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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7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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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1화

나승관이 입은 청의는 소매가 감색 천으로 둘러져 있었다.

그런데 왼손 소맷자락에 실밥이 빠진 흔적이 있었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나승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재주껏 알아봐라, 애송이.”

장천운은 질질 끌지 않고 손가락을 튕겼다.

퍽!

지풍이 나승관의 아혈에 꽂혔다.

“어차피 당신이 쉽게 입을 열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어. 나도 천외 사람들의 고집을 좀 알거든.”

‘천외’라는 단어가 장천운의 입에서 나오자, 나승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장천운이 냉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서 멱살을 쥐고 바짝 당겼다.

“누구 고집이 더 센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밤하늘을 울린다.

아무래도 긴 밤이 될 것 같다.

 

* * *

 

장천운은 통나무처럼 굳어진 나승관을 어깨에 메고 율검당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도 단승과 사공명신은 오지 않은 상태였다.

나승관을 뇌옥에 집어넣은 장천운은 저두심과 진구에게 석 노인의 시신 회수와 서고 정리를 지시했다.

석 노인의 죽음이 아쉬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제압하기에는 너무 강했고, 옆에는 나승관까지 있었다.

그로선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했고,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나승관을.

그러고는 단승과 사공명신이 오기를 기다렸다.

일각쯤 지났을 때 사공명신이 먼저 돌아왔다.

“어떻게 됐지?”

“놈이 천경전으로 들어갔네.”

“누굴 만나는지 알아보았나?”

“멀리서 봤지만, 다행히 불빛이 있어서 얼굴을 기억해두었네. 청목에게 말하면 누군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잘했어. 그런데 단승이 늦게 오는군.”

 

그로부터 일각 반쯤 지났을 때 단승이 돌아왔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굳은 표정이었다. 옷매무새도 큰 차이가 없었다.

장천운은 자세히 묻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힐끔, 장천운의 표정을 살펴본 단승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강하더군.”

그럼 그렇지. 결국 싸웠단 말이군.

“그래서?”

“놓칠 뻔했어.”

놓치지는 않았다?

“잡았나?”

“잡아서 심문을 하려고 했는데…… 스스로 혈맥을 끊고 죽어버렸어.”

그들이 어찌 나올 것인지 빤히 알면서 자결을 막지 못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하기만 했다.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게다가 장천운의 그 말을 들으니 더 짜증이 났다.

“누군 싸우고 싶어서 싸운 줄 알아? 나도 조심하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개새끼가 나타나서 짖어대잖아. 그 자식이 지나갈 때는 안 짖었는데…….”

‘그때였군.’

장천운도 개 짖는 소리를 들었었다.

“놈이 눈치 채고 도망가려고 해서 쫓아갔지. 그랬더니 나 혼자인 걸 알고 음침한 곳에서 돌아서더니 공격하더군.”

다른 사람들이 알면 곤란해질지 몰랐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제압하려고 천섬쾌를 펼쳤다. 물론 요혈은 피했다. 죽이면 비공이란 놈이 지랄거릴 지 모르니까.

근데 쓰러진 놈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시커먼 핏물을 거품과 함께 게워내고 고개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지 몰라서 시신을 이리 가져왔어. 그 바람에 더 늦은 거야.”

“시신을? 잘했어.”

“그래? 다행이군. 가져와도 되는지 망설였었는데.”

이상했다. 그냥 말뿐인 칭찬 같은데도 짜증난 기분이 풀어지는 듯했다.

심지어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까지.

장천운은 그의 표정변화를 보고 웃음이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훗, 보기보다 순진하다니까.’

그때 방문이 세차게 열리고 유진생이 들어왔다.

“비 조장.”

유진생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장천운이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당주께서 급히 오라는군. 대령주와 대장로가 성으로 돌아오는 중이라 하네.”

이런, 빌어먹을!

 

* * *

 

전무궁의 방에는 삼대와 사대, 친위대 대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유진생을 제외한 나머지 대주들은 일개 조장인 장천운이 회의에 참여한 것을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다.

