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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0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2화

소리 없이 뻗어나간 무형의 지풍이 모용예의 마혈과 아혈을 동시에 제압했다.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혈도가 제압된 모용예는 경악과 당황한 표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채 비틀거렸다.

절정 경지를 눈앞에 둔 그녀는 자신이 이리도 쉽게 제압당할 줄은 상상도 못한 터였다.

‘풀어줘. 할 말이 있어!’

장천운이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런 날이 있을 줄은 몰랐겠지?”

‘미안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말은 장천운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어디 너도 나처럼 당해봐. 그럼 내 마음을 알 거야.”

‘어서 풀어줘!’

씩, 냉소를 지은 장천운은 모용예를 불끈 어깨에 메고 그 자리를 떠났다.

손가락 하나 꼼짝 못하고 잡힌 모용예는 마음이 다급했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장천운은 모용예를 율검당으로 데려갔다.

율검당의 지하뇌옥이라면 그녀와 단 둘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했다.

유진생은 밤에 찾아온 장천운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어서 와라.”

그러다 장천운이 어깨에 메고 있는 여인을 보고 눈을 껌벅였다.

“저 여자냐?”

“예, 대주. 심문을 해서 알아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하뇌옥을 쓰고 싶습니다만.”

“그래? 얼마든지 써.”

유진생은 지하뇌옥을 지상으로 끌어 올리라고 해도 승낙할 판이었다.

 

지하뇌옥은 조용했다.

이미 상두한 장로와 나승관, 문인동은 모처로 옮겨진 상태였다.

죄수가 대여섯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사를 걱정하느라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털썩.

지하뇌옥의 구석진 방으로 들어간 장천운은 모용예를 의자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쇠탁자 위에 손을 묶은 후에야 아혈을 풀어주었다.

“시끄럽게 굴면 다시 혈도를 찍을 거다. 도움을 청해봐야 밖에서는 들리지도 않으니 헛생각하지 마.”

“미안해, 장천운. 내가 독을 먹인 것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질문은 내가 한다. 넌 대답만 잘 하면 돼.”

“장천운…….”

“독부터 먹이고 시작할까?”

“내 말 좀 들어보고 나서 죽이든 살리든 해.”

장천운은 손을 뻗어서 모용예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자신의 눈앞으로 바짝 당겼다.

모용예는 숨이 턱 막혔다.

세 치의 거리. 코앞에 그가 있다.

비수처럼 차가운 눈빛이 자신의 눈동자에 꽂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심장박동은 터질듯이 빠르게 뛰었다.

장천운은 그녀를 바로 앞까지 당겨서 노려보며 냉랭히 말했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구천성과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

“손가락을 부수고, 눈알을 빼는 일 정도는 기본적인 수법일 뿐이야.”

모용예는 몸이 떨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 난…….”

“지금부터 몇 가지 물어볼 거야. 두 번 말하지 않을 거니까 잘 새겨들어. 만약 대답을 제때 하지 않으면 손가락부터 부순다.”

휙.

모용예를 던지듯 밀친 장천운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천외 중 어느 곳에 속해 있지? 청산궁인가?”

모용예는 바로 대답을 못했다.

떨리기도 했지만, 자신을 몰아붙이는 장천운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심하게 대했던 걸 모르진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여자를 이렇게 대하다니.

장천운은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한쪽 쇠탁자 위에 놓은 망치를 집어 들었다.

“기회는 한 번 뿐이야. 다시 묻지. 너는 청산궁 사람인가?”

모용예는 겨우 겨우 대답했다.

“그래.”

“그런데 왜 영산자란 늙은 도인과 따로 따로 움직이는 거지?”

“그건…….”

쾅!

장천운이 망치로 쇠탁자를 내리쳤다.

뇌옥을 무너뜨릴 것 같은 굉음이 뇌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그나마도 조용히 있어서 봐주는 거야.”

모용예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자위가 찡하니 울렸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맺혔다.

“운다고 봐줄 줄 아나? 나에게 독을 먹일 때는 무슨 마음이었지?”

냉랭히 말한 장천운은 망치를 머리 위로 들고 질문을 던졌다.

“왜 따로 따로 움직이는 거지?”

모용예는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건…… 영산진인은 내가 구천성에 들어온 걸 몰라.”

“그래? 좋아. 그럼 두 번째 질문. 왜 청산궁에 알리지 않은 거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확인? 내가 진짜로 뒈졌는지 확인?”

“그게 아니라…….”

탕, 탕!

망치로 쇠탁자를 내리친 장천운은 냉소를 지었다.

“살아 있으니까 당황스럽지? 그런데 용기가 가상하군. 오늘 아침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도 구천성에 있다니.”

“해독단을 주려고…….”

“웃기는군. 해독단으로 나를 꼭두각시처럼 부릴 생각이었나?”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차갑게 소리친 장천운은 망치를 들었다.

다급해진 모용예가 악을 쓰듯 말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그냥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어서 너에게 독을 복용시켰던 것뿐이야!”

“그래? 좋아. 그럼 다시 묻지. 너는 청산자를 배신할 생각이었나?”

“배신이라기보다, 강호는 강호에 의해서 돌아가길 바랐을 뿐이야.”

“고완도 그래서 나섰고?”

“맞아! 그분도 그래서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야! 정말 그 뿐이야!”

모용예가 악을 쓰듯 말했다.

눈물이 흘러 파들거리는 뺨을 적셨다.

“할아버지?”

장천운은 이마를 찌푸리고 모용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모용예는 자신이 순간적인 감정의 표출로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입을 꽉 다물었다.

“…….”

“고완 같은 고수를 움직일 정도라면 보통 양반은 아닐 것 같은데. 누구지?”

