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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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4화
모용문태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미안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건 신의(信義) 문제니까.”
“내통한 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손녀의 목숨쯤 안중에도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모용문태의 눈에서 불길이 확 타올랐다.
“노부를 모욕하겠다는 거냐?”
“그걸 모욕이라고 한다면, 마혈을 제압해놓고 강제로 독을 먹이면서 무사를 비웃는 행동은 뭐라고 해야 하는 겁니까?”
“뭐야?”
모용문태는 분노한 와중에도 의문이 들었다.
그는 장천운과 모용예 사이의 일에 대해서 듣지 못한 것이다.
“모르셨습니까?”
장천운이 고완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완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일은 우발적이었네. 예아도 미안하게 생각했었어.”
모용문태는 그제야 자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걸 알고 고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예아가 정말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예, 모용 형.”
“설마 그 대상이…… 저 친구?”
고개를 끄덕이는 고완의 입가에 진한 쓴웃음이 떠올랐다.
모용문태는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 순한 아이가 왜…….”
“잠깐 장난기가 동한 바람에…… 죄송합니다, 제가 말렸어야 하는데…….”
모용문태의 시선이 다시 장천운에게로 향했다.
천천히 두 손을 올린 그가 포권을 취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사과하겠네. 미안하네.”
오왕 중 한 사람, 북천도왕의 사과다.
장천운도 설마 그가 정중하게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던지라 마주 포권을 취했다.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그 독에 의해 이미 죽었을 겁니다만, 저도 살아 있고, 모용예도 약간의 대가는 치렀으니 그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
모용문태가 흠칫했다.
“대가를 치렀다?”
그의 좌우에 있던 자들도 눈을 크게 뜨고 기운을 일으켰다.
장천운이 모용예의 몸에 해를 입혔을 거라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장천운은 남의 일처럼 태연히 말했다.
“공갈협박 좀 했지요. 망치로 손가락을 다 부수겠다고요. 뭐 잔뜩 겁을 먹고 사과했으니 그 정도면 저도 별 불만이 없습니다.”
모용문태 쪽 사람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정말 모용예처럼 아름다운 여자에게 망치를 들이댔단 말인가?
그런 표정이었다.
“이제 그 일의 잘잘못은 없는 것으로 했으니 나머지 이야기나 마무리 짓지요.”
모용문태도 다시 침중한 표정이 되었다.
조금 전의 분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분위기가 장천운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이다.
“내통한 사람을 알려주는 것도 대가 중 하나로 하겠습니다.”
모용문태의 얼굴이 신의와 손녀 사이의 갈등으로 일그러졌다.
“난…….”
“공손백입니까?”
장천운이 불쑥 공손백의 이름을 꺼내자, 모용문태의 눈빛이 흔들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군요. 대답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모용문태는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을 한 셈이 되니까.
“난…… 그에 대해서 더 할 말 없다.”
기껏해야 그 정도 답이 최선이었다.
장천운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 모용 대협은 그와의 연수를 반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세상에는 목적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모용 대협의 마음, 이해합니다.”
모용문태는 그 말을 듣고는 소름이 돋는 한편 심장에 송곳이 꽂히는 듯했다.
자신 역시 목적을 위해서 노야의 위험을 모른 척했지 않은가.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건가?’
그때 장천운이 전음으로 물었다.
<하나 묻죠. 파천회에서 전대 성주님의 시신을 빼돌렸습니까?>
모용문태의 눈이 커졌다.
그도 전음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냐? 사마중천의 시신을 우리가 왜 빼돌린단 말이냐?>
장천운은 상대의 눈빛 한 점도 놓치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에서도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파천회의 이인자가 모른다면 파천회는 아니라고 봐야 했다.
‘그럼 누구지?’
그가 다시 물었다.
<파천회에 배후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누굽니까? 모용 대협이라면 아실 거라 봅니다만.>
모용문태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이를 악다문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나는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없다. 사실 그분에 대해서 누구에게 이야기해줄 만큼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아무리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아실 것 아닙니까?>
<정확한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모두들 노야라고 불렀을 뿐. 언젠가 이름을 물어봤지만 자신은 이름이 없다며 웃기만 하셨지.>
장천운은 순간적으로 석상이 된 것처럼 멍하니 모용문태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없다?