전무궁은 그 분위기를 능숙하게 풀어나갔다.

“오대가 맡은 일은 어떻게 되었나?”

그는 일단 본론을 뒤로 미루고 오대의 작전 상황부터 물었다.

유진생은 그에 대한 대답을 장천운에게 미루었다.

오면서 듣긴 했지만 어차피 그는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비공, 말씀드려라.”

“예, 대주.”

장천운도 장단을 맞춰주었다.

“조금 전, 류징 당주님과 조경등 장로님의 살해 용의자를 붙잡아서 뇌옥에 투옥시켰습니다. 공범이 하나 있었는데, 워낙 저항이 강해서 격전 중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대주들이 모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이었다.

“그게 사실이냐?”

“언제 그런 일을……?”

“그럼 상두한 장로가 범인이 아니었단 말이냐?”

전무궁이 손을 들어서 그들의 입을 막고 장천운에게 물었다.

“그자가 범인이 확실한가?”

“그와 공범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이제 자백을 받아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 누가 범인이었느냐?”

“빈객으로 있던 청송일검 나승관입니다.”

“허어!”

“그런……!”

대주들이 다시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청송일검이라는 별호가 말해주듯 나승관은 정파의 인물로 분류될 만큼 깨끗한 인상을 지닌 자였다.

실력 또한 절정경지에 이르러서 구천성의 간부들조차 무시하지 못했다.

그런 자가 범인이라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잡아서 가두어 놓기까지 했다니.

그것도 일개 조장이!

은연중 오대를 무시했던 삼대와 사대주의 입이 달라붙었다.

전무궁은 그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좋아, 그나마 중요한 사건이 해결되어서 다행이군. 그럼 이제 대령주와 대장로의 회군 소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방안이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 이대에서 긴급으로 연락이 왔다.

육안으로 간 대령주와 금선장에 간 대장로가 무사들을 집결시켜서 성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 한다.”

“그럼 싸움이 끝났단 말입니까?”

삼대주 백남평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모두들 궁금한 표정으로 전무궁을 바라보았다.

“대령주가 안휘의 정파연합세력을 합비의 남궁세가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승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그런데 우리 쪽도 피해가 너무 커서 더 이상의 공격이 어려운 상태인 것 같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온단 말입니까?”

“빈손은 아니야. 대령주가 정파연합으로부터 영천 서쪽에 대한 불침 맹약서를 받아냈다고 하니까.”

상대는 명분과 약속을 목숨 이상으로 여기는 정파다.

말이 불침맹약서지, 실질적으로는 항복문서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영천 서쪽이라는 한계를 정했다면, 어정쩡한 상태였던 육안 일대가 완전하게 구천성의 영역이 되어버렸다.

구천성으로선 적지 않은 소득.

문제는 소성주가 출정해 있는 상태에서 대령주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쪽으로 간 대장로마저 돌아온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대장로는 왜 돌아온다고 합니까? 그쪽은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을 텐데요?”

친위대주 좌홍이 물었다.

그는 전무궁이 개인적으로 끌어들인 자로, 현재는 총호법 여철숭과 호법 공선도 살해사건을 전담하고 있었다.

“장강팔련이 꼬리를 내리고 평화협정을 제의했다는군. 그 조건으로 대장로의 퇴군을 요구했고.”

“그래서 무조건 조건을 받아들였단 말입니까?”

“뭔가가 있겠지. 문제는 돌아올 명분이 된다는 것과, 따로 허락을 얻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소성주께서 출정한 이상 대장로와 대령주가 최고 서열이니까.”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정상적인 회군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맞아. 나도 그래서 너희들을 부른 거다. 우리 율검당은 구천률을 지키는 게 임무다. 누구든, 구천률을 어긴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야.”

“다른 분들도 아십니까?”

