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9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92화
모진태가 명을 내리자, 무사라기보다 유생처럼 느껴지는 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령주.”
그러나 겉모습과 달리,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에서는 푸르스름한 독기가 흘렀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사지를 찢어서 죽여주마.’
* * *
장천운은 객잔을 나선 후 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층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간 그는 운기요상을 하면서 객잔 쪽을 바라보았다.
정체불명의 무사들이 피비린내 나는 객잔으로 들어서는 게 보였다.
구천성이 지근거리인데도 구천성 무사는 보이지 않았다.
구천성의 순찰경비를 제어할 수 있지 않고서야 어림없는 일.
저들에게 벽호당을 좌우할 힘이 있다는 말이다.
‘벽호당을 움직인다는 건 대령주가 관여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특히 오십대로 보이는 자는 멀리서도 강함이 느껴졌다.
그는 이종곽보다 고위직에 있는 자인 듯했다.
광천삼혼도의 위에 있는 고수.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천외에서 온 자인가?’
장천운이 보고 있는 동안 시신을 추스른 자들이 비연객잔을 빠져나갔다.
장천운도 지붕 위에서 일어났다. 이제 상처의 피는 멈춘 상태였다.
정상은 아니지만 움직이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모진태 일행은 시신을 외딴 곳으로 옮겨서 묻었다.
그러고는 다시 구천성 쪽으로 은밀하게 이동했다.
장천운은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구천성으로 돌아간다는 건 그 안에서 생활하거나, 은신처가 구천성 안에 있다는 뜻.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광천삼혼도와 저런 고수가 구천성 내에 들어왔다는 건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단 말이겠지.’
머지않아 구천성의 거대한 대지에서 천하를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가 벌어지리라.
그 주역은 구천성의 누구도 아닌 천외의 세 노괴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놔둘 순 없지. 당신들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모진태 일행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당당히 정문을 통해서 구천성 안으로 들어갔다.
오히려 장천운이 주위를 살피며 담장을 넘었다.
아무 제지도 없이 정문을 통과한 걸 보면 정문 위사 중에 저들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나올 때도 그놈들이 고자질했을지 몰라.’
추측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정문으로 들어갈 경우 곧바로 저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유령처럼 담장을 넘어간 장천운은 다시 모진태 일행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거리가 크게 벌어지지는 않아서 그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긴 장천운은 모진태 일행이 들어가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장로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천운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장로원에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로원으로 들어갔다.
공손백이나 나극과 관련 있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장천운의 눈빛이 번뜩였다.
‘일을 제대로 벌이려면 총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군.’
* * *
우문각은 생각지 못한 사람의 갑작스런 방문을 전해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율검당 오대 이조장?”
“예, 총사. 은밀히 말씀드릴 게 있다며 독대하길 청하고 있습니다.”
우문각도 그에 대한 소문을 듣긴 했다.
‘문인동 장로와 상두한 장로를 체포했다고 했던가?’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주시하는 자들 때문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가 직접 자신을 찾아올 줄이야.
무슨 일로 왔는지 몰라도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안으로 들여라.”
장천운은 태연한 표정과 몸짓으로 우문각 앞까지 다가갔다.
사방에서 살을 에는 기운이 흘러나와 그를 중심으로 휘돌았다.
“무슨 일로 이 밤에 나를 찾아 왔는가?”
우문각이 먼저 물었다.
장천운은 우문각의 색이 다른 머리카락에 눈길을 준 후 시선을 내려서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 양반도 천외와 관련되어 있단 말이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소성주를 지켜야한다며 자신을 데려온 사람 아닌가.
그런데 구천성을 뒤에서 농락하는 천외의 사람이라니.
일지에 의하면, 사마중천은 그 사실을 알고도 눈감아 주었다고 했다.
친구니까.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쨌든 그의 생각은 잘못되지 않았다.
이유야 무엇이든 우문각은 사마경을 지키려 했다. 친구를 속인 것이 미안해서든, 또 다른 욕심 때문이든.
‘처음부터 말했으면 얼마나 좋아? 엉큼하기는…….’
반면, 우문각은 장천운의 눈길에 기분이 상했다.
감히 총사가 질문을 했거늘, 대답도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기만 하다니.
‘소문대로 건방진 놈이군.’
이심전심.
사방에 은신해 있던 비령위들에게서 분노의 살기가 장천운을 향해 밀려들었다.
장천운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우문각만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누군 줄 아쇼?’ 그런 표정으로.
“조금 전에 성 외곽에서 공격을 받아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문각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유가 있겠지.”
“수상한 놈들이 율검당의 조장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뒤가 구리니까 죽이려는 거겠지요.”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전 당주에게 먼저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왔나?”
“정보를 총괄하는 비령각이라면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을 것 같아서 왔지요.”
“우린 처음 듣는데?”
우문각이 입술 끝을 비틀며 비아냥거리듯 말하자, 장천운이 고개를 살짝 비틀고 허공을 보며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내가 비령각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나?”
뭐야?
우문각의 미간이 좁혀졌다.
정말 건방진 놈 아닌가. 아무리 중얼거림이라지만, 감히 자신 앞에서 저따위 말투라니.
게다가 다 들리도록 중얼거리는 걸 보니 들으라고 하는 말 아닌가.
그러나 장천운은 그가 분노할 틈을 주지 않고 중얼거림을 이어갔다.
“코앞에서 암천의 무리가 구천성 무사를 죽이려고 공격하는데도 모르고 있다니. 아무리 말단 간부라지만, 그래도 간부는 간부인데 말이지.”
“……!”
우문각의 가늘게 뜬 눈에서 쏟아지던 새파란 눈빛이 출렁거렸다.
암천?
