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9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98화
장천운은 모진태의 시신을 눈으로만 대충 살펴보았다.
어차피 세밀하게 살핀다 해도 누군가가 살해한 증거는 찾지 못한다고 봐야 했다.
모진태는 중상을 입은 상태여서 살짝만 충격을 가해도 목숨이 끊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 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당연한 일이지.”
“설마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죽은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 그들은 살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더군.”
“광천삼혼도 이종곽의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그와 함께 움직인 자들의 시신도 함께 있었지요. 그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그들을 어찌 안단 말이냐?”
“이종곽도 모르십니까?”
“나는 그 자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령주께서는 모를지라도 손님 중에서는 아는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을 불러주십시오.”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가서 그들을 데려와라.”
공손백은 냉랭한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청묵전 무사 중 하나가 말없이 예를 취하고 별채로 나갔다.
모진태의 수하 중 살아남은 자들은 자응과 삼십대 무사 셋이 전부였다.
청묵전 앞마당으로 온 그들은 바위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장천운은 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장천운은 그들에게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노리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공손백이었다.
“그럼 이제 대령주께 대답만 들으면 되겠군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이미 말했지 않느냐?”
“최소한 저자들을 불러들인 것만큼은 사실 아닙니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이종곽의 시신만으로는 모진태가 너를 죽이려고 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그쯤에서 장천운의 시선이 모진태의 시신에게로 향했다.
“어제 정문을 지켰던 위사를 만났지요. 그가 그러더군요. 이종곽이 저자, 대령주가 모진태라고 말한 자…….”
무심한 어조로 말하던 장천운이 손을 들어서 검지로 자응을 가리켰다.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 성 안으로 들어왔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종곽을 모른다?”
자응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에 대한 증인은 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최소한 세 사람이 이종곽과 저자들이 함께 들어오는 걸 봤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갈 때는 이종곽이 먼저 나가고, 저자들이 나중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장천운이 강하게 다그치자, 자응은 입술을 깨문 채 공손백의 지시만 기다렸다.
청묵전 안의 후끈하던 대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그때 장천운이 송곳을 머리꼭대기에 꽂듯이 물었다.
“암천이라는 세력에 속한 분이지요?”
자응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안색까지 파리해서 석상에 석고를 바른 듯했다.
“혹시 대령주께서도 그 암천에 속해있는 분 아닙니까?”
그 말에 공손백이 발끈해서 한마디 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쏴아아아아아.
바람 한 점 없는데도 청묵전 앞마당의 대기가 휘도는 듯했다.
살갗을 얼려버릴 듯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는 긴장감이 무더위조차 날려버렸다.
그런데도 장천운은 태연히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흠, 그 부분은 제가 너무 나아간 것 같군요. 그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묻지요. 정말 암천의 지시로 저를 죽이려 한 것 아닙니까? 아니라면 누구 지시를 받고 저를 죽이려고 한 겁니까?”
자응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목구멍에서 갈퀴로 긁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요? 끝까지 모르는 일이다?”
장천운은 시선을 공손백에게로 돌렸다.
“알았든 몰랐든, 죄를 지은 저들을 장로원으로 들인 분은 대령주입니다. 그러니 대령주께도 약간의 책임은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손백의 눈에서 노화가 일렁거렸다.
금방 죽을 것 같던 놈이 하루 만에 팔팔하게 살아나서 자신을 다그치고 있다.
참으로 속에서 불길이 치솟을 일이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일에 책임질 생각이 없다. 어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그는 장천운이 계속 몰아붙이면 끝장낼 생각마저 했다.
그런데 장천운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제가 어찌 대령주께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소성주께서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한 후 결정할 것입니다. 잘잘못은 그곳에서 가리도록 하시지요.”
공손백은 노기를 씹으며 숨을 골랐다.
구천대평의회라면 자신이 질 이유가 없다.
간부들의 육 할 이상이 자신의 사람이니까.
그래서 더 이상했다.
저놈이 왜 갑자기 구천대평의회를 들먹이는 걸까?
소성주가 패할 것이 뻔한 싸움인데.
어쨌든 대답은 해줘야 할 터.
한편으로는 구천대평의회를 여는 김에 그 자리에서 소성주를 쳐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좋다! 네가 원한다면 구천대평의회에서 잘잘못을 논하도록 하자.”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령주.”
“흥! 나야말로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고 싶구나.”
포권을 취한 장천운은 무심한 눈으로 공손백을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공손백은 순간적으로나마 가슴이 섬뜩했다.
저놈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정말로 뭔가가 있어서 자신만만하게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하려는 것 아닐까?
‘네놈이 아무리 그래봐야 사마경은 절대 나를 이길 수 없어!’
* * *
“그 죽일 놈이 장천운이었다니. 기가 찰 일이로군.”
독고광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에게 수모를 준 놈이 다른 놈도 아닌 장천운이라니.
너무나 어이가 없다보니 욕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놈을 죽이지 못하면 사마경을 차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조부님.”
“젠장. 노부의 속을 다 보였으니 이제 와서 적대시하면 그놈이 오히려 가만있지 않을 거다.”
“제가 놈을 처리하겠습니다.”
“네가? 아직은 네 실력으로 안 된다.”
“마혼령만 얻으면 수라청혼기를 극성까지 익힐 수 있습니다. 그럼 놈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습니다.”
흠칫한 독고광이 독고민을 바라보았다.
마혼령은 세상에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되는 마물이다.
더구나 암천신마조차 마혼령에 대해서는 모른다.
아무리 장천운을 죽이고 싶다 해도 쉽게 내놓을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이르니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공손백이 놈을 죽이지 못하면 그때 가서 얻어도 된다.”
