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2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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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287화
단승의 고운 이마에 주름이 그어졌다.
천기등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겪은 천기등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함께 죽자고 할 인간이었다.
물에 빠져도 최소한 한 놈은 끝까지 붙잡고 함께 죽을 인간.
마지막 반격에 상처를 입은 것도 그러한 마음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사로서 최상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닌가 말이다.
“그쯤 했으면 능력에 대해서는 증명이 된 것 같습니다만.”
장천운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단승은 검을 거두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앞으로는 조장이 직접 해. 떠넘기지 말고.”
“능력 있는 부조장 놔두고 내가 왜 직접 해?”
말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단승은 입만 두어 번 삐죽이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모습을 보던 천기등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통도 잊었다.
조장이란 놈과 쾌검을 쓰는 계집 같은 놈 중 누가 더 강할까?
쾌검을 쓰는 놈이 실제로는 더 강한데, 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조장을 따르는 것 아닐까?
아니라면 더 골치가 아픈 일이다.
조장이란 놈이 쾌검을 쓰는 놈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되니까.
빌어먹을!
그의 어깨가 축 처질 때, 마침 장천운이 그를 보며 말했다.
“부디 조금 전에 한 말씀, 잊지 마시길.”
소성주에 대한 충성을 말하는 것일 터.
천기등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이 천기등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개새끼는 아니니까.”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본 장천운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오랜만에 괜찮은 눈빛을 본 듯했다.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군.’
111장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극이 율검당을 방문했을 때, 장천운이 천기등을 만나고 있었다면, 공손백은 사계를 대동하고서 천경전을 찾아갔다.
육선기는 공손백이 왔다는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가 무엇 때문에 찾아온 걸까?
어쨌든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할 수도 없는 일.
게다가 상대는 소성주가 임시성주일 동안 성의 모든 일을 감독할 수 있는 대령주 아닌가.
“안으로 모셔라.”
공손백은 사계를 밖에 놔두고 혼자서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육선기는 표정이 굳어진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대령주께서 여긴 어쩐 일이시오?”
공손백은 육선기가 맡은 후로 천경전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소성주를 따라갔던 자신이 돌아오자마자 천경전을 방문했다.
무슨 목적으로?
공손백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내가 반갑지 않은가 보군.”
“솔직히 말해서 반가워야 할 이유가 없지 않소?”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하지.”
“말해보시오.”
육선기는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공손백을 노려보았다.
“소성주가 구천성을 이끌 수 있다고 보나?”
육선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이오. 비록 일부분이지만, 소성주께선 무림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소. 대령주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분이외다.”
“이천 무사에다 지부 네 곳이 도와줬는데 패하면 더 이상한 일이지.”
“무림맹은 대령주가 상대한 안휘의 세력보다 훨씬 강한 무력이었소. 겨우 안휘의 두어 문파를 상대해본 대령주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말이오.”
비꼼이 역력한 말투.
공손백의 눈에서 푸르스름한 기운이 일렁거렸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
“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오.”
“혹시 그거 아나?”
“뭘 말이오?”
“내가 변했다는 걸.”
육선기는 순간적으로 섬뜩한 느낌을 받고 바짝 긴장했다.
“무슨……?”
그 순간, 공손백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폭발하듯 피어났다.
육선기는 뒤로 한 발을 뺐다.
동시에 공손백이 손을 뻗었다.
“이……!”
대경한 육선기가 마주 손을 뻗으며 쌍장을 통해서 공력을 발출했다.
쾅!
단발의 굉음이 방안을 울리고, 안색이 해쓱해진 육선기가 주르륵 밀려났다.
눈을 부릅뜬 그는 황급히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공손백은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내지 않고 재차 손을 들었다.
“나는 이제부터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보여주기로 했네.”
푸르스름하게 변한 그의 손바닥에서 또 다시 장력이 폭사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가공할 기운이 찰나에 육선기를 뒤덮었다.
육선기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손백의 공격에 맞섰다.
콰광!
공손백의 장력이 육선기의 장력을 그대로 밀어내며 육선기의 몸을 강타했다.
튕기듯 이 장을 훌훌 날아간 육선기는 바닥을 떼굴떼굴 구른 후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그 동안 밖에서는 사계가 집무실 입구를 지키는 호위무사 넷을 쓰러뜨리고 입구를 봉쇄했다.
공손백의 강함을 직접 몸으로 겪은 육선기는 아연한 마음이었다.
‘소성주…….’
공손백이 그에게 다가갔다.
“육선기, 지금이라도 나를 따르는 게 어떠냐?”
퉤!
육선기는 입안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 고개를 쳐들어서 공손백을 올려다보며 코웃음 쳤다.
“흥! 공손백, 죽으면 죽었지, 너처럼 신의를 저버린 놈을 따르진 않을 거다.”
공손백은 분노하는 대신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역시 대단해. 하긴 그래야 육선기지.”
“죽여라, 공손백.”
“내가 왜 너를 죽인단 말이냐? 나는 그저 구천대령주를 모욕한 너에게 징계를 내렸을 뿐이니라.”
“무슨 헛소리를…….”
“그 동안은 참고 지냈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모욕한 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릴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너인 거지.”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린 육선기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 교활한 놈이 설마……!’
아니나 다를까 공손백이 말했다.
“육선기, 상관인 대령주를 모욕하고도 징벌에 맞선 너를 천경전주의 자리에서 해임하라고 소성주에게 건의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억지 이유를 들어서 소성주의 손발을 잘라내려는 것이다.
문제는 억지인 것이 분명한데도 반박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관인 공손백을 비꼰 것도 분명하고, 상관에게 맞서서 손을 쓴 것도 분명하니까.
