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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1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3,02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5화

모용문태는 바윗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도를 뽑으며 걸음을 내딛었다.

천비서생 고완의 무공은 그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백 초식을 겨루어야 승부를 낼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오십 초식은 겨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천운과 공방을 벌여서 사오 초식 만에 신음을 흘리며 밀렸다.

더 놀라운 것은 적수공권으로 상대했는데도 밀렸다는 것이다.

하물며 이제 그가 검을 뽑았다.

‘너무 몰랐구나. 산이 아니라 이미 하늘이거늘.’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만큼은 모용예의 조부로서가 아니라 무사로서 피가 끓었다.

세 걸음을 걷고 우뚝 멈춰 선 그는 천천히 장도를 들었다.

 

광활한 갈대밭이 내려다보이는 야산 위.

세 사람이 서서 갈대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갈대밭 속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만 해도 제법이구나 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어이가 없군. 북천도왕 모용문태가 밀리다니.”

세 사람 중 노인이 풀썩, 실소를 지었다.

옆에 서있던 중년 남자도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모용문태는 강호활동을 많이 안했을 뿐, 무림 전체를 통틀어도 십위 권 안의 고수입니다. 그런데도 밀릴 줄은 저도 생각 못했습니다.”

“콜록, 콜록.”

노인이 기침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주름진 입술 가에 핏기가 언뜻 비쳤다.

중년 남자, 장산은 착잡한 표정으로 노인을 부축했다.

“어르신, 그만 가시지요.”

허리를 편 무 노인은 입술의 핏기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허한 눈빛으로 돌아섰다.

“그래, 가자. 내가 질러놓은 불, 내가 꺼야지.”

“소천, 어르신을 업게나.”

말없이 서있던 소천이 노인을 업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검은 가죽이 씌워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본 얼굴도 아니었다. 검은 가죽 대신 인피면구를 쓴 것이다.

 

콰르르르릉!

대낮에 벼락이 떨어진다면 이러할까.

허공 오 장 높이에 뜬 장천운이 연검을 흔들자 벼락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과과광!

뇌성벽력과 함께 쏟아진 검강 다발이 직경 십장 안을 초토화시켰다.

모용문태도 북명신도를 전력으로 펼쳐서 대항했다.

석 자 세 치에 달하는 장도가 강기의 벽을 형성하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벼락을 막아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흑월대와 파천회 사람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대부분은 몸도 표정도 굳은 채 입만 반쯤 벌어져 있었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격전을 바라보는 사람은 고완과 임청백, 사공명신 정도였다.

“정말 아름다워.”

두양양은 다른 사람과 달리 장천운과 모용문태의 격전을 보며 아름다움에 취해버렸다.

그때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두양양은 두 사람의 무기가 한 자 정도 떨어져서 충돌하는 걸 똑똑히 보았다.

동시에 무지개처럼 영롱한 기운이 폭발했다.

쏴아아아아아.

장천운과 모용문태를 중심으로 땅바닥이 원을 그리며 밀려났다.

밀려나는 땅에서 가루처럼 부서진 갈대가루가 흙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사람들의 시야가 순간적으로 가려졌다.

하지만 누구도 안쪽으로 뛰어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죽기는 싫었으니까.

그 사이 안쪽에서는 장천운과 모용문태가 대치하고 있었다.

안색이 파리해진 모용문태는 두 발로 땅을 깊게 파며 다섯 자 정도 밀려난 상태였다.

장천운은 한 걸음 물러서서 밀려나는 모용문태를 바라보았다.

충분히 공격할 수 있음에도 그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모용문태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왜…… 공격하지 않느냐?”

“더 하고 싶으십니까? 원하신다면…….”

장천운은 늘어뜨리고 있던 연검을 들었다.

모용문태가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말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럼 오늘은 이만 끝내지요.”

장천운은 미련 없이 연검을 품속에 넣어서 허리에 둘렀다.

격전을 벌이던 적을, 그것도 북천도왕을 앞에 두고서.

