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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9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96화

장천운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죽 쑤어서 개 줄 수는 없는 일.

이제는 목숨 걸고 펼친 한편의 경극을 마무리 지어야했다.

“잠깐 멈추십시오, 총사!”

“왜 그런가?”

“빈대 몇 마리 잡겠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를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저자들을 밖으로 나갈 수 없게만 해주십시오. 그럼 내일 제가 확실한 증거를 찾아서 갖고 오겠습니다.”

“그래? 알았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우문각은 장천운의 제안을 순순히 승낙했다.

모진태 일행이 도주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도주하면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되고, 그럴 경우 공손백만 곤란해진다.

죄인을 보호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법집행을 하려는 율검당 조장을 죽이려 한 셈이 되니까.

‘여우같은 놈.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돌아간단 말이야.’

그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공손백의 의향을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령주? 받아들이신다면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공손백은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승낙한다면 자신이 오히려 모진태 일행을 붙잡아 놓아야 할 판이다.

‘저 개자식을 반드시 죽였어야 했거늘!’

이가 갈리도록 아쉬웠다.

절호의 기회를 놓치다니!

하지만 놈은 환마와 패왕, 교왕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한 수에 죽일 수 없는 이상 선택의 길이 없었다.

다행인 점은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날뛰지 못할 터.

‘제기랄. 당장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

그때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노부도 그게 나을 것 같군.”

공손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목소리의 죽인은 나극이었다.

‘저 늙은이는 왜 또 저러는 거야?’

이제 선을 긋겠다는 건가?

그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장로 셋을 거느린 나극이 혈전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외부인이 본 성의 사람을 죽이려 한 게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한 일.

일단 증거를 본 다음 판단하기로 하세. 대령주, 어떻게 하시겠는가?”

공손백은 불만이 많았지만 표를 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우문각보다는 나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나았다.

“대장로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일단 나극의 제의를 받아들인 그의 눈이 우문각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하면, 내가 직접 저놈의 목을 벨 수 있도록 자네 손으로 끌고 와야 할 거네.”

“그렇게 하지요.”

우문각은 대답을 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장천운의 목을 베면 어떤 기분일까?

보아하니 중상을 입은 것 같은데…….

 

* * *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사마경은 장천운이 중상을 입은 채 구천무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방을 나섰다.

그녀가 들어갔을 때 장천운은 침대에 누워 있고, 우곡이 장천운의 기해혈에 우수 장심을 대고 운기요상 중이었다.

나머지 세 노인은 둔가부와 함께 탁자 옆 의자에 앉아서 차를 마셨고.

패왕 진교청과 복우쌍노.

구양명으로부터 그들의 정체를 전해들은 사마경은 일단 인사부터 했다.

장천운의 치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노선배님들 덕분에 천운이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 말을 다하는군. 우리야 다 끝난 판에 도착했는데 뭘…….”

진교청이 털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노선배님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더구나 패왕 노선배님과 복우산의 두 분 산신령께서 오셨으니 천운이 복이 많은 거죠.”

복우쌍노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사마경이 산신령이라고 하자 헤벌쭉 웃었다.

“허허허, 뭘…….”

“구천성에 선녀가 있다더니 정말이었군. 껄껄껄.”

그때 우곡이 장천운의 기해혈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더니 탁자 쪽으로 왔다.

“다행히 좋은 약이 있어서 내상을 빨리 다스릴 수 있었네.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우 노선배님.”

사마경이 예를 취하며 고마움을 표하자, 진교청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떼더니 네 노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우린 그만 나가 있는 게 좋겠군. 소성주가 저 친구에게 할 말이 있는 모양이네.”

덩치답지 않게 눈치가 빨랐다.

“험, 그럴까?”

우곡과 둔가부, 복우쌍노도 뒤따라 방을 나갔다.

사마경도 그들이 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은 곁에 없는 것이 나았다.

방안이 조용해지자, 침대로 다가간 그녀는 장천운을 도끼눈으로 째려보았다.

마침 운기를 마친 장천운이 막 눈을 뜨고 있었다.

