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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00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0화

모르긴? 금룡신군이 이미 다 털어놨는데.

하지만 장천운은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훼방부터 놓을 수는 없었다.

“아! 청산자 어르신만 아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저는 조용히 있겠습니다.”

그제야 우문각이 나섰다.

“험,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니 일단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세.”

영산자도 장천운과의 일은 일단 뒤로 미루어두었다.

사마경이 그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청산궁이 암천의 위협에서 저를 지켜주시겠다는 것이지요? 그에 대한 대가는 구천성도 청산궁을 인정해주는 것이고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요?”

“무량수불. 제대로 이해하셨네, 소성주.”

장천운이 오기 전에 나눈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이제 이후의 이야기를 진행해야 했다.

“인정한다는 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요?”

“일단 본 궁의 사람들이 구천성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면 되네. 그리고 멀지 않은 대별산 산자락에 본 궁이 지궁을 설치할 경우,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주면 되네.”

“그렇게 어려운 조건은 아니군요.”

“허허허,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먼.”

“한번 깊이 생각해보겠어요.”

영산자는 사마경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사마경의 표정은 담담했다. 도도함마저 느껴질 정도.

공손백과 암천에 밀려서 성주 자리를 내줄지 모를 판에, 생각해보겠다고?

“허허허허,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지금 동의를 해줘도 좋을 것 같네만.”

“저도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처리하고 나중에 후회하느니,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냉정히 생각해보는 게 낮지 않겠어요?”

잘못된 말이 아니니 반박하기도 어정쩡했다.

“무량수불, 하면 언제까지 답을 들을 수 있겠는가?”

“사흘 정도 시간을 주세요. 그때까지 제가 이 자리에 있고, 구천성에 아무 문제도 없으면 대답해드리겠어요.”

사마경은 턱을 쳐들고 별빛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도도한 표정.

영산자조차 그 말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신 우문각이 말했다.

“사흘이라면 길지 않은 시간이니 그렇게 하시지요.”

영산자는 대답하기 전에 탁자 위의 찻잔을 들어서 입술을 축였다.

그러고는 찻잔을 내려놓은 후 말했다.

“알겠네, 사흘 정도라면 기다려주지. 대신 그때쯤에는 조건이 하나 더 붙을지도 모르네, 소성주.”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어요. 당연히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들어드려야죠.”

사마경이 흔쾌히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언뜻 들으면 영산자의 뜻대로 된 듯했다. 그러나 속을 뜯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준다.

그 말인즉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은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과 같았다.

영산자는 사마경의 봉목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름다운 여시주가 말도 잘하는구먼. 그럼 그리 알고 이만 가보겠네. 무량수불.”

사마경과 우문각도 일어섰다.

그때 일어나서 몸을 돌리려던 영산자의 눈이 장천운에게로 향했다.

“사흘 동안 영빈각에 있을 생각이네. 그 전에 한번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소성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언제라도 상관없습니다.”

장천운은 공을 사마경에게 떠넘겼다.

사마경이 가볍게 받아쳤다.

“지금이라도 가고 싶으면 가봐.”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가겠습니다.”

“좋을 대로 해.”

가볍게 대답한 사마경은 영산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들으셨죠?’ 마치 그렇게 묻듯이.

영산자는 고개를 주억거린 후 방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우문각이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전음을 보냈다.

<오늘 밤에 보자.>

장천운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우문각 앞에 영산자가 있었다.

자신이 전음을 보내면 영산자가 눈치 챌 가능성이 컸다.

그의 능력이 청산자의 절반만 된다 해도.

‘자의가 아니었나?’

 

* * *

 

일 장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빛만이 존재하는 석실 안.

직경 십 장, 높이 이 장. 팔각형으로 된 석실의 석벽에는 팔괘가 새겨져 있고, 천장에는 시뻘건 주사로 지옥도가 그려져 있었다.

바로 그 천장의 중앙, 염왕이 그려진 바로 아래에 흑포를 걸친 자가 앉아 있었다.

