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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1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0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3화

금룡신군이 약을 받아든 그를 보며 말했다.

“종이를 벗기고 입안에 넣어라.”

“지금 여기서 말입니까?”

“당연하지. 마음이 변해서 한쪽에 처박아 놓을지 누가 알겠느냐?”

“저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법이니라.”

그렇다면 노인장의 말씀은 어찌 믿으란 말입니까?

장천운은 그렇게 반문을 하려다가 포기했다.

기호지세(騎虎之勢). 제안을 받아들인 이상 호랑이등에 올라탄 신세였다.

손 안의 약을 바라본 그는 유지를 벗겼다.

질긴 유지는 세 겹으로 촘촘히 약을 감싸고 있었다.

유지가 벗겨지자 알처럼 생긴 누런 영약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지를 벗겨놓고 보니 더 커보였다.

만져보니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부드럽고 탄력이 있었다.

약이라기보다는 정말로 거위의 알 같았다.

이게 입 안으로 다 들어갈까?

“무슨 알 같은데, 껍질을 깨고 마셔야 합니까?”

“껍질 째 그냥 먹어야 한다. 껍질이 진짜라는 말도 있거든.”

“너무 큰데요?”

“걱정 말고 입 안에 넣어봐라.”

금룡신군이 재촉했다.

장천운은 마음을 가다듬고 누런 약, 아니 알을 입 안에 넣었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알이 입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입 안에서 침과 닿은 부분이 녹기 시작했다.

한번 녹기 시작한 알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흘러내릴지 몰라서 턱을 쳐들어야 할 정도였다.

물처럼 녹는 게 아니라 뭉쳐진 풀처럼 녹아서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대신 삼키기 적당한 상태가 되었다.

누런 알을 완전히 삼킨 장천운은 입맛을 다셨다.

입 안에서 약간 비린 듯하면서도 고소한 향기가 났다.

하나 더 있으면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 가서 운공을 해라. 열심히 기운을 받아들이면 너의 공력이 배는 늘어날 거다. 단,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을 명심해라. 그 알의 기운이 완전히 너의 것이 되지 않으면 백 일 후 네 몸 곳곳에 퍼져 있는 기운이 폭주할 거다.”

묘한 표정으로 말을 마친 금룡신군은 쫓아내듯이 장천운을 보냈다.

장천운도 빨리 가서 운공을 해야 했다.

금룡신군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뱃속이 들끓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금룡신군은 서고에서 나가는 장천운을 보며 하얀 미소를 지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세, 청산.’

장천운에게는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굳이 말해줄 이유가 없었다.

말해주면 자신의 제안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테니까.

‘순진한 놈.’

 

* * *

 

장천운은 날아서 담장을 넘어간 후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늦게 돌아왔다고 혼나더라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상태에서 운공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신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한바탕 난리가 날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대별산 구석진 계곡 안의 짐승들이 잠을 자다 말고 벌벌 떨며 낑낑거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문을 지키던 위사의 말에 의하면, 호랑이들이 떼로 밤 사냥에 나선 것 같았다고 했다.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끝나갈 무렵, 장천운은 운공을 마치고 구천무원으로 돌아갔다.

사마경은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 장천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다녀왔습니다, 소성주.”

장천운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늦게 왔다고 뭐라 하진 않았다.

대신 다른 말로 다그쳤다.

“또 무슨 짓을 저질렀어?”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옷에 솔잎이 붙어 있어?”

사마경의 눈을 따라서 손을 뒤로 돌려보자 옷자락에 박혀 있는 솔잎이 잡혔다.

“잠깐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

“소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고? 그럼 머리에 붙은 도둑놈가시는 또 뭐야?”

머리를 만지자 까칠까칠한 도둑놈가시가 만져졌다.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그때 붙은 모양입니다.”

“내가 말했지? 천운은 거짓말 되게 못한다고.”

그래도 남들은 잘만 믿어줬는데.

“속기도 잘 속고.”

자신이 그렇게 어리석은 줄 아나?

그때 문득 금룡신군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 노인네에게 속은 느낌이 들었다.

알처럼 생긴 약 자체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문제는 느낌이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마치 뒷간에 갔다가 뒤를 닦지 않고 나온 느낌이랄까?