후드드드득.

하늘로 솟구쳤던 흙과 갈대 잔재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마치 소나기가 마른 대지를 두들기는 듯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들이 정말 너보다 강하더냐?”

모용문태가 뜬금없이 물었다.

그런데도 장천운은 아무 의문도 품지 않고 대답했다.

“혼자서 덤벼들었다가는 죽기 딱 좋지요.”

격전 와중에 말했다.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이 있다고.

그게 바로 천외의 노괴들이라고.

그들과 싸우려는데 자신을 도와줄 생각 없냐고.

그게 마지막 제안이라고.

마지막으로, 아무도 들어서는 안 되기에 지금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 초식의 공방.

그 결과로 모용문태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몸도 마음도 흔들렸다.

“좋다, 사실이라면…… 받아들이지. 그리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인정하마.”

 

 

121장 뇌혈산의 비밀

 

 

‘정말 괜찮은 계집이야. 죽이기 아까울 정도로.’

구천무원을 나서던 독고민은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연송하와 함께 사마경의 시비 겸 호위를 맡고 있는 류화라는 계집이었다.

원래는 연송하를 노렸는데, 그 계집은 왠지 께름칙했다. 장천운의 여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연송하가 죽으면 장천운이 미쳐 날뛰겠지.

그럴 경우 자신의 행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흥! 말만 여동생일 뿐,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일지도 모르지.’

죽일 때 죽이더라도 아직은 아니었다.

순음이 깨진 계집은 큰 도움이 안 되었다. 소진란처럼.

“독고 공자, 거기서 뭐하시오?”

독고민은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돌아섰다.

백리우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별 일 아니네. 소성주를 만나 뵈려고 왔는데, 바쁘신지 만나주지를 않는군.”

“지금은 수련 시간이오. 요즘은 이 시간에 두 시진쯤 수련을 하시오.”

“그랬군.”

독고민은 미처 몰랐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했다.

“장천운도 안 보이는군.”

“그 자시…… 장 대주는 오후에 호위를 맡을 거요.”

백리우진은 ‘그 자식’이라고 하려다 말을 바꾸었다.

아무리 독고민과 장천운이 좋지 않은 사이라 해도, 욕설이 남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것 없었다.

“알았네. 그럼 수고하게. 다음에 와야 할 것 같군.”

독고민은 미련을 버리고 돌아섰다.

백리우진은 독고민의 등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깟 사공 하나 익혔다고 거만을 떤다만, 우선은 놔두마.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네놈도 내 발 밑에서 기게 될 테니까.’

독고민도 걸어가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후후후후, 어리석은 놈. 내가 네놈과 백리호의 관계를 모를 줄 아느냐? 너처럼 태생이 밑바닥인 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나를 넘어설 수 없어, 백리우진.’

 

독고민과 헤어진 백리우진의 눈에 구천무원으로 막 들어가고 있는 연송하가 보였다.

언젠가부터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 동안 장천운 때문에 싸잡아서 미워했는데, 대운사에 다녀올 때 함께 싸운 이후로 마음이 달라졌다.

‘볼수록 예쁘단 말이야. 장천운 자식에게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뒤쪽에서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벽호당 무사로 보이는 자가 웬 노인과 함께 수혼대 무사 앞에 서있는 게 보였다.

노인은 뼈다귀에 가죽을 씌운 듯 빼빼 말랐고, 어깨에 망태기를 메고 있어서 영락없이 약초꾼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야?”

“예, 백리 대주! 이 노인이 장 대주님께 볼 일이 있다고 하셔서…….”

장 대주님?

이곳에서 그렇게 불리는 사람은 장천운뿐이다.

장천운을 찾아왔다는 말에 다시 한 번 노인을 살펴보았다.

부스스한 머리에 거친 수염, 몸에 걸친 색 바랜 갈색 옷은 무인의 옷이라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약초를 담는 망태기까지.

아무리 봐도 강호의 고수와는 거리가 먼 차림새.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별로였던 백리우진은 노인이 장천운을 찾아왔다고 하자 반사적으로 짜증이 났다.