그것은 구천률에도 명백히 기재된 사항이었다.
* * *
천경전을 나선 공손백은 곧장 구천문원으로 사마경을 찾아갔다.
갑작스런 그의 방문에 흑월대와 수혼대는 물론이고 구천호령까지 바짝 긴장했다.
권한이 약화되었다지만 상대는 대령주였다. 막을 수도 없었다.
사마경은 느닷없이 찾아온 공손백의 말을 듣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에요? 천경전주를 해임하라니요?”
“그는, 그 동안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찾아간 나를 모욕하고, 심지어 신의를 저버린 놈이라고 했네. 게다가 상관을 모욕한 일에 대해 징벌을 내리려 하자, 맞서서 전력을 다한 장력을 펼쳤지. 본 성의 법도를 관장하는 천경전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네.”
“그게 정말인가요?”
“조사해보면 밝혀질 일, 내가 왜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육선기가 다짜고짜 그리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일전의 일로 공손백과 척을 지고 있다고는 하나 인내심 하나로 시련을 견뎌온 사람 아닌가.
보나마나 육선기를 자극했겠지.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끔 유도했겠지.
하지만 짐작하면서도 대놓고 묻기가 애매했다.
결국 사마경은 살짝 돌려서 그 일을 물었다.
“대령주께서는 육 전주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앞으로 나를 좀 도와달라고 했네. 천경전주가 대령주를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혹시 자극적인 말씀은 하지 않았나요?”
“자극이라. 무엇이 자극인가? 그럼 상관이 조금 안 좋은 소리를 하면 비꼬고 대항해도 된다는 뜻인가? 정말 그런 뜻이라면 지금 말해주게. 내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할 테니까.”
조소를 지은 채 냉랭히 받아치는 공손백의 얼굴에 싸늘한 살기가 흘렀다.
사마경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설마 공손백이 이런 치졸한 방법을 쓸 줄이야.
그러나 사실이라면 마땅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공손백에게 항거할 명분을 줄 수도 있는 일.
그녀는 말을 아끼고 혼란한 마음부터 다스렸다.
‘이런 일은 천운이 잘 처리할 텐데…….’
하지만 그는 지금 얼굴을 내밀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일단은 시간을 끌어보는 수밖에.
“정말 육 전주를 해임하길 원하나요?”
“이 공손백은 그런 자를 절대 천경전주로 인정할 수 없네.”
“좋아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하지만 천경전의 업무를 승계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시간을 주세요.”
“알겠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려서는 안 되네.”
공손백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되었다.
쥐새끼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법. 더 이상 몰아붙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대신 밖으로 나가기 전에 한마디 첨언했다.
“대령주가 아닌 백부로서 한마디 하마. 우문각을 너무 믿지 마라.”
* * *
수련당을 막 벗어나려던 장천운은 걸음을 멈추고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또 볼 일 있어?”
단승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툭 쏘듯 말했다.
어깨 쪽에 난 상처가 쓰리고 아팠다. 지혈이야 했지만, 고통까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참고 있는 것일 뿐.
“전에 만났던 친구 같아서.”
“그래?”
단승은 장천운의 시선을 따라서 좌측을 바라보았다.
좌측 이십여 장 떨어진 곳에 무사 수십 명이 뭉쳐 있었다.
저 많은 사람 중 누굴 말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도 곧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멈추었다.
나이가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 둘. 수십 명 중 눈길을 잡아끌 만한 사람은 그 둘뿐이었다.
그 두 사람은 무사 삼십여 명에게 둘러싸인 상태였다.
이미 한바탕 손을 나눈 듯 그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열 배가 넘는 무사들과 대치한 상태에서도 기세만큼은 밀리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이다.
“흠, 제법인데? 누구야?”
단승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장천운은 입술을 비틀며 묘하게 대답했다.
“한번 확인해 보자고.”
“물러서시오!”
일갈을 내지른 장천운이 율검당 조원들과 함께 다가가자, 두 무사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힐끔거렸다.
양가쌍호와 감조명, 마공추는 일류고수로 손색이 없는 자들이었다.
게다가 율검당 복장을 하고 있지 않은가.
“본인은 율검당 오대 이조 조장인 비공이오. 이곳 역시 본 성의 구역. 누구든 수련 외에 함부로 싸워서는 안 되오!”
장천운이 둘러선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사들 중 텁석부리 장한 하나가 장천운을 향해 말했다.
“이자들은 무림맹의 간자들이 분명하외다. 무림맹은 본 성의 적이니 우리가 이자들을 죽인다 해도 죄가 되지는 않을 거요.”
“무림맹의 간자?”
“그렇소.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이자들은 소림과 무당의 무공을 익히고 있소이다.”
“강호의 무사 중 소림과 무당의 무공을 익힌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족히 수만 명은 될 거요. 그 정도로는 간자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오.”
“단순한 초식을 익힌 게 아니라 정통 무공을 익혔단 말이오.”
“뭘 모르시는군. 본 율검당의 당주께서 소림의 칠십이절기 중 하나를 익혔다는 건 알고 계시오?”
“예?”
“주인걸 장로께서 한때 무당의 촉망받는 제자였던 건 아는지 모르겠소.”
“…….”
“사문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소. 상대가 간자인 실질적인 증거를 잡은 다음 죽이든, 살리든 하시오. 그럼 벌을 주기는커녕 상을 줄 거요. 그럼 다시 묻겠소. 실질적인 증거가 있소? 이자들이 무림맹과 내통하는 서신을 확보했다든가…….”
텁석부리 장한은 어물거리며 눈치를 봤다.
장천운도 그쯤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그가 중앙의 두 청년을 향해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어디에 소속되어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