혹시 그 노인네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나?

약의 문제점이 백일 후의 폭주 외에 또 있다든가.

‘나중에 만나서 물어봐야겠군.’

그런데 사마경이 혀를 찼다.

“쯔쯔쯔, 참 신기하단 말이야. 저렇게 표정이 잘 드러나면서도 꼬박꼬박 거짓말하는 거 보면.”

장천운은 그래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지금처럼 조용하게 끝나지 않을 테니까.

‘죽어도 내 운명, 살아도 내 운명이다. 내 운명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건 원치 않아.’

 

* * *

 

공손백은 어둠 속에 앉아서 몇 시진째 움직이지 않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 서있던 사계 역시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석상처럼 서있었다.

조금 전, 탁무겸이 자신을 찾아왔다.

그가 직접 구천성으로 찾아온 것은 오늘이 두 번째였다.

탁무겸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모진태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 같군. 그에 대한 대책은 세웠는가?”

 

단지 그렇게 물었다.

공손백은 나름대로 세운 계획을 말해주었다.

탁무겸은 그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짧게 말했다.

 

“지켜보지. 실패할 경우 책임은 자네가 져야한다는 점, 잊지 말게. 그리고 성학이는 내가 데려가지.”

 

결국 그는 종리성학을 데리고 올 때만큼이나 조용히 떠나갔다.

공손백은 굴욕감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가 탁무겸을 처음 만난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당시의 탁무겸은 자신보다 위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위치가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주인과 아랫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손백은 그러한 현실이 죽도록 싫었다.

구천성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최소한 구천성의 주인은 되어야 그에게 맞설 수 있으니까.

다만 상처투성이 구천성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온전한 구천성이어야 했다.

그게 바로 남들이 바보 같다고 해도 꾹 참은 진정한 이유였다.

‘그래, 탁무겸. 지금은 마음껏 즐겨라. 어차피 승부는 한순간에 끝나는 법. 마지막에 누가 웃는지 보자.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라 하지 않더냐.’

숨을 깊이 들이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사계도 그를 향해 다가왔다.

“문인동은 찾았느냐?”

“아직 못 찾았습니다.”

동백이 대답했다.

그는 은연 중 사계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셋을 다 합친다 해도 동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죽일 놈…….”

입술을 씹듯이 나직하게 욕을 내뱉은 공손백이 하나 하나 명을 내렸다.

“춘화, 구천대평의회 때까지 준비를 완벽히 갖춰놓아라.”

“예, 주군.”

“염화, 파천회주에게 전해라. 제안을 수락한다고.”

“존명.”

“추산, 대장로를 만나야겠다. 전에 한 이야기,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하고 싶으니 오늘 밤 청묵전으로 와달라고 해라.”

사계 중 셋이 나가고 동백만 남았다.

공손백은 잠시 허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나직한 목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왔다.

“대장로의 제안,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월동주(吳越同舟)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동백이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공손백은 말 없이 고개만 느릿하게 끄덕였다.

 

* * *

 

운공으로 잠을 대신한 장천운은 무화원 뒤뜰을 거닐었다.

세 시진. 새벽부터 두 차례에 걸쳐서 대주천을 한 그는 전날과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최소한 공력이 늘어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계속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열흘쯤 지났을 때 금룡신군의 말대로 공력이 배는 될 듯했다.

대신 께름칙한 느낌도 배로 늘어났다.

‘제길, 분명히 뭔가가 있어.’

 

휴식을 취하고 있던 흑월대 이조와 삼조원들은 뒤뜰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 시간 이후로 당분간 뒤뜰은 금지구역이었다.

장천운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침부터 오가는데 표정이 수상했다. 왠지 몰라도 잔뜩 못마땅한 표정.

잘못 걸리면 뼈와 살이 분리되는 교육을 받아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사시에서 막 오시로 넘어갈 때였다.

퍽!

멀리서 뭔가가 날아들더니 뒤뜰의 고목에 박혔다.

화살이었다. 하얀 천이 매달린 화살.

은근히 뒤뜰에 신경 쓰고 있던 흑월대원들은 화살이 자신의 가슴에라도 박힌 듯 전율이 일었다.

