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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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9화
전무궁의 집이다.
‘안 돼!’
단승은 두어 번의 도약으로 전무궁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 시간도 없었다.
쾅!
그는 닫힌 문을 그대로 부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집안에 있던 자가 고개를 돌렸다.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쯤.
그가 들고 있는 칼에 시뻘건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의 피구덩이 속에 몇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이 개새끼가!”
단승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검을 뻗었다.
벼락이 쭉 뻗어나가더니 장한의 심장을 관통해서 기둥에 박혔다.
심장에 검이 꽂힌 장한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날아드는 검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심장이 뚫려 있는 것이다.
단승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대장로는 사흘을 기다렸다 죽이라고 했는데, 왜 오늘 손을 쓴 거냐?”
장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너는 누구……?”
“개새끼 잡으러 온 사람. 말해 봐! 왜 오늘 죽였어!”
“어차피…… 연락이…… 안 올 줄 알고…….”
그때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간 양가쌍호가 급히 소리쳤다.
“부조장,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소!”
검을 회수한 단승은 장한을 한쪽에 내동댕이치고 급히 그곳으로 갔다.
몸이 온통 피로 물든 두 사람 중 아래쪽에 깔려 있던 사람이 미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원에게 데려갑시다.”
* * *
남사명은 장천운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장천운은 묵묵히 기다렸다.
일각 정도 지났을 때 남사명이 입을 열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무래도 이상하구나.”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까?”
“물론이지. 그 정도로 장기간 복용했다면 강하게 약을 썼어도 쉽게 죽지는 않았을 거다. 더구나 사마중천 정도의 절대고수라면 더 이상한 일이야.”
그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남사명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혹시……?’
하지만 가정일 뿐이었다. 그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가정.
남사명은 함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확실치 않은 말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겠군요.”
“일단은.”
장천운이 남사명을 만나고 밖으로 나오자, 막소광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저기, 대주.”
“예.”
“혹시 말이야, 정력 강해지는 약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 들어봤어?”
들어봤을 뿐만 아니라, 직접 눈으로도 봤다.
왕규가 그랬으니까.
“그런 약이 있긴 하죠.”
“그래?”
그럼 남씨라는 노인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저 방에 있는 남 노인이 누군데 그런 약을 갖고 있지? 믿을 만한 사람이야?”
“누군지 모르셨어요?”
“모르는데?”
“독왕 남사명 노선배님입니다.”
“아, 독왕…….”
그런가보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막소광의 몸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도, 도, 독……왕?’
장천운은 새로운 사실도 하나 알려줬다.
“참, 그 약 복용하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아래쪽도 털이 다 빠진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눈썹까지 말입니다.”
“…….”
“대신 효과는 확실한 것 같더군요.”
효과가 확실하다고?
‘씨발, 더 고민되잖아?’
* * *
무화원을 나서던 장천운은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율검당의 산교였다.
“마침 계셨군요.”
“무슨 일이오?”
“독고민이 여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실없는 말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천운은 그 말에 냉소를 머금었다.
“누구요?”
“그게…… 소성주님의 시비 중 하나인 류화 소저입니다.”
뭐? 이 자식이 구산에게 죽으려고!
아니다, 이제는 구산을 하찮게 보겠지.
“어디서 만나고 있소?”
“남문 밖에 있는 소원루입니다.”
화금당주 류징이 죽은 후 구천성은 그녀의 가족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그 거처가 남문 밖에 있었다.
“감시는 철저히 하고 있소?”
“저 그게…….”
산교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머뭇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이대주가 직접 처리하겠다며 저희 조원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장천운은 독고민을 감시하는 일에 오대 이조원을 투입했다.
악승, 마공추, 감조명, 진명산이라면 무공 면에서도 일류고수들이고, 강호 경험도 많았다.
독고민을 감시하는 일 정도라면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들을 돌려보냈다고?
물론 율검당 이대라면 율검당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이니 일처리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쓸데없는 사심이 들어갔을 때다.
“그럼 이조원들은 어디 있소?”
“그 근처의 객잔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안내하시오.”
장천운은 남문을 나서서 소원루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조원이 대기하고 있는 객잔에는 악승만 있었다.
악승은 장천운이 산교와 함께 들어오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독고민이 소원루를 나와서 이동했습니다. 그래서 저만 남고 나머지 세 사람은 이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일단 한 사람씩 뒤로 처져서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객잔을 나선 악승은 장천운을 동쪽으로 안내했다.
백여 장쯤 가자 마공추가 그들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저쪽으로 갔습니다.”
마공추가 남쪽으로 꺾어진 곳을 가리켰다.
그로부터 다시 백여 장을 남쪽으로 달려가자 감조명과 진명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함께 기다린다는 것은 목표물이 멈추었다는 뜻.
장천운은 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표정이 풀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순간,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진조명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독고민이 사라졌습니다.”
“뭐요?”
“이대원들이 지금 저 안쪽 골목을 뒤지고 있는데, 아직 못 찾은 모양입니다.”
뒤이어 마공추가 이마를 찌푸리고 한마디 거들었다.
“소원루를 나올 때부터 수상했소. 평소와 달리 느긋하게 걸으면서 좌우를 둘러보는데, 아무래도 꼬리가 달렸다는 걸 눈치 챈 것 같았소.”
