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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289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5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9화

“그게…….”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던가요?”

전무궁은 할 수 없이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낙양에 있는 내 가족에게 사람을 보낸 모양이다.”

더 긴 이야기도 필요 없었다. 장천운은 그 말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했다.

“시간 여유는 얼마나 있습니까?”

“낙양에 도착해서 사흘을 기다리라고 했다더군.”

“그 일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전무궁은 자신의 일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나극을 상대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고맙다.”

“그리고 부탁하나만 하겠습니다. 오늘 밤만큼은 제가 임의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두 발 멀쩡하게 달린 놈이 어딜 간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때로는 갈 수 없는 곳도 있는 법이고, 할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단순한 일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아닐 터.

전무궁은 장천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율검당의 이름으로 할 생각이냐?”

“될 수 있으면 개인적인 일로 처리할 생각입니다만, 여의치 않으면 이름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미치는 영향은?”

“최악의 경우, 율검당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뭐라고?

전무궁의 눈이 커졌다.

그 모습을 본 장천운이 피식, 실소를 지었다.

“어차피 소성주가 패하면 율검당도 재편되지 않겠습니까?”

전무궁은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었다.

웃기는커녕 억만근 바위산만큼이나 무거운 중압감에 숨을 멈췄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장천운이 괴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좋아,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뒤는 걱정 말고.”

 

* * *

 

“왜 이렇게 힘이 없지?”

거처에서 나오던 소진란은 이마를 찡그리며 짜증내듯 중얼거렸다.

며칠 전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도 공력이 줄어든 느낌이었다.

마치 금이 간 물독에서 물이 조금씩 새듯이.

그뿐이 아니었다. 탱탱하던 살결도 푸석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너무 밝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전에는 남자와 함께 밤새 뒹굴고 나면 살결이 더 팽팽해졌는데 뭐.

‘아무래도 이상해.’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소진난은 언제 고민했냐는 듯 생긋 웃으며 돌아섰다.

독고민이었다.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해준 사람.

그와 관계를 맺으면 이상하게 흥분이 되고, 정신이 혼몽해질 정도로 극도의 쾌락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야 공자님 생각하고 있었죠.”

소진난은 눈웃음을 치며 몸을 비틀었다.

단지 독고민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몸이 달아올랐다.

독고민은 소진난의 상태를 눈치 채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정말 뜨거운 계집이다.

온몸이 불구덩이 같은 계집. 자칫하면 자신이 타버릴지 모를 정도로 뜨겁게 타오르는 계집.

음기를 취하고 버리려다가 그냥 놔둔 것도 한번 써먹고 버리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되었어.’

저딴 계집 하나 때문에 앞길이 막혀서는 안 되니까.

“저녁에 좀 봤으면 하는데, 언제 교대하지?”

단지 그렇게 물었을 뿐인데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소진난의 눈이 붉어졌다.

“술시 말에요. 어디서 기다리실 거예요?”

“북천소 끝에 가면 사람이 들락거리지 않는 한적한 창고가 있다. 그곳으로 와라. 다른 사람 눈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 공자.”

 

* * *

 

독고태는 출정할 때와 달리 밝은 표정이었다.

아들 때문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병신소리 듣던 아들이 영웅이 되어서 돌아왔다.

아들이 그렇게 강했던가?

이상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적을 물리치고 사마경을 구한 젊은 고수.

그게 요즘 독고민에 대한 평판이다.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허허허, 잘난 아들을 둔 기분이 이런 거였던가?”

독고민은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차를 마셨다.

군산에서 생산되는 은침차는 그가 즐겨 마시는 차였다.

오늘따라 향이 더욱 진한 듯했다.

그가 찻잔을 거의 다 비웠을 때, 소진난과 약속을 하고 온 독고민이 방으로 들어왔다.

“어서 와라. 어인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라.”

“경천단의 일대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경천단 일대를?”

“어차피 적창강 대주는 부상 때문에 몇 달 동안 업무를 보지 못할 것 아닙니까?”

경천단 일대주 적창강은 이창혈전에서 중상을 입었다.

왼팔이 반쯤 잘리고 내상도 중해서 완치된다한들 임무를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그건 그렇다만…….”

독고태는 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들이 강해졌다는 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성격도 전보다 냉정해져서 한 조직을 이끌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대주가 되어 공식적인 활동을 한다면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를 찜찜함이 마음에 걸렸다.

더구나 독고태의 최측근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경천단 일대는 일반적인 대와 성격이 달랐다.

특별한 수련과정을 거친 최강의 무사들이라는 점 외에도, 그 동안 독고태의 명령을 받고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해 왔다.

아무리 독고민이 아들이라 해도 쉽게 내줄 수 없는 조직인 것이다.

“차라리 이대를 맡는 게 어떻겠느냐?”

“이대의 힘으로는 제가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독고민도 일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일대를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으음, 한번 생각해보마.”

“숙조부께서도 허락한 일입니다.”

“숙부님이?”

독고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독고광은 일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대는 암천문의 도움을 받아서 만든 조직이니까.

“네가 숙부를 만나서 그 일을 논의했단 말이냐? 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님을 설득하는데 빠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숙부님이라 해도 경천단을 좌지우지 하실 수는 없느니라.”