‘어떤 개새끼가!’

‘잡아!’

화살을 쏜 놈을 잡으면 팔다리를 모조리 부러뜨리고 싶었다.

그러나 근처 수십 장 이내를 뒤져보았지만 수상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무화원 담장 너머에서 날아왔다는 뜻.

다행히 장천운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태연히 화살을 뽑았다.

화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화살에서 풀어낸 천을 펼쳐본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왔군.’

흑월대원들은 슬금슬금 뒤뜰에서 멀어졌다.

그때 장천운이 불렀다.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사람은 남고, 싸우는데 지장 없는 사람들만 모이쇼.”

하나 둘 눈치를 보며 모여들었다.

이조에서는 사공명신, 두양양, 탁도광, 임주상. 삼조에서는 구산, 추소철, 저두심, 이한, 진구, 방호까지 모두 열 명이었다.

나머지는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다며 뒤로 빠졌다.

조금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 힘드나 나중에 힘드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모여든 사람이라 해서 충성심이 남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심정이었을 뿐.

장천운은 모여든 사람들을 쓱 훑어보고 발길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따라오쇼. 바람 쐬러 갑시다.”

 

장천운은 대원들을 데리고 북문을 빠져나가 북쪽으로 걸어갔다.

산들산들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이 유람 나온 사람 같았다.

하지만 속도만큼은 무척 빨라서 어지간한 사람이 달리는 거와 비슷했다.

장천운은 구천성 북문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곳에 도착한 후 걸음을 멈추었다.

앞에는 폭이 좁은 강이 있고, 강을 따라서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직후 갈대밭 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었다.

흑월대원들은 바짝 긴장해서 경계태세를 취했다.

갈대밭을 가르며 나타난 자들은 모두 다섯.

하지만 그들 외에도 상당수가 갈대밭 저편에 포진해 있었다.

다섯 사람의 중앙에는 모용문태가 서있었다.

그의 좌측에는 고완과 임청백이, 우측에는 삼십대로 보이는 무사 둘이 자리했다.

“오랜만이네.”

장천운을 아는 고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인사나 나눌 자리는 아닌 것 같군요.”

장천운은 솔직하게 말했다.

“하긴 자네 말이 맞네. 그래도 누가 누군지는 알아야겠지.”

그때 중앙의 모용문태가 입을 열었다.

“내가 모용문태다. 예아를 찾으려면 오라고 해서 왔다. 예아는 어디 있지?”

“모용예를 찾으려면 직접 오시라고 했지, 제가 데리고 나온다는 말은 안했습니다만.”

무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덤덤한 그의 말에 모용문태 우측의 장한 중 하나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말장난을 하자는 거냐?”

그는 모용문태의 조카인 모용산강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에 굵은 얼굴선, 덥수룩한 수염. 얼굴만 봐도 열화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알고도 남았다.

장천운이 그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하등 도움도 안 될 저런 분을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뭐야? 네가 어디서……!”

모용산강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서자, 모용문태가 손을 저어 말렸다.

“물러서라.”

“숙부님.”

“저 친구의 말대로 지금 네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끄응.”

모용산강은 앓는 소리를 내며 물러섰다.

그 와중에도 장천운을 노려보면서 입술을 씰룩였다. 아마도 욕을 하는 듯했다.

모용문태는 분노와 조급한 마음을 깊숙이 눌러놓고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소문만 들었다. 온갖 소문이 다 들려서 누구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소문은 너무 허황되어서 내심 어떤 놈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고 보니 그 어떤 소문도 장천운이란 자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듯했다.

장천운, 그의 앞에 있는 청년은 산이었다.

“그럼 예아는 언제 돌려줄 거냐?”

“대화가 순조롭게 끝나면 돌려드리지요.”

“나더러 나오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어디 말해봐라.”

“먼저 질문에 대답해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물어봐라.”

“파천회에서의 지위를 알려주시지요.”

어차피 곧 세상에 알려질 일, 못 알려줄 것도 없다.

“부회주를 맡고 있다.”

부회주라면 이인자다. 예상했던 대로 최고위직 인사다.

“부회주시라면 구천성에서 파천회와 내통한 자가 누군지 아시겠군요. 그자의 이름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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