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7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70화
“옙! 조장!”
후다닥 안으로 들어간 강태가 상두한을 어깨에 들쳐 멨다. 덩치가 커서 그런 일로 써먹기에 적당했다.
장천운 일행이 장로원을 떠날 때까지 장로원의 사람들은 무거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장천운 일행이 장로원을 나설 즈음, 한 사람이 후원 쪽 건물 뒤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십대 중반, 평범한 청의를 걸친 그는 키가 제법 크고, 오른쪽 눈썹 끝에 제법 깊은 상흔이 있었다.
‘상두한이 잡혀가다니.’
그는 장천운 일행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애초에 류징과 조경등이 살해당한 것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멍청한 놈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을 죽이다니.’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들의 입을 막아서라도 숨겨야 할 것이 있다는 소리겠지.’
문제는 왜 이리 허술하게 일을 처리했냐는 것이었다.
바늘 끝도 파고들기 힘들만큼 철저한 자들이.
‘어쩌면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105장 회군(回軍)
장천운은 상두한을 율검당의 지하뇌옥에 가두었다.
탈출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마혈을 이중으로 제압해 놓아서 누가 빼돌리지 않는 한 죽지 않고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상두한은 악명 높은 율검당의 고문기술자들 차지가 되었다.
장천운도 더 이상 상두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이봐, 조장. 상두한에 대한 조사, 우리가 직접 하는 게 낫지 않아?”
단승이 약간 불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실컷 잡아 왔더니 조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다니.
그런데 장천운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나왔다.
“내 생각이 옳다면 상두한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할 거야.”
단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가볍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그럼 그가 류징 당주와 조경등 장로를 죽이지 않았단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단승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조원은 물론 사공명신과 저두심, 진구, 청목도 눈을 크게 뜨고 껌벅였다.
“뭐? 그런데 왜 그를 범인이라며 잡아왔지?”
“일단 구천률을 어겼잖아?”
“그거야 잡아가겠다고 하니까…….”
“조사만 하겠다고 했지.”
“어쨌든…….”
“범인이 아니라면 조사를 받으면 돼. 그런데 왜 조사를 받지 않으려고 했을까? 무력으로 저항하면서까지?”
듣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마를 찌푸렸다.
뭔가가 머릿속에서 간지럽게 긁적거렸다. 잡힐 듯 말 듯, 떠오를 듯 말 듯.
“저기…… 뭔가 켕기는 것이 있으니 그런 것 아닐까요?”
청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천운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 쳤다.
소리가 제법 커서 마치 ‘정답!’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내 생각도 그래.”
“그럼 더욱 더 우리가 조사해야지.”
단승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했다.
하지만 장천운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아마 그는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거다. 더구나 그는 현직 장로야. 아무리 혐의가 있다 한들 함부로 고문할 수도 없어.”
그가 취조를 율검당 사람들에게 넘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찌어찌해서 그의 입을 연다 해도, 그때쯤에는 그와 연결된 자들도 대책을 다 세워놓아서 그에게 얻은 정보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거다.”
“흐으음.”
“그래서 말인데…… 그들이 대책을 마무리 짓기 전에 때려잡을 생각이야.”
장천운은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조용히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던 사람들은 그 웃음을 보고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 와중에 저두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웃음, 꼭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장천운이 명령을 내렸다.
“아마 영빈각에서 움직이는 자들이 있을 거야. 내가 본 바에 의하면 최소 다섯은 돼. 아마 그들 전부가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고, 많아야 셋 정도가 움직일 거다.”
그리 생각한 이유는 단순했다.
천외의 세력이 셋이니까.
“놈들이 움직이면 나와 단형, 사공형이 뒤를 쫓기로 하지. 다른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대주께 연락해. 함부로 끼어들지는 말고. 당신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니까.”
* * *
그날따라 시커먼 구름사이에서 타오르는 석양이 유난히 붉었다.
마치 이제 막 올려놓은 숯불 사이에서 불꽃이 지글거리는 듯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석양이 서산 아래로 처박히자, 화톳불이 하나 둘 타오르고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영빈각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그때쯤이었다.
‘드디어 움직이는군.’
장천운은 영빈각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림자 하나가 밤새처럼 날아서 은밀하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저 자는 내가 맡지.”
단승이 나섰다.
장천운도 말리지 않았다. 대신 주의를 주었다.
“절대 함부로 싸우지는 마. 만만한 놈들이 아니니까.”
‘나도 만만하진 않아.’
단승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겨우 참았다.
말로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닥치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걱정 마.”
단승이 떠난 지 반각쯤 지났을 때 또 한 사람이 담장을 넘었다.
그자는 밖에 내려선 후 침착하게 좌우를 둘러본 후 북쪽으로 올라갔다.
“사공 형.”
사공명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림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로부터 스물을 셀 즈음 한 사람이 정문을 통해서 나왔다.
빈객 중 하나인 나승관이라는 자였다.
청송일검이라는 평범한 별호를 지닌 자.
하지만 평범한 별호와 달리 절정경지에 달한 고수였다. 빈객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고수.
장천운이 파악한 다섯 중 하나.
‘으흥, 저 자까지 나왔다면 다 나왔다고 봐야겠군.’
정문으로 나온 걸 보면 단순한 외출일지도 모르지만 장천운은 일단 그자의 뒤를 쫓았다.
나승관은 태연히 걸으면서 눈알을 굴려 좌우를 둘러보았다.
별 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순찰무사들이 지나가며 건네는 인사도 이전이나 다름없었다.
‘그 애송이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군.’
그도 영빈각에 금룡과 암천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알고도 모른 척했다. 아마 그들도 자신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늘 일만 아니었다면 각자 그렇게 지내면서 상부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엉뚱한 일이 터졌다.
