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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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6화
남사명은 정중하게 성주의 집무실로 모셔졌다.
여전히 탐탁지 않은 표정이긴 했지만.
사마경은 환한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노선배님.”
“젊은 놈 교육부터 제대로 시켜야겠다.”
사마경도 백리우진에 대해서 들은 터라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정말 사흘 안에 죽나요?”
“그대로 놔두면.”
“갑자기 내일 죽는다든가 하지는 않아요?”
“모레까지는 괜찮을 거다.”
“그럼 하루 더 놔두죠 뭐. 괜찮죠?”
“별 일은 없을 거다. 하루에 몇 번씩 설사야 하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런데 손녀는 함께 안 왔어요?”
“나만 왔다.”
“천운이 정말 예쁘다고 하던데.”
“초초야 예쁘지.”
남사명도 처음에는 경계했다.
사마경과 장천운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어찌 보면 사마경은 남초초의 연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살갑게 대하는 사마경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마음이 풀어졌다.
“손녀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줘요. 저도 몹시 궁금하거든요.”
남사명이 도착하고 반 시진쯤 지났을 때 장천운이 임청백과 함께 구천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일단 모용예부터 임청백에게 인계해주었다.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는 모용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장천운도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모용예의 일을 처리한 그는 구천무원으로 갔다.
그런데 절독곡에서 만난 노인이 자신을 찾아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곧장 구천무원 성주집무실로 들어갔다.
남사명과 사마경이 마주앉아 있었다.
장천운이 안으로 들어가자, 사마경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왔어? 이쪽으로 와서 앉아. 남 노선배님과 초초 소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장천운은 뜨끔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음, 조금 전에 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장천운이 넌지시 물었다.
남사명이 왜 혼자서 이곳까지 왔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남사명이 말했다.
“전에 네가 말한 뇌혈산 때문에 해줄 이야기가 있어서.”
“뇌혈산이요?”
뇌혈산이라면 귀독마종이 만든 독이다. 사마중천을 독살하는데 쓴 극독.
“그래. 뇌혈산에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효능이 하나 있는데, 들은 지 워낙 오래 되어서 잊고 있다가 얼마 전에야 생각났다.”
“그래요? 그게 뭡니까?”
“뇌혈산에 다른 독을 하나 섞으면 한동안 온몸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뇌의 기능도 마비되는 거지. 마치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말이다.”
“괴이한 효능이군요.”
“문제는 살아난다 해도 감각과 이성이 둔해진다는 거다.”
“그럼 누가 그걸 사용하려고 하겠습니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만, 대신 고통을 잘 견디고 공력이 증진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 참 신기하군요.”
그때만 해도 그렇게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장천운도, 사마경도.
* * *
독왕 남사명이 사마경을 찾아왔다는 말은 비밀로 취급되었다.
수혼대 무사들도 그저 이상한 노인이 장천운을 찾아왔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장천운은 남사명을 무화원에 머물게 했다.
남사명의 정체를 모르고 있던 흑월대원들은 웬 노인이 장천운의 꿰임에 빠져 들어왔나 보다 했다.
“무창 쪽은 네 말대로 준비를 끝냈다. 무적장에 갔던 사자도 돌아왔는데, 그들 역시 네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잘됐군요. 그럼 일단 남쪽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아, 그리고 사밀령 사령주 초광이 흑월회에 잡혀 있다.”
“예? 사령주가요?”
“너를 찾으려고 온 것 같다. 그런데…….”
남사명의 이야기를 다 들은 장천운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겉모습과 달리 엉뚱한 면이 있는 사람입니다. 일단 풀어주라고 해야겠군요. 말씀대로 저와의 연락을 맡겨야겠습니다.”
“들어오다 보니까,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애들이 꽤 있는 것 같던데, 무림맹과의 싸움에서 다친 애들이냐?”
“좀 봐주시겠습니까? 꾸준히 치료해서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싸움에 나설 수 없는 사람도 몇 명 있습니다.”
