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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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3화
츠츠츠츠츠.
대기가 진저리를 치며 비명을 질러댔다.
어둠 속에 숨어서 공격하던 임청백은 압박해오는 가공할 경력을 대하고 눈을 홉떴다.
퇴로가 막혔다는 걸 안 그는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방어에 치중했다.
뇌정무극수가 그의 방어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크읍!”
임청백이 짧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장천운은 물러서는 임청백을 따라가며 재차 손을 흔들어댔다.
쩌러러러렁.
그의 양손에서 벼락이 줄줄이 쏟아졌다.
결국 버티지 못한 임청백이 이 장을 날아가서 떨어진 후 떼굴떼굴 굴렀다.
대여섯 바퀴나 구른 임청백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혈도가 막혔는지 걸음을 옮기는 일조차 힘들었다.
장천운은 공격을 멈추고, 별빛처럼 차갑게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거기 누구요?”
칠팔 장 떨어진 건물 쪽에서 순찰을 돌던 무사가 소리 질러 물었다.
“별 일 아니니, 순찰이나 마저 하시오.”
“누군지 신분부터 밝히시오.”
“흑월대의 장천운이오.”
“……!”
순찰무사는 그 이름만 듣고도 질린 듯 말투가 달라졌다.
“아, 알았습니다. 그럼 순찰을 돌겠습니다, 대주.”
구천성에서 장천운은 최고의 요주의 인물이었다.
또한 절대로 가까이 가선 안 될 인물이었다. 엉뚱한 벼락에 맞아죽고 싶지 않으면.
순찰무사들이 후다닥 떠나가자, 장천운은 임청백을 향해 다가갔다.
“나와 소성주를 죽이기 위해 사람을 보낼 곳은 정해져 있지요. 그 중 내가 아는 한 곳은 절대 귀하 같은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 거요. 그렇다면 하나 남았는데…….”
“왜 나 같은 사람을 보내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짓는 거냐?”
“귀하의 실력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임청백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빌어먹을! 강호의 친구들이 들으면 배꼽을 잡겠군.”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젊은 놈이 정말 광오하구나.”
“그거야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이제 나머지 이야기를 마저 끝내지요.”
“나는 할 이야기 없다. 죽이려면 죽여라.”
“파천회에서 오셨습니까?”
“…….”
임청백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늘에 찔린 듯 눈매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전할 말이 있는데 잘 됐군요. 덕분에 시간을 단축하게 됐습니다.”
“무슨 말인지…… 나는 파천회 사람이 아니…….”
“가서 모용문태 대협에게 제 말을 전해주십시오.”
“글쎄, 나는 파천회 사람이 아니…….”
임청백이 계속 부인했지만 장천운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눈에서 거짓말이라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손녀인 모용예를 살리고 싶으면 만날 날짜를 잡아서 최대한 빨리 연락하라고 하십시오.”
결국 그 말에 임청백도 더 이상 부정하지 못하고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모용예라고?”
“시간을 사흘 주겠습니다. 연락이 없으면 고문을 시작할 거요.”
말을 마친 장천운이 손가락을 튕겼다.
뇌정무극지가 임청백의 마혈을 두들겼다.
임청백은 그제야 혈도가 풀려서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고문을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니, 늦게 연락한 후에 후회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만 가보시죠.”
임청백은 장천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말 모용예가 네 손에 있느냐?”
“그렇습니다. 아직은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저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시죠.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순순히 내주지 않을 겁니다.”
“알았다. 최대한 빨리 전할 테니 손대지 말고 기다려라. 아니, 그때까지 네가 보호해줘라.”
“내가 왜 그녀를 보호한단 말입니까?”
“고 형이 그러더군. 그렇게 말렸는데도 장천운이란 놈이 걱정되어서 구천성에 들어갔다고. 물론 독을 강제로 복용시켰으니 그 아이도 잘한 건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는 욕보이지 않도록 보호해줘라.”
