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8화
사마경의 커다란 눈이 격렬하게 떨렸다.
주먹을 움켜쥐고 겨우 마음을 안정시킨 그녀는 한기가 풀풀 날리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어요.”
공손백의 표정도 굳어졌다.
사마경이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폭발한다면 그 일을 꼬투리 삼아서 구천무원을 뒤집으려고 했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을성이 강했다.
‘지독한 년!’
암중에 품고 있던 계획이 물 건너간 이상 이제는 본 목적에 충실 하는 수밖에.
공손백은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와 대장로는 중천에게 독을 복용시켰다. 그것만큼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중천은…… 나와 대장로가 죽지지 않았다.”
그들이 손을 썼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이다.
더구나 스스로의 입으로 독을 복용시켰다고 했지 않은가.
그런데 죽이지 않았다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물론 직접 손을 쓰지는 않으셨겠죠. 하지만 깊숙이 관여된 것은 사실 아닌가요? 살인교사도 살인 못지않은 죄라는 걸 모르시진 않겠죠?”
“내 말은, 우리가 쓴 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중천은 우리가 죽였다고 할 수 없다.”
자신들이 사용한 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다?
말도 안 된다. 이미 독살이라고 판명되었는데, 독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니!
사마경은 분기가 머리끝까지 솟구쳤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앞에 있는 두 사람도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말을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두 분이 아니면, 그럼 누가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건가요?”
사마경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싸늘해졌다.
여차하면 장천운에게 두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작정이었다.
구천성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욕해도 부끄럽지 않았다.
구천성의 임시성주 자리에서 쫓겨나도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구천성에는 욕심이 없었으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솔직히 처음에만 해도 우리 쪽에 의해서 죽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사마경의 서릿발로 뒤덮인 눈이 찰나 간 흔들렸다.
“어떤 이상한 점이 있었다는 거죠?”
“우리가 쓴 독이 극독이기는 하지만, 장기복용을 시켰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급사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중천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공력을 잃게 만들어서 성주자리를 스스로 넘기게끔 만들려고 했다. 죽으면 지금처럼 일이 복잡해지니까. 그런데 갑자기 죽는 바람에 우리도 당황했다.”
“흥! 독에 대해 정통한 분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독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면 급사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요?”
“의약당의 황 당주가 자살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책임을 지고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죽기 전까지도 자신은 용량을 정확히 썼다고 말했다.”
“어쨌든 두 분이 쓴 독에 의해서 돌아가신 건 분명하지 않나요?”
“우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새로운 사실이라고요?”
“당시 중천의 시비였던 계집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성주의 약에 독이 들어 있다는 걸 알고, 너무 죄스러워서 해독에 좋은 약을 몰래 첨가했다더군.”
그렇다면 더더욱 죽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도 죽었다.
“결국 우린, 우리가 쓴 독 때문에 중천이 죽은 게 아니라, 다른 자들에 의해서 죽었다고 결론 내렸다.”
어차피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판이다. 그게 사실이라 해도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직접 찾아와서 말하는 걸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사마경은 들끓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도 짐작만 할 뿐이다. 어쩌면 천외, 그 중에서도 암천의 사람이 손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대령주께서도 암천의 사람 아닌가요? 그런데도 당시에 몰랐단 말인가요?”
“우린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참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또 다른 독을 썼다면 모를 수밖에 없다.”
“누굴 의심하시나요?”
“독고광. 독고태의 숙부. 아마 너도 그자를 알 것이다. 저기 서있는 장천운도.”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스스로 암천을 밝히고, 암천을 범인의 무리로 몰다니.
왜?
그에 대한 의문은 나극이 풀어주었다.
“처음에 말했다시피, 우린 구천성을 천외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네.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우리끼리의 다툼은 천외의 무리를 물리친 이후에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일을 위해서라면 우리도 소성주를 도울 것이네.”
실로 경천동지할 제안이었다.