“알았다. 밥값은 해야지. 구천성에서 공짜밥 먹기는 싫으니까.”
장천운은 무화원에서 남사명과 한 시진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구천무원으로 돌아갔다.
남사명은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은 흑월대원들을 치료해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흑월대원들은 그를 의원으로 알았다.
막소광은 남사명에게 넌지시 부탁하기도 했다.
“의원 노인장, 혹시 몸에 좋은 약 있으면 좀 주쇼. 요즘 아랫도리 기가 허해서…….”
“나에게 그런 약은 없네.”
“거, 나중에 내가 술 한 잔 살 테니까 좀 주쇼. 의원들이 그런 약 한두 가지쯤 갖고 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쑤.”
남사명에게 그런 약은 없었다. 독만 있을 뿐.
아! 추천할 약은 있었다.
“음, 권할 수 있는 약이 하나 있긴 한데, 복용하면 머리카락이 다 빠지네. 그래도 괜찮겠나?”
그날, 막소광은 머리카락과 아랫도리 기를 놓고 고민해야만 했다.
* * *
해시 무렵.
장천운은 구천성을 나서서 칠산사로 향했다.
한여름 밤하늘은 구름으로 덮여서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공기에서도 축축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도 그만큼 무거웠다.
탁무겸이 어떻게 나올까. 자신을 죽이려고 할까?
그럴 가능성도 많았다.
알고도 가는 것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우곡 일행을 대동했다. 그들이 도와준다면 위험에서 벗어날 확률이 훨씬 커질 것이다.
칠산사에 도착할 즈음,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장천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나는 운이 좋단 말이야.’
비가 오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사천왕상 사이를 통과한 그는 대웅전을 쳐다보았다.
불이 켜진 대웅전 앞에 탁무겸이 서있었다.
그를 호위하는 자들의 끈적거리는 기운도 사방에서 느껴졌다.
장천운이 마당으로 들어서자, 탁무겸이 담담히 말했다.
“용기가 가상하군. 역시 내가 사람은 잘 봤어.”
“제가 비록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할 때도 있긴 하지만, 약속을 어길 만큼 신의가 없는 놈은 아닙니다.”
“생각해 봤느냐?”
“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냐? 너에겐 절대로 손해될 것이 없는데.”
“사는 게 재미가 없을 것 같거든요.”
엉뚱한 장천운의 대답에 탁무겸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만큼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던 이전의 미소와 달랐다.
“재미야 상황에 맞춰서 찾으면 되는 일, 어려운 일도 아니구나.”
“또 하나 말씀드리면, 어둠 속에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흐음, 아쉽구나. 받아들였으면 했거늘…….”
탁무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암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정말 내 사람이 될 생각이 없느냐?”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할 수는 없죠.”
장천운은 담담히 대답하며 품속에 손을 넣어 연검을 잡았다.
그때 장천운 뒤쪽에서 몇 줄기 기운이 다가왔다.
환마 우곡을 비롯하여 교왕과 패왕, 복우쌍노였다.
장천운은 그들에게 거리를 두고 따라오라고 했다.
그들도 장천운의 말대로 밖에 머물다가 상황을 봐서 뛰어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칠산사 안에서 온몸을 떨리게 만드는 가공할 기운이 느껴지자 기다릴 수가 없었다.
“제법 괜찮은 사람들을 데려왔구나.”
“아무래도 혼자서는 힘들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들이 너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 보느냐?”
“저분들은 숨어서 눈치나 보는 자들을 상대할 겁니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상대할 자신이 있나 보구나.”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도망이라도 가야죠.”
“하하하, 그 녀석. 끝까지 마음에 드는 소리를 하는군. 그래, 좋다! 나도 너만 상대하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탁무겸이 대웅전에서 발을 내딛었다.
