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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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9화
* * *
전무궁은 한 시진 동안 경험이 많은 율검당 대원들을 불러서 단검에 대해 알아보았다.
십여 명이 단검을 살펴보았으나, 누구도 단검의 주인을 확실하게 지목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단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서 첩밀각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첩밀각의 정보원 대다수가 출정에 나섰지만 남은 자들 역시 정보에 관한한 귀신들이었다.
“네가 첩밀각에 가보겠느냐?”
전무궁이 장천운에게 물었다.
장천운으로서도 그게 편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경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주, 소성주께서 보냈다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전무궁은 경비무사의 말을 듣고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성주께서?”
“말씀드리면 아실 거라고 했다 합니다.”
그가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던 일이냐?
그렇게 묻고 싶은 표정이었다.
“저를 돕기 위해서 몇 사람 보내신다고 했었는데, 도착했나 보군요.”
장천운은 전무궁이 묻기 전에 담담히 말했다.
“그래? 들여보내라.”
전무궁이 밖을 향해 말했다.
‘제때 왔군.’
장천운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청목과 그를 호위하고 온 흑월대원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흑월대원은 셋. 사공명신과 저두심, 진구였다. 그나마 흑월대원 중 멀쩡하고, 사마경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파견에는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소성주 암살에 대한 조사지원.
물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지만.
그들 중 사공명신이 대표로 전무궁에게 인사를 건넸다.
“흑월대 이조장 사공신이라 합니다. 소성주께서 암살사건을 조사하는데 협조하라 하셨습니다.”
“잘 왔네.”
전무궁은 사공명신을 보고 흡족해 했다.
왜 일개 대원들을 보냈을까 했는데, 사공명신을 마주해보니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 일에 대한 조사는 비공이 책임자네.”
전무궁은 흑월대원들이 당연히 비공을 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공명신도 장천운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마경이 한 말이 있기에 아는 척했다.
“소성주께서 그대의 지휘를 따르라 했소.”
장천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인사는 나중에 나누기로 하고 일부터 하지요.”
그러고는 단검을 청목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 단검을 아시오?”
청목이 단검을 받아서 세밀하게 살피며 기억을 더듬더니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장로이신 여산일풍 상두한 장로의 단검입니다.”
전무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확실한가?”
“삼년 전 쯤, 아마 구월 보름이었을 겁니다. 서문 밖에 있는 감을 따와서 깎아먹는 걸 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습니다.”
“……뭐, 뭐라고? 삼년 전? 감을 깎는 걸 봤다고?”
전무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노기를 드러내며 야단쳤다.
“네가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것이냐?”
흑월대에 있으면서 간이 커질 대로 커진 청목은 전무궁이 다그치는 데도 흔들리지 않았다.
“제가 어찌 당주님께 장난으로 말하겠습니까?”
“장난이 아니면? 지금 그 말을 믿으란 말이냐? 정식으로 본 것도 아니고, 감을 깎는 걸 봤는데 단검을 바로 알아봐? 그것도 지나가다가 봤다면서?”
전무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굴도 노기로 벌겋게 타올랐다.
장천운이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그를 말렸다.
“아마 사실일 겁니다.”
“사실이라고? 너는 지금 저 자의 말을 믿는단 말이냐?”
“예, 당주. 십년 전 밤에 슬쩍 앞을 스쳐간 자의 얼굴까지 기억하는 사람인데, 삼년 전 일을 기억하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설마…… 저자가……?”
전무궁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장천운은 할 수 없이, 정말 할 수 없이 극단적인 방법을 썼다.
“청목, 혹시 당주님의 오래 된 과거 중 기억하고 있는 일이 있소?”
청목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전무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남들이 그를 잘 몰라서 그렇지, 뒤끝도 있었다.
“팔년 전 유월 열이틀 어둑해질 무렵, 청송림에서 누가 술에 취해 방뇨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뒷모습만 보였습니다만,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전 당주님이셨습니다.”
“뭐?”
전무궁의 눈이 커졌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런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저놈이 자신은 기억도 못하는 이야기로 사기를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사기 치는 거라면 소성주가 보낸 놈이라 해도 용서치 않으리라!
그런데 청목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때 언뜻 들었는데 ‘청강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내년에는 한번 찾아가봐야겠어.’라고 중얼거렸었지요.”
막 청목을 혼내키려던 전무궁이 멈칫했다.
‘청강이’는 자신의 죽마고우인 이청강을 말했다. 그 이름을 듣자 문득 당시의 기억이 구석 저편에서 봉인을 깨고 튀어나왔다.
‘맞아, 팔년 전에 술을 너무 마셔서…….’
청송림에 들어간 기억도 떠올랐고, 그 다음해에 이청강을 만나러 간 일도 떠올랐다.
청목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런 말을 중얼거린 것도 사실일지 몰랐다. 기억에는 없지만.
“험, 정말 대단한 기억력이군.”
그런데 자식이 왜 하필 그런 창피한 일을 말해?
전무궁은 청목을 한번 흘겨보고는 화제를 슬쩍 돌렸다.
“좌우간 청목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 장로를 조사해봐야겠군.”
상두한은 성에 남은 장로 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 삼 년 동안 고질병 때문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성 안에서만 지냈다. 출정에 따라나서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 *
장천운은 일단 사공명신과 저두심, 진구, 청목을 이조의 거처로 데려갔다.
“당분간은 이곳에서 지내도록.”
네 사람은 별 불만이 없었다. 어차피 흑월대의 거처로 가봐야 썰렁할 테니까.
그런데 단승이 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특히 사공명신을 보는 눈빛이 뜨겁게 타올랐다.
“사공신이라 했나?”
“그렇소만.”
