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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9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1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97화

손우곤은 바짝 긴장했다.

“하오면…….”

그가 말을 맺기도 전에 금룡신군이 더욱 짙어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천성으로 갈 것이니 일원장 인근에 괜찮은 거처를 하나 물색해봐라. 아마 우리가 구천성 근처에 있으면, 두 늙은이도 숨어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다.”

“……!”

손우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금룡신군을 바라보았다.

“구천성으로 가시겠단 말씀입니까?”

“이제는 그 늙은이들과의 내기도 끝낼 때가 되었어.”

말을 맺은 금룡노인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웃고 있는 모습인데도 손우곤은 금룡노인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정말 끝장을 내실 생각이군.’

 

* * *

 

강남의 무더위는 강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찜통 속에 빠진 것 같은 더위가 계속되던 어느 날. 무적장에 서신 하나가 전달되었다.

수취인은 삼장무적 단리황이었다.

 

“장천운이란 아이가 보낸 거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단리승에게 서신을 건네준 단리황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서신을 받아서 천천히 읽어본 단리승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고요하던 이전과 달리 신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드디어 그 노괴들이 세상으로 나왔군요.”

“죽기 전에 마지막 유희를 즐기고 싶었겠지.”

“천하를 놓고 유희를 즐기는 노괴들이 있다는 걸 세상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믿지 않을 거다. 이 애비가 이십여 년 전에 그랬듯이,”

그로 인해 무적장은 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참 대단한 친구입니다. 그 노괴들과 싸울 생각을 하다니요. 한데 자세히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겉만 봤는지를 모르겠습니다.”

“겉만 봤든 진실을 알든 무슨 상관이냐. 노괴들을 알면서도 그들과 싸울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놈 아니냐?”

단리황의 말에 단리승도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네가 결정을 내려라. 어떻게 하겠느냐?”

“어차피 노괴가 움직인 걸 알아버린 이상 더 웅크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나갈 생각이냐?”

단리황이 묻자, 단리승이 허리를 펴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락하신다면 무적백팔령을 움직이겠습니다.”

무적백팔령은 무적장의 모든 힘이나 다름없다.

그들을 움직인다는 것은 곧 무적장의 존망을 걸겠다는 뜻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단리황은 당연시했다.

“노괴들을 상대하려면 그래야겠지. 이 애비도 죽기 전에 중원 구경이나 가봐야겠다.”

침착하던 단리승의 눈이 커졌다.

“아버님!”

“이 애비, 아직 안 늙었다. 최소한 노괴의 한팔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느니라.”

“하오나…….”

“강호의 무사가 강호에서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설령 내가 잘못되어서 죽는다 해도 애석해할 것 없다. 무적령주로서 마지막 명령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철저히 준비를 갖춰라. 준비가 갖추어지는 대로 출발할 것이니라.”

단리승은 잘게 떨리는 눈매로 단리황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장천운은 해가 뜰 때까지 운기요상을 하며 내상을 다스렸다.

독왕의 해독단 덕분인지, 당장 죽을 것 같던 전날보다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그는 햇살이 창문을 뚫고 들어올 때쯤 되어서야 운기요상을 멈추었다.

대략 따져도 육 할 정도의 공력은 운용할 수 있을 듯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실망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그때였다.

“대주, 들어가도 돼요?”

방 밖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장천운은 속이 뜨끔했다.

연송하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 봐도 어떤 마음인지 짐작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못 들어오게 할 수도 없는 일.

“어. 들어와.”

덜컹.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눈을 치켜뜬 연송하가 들어왔다.

등잔불에 비친 그녀의 안색은 창백했다.

독왕의 해독단을 복용했는데도 아직 내상이 다 낫지 않은 듯했다.

그만큼 부상이 심각했었다는 뜻.

“미안하다. 너를 찾아가봤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그게 말이지…….”

“뭐, 저를 찾아오지 않은 거야 이해할 수 있어요. 비밀스럽게 움직여야 했을 테니까요.”

정말 남을 이해해주는 여인이다.

누구 마누라가 될지 몰라도, 연송하를 얻은 놈은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놈일 것이다.

그러나 장천운은 뒷말이 더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칼날처럼 벼려진 목소리.

“왜 장로원에 혼자 쳐들어가서 난리를 쳐요?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바보 같이!”

연송하가 바락바락 소리치는데도 장천운은 변명 한 마디 못했다.

연송하의 커다란 눈에 눈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때마다 눈물방울이 흔들렸다.

파리한 입술도 사시나무처럼 잘게 떨렸다.

더구나…….

“천운은 혼나도 싸.”

또 다른 냉랭한 목소리.

사마경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혀를 차듯이 말했다.

두 여인의 협공은 장천운이 지금까지 대해본 어떤 공격보다 강력했다.

“소성주, 그게 어디 저 좋으라고 한 일입니까?”

나름대로 반박을 해보았다.

그러다 더 강한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좋을 일도 아닌데 왜 해? 그런 멍청한 짓을!”

“소성주님 말씀이 맞아요. 하여간 생각이 없다니까요.”

장천운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 안에서 두 여인의 공격에 시달리느니 힘들어도 돌아다니는 게 나을 듯했다.

“어디 가려고?”

“놈들이 저를 공격한 증거를 찾으러 갑니다.”

“굳이 지금 싸울 필요는 없잖아? 몸도 안 좋은데.”

“어차피 대령주도 당장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구천성 내의 모든 사람이 주시하고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 양반도 어제 내상을 입었고요.”

“그런데 왜……?”

“일반무사든 간부들이든, 그들이 대령주를 따르는 것은 대령주가 성주가 되었을 때 구천성이 더 높이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사마경도 인정했다.

어느 무사든 강한 사람이 주인이 되길 바라는 법이다.