물론 그 안에 음흉한 계획이 숨어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천외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공손백이 그런 계책에 찬성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독고광을 제거하고 내가 암천과의 관계를 끊으면, 일단 암천은 이곳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암천의 주인이 직접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청산궁과 금룡장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다.”
공손백이 보다 더 자세히 말했다.
사마경은 그들의 놀라운 제안에 바로 대답을 못했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진 것보다 더 갑작스런 일이었다.
“청산궁과 금룡장까지 물리치려면 쉽지 않을 거예요.”
“쉬운 일이었으면 찾아올 일도 없었다.”
공손백이 마지못해서 하는 것처럼 냉랭하게 말하자, 나극이 끼어들었다.
“결정은 소성주가 내리게. 어떻게 할 건가? 힘을 합쳐서 천외를 상대할 건가, 아니면 그들을 놔둔 채 계속 대립할 건가?”
사마경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정말 아버지의 죽음에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면, 그 진실에 천외가 관여되어 있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아요, 제안을 받아들이죠.”
* * *
사마경은 공손백과 나극이 집무실을 나간 뒤로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사실일까?”
“현재로선 반반입니다.”
“천운은 그들의 말을 믿는군.”
하여간 눈치는 귀신이 다 되었다.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건 사실이다. 사마경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거짓이 아니라 해도 죄를 지은 것만은 사실 아냐?”
“물론이죠. 전대 성주께 독을 복용시켜서 구천성을 차지하려 한 것만으로도 대역죄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이죠.”
“맞아. 그것만 해도 죽을죄지.”
사마경이 이를 갈 듯 입에 힘을 주고 말했다.
장천운이 왜 그녀의 마음을 모를까. 아마 그녀는 두 사람이 앞에 있을 때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죄를 지금 물을 것인지, 아니며 천외를 처리한 후에 물을 것인지, 소성주께서는 그것만 결정내리시면 됩니다.”
“약속한 것은 지켜야지. 대신 나중에 책임을 철저히 물을 거야. 아주 철저히.”
“저들도 나중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을 겁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니까.”
“그럼 대령주의 이야기에 대해선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해.”
조금은 무거운 어조로 대답한 사마경은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들’에게서는 아직 연락이 없었다.
천외의 무리를 제거할 때까지는 찾지도, 적으로 대하지도 말라고 해서 참고 있지만, 하루하루 속이 탔다.
아마 천운이 옆에 없었으면 미쳐버렸을지 몰랐다.
“아마…… 잘하셨다고 하셨을 겁니다.”
천운이 옆에서 말한다.
자신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괜히 심통이 났다.
“쫓겨나도 굶지는 않겠네. 돗자리 하나 줄까?”
122장 용서치 않으리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
끈적끈적한 습기로 뒤덮인 낙양의 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그런데 그 한산한 거리의 한쪽 골목에서 누군가가 검지를 뻗어서 주루를 가리켰다.
“저기에 있소.”
양가쌍호 중 양산이었다.
단승은 빗속에 잠긴 주루를 바라보았다.
어제 도착해서 전무궁의 집 주위를 철저히 살펴보았다.
수상한 자들 서넛이 집 안쪽을 슬쩍슬쩍 살펴보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극이 보낸 자들이었다.
그들이 낙양에 도착한지 이틀째. 이제 하루가 남았다.
더 늦기 전에 제거하는 게 좋을 듯했다. 비가 온다 해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낙양 백검문의 주인 설태위는 소성주보다 공손백과 더 가깝다. 그들이 나서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들이 심심한지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가봅시다.”
주루로 들어간 단승은 나극이 보낸 자들로부터 탁자 두 개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극이 보낸 자들은 모두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무공 수준은 일류고수로 제법 사람깨나 죽여 본 인상이었다.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인원은 모두 넷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리에는 셋밖에 없었다.
그들은 단승 쪽을 슬쩍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단승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개중에는 여자 손님도 있었는데, 눈을 떼지 못했다.