사마경은, 눈을 뜨다가 급히 감으려는 장천운을 향해 쏘듯이 말했다.

“누가 위험하게 그런 일을 벌이라고 했어?”

장천운은 할 수 없이 눈을 마저 뜨고 쓴웃음을 지었다.

“공손백을 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잡지도 못했잖아?”

“한 번에 끝장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 고생을 하지도 않았죠. 그래도 호랑이를 잡지 못한 대신 늑대를 잡았으니 제법 남는 장사였습니다.”

“이렇게 다치지 않고도 할 수 있었을 것 아냐?”

“그런 방법이 있으면 뭐 하러 목숨을 겁니까.”

사실은 시간이 없었다.

그런 고수까지 왔는데 다음 날 날이 밝으면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안단 말인가.

“하여간 입은 살아서…….”

“오늘 일로 공손백은 한 동안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금룡과 청산도 눈치만 볼 거고요.”

“그래봐야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잖아.”

“많이 달라졌죠. 암천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으니 청산과 금룡도 시간이 가면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그럼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편해졌죠.”

“정말 그들이 양지로 나올까?”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어둠 속에 있던 무사들이 한번 양지의 맛을 본 이상 다시 음지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사마경은 아무 말도 없이 장천운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얼굴 좀 바꿔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장천운은 얼굴 근육을 움직여서 얼굴의 생김새를 바꾸었다.

그러고는 머리카락마저 정리하자 본래의 얼굴이 돌아왔다.

오랜만에 근육을 제자리로 돌리자 얼굴 근육이 뻣뻣했다.

하지만 손으로 몇 번 만져주자 그럭저럭 부드러워졌다.

“이제 좀 볼만 하네. 몸은 좀 어때?”

“저에게 괜찮은 약이 있잖습니까. 다행히 당장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마경은 장천운이 뭘 말하는지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독왕의 해독단은 그 자체로 영단이었다.

“복용했어?”

“예.”

“아직 남았지? 하나 줘봐.”

“예?”

“왜, 주기 싫어? 아까워?”

장천운은 품속에서 약이 든 통을 꺼냈다.

이제 남은 해독단은 세 알 뿐이었다.

장천운이 그 중 한 알을 꺼내서 주자, 사마경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더니 집어넣었다.

“너무 아까워하지 마. 송하 줄 거니까.”

“……!”

그러고 보니 연송하가 많이 다쳤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약이 있으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여간 남자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동생이 다쳤다는데 신경도 안 쓰여?”

“…….”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사마경이 늑골 사이로 비수를 찔러 넣듯 물었다.

“혹시 어디다 또 만들어 놓은 동생 없어?”

윽.

가슴이 결린 장천운은 움찔하며 눈길을 돌렸다.

그걸 놓칠 사마경이 아니다.

“있지?”

“저, 그게…….”

“괜찮아. 말해 봐, 누구야?”

나중에 알게 되면 열 배는 더 심한 곤욕을 치를 터.

장천운은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솔직히 말했다.

“초초라고…….”

“어머, 초초? 이름도 예쁘네. 얼굴도 예쁘겠는데?”

지금 아픈 사람 앞에서 그런 걸 물어볼 때인가?

하지만 상대가 사마경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성질이 어디 가나?

어차피 뱉은 말, 사실관계도 다 털어놓았다.

“독왕 어르신의 손녀입니다. 왕 선배와 찾아갔을 때 만났는데, 혼자 산속에서 무척 외롭게 살았더군요.”

“남 노선배님 손녀? 그 독에 중독되었다던?”

“예, 소성주. 해독되긴 했는데 다리가 좋지 않습니다. 안쓰러워서 동생처럼 생각하기로 했죠.”

“잘했어. 그런데…… 정말 동생으로 끝날 거야?”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마경의 눈을 보지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표정이다.

“정말입니다.”

“이렇게 여자를 몰라서야 원…….”

“…….”

“그 초초라는 아가씨가 천운을 오빠라고 불렀을 때는 이미 마음까지 줬다는 걸 몰라?”

“그거야 오빠하기로 했으니까…….”