“어차피 일대는 숙조부님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조직 아닙니까?”

독고태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들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마치 조소를 짓듯이.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게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표정이라니.

앞에 서 있는 청년이 자신의 아들 맞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

문득 이창으로 찾아온 아들이 했던 말과 행동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무심코 넘어간 일들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표정이 굳어진 그는 독고민의 청을 거부했다.

“숙부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만든 것은 이 애비니라. 일대는 맡길 수 없으니 그리 알아라.”

독고민의 얼굴에 희미한 냉소가 떠올랐다.

한쪽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가서 비웃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안 된단 말씀입니까?”

“오냐. 일대를 부리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 경험을 더 쌓은 다음이라면 생각해 보겠다.”

“후회하실 텐데요?”

“뭐야?”

독고태는 눈을 홉뜨고 독고민을 노려보았다.

후회할 거라고?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아들의 표정을 보니 잘못 들은 것이 아닌 듯했다.

아들이 말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정말로 후회할 거라며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벌떡 일어선 독고태는 노한 표정으로 독고민을 다그쳤다.

“네가 감히 어디서……!”

그러나 독고민은 눈썹 한 올 꿈쩍하지 않았다.

“제가 어디 못할 말 했습니까? 결정을 잘못 내려서 나중에 후회하시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뭐야?”

“어차피 숙조부님이 아니면 경천단 단주자리도 위태위태하잖습니까? 숙조부님이 등을 돌리면 대령주가 반대편에 선 아버님을 가만두겠습니까?”

“……!”

독고태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들에게 저딴 소리를 듣다니.

“어쨌든 아버님이 반대하시니 어쩌겠습니까. 앞으로는 모든 걸 제 힘으로 얻도록 하지요.”

독고민은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을 맺고 몸을 돌렸다.

독고태는 그런 아들의 등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문득 독고광이 했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당분간 곁에 두겠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아들이 저렇게 변한 것은 독고광 때문인 듯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숙부! 도대체 민아에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그는 아들이 방을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호위무사들은 그의 눈치만 살필 뿐 독고민을 제지하지 않았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자신과 아들 사이가 두꺼운 철문으로 막힌 듯하다.

이를 악다문 독고태는 느릿하니 고개를 들어서 허공을 노려보았다.

잘게 떨리는 두 눈에서 침잠된 분노가 이글거렸다.

‘만약 민아가 당신 때문에 변한 거라면…… 그로 인해 민아를 잃는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요, 숙부.’

 

* * *

 

그날 오후.

공손백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핏빛 혈포를 입은 자, 혈마령주 모진태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군, 모 령주. 여긴 어쩐 일인가?”

“구천성의 상황이 급변하는 걸 보고 주군께서 보내셨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신마 어른께서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본래 이틀 정도 더 빨리 올 수 있었는데, 오던 중에 잠시 조사할 것이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주군께서 공손 형을 도우라 하셨으니, 도울 일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공식적으로는 모진태가 서열 오위, 공손백이 사위다.

그러나 모진태는 신마의 곁에 있는 자. 서열을 떠나서 암천문의 실제 권력자라 할 수 있었다.

그를 보냈다는 것은 신마가 이번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를 감시하려고 보낸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공손백은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흠, 그래?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내부의 힘으로 처리하기 곤란한 일이 하나 있는데, 자네가 도와주었으면 싶군.”

“알겠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한 놈을 묻어버리는 일이야. 어렵진 않을 거네.”

 

 

112장 한번 제대로 미쳐보겠어

 

 

장천운은 단승과 양가쌍호를 낙양으로 보냈다.

구천성으로 올 때 단승이 낙양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다.

이창으로 오기 전 낙양을 지나왔다고 했다. 단순히 지나친 것이 아니라 한 달 정도 머물렀다고 했다.

그래선지 낙양에 대해서 제법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단승은 귀찮은 일을 시킨다며 투덜대면서도, 장천운이 명령을 번복하기 번에 검 하나만 달랑 들고 부리나케 출발했다.

안 그래도 팔자에 없는 부하 생활을 하려니 답답하던 터에 이게 웬 떡이냐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단승과 양가쌍호를 낙양으로 보낸 장천운은 술시가 되자 일반 무복으로 갈아입고 북문을 나섰다.

 

비연객잔은 북문에서 오 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원장이 있는 영벽진과 중간 지점인 그곳에는 구천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객잔과 주루 등이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비연객잔은 대로변이 아닌 골목 안에 있어서 다른 곳에 비해 한가했다.

저녁식사 시간인데도 장천운이 들어갔을 때 손님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중 두 사람이 대운과 무경이었다.

장천운은 객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점소이에게 방을 부탁했다.

그러고는 점소이를 따라 객잔 뒤쪽의 방으로 가면서 대운에게 전음을 보냈다.

<방을 하나 얻고 기다리시오.>

 

대운과 무경은 차를 한 잔씩 더 마시며 시간을 보낸 후, 방을 하나 얻었다.

반각쯤 지나자 장천운이 그들의 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장천운의 은밀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구천성 율검당의 조장이 왜 자신들을 은밀히 만나려고 한단 말인가.

혹시 무림맹의 간자?

무경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우리를 만나려고 한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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