유진생이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이제 알려야지. 소성주께서도 내일쯤이면 알게 되실 거다. 이대에서 사람을 따로 보냈으니까.”

그들이 아니어도 비령각의 비조가 소식을 전했을 것이다.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빨라도 너무 빨라.’

공손백과 천외가 손을 잡고 일어서면 현재로썬 막을 방법이 없다.

그나마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사마경도 회군하는 것.

문제는 무림맹이었다. 그들이 쉽게 놓아줄까?

게다가 파천회도 구천성을 노릴 것이고, 천외 역시 그녀가 돌아오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소성주가 온다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야.’

장천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방법을 찾아야 돼. 저들과 대등한 힘을 갖추지 못하면…….’

준동만 늦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싸워서 밀리지 않을 힘도 갖추어야만 한다.

‘무창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는 안 돼.’

숫자는 적지 않다.

공손백과 나극의 세력을 견제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외의 고수들을 상대하기에는 무위가 너무 떨어진다.

‘진짜 고수들이 필요한데…….’

그때 문득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한 번 계산해보고 검산까지 해봐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그 정도면 제법 훌륭한 계획이었다.

‘좋아, 어차피 밑져봐야 본전인데, 못할 것도 없지.’

 

율검당을 나선 장천운 서신을 하나 작성한 후 남문 동쪽에 있는 대장간을 찾아갔다.

손에 맞는 검을 찾아보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구천성에 들어와 있는 암월당 무사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석중에게 이름과 생김새를 들은 터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장천운은 한쪽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는 장한에게 다가갔다.

웃옷을 벗은 장한은 풀무질을 할 때마다가 갈색 근육이 피부 속에서 용틀임을 하듯 멋지게 꿈틀거렸다.

장한 앞에 도착한 장천운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초승달처럼 생긴 검을 하나 구했으면 하는데. 검은 빛이 도는 것이면 더 좋소만,”

“조금만 기다리슈. 이거 끝내고 찾아드리겠수.”

장한은 반각 정도 더 풀무질을 한 후에야 땀을 닦으며 돌아섰다.

“따라오슈. 저 안에 있으니까.”

웃옷을 걸친 장한은 장천운을 무기가 진열된 창고로 데려갔다.

창고에 들어간 그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예를 취했다.

“암월당의 이응이 령주께 인사드립니다. 조장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하명하실 일이 있으시면 하십시오.”

“무창에 지급으로 전할 서신이 있소. 최대한 빨리 전해주었으면 하는데.”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장천운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이응에게 건네주었다.

“회주나 호양청에게 전해주면 되오.”

 

* * *

 

공손백의 회군 소식은 파천회에도 들어갔다.

우거진 송림 속 장원에서 전서구를 통해 급보를 전해 받은 장산은 즉시 무 노인에게 사실을 알렸다.

“공손백과 나극이 싸움을 중지하고 구천성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합니다.”

무 노인은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군. 하필 지금 돌아가다니.”

“차라리 잘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잘 됐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

“천외도 공손백이 돌아가는 걸 알면 고민을 하게 될 테니까요. 어차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면 한쪽만 전념하는 게 우리로서도 낫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것도 그렇군.”

흐릿하던 무 노인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놈들은 지금 어디까지 왔느냐?”

놈들. 천외의 무리를 말함이다.

“지금쯤 금하에 도착했을 겁니다. 오늘 오후쯤이면 이곳을 찾아낼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쪽 준비는?”

“천살군을 모두 동원했습니다. 회주께서 팔기 중 사기를 보내신다고 했는데, 제때에만 도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소천은?”

“최상은 아니지만, 무리를 한다면 능력의 구 할까지는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천회의 동향을 들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던 무 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생각보다 빠르군.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어. 장산.”

“예, 노야.”

“너는 싸움이 벌어져도 절대 나서지 마라.”

“예?”

“노부는 살 만큼 살았다. 죽고 사는 건 운명에 맡길 것이니라. 나머지는 네가 맡아다오.”

“안됩니다, 노야.”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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