장천운도 언젠가 그런 분과 함께 산 적이 있었다.
‘설마 그 사람이 무 할아버지는 아니겠지?’
그런데 전음이 계속 들렸다.
<내가 아는 것은…… 그 분이 얼마 전에 천외의 공격을 받아서 위험에 처했다는 것 정도다.>
천외의 공격을 받아서 위험에 처했다고?
하는 말로 봐서는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모르는 듯했다.
모용문태의 표정을 바라보던 장천운은 뭔가를 깨닫고 냉소를 지었다.
<그랬군요. 하긴 살모사가 꼭 한쪽에만 있는 법은 아니지요.>
모용문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움켜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참담함과 자괴감으로 인한 반응이었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 눈에는 분노를 참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모용문태를 닮은 무사가 훌쩍 몸을 날리며 도를 빼들고 장천운을 공격했다.
모용진강. 모용문태의 조카이며 무 노인이 공격당할 때 모용문태와 함께 갔던 자였다.
사공명신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갔다.
“당신은 내가 상대해주지!”
말이 끝났을 때는 이미 시퍼런 광채가 일직선을 그리며 벼락처럼 뻗어나고 있었다.
“여기도 있다!”
모용산강도 뒤질세라 몸을 날려서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가 든 도는 모용진강의 도보다 넓이가 두 배나 되었다.
위세를 자랑하듯 거세게 휘두르자 광풍이 부는 듯했다.
두양양이 아무 말 없이 검을 빼들고 그를 상대했다.
그녀의 검은 현란해 보이면서도 절제된 미가 있었다.
숱한 싸움으로 경험까지 더해진 검은 한 치의 빈틈도 용서하지 않고 파고들었다.
게다가 중병기인 커다란 도와 부딪치고도 밀리지 않았다.
“이런! 왜 계집이 나와? 너는 뒤로 빠지고 저기 덩치 나오라고 해!”
모용산강이 악을 쓰며 구산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두양양은 오랜만에 몸 풀 기회를 구산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흥! 이긴 다음에나 그런 소리 하시죠.”
모용문태는 두 조카가 나서는 것을 막지 않았다.
장천운이란 자가 모용예를 순순히 내주지는 않을 터, 뭔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행히 승부가 나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 뿐.
사공명신의 검은 몇 번의 치열한 생사투를 겪으면서 절정경지가 완숙해진 상태였다.
빛살처럼 퍼져나간 검영이 파도처럼 밀려가자 모용진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역시 절정고수라 하나 사공명신을 맞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두양양이었다.
그녀의 현란한 검은 모용산강의 얼굴을 시뻘겋게 만들어버렸다.
십여 초를 겨루자 승부가 가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고완이 나섰다.
“그만하면 되었네!”
그가 쌍장을 휘두르자 네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으로 갈라졌다.
모용진강이나 모용산강은 고완의 엄청난 능력에 별반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사공명신과 두양양은 이를 악물고 눈을 치켜떴다.
절정고수 넷의 싸움을 일수 일장으로 와해시키다니.
하지만 두 사람은 상대가 강할수록 더 강렬한 투지를 불태웠다.
“어디 저와 한 번 싸워봅시다.”
“제가 먼저 해보겠어요.”
고완은 물러서기는커녕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싸우려드는 두 사람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이미 장력으로 싸움을 말리면서 두 사람이 만만치 않은 실력이라는 것을 눈치 챈 그였다.
일개 흑월대원의 실력이 저렇게 강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장천운이 나서는 바람에 두 사람은 고완과의 대결을 포기해야만 했다.
“역시 대단한 위력이군요.”
장천운이 무심한 어조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잠깐 싸움이 벌어진 사이, 무사 수십 명이 나타나서 일대를 포위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장천운 일행을.