“무슨 일로 장 대주를 찾는 거요?”

“뭐 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네.”

그때라도 이름을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백리우진은 자신의 눈을 너무 믿었다. 그래서 삐딱한 시선으로 물었다.

“장천운하고는 무슨 관계요?”

“전에 약 때문에 이야기를 나눈 적 있네.”

역시나 약초꾼인가보다.

가까이 다가가서 망태기를 슬쩍 보니 약초로 보이는 풀이 몇 포기 들어 있었다.

약초를 팔러 왔나?

설마 풀로 아무렇게나 덮어 놓은 약초 중에 영약은 없을 것이고…….

“지금 없으니까, 나중에 다시 오시오.”

“나갔다가 다시 오란 말인가?”

“여긴 구천성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노인장 같은 사람이 아무렇게나 오가는 곳이 아니란 말이오.”

“그가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가?”

“내가 그걸 어찌 안단 말이오? 그만 가보시오.”

노인, 남사명은 구천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 장천운만 아니었다면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백리우진이 턱을 쳐들고 오만하게 깔보듯 말하자 기분이 상할 수밖에.

그의 말투도 행색만큼이나 꺼칠하게 나왔다.

“나도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네. 그를 만나면 갈 것이니 걱정 말게.”

“그 노인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이봐, 이 늙은이 성 밖으로 끌어내!”

백리우진이 손가락질을 하며 수혼대 무사를 다그쳤다.

남사명도 은근히 화가 났다.

“젊은 친구가 인정머리가 없군.”

“뭐야? 이 늙은이가!”

“앞으로 사흘을 넘기기 어렵겠어.”

백리우진이 눈을 치켜떴다.

그럼 자신이 사흘 안에 죽을 목숨이란 말인가?

“늙은이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나이 든 거 생각해서 조용히 내보내려고 했더니, 어디서……!”

“네 걱정이나 해.”

순간, 백리우진이 비틀거렸다.

“엇? 왜……?”

“벌써 다리가 풀렸군.”

남사명의 말과 동시에 백리우진이 비틀비틀 물러섰다.

옆에 있던 수혼대 무사는 눈이 커졌다.

“백리 대주? 왜 그러십니까?”

“저, 저 늙은이…….”

백리우진은 손을 들어서 남사명을 가리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눈앞이 흐릿해졌다.

수혼대 무사와 벽호당 무사는 화들짝 놀라서 남사명과의 거리를 벌리면서 무기를 빼들었다.

“무슨 짓을 한 거요?”

“무슨 짓은? 지놈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지.”

백리우진이 쓰러지는 걸 보고 근처에 있던 무사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남사명뿐이었다.

하지만 남사명도 일일이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난 장천운을 찾아왔을 뿐이네. 저놈은 제풀에 지쳐서 쓰러졌고.”

장천운이라는 이름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달려온 수혼대 무사들도 남사명이 그 이름을 꺼내자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이름을 꺼냈다.

“장천운이 없으면 사마경이라도 만나야겠네. 안에 있는가?”

사마경이 누군가, 대 구천성의 임시성주인 소성주 아닌가?

수혼대 무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름을 말하는 노인을 한껏 커진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르신께서는 뉘신데 소성주님을……?”

노인장이 어르신으로 바뀌었다.

그 덕에 독 맛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절독곡에서 만난 늙은이라고 하면 알 거네.”

 

마침 수련을 마치고 내실에서 나온 사마경은 ‘절독곡에서 온 노인’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남 노선배님께서 오셨단 말이야? 그럼 안으로 모시지 않고 뭐했어?”

“누군지 아세요?”

소연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양명과 연송하도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당연히 알지. 독왕 남사명 노선배님이야.”

“예?”

“맙소사! 독왕이요?”

소연추와 연송하의 눈이 커졌다.

구양명은 놀라운 한편으로 고소한 마음이었다.

“백리우진 그놈, 임자 만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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