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8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8화
두 청년 중 검을 쥐고 있던 청년이 대답했다.
“패룡대 소속이오.”
무기가 없는 청년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손으로 입술과 코를 문지르기만 했다.
그 바람에 얼굴이 반쯤 가려졌다.
장천운은 모른 척하며 냉랭히 말했다.
“당신들 둘은 우리를 따라오시오. 상황이야 어쨌든 수상하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으니 조사를 받아야 하오.”
그러고는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조사는 우리가 할 것이니, 당신들은 각자의 거처로 돌아가시오! 고집을 피우고 계속 싸우겠다면 구천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오!”
그제야 구천오대의 무사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장천운은 두 청년을 데리고 수련당을 벗어났다.
두 청년은 함께 가는 동안 전음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이대로 율검당까지 끌려가면 정체가 들통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자니 자신들이 간자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셈이 된다.
간자라는 확신이 들 경우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터.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문제는 저들 중 하나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자신의 모습이 워낙 달라져 있고, 교묘하게 눈을 피해서 모르고 있지만,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 곧 알아볼 것이다.
<무량수불, 말만 잘하면 저들의 의심을 해소시킬 수 있을 거네.>
속도 모르고 무경이 그렇게 말한다.
대운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우우, 아미타불. 저들 중 하나는 빈승을 알고 있네.>
<뭐? 그럼 다른 방법이 없잖은가? 서둘러서 이곳을 벗어나세.>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 나를 아는 시주의 무공은 나에 비해서 하수가 아니네. 도주하려다 막히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어.>
<……!>
무경은 어이가 없어서 바로 대꾸를 못했다.
율검당의 일개 조원이 무림십룡과 비등한 실력을 지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대운이 왜 이 상황에서 헛소리를 하겠는가.
그때 장천운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은 다른 일로 바빠서 그냥 보내줄 거요. 그러니 말썽 피우지 말고 조용히 지내시오.”
대운과 무경은 뜻밖의 조치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대의 의도야 어떻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대운의 귓속으로 전음이 이어졌다.
<북문 쪽으로 나가면 비연객잔이라는 곳이 있소. 그곳에서 술시 쯤 봅시다. 기다리든 떠나든 자유이긴 한데, 그냥 떠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지는 마시오.>
대운은 의아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장천운은 더 할 말 없다는 듯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자, 우리도 그만 가자고.”
단승을 비롯한 이조원들은 조장의 조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가자는데 멀뚱하게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저러지?’
대운을 알아보지 못한 단승은 오히려 비공이란 인간이 이상하게 보였다.
비라도 오려나?
* * *
우문각은 보고를 받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미간에 세 줄기 주름 골이 깊게 파였다.
나극이 율검당주 전무궁을 만났다. 그리고 공손백은 천경전주 육선기를 찾아가서 한바탕 했다.
나극이 율검당에 간 것이야 문인동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공손백은 왜 갑자기 천경전에 가서 그런 일을 벌였을까.
“천경전에서 나온 대령주가 곧장 구천무원으로 갔다고 합니다.”
정유가 보고를 올리고 우문각의 눈치를 살폈다.
“무엇 때문에 갔을 거라 보느냐?”
“아직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만, 결코 좋은 일로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공손백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느냐?”
정유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쉰 후, 껄끄러운 뭔가가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나직하고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총사. 만약 대장로까지 율검당을 압박하기 위해 갔다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율검당과 천경전, 무혼단은 소성주께 가장 큰 힘이 되는 조직입니다. 그 중 두 곳이 흔들리면 당장 대령주와 대장로를 견제할 수 없습니다.”
우문각은 고개를 돌려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이란 말이지?’
한여름 끈적거리는 습기 속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나는 듯하다.
“정유.”
“예, 총사.”
“네 생각을 말해봐라. 누가 이길 것 같으냐?”
“솔직히, 전력만 보면 소성주는 대령주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소성주에게는 제가 판단하기 힘든 묘한 힘이 있습니다. 거기다 장천운이 살아 있다면 상황은 또 달라집니다.”
장천운의 이름이 나오자, 우문각의 이마에 파인 골이 배는 더 깊어졌다.
“장천운이라…….”
슬쩍 우문각의 표정을 살펴본 정유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가 정말로 살아 있다면, 그 동안 조용히 방안에 틀어박혀서 지내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부상이 심해서 치료하며 지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장천운이 아니지요.”
어떻게 들으면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부상이 심하면 치료하느라 조용히 지낼 수도 있지 않은가.
장천운이 뭐 살이 갈라져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괴물이라도 되나?
그런데도 우문각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상대가 장천운이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확실히 특별난 놈.
“아마 나름대로 대비책을 강구하면서 힘을 모았을 겁니다. 문제는 한 달 정도 되는 기간에 어느 정도의 힘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훗.”
우문각의 입술 사이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무창 흑도의 애송이가 구천성을 놓고, 아니 천하 강호를 놓고 다투는데 변수로 작용할 정도로 컸다니.
어쨌든 그가 살아 있고, 힘을 모았다면 변수로 작용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이제 우리도 슬슬 움직여 볼까?”
정유가 흠칫하며 눈을 들었다.
“하오면……?”
“일단 나극과 공손백을 흔들어놓고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는 게 좋겠어.”