“…….”

“다물어도 소용없어. 결국은 입을 열 테니까. 이곳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단 한 올의 감정도 없는 목소리로 냉랭히 말한 장천운은 망치를 들었다.

“셋을 셀 때까지 기회를 주지.”

모용예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꽉 다문 입술은 터졌는지 하얀 이를 붉게 물들이며 피가 흘러내렸다.

장천운은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셋이라는 말이 나온 직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망치를 내려쳤다.

거의 동시에 질끈 눈을 감은 모용예가 악을 썼다.

“내 할아버지는!”

쾅!

망치가 쇠탁자를 내리쳤다.

모용예는 심장이 멈춰버린 듯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자 손가락 옆에 떨어진 망치가 보였다.

기껏해야 한 치 거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용 성에…… 문자, 태자를 쓰시는 분이야.”

모용예의 목구멍에서 먹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용문태? 북천도왕 모용문태?”

장천운이 뇌까리듯 물었다.

“맞아. 그분이 내 할아버지야.”

“그도 천외와 연관되어 있나?”

“그래, 단지…… 철천지원수지간이어서 그렇지.”

“원수지간?”

“그들이 우리 모용가의 식솔들 수백 명을 처참하게 죽였거든. 아버지도, 어머니도, 오빠도…….”

“안 됐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독을 먹인 일이 용서되는 건 아냐. 구천성을 농락하려한 것도.”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어떻게 하면 그를 만날 수 있지? 네 할아버지, 북천도왕.”

“그건…….”

“구천성에 스며든 너희 쪽 무사만 백 명이 넘어. 밖에는 더 많다고 봐야겠지. 고완 같은 고수도 있고. 그 정도 무사를 굴릴 정도면 상당한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고 봐야겠지. 안 그래?”

모용예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한두 가지 단서로 추론을 해내는 장천운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강호에 그 정도 세력은 흔치 않아. 힘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세력은 더더욱 적고.”

무심하게 말을 해나가던 장천운의 입술 새로 하얀 이가 드러나며 차가운 냉소가 피어났다.

“천외삼세를 제외하고, 내가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세력은 하나뿐이야. 파ㆍ천ㆍ회.”

모용예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장천운은 허리를 숙여서 그녀의 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댔다.

가느다란 떨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잘 들어둬, 모용예. 구천성을 농락하려던 일, 그가 관여되어 있다면 그 역시 책임을 져야 할 거다. 어떤 게 이익인지 영리한 너라면 모르지 않을 거야. 깊이 생각해 보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지.”

텅.

망치를 쇠탁자에 던져 놓은 장천운은 거침없이 몸을 돌렸다.

북천도왕 모용문태.

그는 서문주경과 함께 파천회를 이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두 사람의 강호에서의 위치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한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 있으면 싸움이 나는 법.

지금까지 조용하게, 철저히 조심하며 움직이는 걸 보면 누군가가 그들의 위에 있다는 뜻이다.

‘소성주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자. 어쩌면 그 자일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곧 이마를 찌푸렸다.

‘아냐,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서신이 이상해. 처음에는 파천회처럼 말했는데, 나중에는 파천회가 아니라고 했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해명하듯이 말했어.’

이마를 찌푸리고 있던 그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섬광이 번뜩였다.

‘혹시…… 그들 내부에 문제가 생겼나?’

막 뇌옥을 나서던 장천운은 고개를 돌려서 모용예를 바라보았다.

“하나만 더 묻지. 혹시 파천회에 문제가 생겼나?”

입술을 깨물고 있던 모용예는 갑작스런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야? 문제라니?”

“가령 주인이 바뀌었다던가, 하는 일 말이지.”

“그럴 리가 없어. 파천회는 오직 구천성과 천외를 타파하기 위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모였으니까.”

모용예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장천운은 더 묻지 않았다.

모용예의 눈에서 거짓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일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있다 해도 모용예는 모를 가능성이 컸다.

“순수, 좋지. 정말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깨끗하지 않아. 욕망과 모순 덩어리지. 무슨 말인지 밤새 생각해 봐.”

냉랭히 말한 그는 몸을 돌려서 뇌옥을 나갔다.

 

* * *

 

구천무원으로 돌아가던 장천운은 아무도 없는 공터에 멈춰 섰다.

경비무사조차 지나가서 오가는 이도, 보는 이도 없었다.

“나에게 할 말 있소?”

뜬금없는 그의 말에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대단해. 내 흔적을 눈치 채다니.”

“그렇게 대놓고 다가오는 것도 눈치 못 챘으면 진즉 죽었을 거요.”

“듣자하니 네 무공이 오왕, 칠절, 십마에 버금간다고 하더군.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보자.”

“나를 시험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요.”

“싸우다 죽는 거야 무사의 숙명인데, 망설일 것이 뭐 있나.”

장천운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씩, 웃었다.

“마음에 드는 분이군. 내 손은 독하니 조심하셔야 할 거요.”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임청백은 장천운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걸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그도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였다.

무의식중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공격을 시작했다.

“내 검도 독하다네.”

“보면 알겠지요.”

장천운의 신형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마치 얼음판 위에 서있는 그를 누가 잡아당긴 듯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특이한 점은 소리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대기가 웅웅거리는 소리와 종잇장 갈라지는 스산한 소리가 전부였다.

“이제 보니 전에 예고 없이 방문했던 분이군요.”

장천운은 두어 수의 공방을 벌이는 사이 상대의 정체를 눈치 챘다.

상대는 사마경을 암살하려던 자와 같은 신법을 사용하고 있다.

무공 수준을 봐도 당사자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손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다.

공력을 더 끌어올린 그는 뇌정무극수를 떨치며 상대의 퇴로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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