“나는 단승이라고 하네. 언제 시간나면 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 어떤가?”
사공명신의 눈빛도 서서히 타올랐다.
처음에만 해도 율검당 오대 이조라고 해서 무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조장이란 자가 왠지 마음에 걸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세상에는 가끔 그런 사람이 하나씩 있으니까. 장천운처럼.
그런데 단승이란 자, 이자도 만만치 않았다.
마주하고 있으니 솜털이 올올이 곤두섰다. 적당한 긴장과 열기가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내 하수가 아니다.’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구려.”
씩, 단승이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조소도 아니고, 냉소도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서 짓는 미소였다.
“그 친구, 마음에 드는군.”
그때 슬쩍 두 사람을 쳐다본 장천운이 말했다.
“자, 검에 대해 이야기하든, 검에 고기를 꿰서 구워먹든 일부터 하자고.”
장천운은 이조원과 흑월대원 셋을 데리고 장로원으로 갔다.
장로원은 조경등의 죽음으로 인해서 침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장천운은 장로원에 들어가자마자 곧장 상두한 장로의 방으로 향했다.
장로원에 몇 번이나 와본 적이 있는 그였다. 정원석의 형태까지도 그의 기억 속에 있었다.
하물며 상두한의 방을 찾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두한 장로님, 안에 계십니까?”
“무슨 일인가?”
“율검당 오대 이조장인 비공이라 합니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몸이 좋지 않아서 지금은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구나.”
“그래도 만나셔야 합니다. 계속 거부하시면 할 수 없이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콜록, 콜록, 콜록.
한바탕 기침을 해댄 상두한이 노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병이 걸렸다고 너 따위가 감히 나를 무시하겠다는 거냐?”
“무시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구천률에 따라 조사를 하러 온 것입니다.”
“나는 조사 받을 게 없다.”
“그럼 단검을 언제 서문 밖에서 잃어버리셨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단검을 아직 갖고 계시다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나는…… 단검을 이틀 전 새벽에 잃어버렸다.”
“조경등 장로를 살해한 단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쏘아붙이는 말투 깊숙한 곳에서 초조함이 묻어나왔다.
그럴수록 장천운은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일단 율검당으로 가서 말씀하십시오.”
“나는 율검당으로 갈 생각이 없다.”
“따라가지 않으시겠다면 저희가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어딜 감히……!”
상두한이 방 안에서 노성을 질렀다.
분노와 당황, 다급함이 버무려진 목소리였다.
장천운은 더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어!”
강태와 산교가 후다닥 앞으로 나서서 방문을 열었다.
“네가 지금 나를 능멸하겠다는 것이냐!”
벌떡 일어난 상두한이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장천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
일갈을 내지른 상두한이 방문 쪽으로 죽 미끄러져 오더니 쌍장을 휘둘렀다.
장천운은 강맹한 장력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절정 경지에 이른 상두한의 장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
방문 밖에서 안쪽을 기웃거리던 사람들 중 두엇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저런!”
“조심하시오!”
몇 명은 조소를 지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장천운은 율검당 일개 조장이었다. 장로인 상두한의 장력을 상대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애송이.
그들 누구도 상두한을 말리지 않았다.
‘설마 손을 쓰랴 하는 오만한 생각을 갖고 상두한을 몰아붙였다가 호되게 당하겠군.’
‘애송이가 어디서 감히 장로를 다그쳐?’
‘저런 놈은 된통 당해봐야 돼.’
그들의 조소가 짙어질 즈음 장천운이 손을 들었다.
두두둥.
북소리가 방 안에서 들린 듯했다.
그 직후 상두한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일그러진 얼굴, 파르르 떨리는 눈매. 자신이 처한 현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이 의아해 할 때 장천운이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쌍수를 내밀었다.
“구천률에 저항하겠다는 건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는 거겠지!”
냉랭한 일갈과 함께 십여 개의 커다란 수영이 상두한의 시선을 가득 메웠다.
전력을 다해서 저항하려던 상두한은 눈을 홉뜨고 이를 악물었다.
상대는 분명 율검당 오대 이조장이라 했다.
그런데 일개 조장의 손에서 펼쳐진 금나수는 절정 경지인 자신조차 피할 수 없는 절학이었다.
‘어, 어떻게 이런……!’
퍼버버벅.
허공을 격한 채 떨어진 장력이 상두한의 마혈과 요혈 다섯 군데를 거의 동시에 가격했다.
절정 경지가 아니면 흉내도 내지 못할 상승의 격공장력이다.
상두한이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전신 요혈이 제압된 후였다. 아혈조차도.
“장로 상두한, 화금당주 류징과 조경등 장로 살해혐의 및 구천률에 저항한 죄로 체포한다!”
밖에 있던 사람 중 상두한과 친했던 이들은 할 말이 많은 눈치였다.
류징과 조경등 살해혐의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구천률에 저항한 것은 모두가 두 눈 뜨고 지켜봤으니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나서서 장천운의 행동을 막는다면 자신 역시 구천률에 따라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것이다.
게다가 장천운이 상두한을 한순간에 제압한 광경은 충격적이다 못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상두한이 병중이라지만 어찌 저럴 수가!
“이보게, 류 당주와 조경등 장로 살해혐의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상 장로가 조 장로를 죽였다는 게 사실인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은 기껏해야 그 정도.
장천운이 그에 대해 답했다.
“상두한 장로께서 애용하시던 단검이 류징 당주님과 조경등 장로님의 심장에 구멍을 낸 검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취조를 하려고 했는데, 구천률을 어기면서까지 조사책임자에게 살수를 썼습니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러고는 이조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두한 장로를 율검당으로 끌고 간다! 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