화

“어차피 이 일은 노야가 아니면 누구도 못합니다. 저로선 감당할 자신도, 재주도 없습니다.”

“너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구나. 천외의 세 괴물을 제외한다면 하늘 아래에서 너와 비견할 수 있는 자는 셋 정도에 불과하니라. 그러니 아무 소리 말고 하라는 대로 해라. 만약 네가 이곳에서 저들에게 당한다면 모든 게 끝이야.”

“노야…….”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노부도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노부가 시작한 일, 끝을 보고 싶거든.”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한때 세상을 우습게 여겼던 이 동방무기를 네가 너무 무시하는구나.”

“제가 어찌…….”

“아니라면 노부 말대로 해라.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되면 소천을 불러들여서 이곳을 벗어나라.”

결국 장산도 무 노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항상 그러했듯이.

“알겠습니다. 노야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 * *

 

이름 없는 장원에서 오십여 리 떨어진 곳.

은빛 갈대로 뒤덮인 강가에서 무사 백여 명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찾았습니다, 주군.”

삼십대 장한이 강가의 바위에 앉아 있는 노도인에게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바위에 앉아 있던 노도인, 청산자는 강에서 시선을 돌려 장한을 바라보았다.

“어디더냐?”

“강을 건너서 오십여 리 정도 가면 도학촌이라는 곳이 나옵니다. 그 도학촌에서 오 리 정도 더 가면 울창한 송림이 있사온데, 바로 그 송림 안에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장원이 있사옵니다.”

“그래? 허허허허, 정말 오랜만에 그 친구를 볼 수 있겠군. 어디 가보자.”

옷자락을 털며 일어난 청산자가 강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가 뒷짐을 진 채 물 위를 걸어가는데도 강물이 단단한 평지라도 되는 듯 물방울 하나 튀지 않았다.

 

* * *

 

찻잔에서 찻물이 튀었다.

사마경은 찻잔을 움켜쥔 채 맞은편의 우문각만 바라보았다.

방금 들어와서 한마디 말을 꺼낸 그의 표정이 무겁게 굳어 있었다.

“대령주가 회군하는 중이라고요?”

“그렇소, 소성주.”

“그가 이겼나요?”

“이겼다기보다 마무리를 지은 것 같소.”

“협정이라도 맺었단 말인가요?”

정말 똑똑한 여인이다.

한 마디 하면 열 마디를 알아듣는다.

우문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오. 영천을 경계로 해서 십 년 간 침범하지 않겠다는 맹약을 맺었소.”

이마를 한번 찡그린 사마경이 다시 물었다.

“그 일을 함에 있어서 구천률에 저촉되는 바는 없나요?”

“아쉽게도 없소이다. 대령주의 권한 한도에서 협정을 맺은 터라…….”

사마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안을 서성거리며 한참을 오가던 그녀가 우뚝 멈춰서더니 우문각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놔두면 구천성이 고스란히 대령주의 손에 넘어갈 거예요.”

“쉽진 않을 거요. 구천성을 탐내는 자는 공손백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오.”

“천외 말인가요?”

“셋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다면 구천성은 진즉 사분오열 되었을 거요.”

“그래서 더 무림맹과의 전쟁을 멈추고 돌아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구천성의 미래를 천외의 결정에 맡길 순 없으니까요.”

사마경은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생각에서 결정까지 일사천리였다.

총사인 우문각조차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

“당장 철수하실 거요?”

“물론이죠. 제 이름으로 무림맹에 서신을 보내세요. 루하를 경계로 해서 휴전을 했으면 한다고 해요. 거부한다면 전력을 총동원해서 허창은 물론 소림사까지 치고 올라갈 거라는 말도 필히 적으시고요.”

우문각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협정을 맺는다면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서고, 그 명분을 바탕으로 공손백을 견제할 수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무림맹이 공손백의 회군 소식을 모르고 있다면 그들도 협정을 마다하지 않을 거다.’