우문각의 그 말에 정유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느 선까지 흔들면 되겠습니까?”
“팔다리 하나 정도는 잘라 놓아야겠지. 그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공손백의 측근에 있는 놈을 하나 은밀히 생포해 와라.”
정유의 눈빛이 반짝 빛을 발했다.
우문각의 섭심마혼공이라면 공손백의 꿍꿍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으리라.
그 동안 자제해왔던 방법까지 동원한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나설 마음을 굳혔다는 뜻 아니겠는가.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
“알겠습니다, 총사.”
* * *
율검당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다.
떠날 때와 전혀 다른 무거운 분위기.
점심식사 때 뭘 잘못 씹었는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장천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거처로 향했다.
그런데 방을 이십 보쯤 남겨놓았을 때, 강도청이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비공, 당주께서 찾으시네. 조금 전에 대장로께서 오셨는데,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이 아닌가 싶네.”
장천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극 대장로께서 오셨다고요?”
강도청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직이 말했다.
“상두한 장로가 아직도 뇌옥에 갇혀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인 것 같아.”
그래서 분위기가 가라앉은 건가?
“대주께서는?”
“대주님은 방에 계시네.”
“그럼 저만 부르셨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자신이 상두한을 잡아온 장본인이라 해도 절차가 있는 법이거늘.
어쨌든 가보면 알 터.
장천운은 단승과 조원들을 방으로 보내고, 발걸음을 돌려서 당주의 거처로 향했다.
집무실에는 전무궁만 앉아 있었다.
왠지 어두운 표정이었다. 천하의 고민거리를 모두 짊어진 사람처럼.
“부르셨습니까, 당주님?”
“음, 그리 앉아라.”
전무궁은 표정만큼이나 무거운 침음을 흘리며 턱으로 탁자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앉은 장천운은 무거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대장로가 찾아온 것에 대해 들었느냐?”
“예, 대주. 조금 전 강 조장에게 들었습니다. 상두한 장로 때문에 왔습니까?”
“표면상으로는.”
표면상?
그럼 또 다른 목적이 숨어 있단 말.
장천운은 티끌만한 변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전무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 전무궁이 폭풍 앞에 선 들판 위의 외로운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왜? 무엇이 전무궁의 심기를 거세게 흔들어 놓았을까.
상두한 장로가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 목적일까?
자신이 생각할 때, 상두한 장로에 대한 사안조차 뒤로 미루어둘 만큼 중요한 목적은 많지 않았다.
“자신을 따르라 하던가요?”
“그래. 아무래도 율검당이 욕심나나 보더군.”
“율검당을 욕심내는 게 아니라 소성주님의 손발을 자르겠다는 것이겠지요.”
“그가 그러더군.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아무래도 자신의 편에 서지 않으면 가만 안 둘 모양이야.”
전무궁의 표정이 어찌나 무겁든지 입안에서 묵직한 쇳덩이가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장천운의 표정도 철판을 깐 듯 무표정하게 변했다.
“단순히 위협만 하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만.”
전무궁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대답을 미루었다.
장천운은 그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찻잔을 내려놓은 전무궁이 말했다.
“나는 황궁에서 오래 생활했다.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온갖 일을 다 겪었지. 대장로의 위협 정도에 물러섰다면 아마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다.”
그는 나극이 마지막에 한 협박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비공의 뛰어남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극이 자신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터. 자칫하면 가족의 목숨이 위험했다.
장천운은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음에도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전무궁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말씀하시지요.”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성주 곁에 너 같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너 정도 되는 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처음 본 자가 본 성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단 말이야. 고집불통 유진생도 두 말없이 따르고.”
무표정하던 장천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지금까지는 손해 볼 것도 없고, 네가 구천금령까지 지녔으니 모른 척 넘어갔다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폭풍이 부는 바다에서 속 모르는 놈에게 배의 키를 맡겨놓을 수는 없으니까.”
장천운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내가 아는 한, 소성주 곁의 인물 중에서 너와 같은 능력을 지녔던 사람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얼굴이 너무나 달라.”
장천운은 미소를 지은 채 어깨를 슬쩍 추켜올렸다.
상대는 황궁과 강호에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율검당주다.
어차피 오랫동안 속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 저를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전무궁이 숨을 한번 몰아쉬고 한 자, 한 자 씹어뱉듯 내뱉었다.
“장…천…운. 은천동에서 죽었다는 소성주의 호위. 맞지?”
장천운은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당분간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후우우우우우,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길게 한숨을 내쉰 전무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혹시나 했던 짐작이 막상 사실을 확인되자 힘이 쭉 빠졌다.
작금의 구천성에서 장천운이란 존재는 그만큼 중요했다.
게다가 그의 능력을 확인한 전무궁 아닌가.
만근 바위가 들어찬 듯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편해진 듯했다.
“소성주 곁으로 돌아갈 생각이냐?”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대령주와 대장로가 본격적으로 움직인 후에 돌아가면 늦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혹시라도 내 힘이 필요하며 말해라. 언제든.”
“감사합니다. 그런데 대장로가 정말 단순히 위협만 하고 그냥 갔습니까?”
장천운이 다시 나극의 이야기를 꺼내자, 전무궁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