단지 걸음을 내딛었을 뿐인데도 대웅전과 그 일대의 모든 어둠이 장천운 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를 악문 장천운은 공력을 끌어올리고 연검을 뽑았다.
그의 뒤에 늘어서 있던 우곡 등은 난생처음 등골이 오싹해졌다.
맙소사! 도대체 저자가 누군데 저리도 강한 기운을 지녔단 말인가.
우곡은 그래도 금룡신군의 기운을 대해 본 적이 있어서 나았다.
교왕과 패왕, 복우쌍노는 생경한 두려움에 오한이 들 지경이었다.
장천운이 그들에게 상대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암천문의 주인인 탁무겸이란 분입니다. 저분은 제가 상대할 테니, 다섯 분께서는 숨어있는 마귀들이나 갖고 노십시오.”
그때였다.
은신해 있던 암류가 더욱 빠르고 강하게 흘렀다.
분노에 찬 마기의 발산.
어지간한 고수들은 그 기세만 접하고도 숨조차 쉬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우곡 일행도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너희는 우리가 상대해주마!”
교왕과 우곡은 좌측으로, 패왕과 복우쌍노는 우측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 사이 탁무겸이 계단을 다 내려와서 장천운과 삼 장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우우우웅!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진공상태라도 된 듯 고막을 먹먹하게 만드는 공명음이 울렸다.
그 순간, 장천운이 앞으로 죽 나아가며 연검을 뻗었다.
탁무겸도 우수를 들어서 흔들었다.
쩌저저저적!
비단자락 찢어지는 소리가 고막을 뒤흔드는가 싶더니, 두 사람 사이의 땅바닥이 쩍 갈라졌다.
그리고 충돌로 생긴 여파가 한쪽에 서있던 석탑마저 무처럼 쪼개버렸다.
콰르르릉!
석탑이 무너지면서 천지가 부서지듯 굉음이 울렸다.
거의 동시에 장천운과 탁무겸의 기운이 뒤엉켰다.
탁무겸은 예상보다 강한 장천운의 공력을 접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대면한지 겨우 이틀이 지났다. 그 사이에 더 강해졌다.
자신이 직접 대하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놈이로구나!’
그는 공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려서 쌍장을 내쳤다.
흑포가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어둠의 기운이 광폭하게 회오리쳤다.
부슬부슬 떨어지기 시작하 비가 두 사람의 주위로는 접근조차 못하고 튕겨나갔다.
끼기기기기.
연검에서 뻗어나간 검강이 장력을 가르면서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소음이 터져 나왔다.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 쏟아냈다.
공력을 아끼고 자시고 할 여유도 없었다.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대항하기가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뿐, 쇳덩어리가 들어찬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안색은 어둠속에서도 표가 날 정도로 창백했고, 온몸의 신경은 전율을 일으키듯 비명을 질러댔다.
‘빌어먹을! 역시 아직은 안 되나?’
쿠구구궁!
거대한 북을 두들기기라도 하듯 하늘이 울렸다.
쓰러져 있던 석탑이 가루가 되다시피 부서져서 한쪽으로 밀려갔다.
주르륵, 미끄러지듯 서너 걸음 물러선 장천운은 연검을 움켜쥐었다.
천뢰검법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얻기만 했을 뿐, 누군가를 대상으로 펼쳐본 적 없는 절대지검만이 탁무겸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는다면 이전의 약속이 유효하니라.”
탁무겸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놈이었다.
“제가 고집이 좀 세서 말이죠.”
장천운은 짧게 말을 내뱉고 연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올렸다. 어둠이 연검 끝으로 모여드는 듯했다.
탁무겸의 이마에 주름이 파였다.
조금 전까지와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왠지 수상한 느낌.
그의 주위로 흐르던 암흑의 기운도 더욱 강해졌다.
비는 이제 튕겨나가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가 되어 안개처럼 흘렀다.
그때였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허허허허. 무겸, 왔으면 나를 찾아올 것이지, 거기서 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