독고민은 아무 말 없이 숙조부인 독고광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에서 사이한 눈빛이 흘렀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놈을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걱정마라, 공손백과 내가 함께 손을 쓰면 놈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야.”
독고광은 그 말이 얼마나 엄청난 말인지 생각을 못했다.
공손백과 그가 함께 손을 쓰지 않으면 죽일 수 없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세상을 통틀어서 그럴 만한 사람은 오직 셋뿐이었다.
천외의 세 노괴물들.
독고민은 장천운을 높이 사는 독고광의 말에 이를 악다물었다.
얼마나 세게 다물었는지 턱에 근육과 핏줄이 턱에 툭툭 튀어나왔다.
‘그래서 반드시 그 놈을 내 손으로 죽일 거요.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악마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이제 힘을 얻는 방법을 알았다.
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아주 더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때 독고광이 넌지시 말했다.
“네 아비가 십여 년 전에 얻은 물건이 하나 있다. 속성으로 익힐 수 있는 마공 구결이 적혀 있다고 들었지. 그걸 얻으면 놈을 상대하는 게 보다 쉬워질 거다.”
독고민의 눈에서 섬뜩한 한광이 번뜩였다.
그는 아버지가 비밀스런 물건들을 숨겨놓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 * *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서쪽으로 기울어진 신시 무렵.
북천소 근처를 순찰하던 벽호당무사가 구석진 곳의 창고 안에서 시체 한 구를 발견했다.
뒤는 마렵고, 뒷간은 멀고. 급한 김에 사용을 거의 하지 않는 창고에 들어갔다가 구석에 있는 시체를 발견한 것이었다.
발가벗겨진 시체가 어찌나 참혹한지 경비무사는 비명을 내지르며 뛰쳐나갔다.
그로부터 반각쯤 흘렀을 때 시체의 주인이 밝혀졌다.
소성주의 호위인 소진난이었다.
보고가 올라가자 구천무원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잖아도 장천운이 장로원을 들쑤셔놓은 탓에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던 터였다.
그런데 소성주의 호위무사가 시신으로 발견되다니.
사마경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왜 진난을 죽였는지 철저히 조사해서 범인을 찾아내!”
“제가 가서 조사하겠습니다, 소성주.”
백리우진이 자진해서 나섰다.
“백리 대주가?”
“임시라 하나, 어쨌든 소진난도 호위대원이었던 사람입니다. 동료의 죽음을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좋아, 그럼 백리 대주가 가봐.”
“예, 소성주!”
백리우진이 조사에 나선 것은 소진난이 동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소진난과 세 번 관계를 맺었다.
조사 중에 자신과의 관계가 밝혀지기라도 하면 사마경을 차지하려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 역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그녀와 관련된 단서가 남아 있으면 깨끗이 지워버려야 해.’
사마경의 닦달로 방에서 운기요상만 하고 있던 장천운은 소진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제 오후 늦게 그녀를 본 사람이 있다 했으니 죽은 시간은 해가 진 이후일 터.
공손백 쪽에서 저지른 일이라 하기에는 너무 사소했다.
자신을 노리고 암천의 고수들을 움직여 놓고 일개 호위무사를 죽인다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었다.
‘그럼 누가 죽인 거지?’
그저 누군가가 겁탈을 하고 죽인 것일 수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 들어온 시커먼 남자들만 해도 천 명이 넘는다.
여자들이 태부족인 상황.
이런 상황에서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미친 짓을 저지르는 놈이 나오기 마련이다.
소진난이 평범한 여인이기만 했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소진난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소성주의 호위무사를 맡을 정도로 무공도 일류다.
그런 여자가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느낌이 지저분한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방을 나섰다.
그래도 운기요상을 열심히 한 덕에 오전보다 내공이 일성 정도 더 되돌아온 듯했다.
백리우진이 백천대원 셋을 데리고 다급히 달려갔지만, 몇 사람이 그보다 먼저 창고에 와 있었다.
율검당의 대원들이었다.
“이제부터 이 사건은 우리가 처리하겠소.”
백리우진이 다급히 나서며 율검당의 조사를 막았다.
그러나 순순히 물러날 율검당원들이 아니었다.
“무슨 말이오? 본 성의 무사 살해사건에 대해서 백천대가 조사하겠다니? 소성주의 호위를 책임진 백천대가 언제부터 살해사건 조사를 했는지 모르겠군요.”
“소성주님의 호위무사가 살해된 사건이니 우리가 조사하겠다는 거요.”
“그쪽에서 조사하겠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맡겨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소.”
‘그 자식, 더럽게 깐깐하네.’
백리우진은 은근히 짜증이 났지만 꾹 참았다.
왠지 안 좋은 느낌이 드는 자였다.
“그댄 누구요?”
“율검당 오대 일조를 맡고 있는 강도청이라 하오.”
흠칫한 백리우진은 강도청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자가 오대 일조장?’
장천운, 그 빌어먹을 놈이 이조장이었다고 했다.
놈과 가까운 사이라면 함부로 대할 수도 없었다.
“그대가 이조장이었던 장천운과 같은 오대의 일조장이란 말이오?”
“그렇소.”
“좋소. 그럼 우리가 조사하는 걸 방해하지만 마시오.”
“걱정 마시오. 방해할 생각도 없으니까.”
백리우진은 소진난의 시신부터 철저히 조사했다.
일단 그녀가 왜 이런 구석진 창고 안에서 죽어 있느냐, 하는 것을 밝혀야 했다.
그런데 덮여 있던 옷을 들추고 시신을 본 그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