나타난 자들은 갈대숲 저 안쪽에 있던 파천회 무사들이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장천운의 시선이 고완에게서 멈췄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아만 무사히 돌려주면 너희도 아무 탈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아직 한 가지 조건이 남아 있습니다만.”
“너희의 목숨과 바꾸자고 할 수도 있다. 아마 사마경에게는 너의 목숨이 예아보다 더 중요할 거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조건이지요.”
장천운이 태연히 동문서답하자, 모용산강이 버럭 소리쳤다.
“미친놈! 네놈들을 잡아서 바꾸면 되는데, 조건은 무슨 조건? 살고 싶으면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하아, 정말 데려오지 않아야 할 사람을 데려왔군요. 뭐 어쨌든 결정을 내릴 사람은 모용 대협이니, 저 사람은 없는 셈치고 말씀드리지요.”
그제야 모용문태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말해봐라.”
“만약 공손백이 파천회에 손을 벌리면 모른 척하십시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배후에 있는, 아니 있었던 사람에 대해 알아봐 주십시오.”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군.”
“손녀를 살리는 일치고는 많은 일도 아니지요.”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야하는지 모르는가 보구나.”
“당연히…… 당신들 걱정을 해야죠. 그리고 모용예도.”
“뭐라?”
“이곳이 구천성 근처라는 걸 잊었습니까?”
장천운의 그 말에, 조용히 서있던 임청백이 조소를 지었다.
“후후후, 허장성세는 통하지 않는다, 장천운. 우린 네가 구천성을 나설 때부터 지켜보았다. 그래서 이곳에 너희들만 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장천운도 씩 웃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미소였다.
“누가 뭐랬소? 당연히 우리만 왔지. 내가 말한 것은, 파천회에서도 지원무사가 오지 않을 거란 말이지. 그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충분하거든.”
“미친놈!”
“자! 어디 북천의 도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볼까요?”
“내가 먼저 상대해주마.”
고완이 장천운의 앞으로 나섰다.
장천운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 만났을 때는 그에게 패했다.
그와 싸우기 전에 손우곤과 한바탕 겨루었기 때문에 공력 손실이 많은 상태이긴 했다.
그래도 어쨌든 패한 것은 패한 거다.
“원하신다면. 하지만 전과는 많이 다를 거요.”
안 그래도 고완은 마주 선 것만으로도 장천운이 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시일이 얼마나 지났다고 저리 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한때 신비의 고수라 불렸던 천비서생이 아닌가 말이다.
“좋아! 어디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자!”
고완은 두 팔을 벌리고 장천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고오오오오!
귀가 먹먹해지면서 가공할 경력이 장천운을 향해 해일처럼 덮쳤다.
장천운은 그 해일을 향해서 뇌정무극수를 연속 세 번 내쳤다.
콰과광!
해일처럼 덮쳐오던 가공할 경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고완은 눈을 부릅뜨고 남은 공력을 마저 끌어올렸다.
장천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완의 공격권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최근 들어서 뇌정무극수는 또 하나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게다가 뇌정무극지마저 완벽해진 상태였다.
콰아아앙!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굉음이 갈대숲을 뒤흔들었다.
넋 놓고 바라보던 흑월대원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나마 사공명신과 두양양, 구산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상이 걱정될 지경이었다.
모용문태 쪽 사람들도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모용문태만이 제자리에 서있을 뿐, 임청백마저 서너 걸음 물러서서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으음.”
고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훌쩍, 삼 장을 날아간 뒤 내려선 그는 이마를 찡그리며 한발, 한발 물러섰다. 그의 앞에는 한 뼘 깊이로 파인 발자국 세 개가 찍혀 있었다.
반면 장천운은 오연히 서서 손을 품속에 넣었다. 그 와중에도 그의 주위로 무형의 기운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다면, 이제부터 알려주죠. 당신들이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그의 손짓을 따라 연검이 빠져나왔다.
그를 중심으로 휘돌던 무형의 기운이 연검을 따라 춤을 추었다.
우르르르릉.
연검이 몸을 떨자 천둥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