단승과 양가쌍호는 요리를 시켜놓고 보이지 않는 자가 마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요리를 다 먹기 전에 한 사람이 그들 자리에 앉았다.
쑥덕거리는 걸 보니 뭔가를 모의하는 듯했다.
가끔 음충맞은 표정으로 낄낄거리는 걸 보면 그저 음담패설을 나누는 것 같기도 했고.
단승은 슬쩍 슬쩍 그들을 살피며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차를 마시기도 전에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 중 하나의 목소리가 언뜻 들렸다.
“그럼 지금 가보지요.”
지금 간다?
전무궁의 집으로 가겠다는 건가?
계획보다 하루 일찍?
‘휴우우, 조금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내심 다행으로 생각한 단승은 밖으로 나가는 자들을 곁눈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가쌍호도 별 말 없이 그를 따라서 일어났다.
예상대로 네 사람은 전무궁의 집이 있는 곳으로 곧장 길을 잡았다.
굵은 비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을 비 맞으며 걷는 모습은 멋있다기보다 청승맞았다.
단승은 그자들이 전무궁의 집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걸음을 빨리했다.
마침 그곳에는 한적한 공터가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오가지 않았다. 지금처럼 비가 올 때는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을 듯했다.
누군가를 죽이기에는 적당한 장소.
단승이 오 장 뒤까지 접근했을 때, 앞장서서 걸어가던 자들이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단승이 신형을 날렸다.
찰나에 오 장 거리가 좁혀졌다.
쉬아악!
벼락처럼 뽑아져 나온 검이 빗방울을 튕겨내며 극쾌의 다.
“웬 놈……!”
놀라서 소리를 내지르려던 자가 마주 검을 뽑으며 대항했다.
그러나 단승의 검은 그자의 검이 반도 뽑히기 전에 이미 허공을 쓸고 지나갔다.
쩡!
부러진 검 반쪽이 빙글빙글 허공을 날았다.
단승은 날아든 검을 튕겨낸 직후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양가쌍호도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손에는 창이 쥐어져 있었다.
찰나의 순간 시뻘건 피가 튀었다.
처참한 비명도 터져 나왔다.
단승과 양가쌍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수를 썼다.
오 초도 되지 않아서 장한 넷이 쓰러졌다.
그 중 셋은 단승에게, 하나는 양가쌍호에게 당했다.
단승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검을 거두었다.
‘그 자식이 없으니 기분이 한결 낫군.’
씩, 웃은 그는 살아 있는, 아니 살려놓은 자에게 다가갔다.
“뭐 좀 물어보자”
으드득.
살아있는 자가 이를 갈았다.
혈도를 짚이고 다쳐서 움직일 수 없지만 얼굴 근육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순순히 묻는 말에 대답한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지.”
“…….”
“버텨봐야 당신만 손해야.”
“뭐하는 새끼인데…….”
“당신들, 구천성에서 왔지?”
쓰러져 있던 장한의 눈이 커졌다.
“너는 누군데……?”
“대장로가 보냈지?”
“…….”
단승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잡힌 자는 빠져나갈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런데 질문을 던지던 단승이 갑자기 땅을 박차고 전무궁의 집으로 신형을 날렸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양가쌍호도 이를 악물도 뒤쫓아 갔다.
신문 와중에 놈이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아. 네 명이 왔지. 그런데 이걸 어쩌지? 저쪽에 죽은 놈은 구천성에서 온 일행이 아냐. 이곳에서 알게 된 놈이지. 그리고 조장은 먼저 전무궁의 집으로 갔어. 왜 간줄 알아? 흐흐흐흐.”
인원이 넷인 것은 맞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바뀌었다.
이들을 구천성에서 이끌고 온 조장이란 놈.
옷 색깔이 비슷해서 그놈으로 생각했다.
놈이 전무궁의 집에 갔다면 이미 상황이 끝났을지 모른다.
“으악!”
“네 이놈!”
저 앞의 집에서 비명과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