“흥!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녀 사이에 오빠 동생은 무슨?”

코웃음이 활시위 튕기는 소리처럼 싸늘하다.

궁지에 몰린 장천운은 사력을 다해서 반격했다.

“그런데 소성주께서는 왜 저에게 여동생이 생기는 걸 신경 쓰시는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묻는 거죠.”

“정말 몰라?”

“모른다니까요?”

“좋아, 정말 모른다면 알려줄게.”

흔쾌한 표정으로 대답한 사마경이 턱을 바짝 당기고는, 검지를 뻗어서 장천운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천운이는, 내 거잖아. 그러니까, 신경이, 쓰이지!”

장천운은 눈을 홉떴다.

“예? 그건 천은동에 가는 조건으로…….”

“그거야 호위무사에서 풀어준다는 거였지. 내가 언제 천운을 포기했다고 했어? 왜, 나를 떠나고 싶어?”

“…….”

“하긴, 그러니까 아픈 송하를 보러가지도 않지.”

장천운은 속으로 찔끔했지만, 모른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좌우간, 천운이 내 꺼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그 정도면 염라대왕도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게 만들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그러나 다음 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미 나를 가졌잖아.”

‘헉! 뭐, 뭐야?’

아무리 장천운의 정신력이 무쇠처럼 단단해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솔직히 껴안고 입 맞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그 이상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하늘에 맹세코!

뭐, 그 정도로도 책임질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엄연히 가졌다는 것과는 다른 말 아닌가 말이다.

“뭐야? 왜 그렇게 썩은 표정이야? 그럼 안 가졌어?”

“아니, 제가 언제 소성주님을…….”

“마음을 가져갔으면 다 가져간 거지. 안 그래? 혹시…… 이상한 생각한 거 아냐?”

“…….”

장천운의 입이 벌어지다 멈췄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말하면 어떻게든지 꼬투리를 잡아서 이상한 쪽으로 몰고나갈 듯했다.

“뭐, 잘 됐네. 생각난 김에 오늘 마지막 선을 넘어볼까?”

장천운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당장 죽을 것 같은 시늉을 했다.

“으음, 소성주. 아무래도 오늘은 운기요상에 전념해야 할 것 같으니, 그만 혼자 있게 해주십시오.”

사마경도 그 말이 핑계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그쯤에서 물러섰다.

“좋아, 그럼 일단 요상부터 해. 그건 내일 하면 되지 뭐.”

“…….”

 

 

114장 또 다른 죽음

 

장로원에서 벌어진 사건은 구천성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침이 되자, 구천성 하늘 위가 살얼음으로 뒤덮인 듯 냉랭한 한기가 흘렀다.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도 차갑게 식어서 무사들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했다.

그 즈음, 금룡장의 내전에서는 전날 돌아온 손우곤이 금룡신군과 마주앉아 있었다.

“장천운이 나타나서 장로원을 뒤집어놓았다고 합니다, 태군 어르신.”

“나도 들었다. 정말 웃기는 놈이야.”

금룡신군은 실소를 지었다.

손우곤이야 어이가 없어서 웃을 정신도 아니었지만.

놈이 쉽게 죽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하니 공손백을 직접 공격할 줄이야.

그것도 암천의 고수가 남몰래 합류한 상황이거늘.

“그렇게 무식한 놈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무식한 게 아니라 똑똑한 놈이지.”

“놈이 강하긴 해도 공손백과 모진태를 혼자서 감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전에 네가 만났을 때보다 강해졌다면?”

“예?”

손우곤의 눈이 커졌다.

금룡신군은 허언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칭찬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오늘,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자신만의 규칙을 깨고 누군가를 칭찬하고 있다.

“그래봐야 얼마나 되었다고…….”

“깨달음을 얻는 건 촌각이면 충분해. 문제는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지.”

손우곤의 커진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정말 그렇게 강해졌다면 앞으로 골치가 아플 것 같군요.”

“그래서 말인데…… 더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금룡신군이 꾸부정한 어깨를 펴고 말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살짝 걸쳐져 있었다. 차디찬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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