그도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촌각이 전세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알겠소. 즉시 서신을 보내겠소.”

 

 

106장 하늘이여

 

 

미시 말.

청산자는 바위산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송림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멋진 곳이군.”

풍경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좌우에 바위산과 호수가 있어서 적의 눈을 속이고 진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호수를 통해서 뒤로 돌아가려면 배가 있어야 하고, 산은 온통 미끈한 바위산이어서 움직임을 숨길 수 없었다.

“제가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늙은이를 잡아오겠습니다.”

여강이 앞으로 나섰다.

청산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필요 없다. 아마 그는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시간을 끌어봐야 좋을 것 없어. 어차피 잔재주는 통할 사람도 아니고.”

“하오면……?”

“그는 용이다. 용에게는 용에 걸맞은 대접을 해주는 게 좋겠지. 그를 공격할 때는 노도도 나설 것이다. 모두들 공격이 시작되면 최선을 다해라. 그것이 진정한 적수에 대한 예의니라.”

“알겠습니다, 주군.”

여강은 주인의 말에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그는 좌우를 둘러보며 명령을 전달했다.

“총공격에 나선다! 모두 최선을 다하도록! 시작해!”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청산궁 무사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송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에 송림 속 잡목들이 가루로 부서지며 먼지처럼 흩날렸다.

그 모습은 마치 호랑이 떼가 안개 속을 달리는 듯했다.

목적지는 저 안쪽 송림 끝에 있는 장원.

그 장원 안에 있는 노인이 오늘 사냥의 목표물이었다.

 

“놈들이 만송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무 노인은 장산의 보고를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만송림을 단숨에 쓸어버릴 것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준비는?”

“천살군이 만송림 안에 잠복해 있습니다. 그런데…….”

장산이 굳은 표정으로 답을 망설였다.

무 노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천회 무사들이 아직 오지 않았느냐?”

“저들이 예상보다 일찍 공격을 시작해서 약간 시간 차이가 날 것 같습니다.”

무 노인의 입가에 언뜻 쓴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부회주 모용문태가 이끄는 무사들이 일각 전에 도착했어야 하거늘,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구천성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길을 약간 돌아오기 때문이라 했다.

일각의 차이.

평상시라면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지옥을 넘나들어도 충분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지. 힘들더라도 그들이 올 때까지 버텨보는 수밖에.”

“저도 함께 나서겠습니다.”

“그건 허락할 수 없다.”

“노야, 모용 부회주께서 늦으시는 만큼 버티려면 저라도…….”

“모용문태가 늦기 때문에 더더욱 안 된다고 하는 것이야.”

무 노인이 고개를 돌려서 장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이 오지 않으면 그만큼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만약 그들이 너무 늦다 싶으면, 즉시 소천을 불러들여서 떠나라.”

장산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청산궁 무사들이 장원을 삼십여 장 남겨 놓았을 때였다.

휘이익!

휘파람소리가 짧게 울린 직후,

촤아아아아악!

수북이 쌓인 낙엽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자들 백수십 명이 솟구쳤다. 삼 장 높이로 날아오른 그들의 손에서 수백 개의 암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달리던 자들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무기를 휘두르고 장력을 떨쳐서 암기를 막아냈다.

비산하듯 솟구친 낙엽과 암기가 뒤섞여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바람에 십여 명이 암기를 맞고 비틀거렸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자들은 암기를 던진 후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밑으로 떨어지며 곧장 침입자들을 공격했다.

천살군 제 일대의 공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게다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결연한 각오까지 실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막기에는 청산궁 무사들이 너무나 강했다.

숫자는 백여 명에 불과해도 그들의 무력은 거대세력조차 날려버릴 수 있는 태풍과 같았다.

순식간에 천살군 이십여 명이 쓰러졌다.

스물을 셀 시간이 지났을 때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푸른 송림 안 곳곳에 시뻘건 피가 뿌려졌다.

휘이이익!

다시 휘파람소리가 울렸다.

살아남은 천살군 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뒤로 몸을 뺐다.