자신이 아는 그 암천일까? 설마?
“차라리 독고광 늙은이를 찾아가서 따지는 게 빠를 것 같군.”
‘뭐? 누구?’
그때 장천운이 중얼거림을 마치고 포권을 취했다.
“도움을 청하려고 왔는데, 괜히 찾아왔나 봅니다. 그럼 아무 것도 모르는 분 붙잡고 말씨름할 시간이 없으니 그만 가보죠.”
“잠깐!”
우문각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 전에 암천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어떤 암천을 말하는가?”
“암천이 천외의 암천 말고 또 있습니까?”
입이 있어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장천운이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니 우문각도 바로 대답을 못했다.
그때 장천운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던 우문각의 이마에 갈매기가 날아가듯 부드럽게 꺾인 주름이 파였다.
눈도 서서히 커지고, 눈썹이 바람도 없는데 파르르 떨렸다.
“너……?”
그 순간, 은신해 있던 비령위들에게서 살기가 휘몰아쳤다.
살을 쩍쩍 갈라놓을 것처럼 살벌한 기운이 장천운을 향해 집중되었다.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라 짐작한 듯했다.
우문각은 일단 손부터 들어서 비령위들의 살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만 물러가 있어라.”
“……?”
비령위들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당황한 듯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우문각의 말은 곧 법이었다.
우문각이 쌀을 보고 콩이라고 하면 콩으로 알아야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물러가 있으라는 것이겠지.
비령위의 살기가 썰물처럼 물러가자, 우문각이 장천운의 두 눈을 직시한 채 말했다.
“나는 전에 너와 똑같은 눈을 가진 놈을 본 적이 있다. 아주 거만하고 제멋대로인데다 성질도 지랄 맞은 놈이었지.”
그제야 장천운이 답했다.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놈이 아니라, 멋지고 사명감이 투철한 청년이었겠죠.”
“멋지긴 개뿔이나…….”
“총사께서 그런 말투를 사용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
우문각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장천운의 얼굴이 이전과 전혀 달랐지만 의심을 품지 않았다.
살다보면 얼굴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찢어지거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심지어 가죽이 뒤집어지거나 뼈가 함몰되어서 형태가 완전히 달라진 사람도 있다.
병에 걸려서 안면의 뼈가 뒤틀린 사람도 있고.
때로는 저두심처럼 살찐 돼지가 늘씬한 살쾡이로 변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눈은 다르다.
단순히 눈의 형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눈동자. 그것도 동공 근처의 특징은 눈에 독이 쏟아져서 썩거나 녹아버리기 전에는 달라지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는 놈처럼.
저 눈은 그때 그 놈의 눈이 분명하다.
독사처럼 독한 놈. 진짜 거만하다 못해 총사인 자신을 우습게 아는 놈. 단 몇 년 만에 절정고수를 패대기칠 정도로 불가사의하게 강해진 놈.
장천운, 그 놈의 눈 말이다.
“어떻게 되긴요? 죽을 뻔했다니까요?”
“그거 말고, 율검당 말이다.”
“그야 할 일이 있어서 잠깐 들어갔던 거죠.”
“소성주와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던 거냐?”
장천운은 거짓말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는 섭심마혼공이라는 희대의 사공을 익힌 사람이다.
거짓이 통하지 않는 사람.
게다가 들어오자마자 소리가 새는 걸 차단한 상태니 남의 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과 우문각이 미친 듯 날뛰지만 않는다면.
“그럼 제가 누구처럼 소성주님 몰래 뒤에서 엉뚱한 짓이나 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우문각의 눈이 살짝 커졌다.
‘누구’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저 자식이……!’
역용을 한 듯 표정을 알 수가 없으니 속마음을 읽기도 쉽지 않았다.
눈을 보고 마음을 읽는 것은 상대가 장천운이라는 걸 알고부터 포기했고.
어쨌든 다그치기도 애매해진 그는 말을 돌렸다.
“네가 문인 장로와 상 장로를 체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어떻게…….”
“왜 말을 돌리십니까?”
이 자식이!
우문각은 눈에 힘을 주고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그런 힘이 있었는데, 왜 소성주께서 위험에 처했을 때 구경만 했습니까?”
누가 구경만 했다는 거야?
우문각은 속이 부글거리며 끓었지만 꾹 참았다.
저 자식하고는 말을 길게 해봐야 남는 게 없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 공손백의 세상이 되었을 거다. 좌우간…….”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건 압니다. 배후를 절대 드러내선 안 되었을 테니까요.”
이제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 건가?
우문각은 그런 생각이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래도 그래선 안 되죠. 뒷골목 흑도에서 그런 짓을 하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쓰윽.
장천운은 우문각을 똑바로 쳐다보며 손날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이렇게 되죠.”
단순한 시늉일 뿐인데도 우문각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졌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물어보죠. 청산자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우문각의 눈초리가 잠자리 날갯짓처럼 떨렸다. 청산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끓던 속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는 청산자와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았다. 전날 사마경에게 말했으니 속일 것도 없었다.
“으으음, 별 관계는 아니다. 사부님께서 그분과 인연이 있었기에 만났던 것일 뿐.”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부를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한때 그는 청산자를 사부만큼이나 따랐다.
친구의 죽음 이후 사이가 틀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계를 끊지는 않았다.
“묵조도 청산궁의 사람들입니까?”
“아니다. 그들은 내가 키웠다. 청산궁과는 별개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지.”
그제야 장천운은 묵씨 형제가 왜 청산궁 사람들을 몰라보고 싸우다가 죽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편이라는 걸 알았다면 죽자 사자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걸 알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테고…… 도움을 청하려 왔다고 했는데, 어떤 도움을 바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