짙은 어둠이 그를 가운데 두고 느릿하게 휘돌았는데, 마치 석실 안의 모든 어둠이 그의 몸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모진태가 죽었다고?”

중앙의 흑포인에게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을 처지게 만드는 나른한 목소리였다.

오체복지 하듯 엎드려 있던 오십대 중반의 초로인이 그의 말에 대답했다.

“예, 문주.”

“공손백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죽였단 말이지?”

“그렇다고 합니다.”

“멍청한 놈. 어린 계집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모진태만 죽게 만들다니.”

구천성의 대령주 공손백을 멍청한 놈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될까.

하지만 흑포인은 대놓고 욕을 하는 것은 물론 그의 목숨까지 결정지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하면 버리는 패로 써라. 어쩌면 그게 그놈의 한계일지도 모르겠구나.”

“복명.”

대답을 한 초로인 역시 공손백을 장기판의 졸처럼 취급했다.

“청산 늙은이와 금룡 늙은이가 움직였다면 결국 승부는 구천성에서 나겠군. 도악, 그 늙은이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마라.”

“이미 이중 삼중으로 사람을 붙여놓았습니다, 문주.”

“아니지,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아마 그 늙은이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야.”

엎드려 있던 초로인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굳이 직접 나서실 필요는…….”

“장천운이라는 아이를 한번 봐야겠다.”

도악이라 불린 초로인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청산자와 금룡신군께서도 놈을 욕심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아마 문주의 청 역시 거절할 것입니다. 차라리 제거하는 게 어떨지…….”

“쉽게 죽일 수 있는 놈이었다면 공손백이 놔두지도 않았겠지. 어쩌면 마지막 싸움이 될지도 모르니, 십이암귀를 모두 데리고 나갈 것이다. 준비해두도록.”

도악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예, 문주.”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 도악이 석실을 나가자, 흑포인이 일어섰다.

보기보다 키가 컸다. 그리고 의외로 얼굴에 주름 하나 없었다.

“재미있는 일이군. 머리꼭지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와 계집이 우리를 모두 불러내다니.”

나직이 뇌까린 흑포인의 입에서 하얀 이가 드러났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하늘을 질식시킬 것 같은 암류가 흘렀다.

암천신마.

폭염이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날, 마침내 그가 이십여 년 만에 똬리를 풀고 기지개를 켰다.

“세상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힘은 어둠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 * *

 

장천운은 술시가 막 지나갈 무렵에 우문각을 찾아갔다.

그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누구도 앞을 막지 않았다.

막기는커녕 그가 방으로 들어가자, 비령위들이 눈빛을 삼엄하게 빛내며 경계를 강화했다.

“왜 불렀습니까?”

퉁명한 장천운의 목소리에 우문각이 째려보듯 눈초리를 위로 올리며 쳐다보았다.

“불만 있냐?”

“솔직히 말해보시죠. 어제 왜 늦게 오셨습니까?”

“누가 늦게 갔단 말이냐? 사밀령을 먼저 보냈잖아?”

“설마 그들이 대령주를 막을 수 있다고 보신 건 아니겠죠?”

“그래서 내가 갔잖아. 직접.”

“조금만 일찍 오셨어도 내상이 심해지지 않았을 겁니다. 솔직히 우 노선배님 일행이 안 왔으면, 계획에 어긋나더라도 그냥 빠져나왔을 겁니다.”

“나도 일찍 가려고 노력했다. 함께 가려던 사람들이 늦게 와서 약간 지체된 것일 뿐. 좌우간 네가 내상을 입었다니 미안하구나.”

“제가 더 다치지 않아서 아쉬운 건 아니고요?”

우문각은 속이 욱하니 솟구쳤지만 겨우 참아냈다.

“내가 왜?”

“솔직히 말씀해보시죠. 제가 어려움에 처하는 걸 즐기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너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냐? 내가 왜 너 다치는 걸 바란단 말이냐? 말 같은 소리를 해!”

끝내 우문각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래봐야 장천운의 눈에는 더 수상하게 보였지만.