임청백은 씹어뱉듯이 다그치고 몸을 날려서 그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은 장천운은 인상을 쓰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해독제를 주려고 들어왔다는 게 사실이었나?’
위험을 무릅쓰고?
사실이라면 너무한 면도 없지 않았다.
겁을 팍팍 줬지 않은가. 망치까지 들고.
아마 대답을 안했으면 정말로 손가락 한두 개는 부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누가 비웃으면서 독을 먹이래?’
비록 자신에게 독을 먹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자신도 적을 상대할 때 흔히 하는 일이다.
어쩌면 독보다도 비아냥거리던 그 표정에 더 기분이 상했었다고 봐야 했다.
‘에이, 모르겠다. 잘못은 지가 했지, 내가 했나?’
장천운은 고개를 흔들고 구천무원으로 갔다.
* * *
그날 밤은 유난히도 세찬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처마 끝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창문 밖에서 귀곡성이 울렸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바람은 방 안으로 쳐들어오기 위해서 창문을 흔들어댔다.
“천운, 나한테 숨기는 거 있지?”
바람이 잠시 조용해졌을 때 사마경이 물었다.
장천운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없습니다.”
“천운은 거짓말할 때 표가 나.”
무슨 표가 나지?
장천운은 뜨끔한 마음에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슬쩍 눈길을 돌려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윽, 속았군.’
“봐, 표가 나잖아.”
‘제길. 하여간 여우가 따로 없다니까.’
“무슨 일이야?”
“별 일 아닙니다.”
“별 일 같은데?”
“정말로 별 일 아닙니다.”
“그럼 어제 하려던 거, 오늘 할까?”
‘윽, 요즘은 여자가 더하다니까.’
장천운은 할 수 없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에 저와 악연으로 엮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자야?”
눈치도 이제는 신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예, 소성주.”
“예뻐?”
지금 그게 중요하나?
“그저 그렇습니다.”
“예쁜가 보네.”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고, 그 여자가 저에게 강제로 독을 먹였습니다.”
그 말에 사마경의 눈이 환하게 커졌다.
“정말? 누군지 보고 싶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운에게 강제로 독을 먹이다니.”
걱정은커녕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조금은 야속했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게 여길 만했다.
사마경은 자신이 독왕의 실험체가 되었을 때 옆에서 빤히 지켜본 사람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제가 알아서 해독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독왕의 해독단까지 있는데 뭐. 내 말은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거야. 오늘 만났어?”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여자다, 소성주는.
독 먹은 이야기 하면서 저렇게 환하게 웃다니.
걱정도 안 되나?
장천운은 기분 그대로 퉁명하게 대답했다.
“만났습니다. 잡아왔죠.”
“목소리가 왜 그래? 내가 뭐 기분 나쁜 말 했어?”
“아뇨.”
“좋아, 이번 한번은 봐줄게. 그래서 어떻게 했어? 잡아 왔다며? 이름은 알아냈어? 누구야? 나이가 어떻게 돼? 젊은 여자지? 맞아, 예쁘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디 있어? 설마 천운의 방에 있는 건 아니지?”
질문이 줄줄이 쏟아졌다.
장천운은 그런 사마경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저 질문이 무공초식이라면 자신이 당해낼 수 없을 듯했다.
“일단 뇌옥에 가두어놓았습니다. 이름은 모용예. 알고 보니 북천도왕 모용문태의 손녀였습니다.”
뇌옥에 가두어놓았다는 말에 사마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 신분을 듣고 입술이 벌어졌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입술은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북천도왕의 손녀? 그런 여자가 왜 천운에게 독을 먹여?”
“저를 이용하려고 한 거죠.”
“멍청하긴. 고를 사람을 골라야지.”
“좌우간 중요한 것은 그가 도왕의 손녀라는 것, 그리고 도왕이 파천회의 중요 인물이라는 거죠.”
그제야 사마경의 표정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도왕이 파천회의 사람이란 말이지?”
“예, 소성주. 그래서 도왕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손녀를 무사히 찾고 싶으면 만나자고.”
