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6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64화
‘애들?’
강도청의 말투에 피식 웃은 유진생은 고개를 까닥이고 손을 흔들었다.
“수고했다. 가서 쉬어.”
강도청은 절도 있게 두 손을 맞잡고 예를 취했다.
“예, 대주.”
속으로야 더럽게 걸렸다며 한탄했지만 어쩌랴,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는데.
그는 방을 나가며 장천운 일행을 힐끔거렸다.
‘조카 일행이라고 했던가? 좌우간 저 자식들도 더럽게 재수 없군.’
유진생은 강도청이 방을 나간 후에야 장천운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부터 네가 이조 조장을 맡아라. 혹시라도 데려올 사람이 있으면 말해.”
“천경전에 가서 골라보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기존의 구천성 무사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 중에도 천외가 잠입시킨 첩자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완과 모용예가 넣은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그들 중에서 고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의심받지 않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테니까.
문득 모용예를 떠올린 장천운이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겠군.’
실컷 굴려먹으려고 했는데 죽어서 아무 짝에도 소용없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고완과 모용예를 이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 뒤에 누가 있긴 있을 텐데……. 흠, 어쩌면 그들이 변수가 될지도 모르겠군.’
거처는 거대한 율검당 건물 맨 끝에 있는 방이 주어졌다.
방 안에는 침상 열한 개 놓여 있었고, 벽에는 각자의 물품을 보관하는 사물함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단승이 이마를 찌푸리고 물었다. 그로선 구천성의 율검당 평무사가 된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조원부터 보강해야지. 그리고 임무가 주어지면 수행할 생각이네.”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사람을 찾는 일도 수월해지지 않겠나?”
일리가 있는 말이다.
율검당 무사는 사건조사가 기본 임무다.
사건을 조사한다는 핑계라면 어지간한 장소는 의심받지 않고 오갈 수 있을 것이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군.’
단승은 흑월대원들이 진즉 깨달은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가능하면 미제 사건들도 조사해볼 생각이네.”
“왜?”
“그 사건들 안에 내가 찾는 사람에 대한 단서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도대체 누굴 찾는데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지?”
“궁금해도 조금만 기다려. 단형도 곧 알게 될 거야.”
단승은 불만이 많아도 어쩔 수 없었다. 삼 년 동안은.
‘빌어먹을! 완전히 코가 꿰었군.’
입술을 삐죽이며 돌아선 그는 자신에게 배정된 침상에 앉았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실소를 지었다.
‘성깔은 잘 벼린 칼 같은데, 하는 행동은 꼭 여자 같군.’
하지만 그가 남장여자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서서 싸는 걸 봤으니까.
103장 맛좋은 미끼
다음 날 신시(오후3시~5시) 초.
거처를 나온 장천운은 단승과 함께 천경전으로 갔다.
그들의 복장은 전날과 달랐다.
율검당의 복장인 남색무복을 입은 것이다.
더구나 장천운은 율검당 당주의 신물인 율검령까지 들고 있었다.
“율검단 제 오대 삼조장 비공이라 하오. 당주님의 명으로 당원이 될 사람을 몇 뽑으러 왔소.”
장천운이 율검령을 들이밀며 천경전 무사에게 말했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신입무사는 천경전에서 심사를 한 후 보름 동안 교육을 받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적절한 단체에 배치한다.
장천운 일행처럼 곧장 배속되는 경우는 당주급 이상 고위간부들이 특별히 요청했을 때만 가능했다.
대부분 친인척이나 사문의 사람을 자신의 밑으로 두기 위함이었는데, 열 명 안팎이 한계였다.
“따라오쇼.”
천경전 무사는 율검령을 확인한 후 장천운과 단승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그가 데려간 곳은 길이가 이십 장이나 되는 길쭉한 건물이었다.
심사를 통과한 자들이 교육을 받으며 기거하는 곳이었다.
교육기간은 본래 보름이었다.
그런데 무림맹과 장강팔련, 검왕문 등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닷새 동안의 기초적인 교육만 실시한 후 각 단체에 배치했다.
장천운이 갔을 때, 닷새간의 기초교육을 마치고 배치를 기다리던 사람은 모두 마흔두 명이었다.
그들 외에도 교육을 받는 자가 백 명 정도 더 있었다.
천경전 무사는 신입무사를 관리하는 자에게 장천운을 넘기고 돌아갔다.
신입무사를 관리하는 자는 천경전의 사대 대주인 왕소경이란 자였다.
그는 배치하기도 전에 사람을 빼내는 것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구천률을 집행하는 율검당이어서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다.
“누굴 데려가려고?”
“먼저 명부를 좀 봤으면 합니다.”
왕소경은 한쪽에 쌓인 책 중 맨 위에 있는 책을 집어서 펼쳤다.
“여기 있네. 여기서부터 적힌 이름이 기초교육을 마지고 배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네.”
장천운은 명부를 살펴보았다.
명부에는 이름과 사문, 특징, 무공, 실력 등급 등 무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대략적으로 훑어 내려가던 장천운이 한곳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별호: 양가쌍호(楊家雙虎).
성명: 양산, 양무.
나이: 서른다섯, 서른 둘.
거주지: 황보산 수월곡
사문: 가문인 양가의 창법을 익혔음.
추소철 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양씨 형제의 도움을 받고 황보산에서 지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그 사람들 같은데?’
고개를 든 장천운이 말했다.
“양가쌍호가 아직도 여기에 있습니까?”