“이대 대원들이 열 명 넘게 깔렸고, 그 중 몇은 가까이 다가갔는데 눈치 못 채면 그게 병신이지.”
진명산이 투덜댔다.
그의 말대로 이대는 모두 열두 명을 투입해서 사방을 차단했다.
그 중 서너 명은 십 장 이내로 접근했다.
처음부터 주의하고 있던 독고민이라면 누군가가 감시한다는 걸 눈치 챘을 가능성이 컸다.
장천운은 그 정도 설명만으로 대충 상황을 유추했다.
‘빌어먹을! 그냥 멀리서 감시만 하라고 했더니, 왜 접근을 해?’
화가 나는 한편으로 류화가 왜 독고민과 만났는지 의아한 마음이었다.
전이었다면 독고민을 만난 것에 의문을 품을 것도 없었다. 예전부터 화려한 삶을 꿈꾸던 여자니까.
하지만 구산에게 마음을 열어놓은 후부터는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설마 아직도 예전 같은 마음이 남아 있단 말인가?
충분히 가능한 짐작이었다. 여자의 본능은 화려함과 부귀영화를 찾게 마련이니까.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구산이 충격을 받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봐야 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주?”
진명산이 넌지시 물었다.
장천운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단 이대주를 만나봐야겠소.”
산평은 느닷없이 나타난 장천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일은 우리 율검당의 임무네. 그대가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네만.”
“소성주의 호위인 류화가 관련된 일이오.”
“그거야 우연히 그렇게 된 거고, 본 목적은 독고민의 감시 아닌가?”
“맞소. 그런데 왜 독고민에게 사람을 그렇게 가까이 붙인 거요?”
“그거야 무슨 말이 오가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네.”
“철저히 감시만 하라는 말, 당주께 못 들으셨소?”
“기왕이면 좀 더 정확한 걸 알아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독고민이 사라진 게 왜 우리만의 잘못이란 말인가? 오대 이조원들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더 이상의 대화는 시간낭비였다.
“지금부터 우리가 맡겠소. 이대는 우리를 보조해주시오.”
“무공이 강하고 소성주와 당주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그 계집의 얼굴을 보니 굉장한 미인이던데, 이제 보니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보군.”
산평은 입술을 비틀며 비아냥거렸다.
순간, 장천운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산평도 비아냥거리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장천운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한두 수쯤 받아낼 수 없으랴.
하지만 오만한 착각이었다.
장천운의 공격에 대응하려던 그는 몸이 굳어버렸다.
눈앞이 온통 거대한 손 그림자로 가득했다. 그 손에 짓눌려서 영혼조차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공포를 느낀 시간은 영겁처럼 길었다.
산평의 멱살을 움켜쥔 장천운은 그를 담장에 냅다 밀어붙였다.
쾅!
담장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온몸에 충격을 받은 산평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내 말 잘 들어, 산평. 만약 류화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은 백배의 고통을 당하게 될 거야. 머리카락 하나만 빠져도, 나는 당신의 머리를 생으로 다 뽑아버릴 거야.”
으르렁거리듯 나직이 읊조린 장천운은 산평을 한쪽에 내던졌다.
이대의 대원들은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침만 삼켰다.
“한 사람은 대주를 업고 돌아가시오.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부터 내 지휘를 받으시오. 이건 구천금령 령주로서 하는 명령이오.”
대주가 당하는 걸 보고 못마땅한 표정이었던 이대의 두 조장 눈이 휘둥그레졌다.
흑월대주와 구천금령 령주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령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 * *
류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독고민과 함께 걸은 지 일각이 넘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추적도 따돌렸다. 그리고 이제는 인적이 거의 없는 갈대밭 사이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함께 걷고 싶어서 걷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는 경천단 단주의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독을 쓴 자였다.
어머니와 동생의 목숨이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혈도를 제압당해서 공력을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빌어먹을, 율검당 놈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니.”
독고민은 이를 갈며 투덜댔다.
너무 성급하게 류화를 노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감시를 눈치 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류화에게 어머니와 동생을 중독 시켰다는 걸 밝힌 후였으니까.
조금만 빨리 알았어도 류화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류화의 어머니와 동생이야 죽든 말든.
그들이 죽고 나면 누가 독을 썼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투덜댄다고 들킨 사실이 없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기회에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마음을 정리한 그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류화를 바라보았다.
“후후후후, 너로선 횡재한 셈이지. 나 같은 남자의 사랑을 받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더냐? 더구나 내가 새로운 문파를 만들면 너는 그 문파 주인의 정부인이 되는 거야.”
독고민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류화는 문파 주인의 부인도 싫었다.
독고민이 그럴수록 오로지 사랑만 갈구하는 구산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정말 저를 원한다면 어머니와 동생의 독부터 해독시켜줘요. 제가 당신 손에 있으니 어머니와 동생은 해독해줘도 되잖아요?”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지.”
“이런 식으로는 여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걸 모르나요?”
“나도 알아. 아주 잘 알지. 요즘 여자들은 오만해서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여자인 줄 알거든. 물론 너는 그래도 되지만.”
“공자가 하라는 일은 뭐든 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어머니와 동생부터 살려주세요.”
류화는 다시 한 번 애원해보았다.
독고민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졌다.
“무엇이든 한다? 그럼 사마경이 마시는 차에 독도 탈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