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7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7화
금룡신군의 목소리.
탁무겸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려고 왔지.”
“서로의 일에 끼어들지 않기로 한 약속,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허허허허, 노부는 자네 일에 끼어들 마음이 없네. 하던 일을 마저 끝내게나.”
탁무겸도 금룡신군이 끼어들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무런 손해 없이 장천운을 잡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장천운은 손해 없이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공력의 손해를 입거나 부상을 당하면, 금룡신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을 제거하려 할 것이다.
빤히 알면서 당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금룡신군이 왔다면 청산자 역시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장주께서 이 친구에게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런데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군요.”
“오해하지 말게. 나는 정말로 두 사람의 대결을 구경만 할 생각이니까.”
탁무겸은 냉소를 지은 채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아쉽지만 우리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남 좋은 일 시켜주는 건 원치 않습니다.”
“하나만 묻자. 좀 전의 검, 무엇이더냐?”
“아직은 이름이 없습니다. 얻은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탁무겸의 눈에 갈등의 빛이 떠올랐다.
참으로 놀라운 놈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망설이게 만든 그 검을 스스로 만들었단 말인가?
무리를 해서라도 그냥 죽여야 하나?
그러한 검을 만든 놈이라면 나중에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장천운이 말을 이었다.
“비록 제가 만든 검은 아니지만, 그 검을 완성하면 귀하와 좋은 대결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탁무겸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살심을 누그러뜨렸다.
그럼 그렇지, 그런 마음.
어찌 보면 오만이 빚어낸 마음의 변화일 수도 있었다.
“그 날을 기다려보지.”
콰과광! 떠덩!
두 사람이 조용한 대신, 다른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오만한 표정으로 답을 마친 탁무겸이 고개를 돌렸다.
십이암귀와 장천운을 따라온 고수들이 경천동지의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싸웠다. 십이암귀의 움직임은 유령 같았고, 공격 역시 은밀했다.
우곡은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은밀함으로 맞상대했고, 진교청과 둔가부는 모든 걸 다 때려부수겠다는 듯 힘으로 밀어붙였다.
복우쌍노 역시 탁무겸에게 느낀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평소보다 더 과격하게 싸움에 임했다.
그들에게서 들린 폭음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그들은 거리를 두고 갈라섰다. 탁무겸과 장천운이 싸움을 멈춘 걸 알고 그들 역시 격전을 멈춘 것이다.
우곡과 둔가부, 진교청, 복우쌍노는 표정이 편치 않았다.
상대가 비록 열두 명이라 하나 일개 수하다.
자신들의 힘으로 그들조차 처리하지 못하다니.
그들 중 대여섯 놈이 제법 심한 부상을 입은 듯 보였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탁무겸의 묵직한 목소리가 떨어짐과 동시, 그와 십이암귀가 사찰 내에서 사라졌다.
장천운은 높다란 석불 위를 올려다보았다.
금룡신군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올려다봤을 때는 사라지고 난 뒤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 섣불리 그와 싸우지 마라. 노부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느냐?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멀리서 전음이 들렸다. 마치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장천운은 전음을 들으며 연검을 거두었다.
“어이가 없군. 세상을 헛 산 기분이야.”
진교청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장천운과 탁무겸이 싸우는 걸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대결이 아니었다.
신이 싸운다면 저럴까 싶었다.
“나처럼 포기하면 편하다네.”
우곡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장천운에게 다가갔다.
장천운이 울컥 하더니 핏덩이를 뱉어냈다.
우곡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강함이었다.
절대경지의 고수인 그들조차 반경 오 장 이내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목도한 셈이었다.
“괜찮습니까, 소사조?”
“약간 충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장천운은 소매로 입가의 피를 쓱 닦아내고 돌아섰다.
“그만 가지요.”
* * *
장천운은 각오하고 있던 터라 사마경의 도끼눈을 피하지 않았다.
“하여간…… 잠시도 그냥 못 놔둔다니까. 아마 세 살짜리 아기도 천운보다는 말썽을 덜 피울 거야.”
“피만 조금 토했을 뿐입니다.”
“피까지 토했어?”
“별 거 아닙니다. 내장이 충격을 받아서 출혈을 일으키는 바람에…….”
사마경의 눈이 더욱 커졌다.
“그럼 내장까지 상했단 말이야?”
‘뭔 말을 못한다니까.’
장천운은 불만이 많았지만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말해봐야 자신만 손해일 듯했다.
“왜 말을 하다가 말아? 내장이 상했다며? 그럼 아무 것도 못 먹겠네?”
“…….”
“다른 일에나 그렇게 열심히 하지. 꼭 일을 못하는 사람들이 밖에서 다쳐갖고 들어온다니까. 쯔쯔쯔.”
끝내 사마경의 입에서 혀 차는 소리가 나고 잔소리가 끝났다.
하지만 잔소리가 끝난 것과 용서는 다른 이야기였다.
“벌칙으로 오늘은 밤새. 운기요상도 지하수련실에서 하고. 나도 수련할 거야.”
소연추와 류화는 모른 척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수고하게나.”
구양명도 그 말만하고는 나가버렸다.
