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0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1화
우문각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도대체가 이놈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내심이라는 것도 소용이 없다.
“흥! 나는 청산궁과 함께 움직이지 않을 거다. 됐냐?”
“그러지 말고 함께 움직이십쇼.”
생각지 못한 말에 우문각이 멈칫했다.
“뭐?”
“함께 움직여야 그쪽의 속을 정확히 알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공손백과 부딪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고요.”
“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양쪽이 대판 붙어서 함께 몰살되면 금상첨환데 말이죠.”
무서운 놈!
자신도 뭐가 옳은 방법인지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거침없이 쏟아낼 수 없을 뿐.
저놈은 간덩이가 얼마나 커서 저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까? 간이 큰 게 아니라 겁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그게 어렵다면 한쪽이라도 약화시키는 게 좋겠죠.”
아무래도 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간이 큰 것 같다.
“방법은?”
“계책이야 총사께서 세우셔야죠. 그런 일 하라고 총사직 맡긴 거 아닙니까?”
장천운은 별 말 다한다는 듯 툴툴거리며 말했다.
우문강은 다시 분노가 위장에서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 이상 말상대 하지 않았다.
“잘하면 한방에 끝낼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어느 한쪽은 약화될 거고요.”
옳은 말이었다.
“금룡장은 어떻게 할 거냐? 성 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 같던데.”
“그 노인네는 제가 맡겠습니다.”
“가능하겠냐?”
“불안하면 총사님이 맡으시던가.”
“아니, 네가 맡아라. 아무래도 나보다 젊은 네가 더 낫겠지.”
“그래서 말인데, 그 미인도인가 뭔가, 저 주면 안 됩니까?”
“뭐? 안 돼!”
“그거면 우 노선배를 완전히 꼬실 수 있는데. 그럼 패왕과 복우쌍노 두 노선배도 따라올 거고요.”
“…….”
“싫다면 어쩔 수 없죠. 후우, 그림 한 장 때문에 승패를 좌우할지 모르는 막강한 힘을 외면해야 하다니. 많이 아쉽군요.”
우문각은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림 하나로 그들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이익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어렵게 구한 그림인데…….
“그만 가보겠습니다. 미인도는 깊숙한 곳에 잘 보관하시고, 심심할 때 꺼내보십쇼. 보아하니 혼인도 그 그림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못하신 거 같은데…….”
“주면 되잖아, 이놈아!”
“정말입니까?”
“그래, 준다, 줘!”
벌떡 일어난 우문각은 한쪽으로 가더니 서가 밑 구석에서 길쭉한 나무상자를 꺼냈다.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연 그는 이를 으드득 갈면서 두루마리를 하나 꺼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돌아서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내가 왜 이 그림을 아끼는 줄 아느냐?”
괜히 장난쳤나?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여인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랬나?
“그런데 아무래도 이제는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구나.”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렸다.
아쉬움과 착잡함, 그리움이 범벅된 목소리였다.
장천운은 장난처럼 말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중요한 그림이면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우곡에게 자신을 구해준 대가로 선물을 주고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이제는 거부하기도 애매했다.
“받아라.”
“정말 괜찮겠습니까?”
“내 나이 오십이 코앞이다.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어. 어서 받으라니까?”
장천운은 두 손을 내밀어서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우문각은 그림을 넘기고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림을 장천운에게 준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마 우곡이 달라고 했다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장천운은 그 여인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점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눈매도 닮았군.’
분위기는 친구를 닮고, 눈매는 그녀를 닮고. 정말 묘한 놈이었다.
그때 두루마리를 받아든 장천운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적인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면, 혹시 청산자 때문에 혼인을 못한 거 아닙니까? 거 왜 나중에 도사가 되기 위해서…….”
우문각의 머리 중앙이 말갈기처럼 위로 솟구쳤다.
“너 이……!”
장천운은 우문각이 폭발하기 전에 재빨리 방을 나섰다.
구석구석 비령위가 은신해 있는 곳에서 들썩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노로 인한 소음이라기보다 웃음을 참는 소리 같았다.
‘도사가 될 것도 아니면 왜 혼인을 안 한 거야?’
장천운은 도무지 우문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선물입니다.”
우곡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이게 뭐요?”
옆에 있던 진교청과 복우쌍노도 고개를 삐죽 내밀며 두루마리를 쳐다보았다.
“명월나녀도인가 뭔가 하는 건데…….”
거기까지 말이 나왔을 뿐인데도 우곡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유령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심하던 그의 눈가에 붉은 기가 돌았다.
“설마…… 화문억의 명월나녀도란 말이오?”
“아! 맞습니다. 화문억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그림이라더군요.”
대충 두루마리를 쥐었던 우곡의 손이 계란을 쥐듯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두루마리를 묶은 끈을 풀고 그림을 펼치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두루마리는 길이가 다섯 자 다섯 치였다.
두루마리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밝은 달빛 아래에서 매미날개처럼 얇은 나삼을 입고 고혹적인 자세로 서 있었다.
옆에서 바라보던 진교청과 복우쌍노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나녀도를 바라보았다.
저러다 침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집중된 시선이었다.
그림을 세세히 살편 우곡은 행여나 닳을세라,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다시 말았다.