“그런데 왜 그 말을 하면서 눈빛이 흔들립니까?”

“내, 내가 언제?”

“이제는 목소리까지 더듬는군요.”

“너 정말……!”

“뭐 어쨌든 그건 지나간 일이니 더 따지지 않겠습니다.”

‘휴우우우우, 그 자식, 눈치는 빨라서…….’

우문각은 내심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근데 왜 소성주께 미리 말씀드렸습니까?”

“…….”

진짜 이 자식이!

우문각의 얼굴이 벌게졌다.

딸꾹.

갑자기 기가 솟구치면서 딸꾹질이 나왔다.

장천운은 그 모습을 보고 우문각의 거짓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거 보세요. 사람이 그래서 거짓말하면 안 된다니까요.”

“너 정말…….”

딸끅.

정말 총사 체면이 안 서는 날이었다.

장천운은 그쯤에서 말을 돌렸다.

“근데 왜 오라고 하셨습니까?”

“네가 알아두어야 할 일이…… 있다. 영산자는 내가 청해서…… 온 사람이…… 아니다.”

간간이 나오는 딸꾹질에 말이 어색하게 끊겼다.

그래도 내용이 전달되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장천운은 그 말의 속에 숨은 의미를 짐작하고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드디어 청산자가 직접 나서려나 보군요.”

귀신같은 놈!

우문각은 내심 감탄하면서도 겉으로는 차갑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그분이…… 직접 나설 것 같다.”

딸꾹질 때문에 분위기는 엉망이었지만.

“재미있는 일이군요. 그렇게 독야청청 살던 노인네들이 다 기어 나오다니. 이러다 암천신마까지 기어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요.”

우문각은 장천운의 태연한 말에 심장이 다 떨렸다.

천외삼성. 그들의 능력을 잘 아는 그로선, 그들을 지나가는 노인네 부르듯 하는 장천운이 미친놈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속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글쎄다. 그는 청산자나 금룡신군과 달리 직접 움직이는 자가 아니어서…….”

“사람의 일을 누가 압니까?”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려던 우문각이 입을 닫았다.

눈앞에 있는 놈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노괴들과 동류의 인간일지도…….

하지만 그도, 장천운도 알지 못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장본인, 암천신마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 때문에 딸꾹질이 멈추었다는 것이다.

“으음, 좌우간 일단은 코앞에 닥친 일부터 생각해보자.”

“성 안에 얼마나 들어와 있습니까?”

“아마 백여 명은 데리고 온 것 같다.”

“모두 고수겠군요.”

“최소한 이삼십 명은 절정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봐야할 거다.”

“제길, 절정고수가 배급 나왔나 보군요.”

“공손백이 이끄는 암천의 무리와 대등해지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겠지.”

금룡장 역시 그 이상 들어와 있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구천성이 천외 삼대세력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장천운은 그 점이 기분 나빴다.

구천성에 들어와서 주인행세라도 하겠다는 건가?

“총사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장천운은 곧장 본론으로 파고들었다. 우문각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에서 차가운 별빛이 번뜩였다.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 우문각은 다짐하듯 대답했다.

“나는 어제 말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약속이야 전에도 했을 것 아닙니까?”

“내가 언제?”

“전대 성주님께 충성의 약속을 안했습니까?”

“…….”

우문각은 그 질문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충성의 약속을 깬 셈이니까.

대신 말을 돌렸다.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어기지 마십쇼. 좋아하는 총사님을 향해서 검을 겨누고 싶지 않으니까.”

좋아한다고?

검을 겨눈다는 말에 ‘이 건방진 놈이!’하면서 화가 나야 하는데, 가슴이 이상하게 뭉클해졌다.

비록 잠시뿐이었지만.

“왜 그런 표정입니까? 제 말이 우습게 들립니까?”

누가 우습다고 했나?

“우습게 들리기는커녕 가슴이 섬뜩하다, 이놈아!”

“거…… 소리는 왜 지릅니까? 정말 이상하시네. 어떻게 하실 건지, 그거나 말씀하시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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