* * *
아침이 되자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다.
팽팽한 긴장감도 빗소리에 파묻혀서 조금은 느슨해졌다.
진시(辰時:오전7시~9시) 초에 지하수련실에서 나온 장천운은 창밖에서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비릿한 피 냄새가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단승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군.’
단승과 양가쌍호를 낙양으로 보냈다.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것이다.
그들이 실패한다면 전무궁의 부인과 자식이 죽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구천성에도 피바람이 불 거다. 아주 지독한 피바람이. 내가 직접 그 대가를 받아낼 테니까.’
전무궁을 위험에 빠뜨린 것은 자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그의 등을 떠밀지만 않았어도 그의 부인과 자식은 목숨을 위협받지 않았을 테니까.
사시(巳時:오전9시~11시)가 되자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늦잠을 잔 사마경이 집무실로 나왔다.
연송하는 시무룩한 표정을 최대한 감추고 차를 준비했다.
그녀는 사마경이 늦잠을 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진 않지만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소성주님,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가져올까요?”
“어, 그래.”
사마경도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조금은 멋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송하는 슬쩍 장천운을 바라본 뒤 방을 나섰다.
장천운은 등을 보인 채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좋아서 보는 것이 아니었다.
연송하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런데 사마경이 그의 뒤에 대고 말했다.
“천운, 송하까지는 허락할 게.”
“…….”
“솔직히, 나 혼자서는 감당이 힘들 거 같아.”
“…….”
무슨 말인지 장천운도 알고 있었다. 머쓱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시 말, 사마경이 늦은 아침식사를 거의 다 마쳤을 때였다.
“소성주, 대령주와 대장로께서 오셨습니다.”
사마경이 귀환한 뒤 두 사람은 구천무원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천운, 무슨 일로 왔다고 생각해?”
“구천대평의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날짜를 당기려고?”
“십이지부에서 대표가 한 사람이도 덜 오면 그만큼 자신들에게 유리하니까요.”
“다른 이유는?”
“만나기 싫은 소성주를 찾아와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요.”
사마경이 장천운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말뜻만큼은 자신이 생각해도 그럴 듯했다.
“그 중요한 일이 뭘까?”
“저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러지 뭐. 혁련 조장, 안으로 모셔.”
집무실 안에는 다용도로 사용하는 작은 탁자와 10인 이상 둘러앉을 수 있는 대탁자가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들어온 공손백과 나극은 대탁자에서 사마경과 마주앉았다.
“지금 막 식사를 해서 음식냄새가 좀 날 거예요.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네.”
나극이 침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에게서 피어난 기운이 집무실에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차단한 상태였다.
“말씀해보세요.”
“소성주도 천외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네.”
뜻밖의 말에 사마경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천외라는 단어조차 함부로 내뱉지 못했던 때가 불과 며칠 전이다.
그런데 이제 나극의 입에서 천외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들이 두렵지 않다는 건가?
아니면 맞설 만큼 힘을 갖추어서?
더구나 암천을 배후에 둔 공손백마저 있지 않은가.
어쨌든 들어보면 알 터.
사마경은 말을 재촉하듯 나극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극이 말을 이었다.
“우린 수십 년 동안 피땀으로 일군 구천성을 천외에 넘겨주고 싶지 않네.”
사마경이 참지 못하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구천성이 천외 덕분에 컸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가 보던데요.”
의외로 나극은 반박하지 않았다.
“소성주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면도 없지는 않네. 천외의 힘이 없었다면 구천성이 이정도로 크지는 못했을 거야.”
헛소리라 할 수만은 없었다.
구천성이 크는데 천외가 암암리에 힘을 보탠 것만큼은 사실이니까.
문제는 그들이 도와준 목적이었다.
그들은 순수하게 도와주는 척하면서 구천성을 자신들의 꼭두각시로 만들려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버님은 그들의 견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셨죠. 그렇게 해서 겨우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났지만…… 결국 이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사마중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사마경의 목소리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단순히 목소리에서 온기가 사라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 안이 빙굴로 변해버린 듯 한기가 흘렀다.
공손백과 나극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가운 어조로 말하는 사마경에게서 도도한 위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무림맹과의 전쟁을 중단하고 돌아왔을 때 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이삼일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사이에 그녀는 꽃봉오리가 만개해서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모란꽃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최근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 일은 노부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네.”
“저승에 계신 아버님께서 대장로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모르겠군요.”
질타가 섞인 사마경의 말에 나극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전대 성주가 강호정벌을 멈춘 일에 대해서만큼은 지금도 찬성하지 않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나극이 의견차이 때문에 성주를 죽일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네.”
사마경의 눈이 공손백에게로 향했다.
“대령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이제 마주하고도 사백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공손백은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그도 사마경을 소성주로서 존대하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장로께서, 싸울 때 싸우더라도 사실은 정확히 밝히자고 해서 왔다. 만약 네가 오늘 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모두 이야기하마.”
무슨 소리지?
사마경의 뒤에 서있던 장천운조차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사마경은 공손백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사실을 밝히겠다는 것이죠?”
“네 아버지, 사마중천의 죽음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