“있네. 무공이 일류 수준이어서 중간 간부로 배정할 예정이지.”
“일단 만나봅시다.”
“설마 그들을 조원으로 뽑을 생각은 아니겠지?”
비웃음 가득한 표정.
장천운은 모른 척하고 물었다.
“그들이 하겠다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만나보고 나서 결정하겠습니다.”
양씨 형제는 율검당의 일개 조장이 자신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하자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리 구천성이라 해도 그렇지, 자신들을 평무사로 대우하려 하다니.
그런데 조장이란 자가 말했다.
“우리 조원을 이기면 내 자리를 내주겠어.”
솔직히 조장 자리는 욕심나지 않았다. 대주 자리라면 또 몰라도.
그럼에도 조건을 받아들였다. 건방진 놈을 혼내주기 위해서.
“좋아, 그럼 우리가 저 친구를 이기면 자네도 우리의 비무요청을 받아줘야 하네.”
“그러지. 어이, 단형.”
양씨 형제가 자신들의 판단 잘못을 깨닫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양호는 창을 들고 단승과 마주서자마자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내민 창끝이 파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절정경지에 오른 고수가 일개 조원이란 말인가!’
잔뜩 짜증이 나 있던 단승의 몸에서 살기까지 피어난 터였다.
‘이 짓을 시키는 것도 못마땅한데, 나를 이기면 뭐 어째?’
단승은 비무가 벌어지면 단숨에 목을 쳐버릴 작정이었다.
장천운에게 막을 시간도 주지 않고.
검을 잡아가는 그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장천운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검을 뽑아보지도 못했다.
“물러서라, 아우.”
양산이 굳은 표정으로 비무를 중단시켰다.
양무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의 기운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긴장하고 있던 양산은 양무가 물러서자 내심 안도하며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정말 귀하의 조원인가?”
“물론이지.”
“으음, 좋아. 사실이라면 자네 말대로 율검당에 들어가지.”
단승은 갑자기 비무가 중단되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그만 둬?”
장천운은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앞으로 동고동락할 사인데, 피를 볼 것까진 없잖아? 자, 몇 사람 더 뽑아야 하니 서두르자고.”
* * *
장천운이 천경전에 있던 그 시각.
구천성의 물품을 총괄하는 화금당 내전 깊숙한 곳에서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백의를 입은 자는 잘생긴 얼굴에 이마가 번들거리는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이었고,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은 사십대 중후반의 나이로 보였다.
“아우가 뭐라고 해도 그 일만큼은 할 수가 없네.”
백의중년인이 난색을 표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십대 중년인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백의중년인을 설득했다.
“형님,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모든 게 끝납니다.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단 말입니다.”
“난 지금 생활만으로도 만족하고 있네.”
“형님도 참 순진하십니다. 안 한다고 하면 저들이 가만 둘 것 같습니까?”
“지금 날 협박하겠다는 건가?”
“협박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아우가 뭐라 해도 내 어찌 그 일을 한단 말인가?”
“어차피 형님이 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일의 방식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들이 형님을 택한 것은 조금 더 수월하게 그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 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럼 다른 사람을 시키라고 하게.”
“형님.”
“사실 지금까지 아우 부탁을 들어준 것도 후회스럽네. 내가 어쩌다…… 이 류징이 어쩌다가…… 후우, 좌우간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는 무덤에 들어가서도 입을 다물고 있을 거네. 그렇게 알고 그만 가보게.”
백의중년인이 참담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입을 꾹 다문 그의 눈초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결연한 표정.
사십대 중년인은 그 모습을 보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백의중년인에게 다가갔다.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 말 한마디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원래 이 말은 안해야 하는데, 형님이 못하시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군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해보게.”
“귀를 가까이…….”
사십대 중년인이 속삭이듯 백의중년인 곁에 바짝 붙어 섰다.
백의중년인은 무의식중에 귀를 사십대 중년인 쪽으로 기울였다.
사십대 중년인이 자연스럽게 백의중년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나직이 말했다.
“형님의 뜻을 존중해서 그 부탁은 철회하겠습니다.”
“고맙네.”
“대신…… 영원히 입을 다물어주셔야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백의중년인이 움찔했다. 그 직후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며 파르르 떨렸다.
“너…….”
“형님이 택하신 길입니다. 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 * *
장천운은 네 사람을 더 뽑았다.
나이는 이십대부터 삼십 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개중에는 양가쌍호처럼 중간간부가 되기 위해서 기다리던 자들도 둘이나 되었다.
장천운은 흡족한 마음으로 천경전을 나섰다.
천경전에 온 지 한 시진 만이었다.
그런데 율검당에 도착하자 뜻밖의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무궁이 첩보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전무궁은 들어온 사람이 삼대주 백남평인 걸 알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신중한 사람으로 어지간해선 다급히 서두르는 일이 없었다.
“무슨 일인가?”
“당주, 화금당주 류징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뭐야? 류징이 죽어?”
전무궁은 눈을 치켜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외부도 아닌 내부에서 고위간부가 죽었다면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대상이 구천성의 물류를 총괄하는 화금당주라면 문제가 더 컸다.
“시비가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들어가 보니 피가 흥건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즉시 사대와 함께 달려가서 화금당 일대를 통제해!”
“예, 당주!”
백남평을 내보낸 전무궁은 잠시 생각하더니 호위무사에게 명을 내렸다.
“가서 오대주 유진생과 조장인 비공을 데려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