창백한 그들의 얼굴에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청산궁 무사들은 재차 땅을 박차고 앞으로 전진 했다.

이제 장원의 정문까지 남은 거리는 십여 장에 불과했다.

슈슈슈슈슉! 츠츠츠츠츠!

이번에는 좌우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보다 배는 더 많은 온갖 암기들이 머리 위에서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천살군 제 이대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청산궁 무사들도 위험을 느끼고 멈칫했다.

바로 그때, 청산자가 허공으로 떠오르며 두 손을 저었다.

고오오오오!

그의 두 손에서 무형의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더니 허공을 휘감았다.

우박처럼 쏟아지던 암기들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려서 한 곳으로 뭉쳐졌다.

허공에 둥둥 떠있던 청산자가 장원을 향해 일성을 내질렀다.

“동ㆍ방ㆍ무ㆍ기! 이런 장난이 노도에게 소용없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거네만!”

그러고는 허공을 젓던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한 뭉치로 뭉쳐진 암기들이 그의 손짓을 따라서 장원의 정문을 향해 밀려갔다.

진로를 막고 있던 소나무 세 그루의 허리를 나무젓가락 부러뜨리듯 동강낸 암기 뭉치는 곧장 정문으로 날아갔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장원의 정문이 산산조각 나며 비산했다.

 

무 노인은 부서진 정문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역시 그가 왔다. 천외의 노 괴물 중 하나, 오래전에 만났던 그가.

“잘 봐두어라, 장산. 그가 얼마나 무서운 괴물인지.”

담담한 목소리로 장산에게 말을 남긴 무 노인은 방을 나섰다.

장산은 입을 꾹 다문 채, 무 노인의 등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했다.

‘노야를 이리 보내지는 않을 겁니다.’

 

무 노인이 밖으로 나왔을 때, 청산궁 무사들은 정문 앞 공터에 도착해 있었다.

청산자도 허공에서 땅으로 내려와 뒷짐을 진 채 장원을 바라보았다.

고깔처럼 높이 쓴 도관 끝이 바람에 흔들렸다.

덩치가 크지 않은 데도 일대가 그의 위엄에 짓눌려서 숨을 죽였다.

“과연 그대였구려!”

무 노인이 청산자를 보며 말했다. 주름진 그의 눈초리가 잘게 떨렸다.

양쪽 숲 속에서 천살군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백 명 가까운 인원이 저들의 손에 당한 후다. 남은 인원은 자신을 호위하는 천위군과 합해도 백 명이 겨우 넘을 뿐이다.

그들만으로 저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모용문태가 제 때 도착한다면 가능할지도…….’

그조차도 소천이 청산자를 막을 수 있을 때 이야기다.

“정말 오랜만이군. 그대도 이제 늙었어.”

청산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람 한 줄기가 그의 하얀 수염 끝을 흔들고 지나갔다.

“인간이 세월을 어찌 비켜갈 수 있겠소.”

“노도가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할지 모르겠군. 지금이라도 노도와 함께 하겠다고 하면 자네를 더 추궁하지 않겠네.”

“다 늙어서 뭘 더 욕심내겠소? 그저 남은 것도 아이들에게 다 주고 저승에서 불러들이길 기다릴 생각이오.”

무 노인의 말 속에는 뼈가 있었다.

다 늙어서 무슨 욕심이냐! 그 말이었다.

청산자도 그 말뜻을 바로 알아듣고 미련을 털어냈다.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저승에는 노도가 보내주겠네.”

“쉽지는 않을 거외다.”

그때였다.

청산자가 눈을 들어서 무 노인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티 하나 없이 맑은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믿는 구석이 있었군.”

나직한 어조로 말하는 그의 몸에서 휘황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마치 그의 몸이 점점 커지는 듯했다.

휘이이익!

맑은 휘파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장원 안에서 누군가가 둥실 떠올라서 밖으로 날아왔다.

가죽으로 된 검은 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는 자.

소천.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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