“그런데 대령주가 구천성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하수인이라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어제 일로 그러한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흠…… 그건 천운 말이 맞아.”

“조금만 더 흔들어 놓으면, 간부는 물론이고 일반무사들의 마음도 바뀌기 시작할 겁니다.”

“간부들이라면 몰라도 일반무사들 마음이 바뀐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잖아?”

장천운은 그 말을 듣고 사마경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자는 제왕입니다만, 백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제왕은 결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죠. 특히 강호에서 살아가는 무사는 일반 백성보다 마음에 안 드는 꼴을 더 보지 못합니다.”

“일반무사를 움직이면 간부도 움직일 수 있다?”

“뭐, 그건 두고 봐야죠. 좌우지간 어떤 식으로든 전과는 달라질 겁니다.”

“좋아, 알았어. 그럼 그 증거를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는지 알려줘. 사람을 보낼 테니까.”

그럴 순 없었다.

예정보다 일찍 일어난 이유가 뭔데?

“제가 직접 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사마경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장천운을 째려보았다.

“정말이야?”

“제가 왜 사서 고생을 합니까? 몸도 안 좋은데.”

“그럼 흑월대 일개 조를 데려가. 혼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그러죠 뭐.”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우곡과 패왕, 복우쌍노가 장천운의 방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장천운이 증거를 찾으러 간다고 하자, 두 말하지 않고 동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사마경과 연송하의 표정도 펴졌다.

 

* * *

 

모진태 일행이 이종곽과 복면인들의 시신을 묻은 곳은 객잔에서 오 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함께 간 흑월대 삼조원들이 시신을 파냈다.

깊게 묻혀있지 않아서 땅을 한 자도 파지 않았는데 시신이 드러났다.

그런데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자들이 있었다.

파천회의 제갈승우와 무영신수 임청백, 그리고 삼십대로 보이는 무사 셋.

정확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구천성으로 가던 그들이 땅을 파는 장천운 일행을 발견한 것이었다.

“놀랍군요. 저기 덩치 큰 자는 패왕 진교청이 분명합니다.”

제갈승우가 패왕을 알아보고 눈을 홉떴다.

게다가 임청백은 우곡과 복우쌍노까지 알아보았다.

“환마와 복우쌍노도 있소. 십여 년 전에 강호를 등진 저들이 다시 나타나다니. 의외군.”

“환마 우곡이란 말입니까?”

“맞소. 십여 년 전에 한번 본 적이 있소. 교왕 둔가부의 친구라 들었는데, 그래서 구천성에 있는 것 같소.”

“묻힌 시신이 누구기에 땅을 다시 파고 꺼내는 걸까요?”

“글쎄올시다…….”

“일단 저는 이 사실을 회주께 알리겠습니다. 임 형은 무슨 일인지 알아봐주십시오.”

“알았소. 나는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편하니 무사들은 데려가시오.”

“알겠습니다.”

제갈승우는 거절하지 않고 무사들과 함께 뒤로 빠져서 그곳을 떠나갔다.

임청백은 제갈승우가 떠난 뒤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장천운 일행을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은 패왕과 우곡 사이에 서 있는 장천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분명히 그때 그놈이야. 죽었다는 소문이 거짓이었군.’

사마경을 암살하려 했을 때, 자신에게 진한 패배감을 안겨준 놈 아닌가.

어쩌면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기회에 정식으로 붙어서 누구의 신법이 더 나은지 확인해 보리라.

 

* * *

 

시신을 챙겨서 구천성으로 돌아온 장천운은 정문위사를 만나보았다.

마침 어제 자신이 나갈 때 정문을 지키던 자들이 이전 위사와 막 교대한 상태였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장천운은 구산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시신을 앞세우고서 장로원으로 향했다.

이미 소문이 들불처럼 퍼져 있던 터였다.

그 광경을 본 무사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장천운이 살아 있다더니 정말이었군.”

“율검당 이조장이 장천운이었다잖아.”

“정말이야?”

“이 사람이! 그것도 몰랐어?”

장천운은 그들 사이를 지나서 장로원으로 다가갔다.

장로원 앞에 우문각과 전무궁, 육선기 등 구천성을 쥐고 흔드는 간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장천운은 그들 사이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곡과 진교청, 복우쌍노가 느긋한 걸음걸이로 장천운의 좌우를 호위했고, 시신을 든 흑월대원들이 바짝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우문각과 각 세력의 수장들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장로원으로 들어갔다.

 

장로원에 들어간 장천운은 일행과 함께 곧바로 청묵전으로 향했다.

공손백이 청묵전 앞마당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무거웠다.

어젯밤 입은 내상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뭔지 모를 께름칙한 느낌.

장천운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멈춰 서자 공손백이 말했다.

“많이 다친 줄 알았더니 멀쩡하군.”

“나이 드신 대령주께서도 멀쩡하신데, 젊은 제가 비칠거리면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불꽃이 튀었다.

‘찢어죽일 놈! 말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하는군.’

공손백은 속이 끓었지만 복수해줄 말이 있어서 꾹 참았다.

“안 된 일이다만, 안타깝게도 손님이었던 모진태가 심한 상처 때문에 어젯밤 죽었다.”

장천운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죽어?’

상대는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다. 그 정도 내상으로 죽을 사람이 아니다.

“죽을 정도는 아닌 것으로 봤습니다만.”

“난들 어쩌겠느냐? 죽은 것이 사실인데. 곧 시신을 갖고 올 것이니 살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봐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별채 쪽에서 몇 사람이 들것을 들고 나타났다.

들것 위에는 한눈에 봐도 모진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신이 있었다.

꼬리를 잘라낸 것인가?

‘빌어먹을. 정말 독하군.’

그렇다고 해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좋습니다. 그럼 저희가 한번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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