“험, 이런 걸 어디서 구하셨소?”
살짝 떨리는 목소리.
장천운도 기분이 좋아졌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총사께 얻었습니다. 우 노선배님이 미녀도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선뜻 내주시더군요.”
“허허허, 보기보다 손이 큰 자군요. 이 귀한 것을 내주다니.”
“그 그림이 비싼가요?”
“진품이라면 아마 은자 만 냥은 줘야 할 거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세상으로 나오지 않으면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장천운은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만 냥!
명화가 비싸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 정도로 비쌀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우곡의 마음을 얻었으니 만 냥의 값어치는 충분히 한 셈이었다.
“그럼 편히 쉬고 계십시오. 저는 또 일이 있어서…….”
“청산궁이란 곳에서 사람이 왔다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였소?”
“손우곤이란 자를 아실 겁니다.”
“으음…….”
우곡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보다 반 수 높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곡의 눈초리가 가늘게 떨렸다.
손우곤만 해도 자신보다 강한 듯했다.
그보다 강하다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하지만 금룡신군의 일격을 대해본 그는 바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세상에는 정말 하늘 밖에 하늘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어린 사조도 그러한 하늘 중에 하나가 될 사람일지 몰랐다.
“소사조, 부탁하나 해도 되겠소?”
“말씀하십시오.”
“나중에, 정말 나중에 내가 제자를 들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면 괜찮은 사람 하나 찾아서 환신문을 잇게 해주시오.”
“원 노선배님도. 아직 오십 년은 더 사실 텐데, 왜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세상일이란 아무도 모른다오. 부탁을 들어주시겠소?”
장천운은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려울 것도 없는 부탁이었다.
게다가 마침 적당한 사람이 하나 떠올랐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고맙소.”
우곡이 장천운을 향해 포권을 취하고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책자였다.
“우리 환신문의 공부가 적혀 있소. 아마 소사조라면 이 늙은이보다 더 잘 전해주실 수 있을 거요.”
장천운은 마다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어주기로 한 것. 시원하게 들어주는 게 나았다.
“알겠습니다. 마침 적당한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에게 가르쳐주죠.”
“아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소?”
장천운은 광산의 남궁창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주 영리하고 끈기도 있는 데다 몸도 날래서 상승의 신법을 익히기에 그만인 아입니다.”
“흠, 광산 일향루의 남궁창이라…….”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116장 잘못은 지가 했지, 내가 했나?
반달이 구름 사이를 흐르며 숨바꼭질을 한다.
감춰졌을 때는 세상이 어둠에 잠기고, 얼굴을 내밀면 쏟아지는 달빛에 세상이 반짝인다.
구천성 남쪽 건물 지붕 위에서도 달이 얼굴을 내밀 때마다 누군가의 두 눈이 반짝였다.
지붕 위에 숨어서 선화당을 바라보는 자. 장천운이었다.
‘소예라는 이름을 쓴단 말이지?’
그는 이미 모용예의 가명과 거처를 알아보고 온 터였다.
대놓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소문이 퍼질 것이 분명했다.
그는 구천성에서 유명인사였다.
모용예, 그 독한 여자와 이상한 소문이 나서 좋을 것 없었다.
그래서 직접 들어가는 대신 율검당 오대 이조를 움직였다.
평범한 인상의 산교를 보낸 것이다.
다행히 산교가 제 몫을 다한 듯 선화당에서 한 여인이 나오는 게 보였다.
몸매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늘씬하게 균형잡힌 몸매에 구름이 흐르듯 부드러운 걸음걸이. 모용예가 분명했다.
선화당 밖으로 나온 모용예는 좌우를 둘러본 뒤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그녀가 향한 곳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는데, 밤에는 사람이 거의 왕래하지 않는 곳이었다.
정원에 도착한 그녀는 좌우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이 정원 앞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저만치 앞에서 지나가는 경비무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용예는 선화당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몸을 돌렸다.
그때 전음이 들렸다.
<정원을 돌아가면 공터가 있다. 그곳으로 와.>
전음을 들은 그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야!’
소문을 들었다. 그 유명한 율검당의 오대 이조장이 소성주의 호위무사 장천운이라고 했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안도했던가.
기간이 지났는데도 독이 발작하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으나, 장천운 정도의 고수라면 독이 늦게 발작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일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다.
해독단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가 먼저 자신을 찾아왔다.
모용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원을 돌아갔다.
그때 어둠 속에 서 있는 자가 보였다.
장천운, 그였다.
“오랜만이군.”
“그래요, 오랜만이네요.”
모용예는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몸은 괜찮으냐고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상대의 퉁명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도 까칠하게.
“구천성에 들어와 있을 줄은 몰랐군.”
“아니까 찾아온 거 아닌가요?”
“얼마 전에야 알았지. 아주 우연히.”
“생각보다 독을 잘 견디는 체질인가 봐요?”
왜 자꾸 까칠한 말만 나오지?
모용예는 자신의 입이 원망스러웠지만, 천성을 잠깐 사이에 바꿀 수는 없었다.
“독이라면 질리도록 먹어봤지. 그래서 어지간한 독은 통하지도 않아. 너에게는 불운이겠지만.”
“그 일은 미안…….”
모용예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 장천운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