사마경에게 사실을 털어놓은 이유는 바로 그 내용 때문이었다.
사마경도 그제야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도도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가 파천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을 거라고 봐?”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지위에 있을 겁니다.”
“하긴 북천도왕 모용문태라면 그 정도 위치는 되어야겠지.”
오왕 중 검왕과 도왕은 나머지 삼왕과 달랐다.
교왕과 독왕, 패왕이 각자 지닌 특성에 의해서 오왕의 이름을 얻었다면, 검왕과 도왕은 순전히 무공의 강함으로 인해서 오왕으로 불렸다.
무공의 강함만 따지자면 한수 이상의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라면 본 성과 내통한 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겁니다.”
“당연히 알겠지. 그런데…… 그가 아버님의 시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직접적인 사실은 알지 못해도 뭔가 단서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야겠군.”
“예, 소성주.”
“만약 미적거리면, 모용예의 팔 하나를 잘라서 보내.”
너무도 차가운 사마경의 말에 장천운은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 안이 북풍한설에 서리가 내린 듯 얼어붙었다.
“그는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할 거야. 이 사마경이 얼마나 독해질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지 않으면.”
* * *
구천성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작은 마을.
동이 트려면 한참 멀었는데 건물 두어 채로 된 작은 장원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용 소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고완은 미간을 좁히고 다그치듯 물었다.
“사라지다니? 구천성 안에 없단 말이냐?”
“누군가를 만난 후 거처에서 나갔다는데, 한 시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시진.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마 구천성이 아니었다면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장소는 구천성이고, 그녀의 움직임은 일각마다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젠장! 내가 더 강하게 말렸어야 하는데…….”
“어르신께 일단 보고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깐 기다려 봐라.”
고완은 손을 저어서 수하의 말을 막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나가서 한 시진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해. 일단 내가 직접 들어가서 알아봐야겠다. 보고는 그 후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중하고 할 일에만 열중하라고 해라. 자칫하면 엉뚱한 일에 휘말려서, 겨우 다져놓은 조직이 깨질 수 있어.”
“예, 대협.”
그때 밖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고 대협, 임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청백이?”
왠지 모를 불길함이 엄습했다.
임청백은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서 구천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밤에 자신을 직접 찾아왔단 말인가.
“안으로 모셔라.”
곧 문이 열리고 임청백이 들어왔다.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로 왔는가? 구천성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예아가 잡혔소, 고형.”
* * *
바람은 아침까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졌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었는데, 시커먼 구름이 제멋대로 출렁거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폭풍이 몰려오려는 듯했다.
마치 심란한 구천성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듯했다.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장천운은 반쯤 열린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밤새 운기요상만 했다.
사마경도 지하수련실에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
끓어오른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수련을 하겠다며 들어간 지 벌써 네 시진 째였다.
어쨌든 그 덕분에 장천운의 공력은 팔성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공손백과 모진태가 함께 달려들어도 해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찜찜했다.
지하수련실에 들어간 사마경 때문이었다.
‘설마 별 일은 없겠지?’
“평상시보다 오래 안 나오시네?”
아침 일찍 차를 들고 온 소연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 매일 수련을 하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세 시진을 넘긴 적이 없었다.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소연추와 함께 들어온 류화가 넌지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흉터가 하나 더 늘어나 있었다.
대운사에 다녀올 때 싸우면서 생긴 흉터였다.
구산이 그걸 보고 ‘흉터가 하나일 때보다 짝이 생기니까 더 예뻐졌네.’라고 했다가 류화의 주먹에 코피가 터졌다.
“제가 알아보죠.”
결국 장천운이 나섰다.
아무래도 찜찜한 느낌의 주인이 사마경인 듯했다.
“그래, 장 대주가 한번 알아봐.”
“예, 선자.”
장천운은 소연추와 류화를 남겨놓고 내실로 들어갔다.
지하수련실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사마경과 그뿐이었다.
소연추조차도 비밀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런데 비밀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가던 그의 눈매가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으으음.”
아래쪽에서 옅은 신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