더구나 율검당의 애송이가 너무 깊게 파고드는 바람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이 기회에 구천성을 뒤엎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청산의 지휘자는 자신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뭐가 두려워서 놔두고 있는 건지 원…….’
속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목적지인 서고가 저만치 보였다.
서고 앞에 선 나승관은 마지막으로 주위를 살펴본 후 서고의 문을 밀었다.
서고의 문은 늦게까지 수련하는 성의 무사들을 위해서 술시 말까지 열어두는 게 보통이었다.
끼이이이이.
아니나 다를까 경첩이 미세한 소리가 내며 문이 열렸다.
문지방을 넘어선 그는 서고 안쪽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언뜻 바람 한줄기가 그를 따라서 안으로 밀려들었을 뿐,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그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빗장까지 채웠다.
잠시 후, 나승관은 서고 안쪽에 있는 방에서 서고의 관리 책임자인 석 노인과 마주 앉았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영빈각과 장로원에서 벌어진 일은 나도 들었다. 율검당이 그렇게까지 나올 줄은 생각 밖이었어.”
“금룡과 암천의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서 그들에게 합작을 제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진인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제가 나서보겠습니다.”
“대진인께서는 지금 궁에 안 계신다. 그리고 지원을 바랄 수도 없다. 대진인의 명령으로 파천회를 쫓고 있거든.”
“파천회요?”
“정확히는 파천회를 뒤에서 움직이는 자를 잡기 위함이지.”
“그자가 누구기에 구천성보다 우위에 둔단 말입니까?”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대진인께서 최우선으로 처리하려고 할 때는 그만큼 위험한 자라는 말이겠지.”
“으으음, 어쨌든 이대로 가만히 기다렸다가는 자칫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은 피해야겠지. 너는 일단 영빈전으로 돌아가서 움직이지 마라. 율검당의 어린놈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비공이라는 놈을 조심해야합니다. 상두한이 그놈을 얕보고 손을 썼다가 거꾸로 당했습니다.”
“걱정마라, 처리할 때는 확실히 할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때였다.
“이야기 다 끝났나? 그럼 뭐 하나 물어봅시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환신술을 펼쳐서 나승관을 몰래 따라 들어온 장천운이었다.
나승관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누군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겹쳐져 떠올라서였다.
“그놈입니다!”
“듣는 놈 기분 나쁘게 계속 놈, 놈 할 거요?”
탕!
고개를 번쩍 쳐든 석 노인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쉬익!
서탁 위 붓통에 꽂혀있던 붓 세 자루가 암기처럼 천장으로 쏘아졌다.
천장을 보고 있던 석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명 천장 위에 놈이 떠 있었다. 그런데 빤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 사라져버렸다.
마치 유령처럼!
그뿐이 아니었다. 가공할 기운이 촘촘한 그물처럼 퍼져서 두 사람을 뒤덮었다.
“헉!”
대경한 나승관이 공력을 끌어올려서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
괴이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바위도 부술 장력이 늪 속으로 뼈져 버린 듯했다.
그도 잠시, 은은한 뇌성이 울리면서 가공할 위세의 장력이 나승관의 몸을 짓눌렀다.
쿠구구궁.
와지직!
나승관의 발이 단단한 석판을 부수며 파고들었다.
해쓱해진 얼굴로 눈을 치켜뜬 그는 키가 세 치쯤 줄어든 듯했다.
시퍼렇게 변한 입술 사이에서는 핏줄기가 흘러나왔고.
‘어, 어떻게 이런…….’
장천운은 그를 놔둔 채 석 노인을 향해 손을 뿌렸다.
쉬쉬쉭!
뇌정무극지 세 줄기가 석 노인을 향해 뻗어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석 노인이 탁자를 치고, 나승관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일장을 펼친 시간까지 합해봐야 잠깐 숨을 한 번 쉴 시간에 불과했다.
나승관이 당하는 걸 본 석 노인은 다급히 쌍장을 휘둘렀다.
오왕, 칠절, 십마조차 자신의 위로 보지 않는 그다.
애송이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나승관이 당한 것도 급습을 당했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판단한 석 노인은 도주 대신 정면승부를 택했다.
“갈!”
일성을 내지른 그의 쌍장에서 강맹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철벽을 형성했다.
강기로 펼쳐진 철벽은 잘 벼린 도검이라 해도 뚫지 못했다. 하물며 지풍 정도야…….
하지만 맞대결을 선택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쩌저적!
철벽이라 생각했던 장막에 구멍이 숭숭 났다.
“헛!”
대경한 석 노인은 반사적으로 몸을 틀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뇌정무극지는 눈이라도 달린 듯 석 노인을 따라 휘어지더니 어깨와 가슴, 그리고 아랫배를 파고들었다.
입을 쩍 벌린 석 노인의 눈매가 거세게 흔들렸다.
지풍의 위력이 약해져서 관통하지는 못했다 하나 몸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충격이 커서 몸이 마비되었다.
“이, 이런 개 같은 일이……!”
뒤이어 날아든 뇌정무극수가 그의 몸뚱이를 두들겼다.
쾅!
거센 충격을 받은 석 노인의 몸뚱이가 이 장을 날아가서 벽에 처박혔다.
웩!
피를 토하고 힘들게 고개를 든 나승관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암습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지만, 절대경지에 근접한 동마(東魔) 석동패가 단숨에 제압되다니.
피육!
장천운은 나승관의 마혈을 제압해서 꼼짝도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나승관의 소매를 보며 물었다.
“당신이 류 당주와 조 장로를 죽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