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2화
“아직 안 왔습니다. 기한이 내일까지이니 기다려본 다음 처리하겠습니다.”
“대령주와 대장로 쪽은 조용해. 그래서 더 걱정이야.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아마 이번 구천대평의회에서 암천의 힘을 빌리려 할지도 모릅니다.”
“흥! 그래도 쉽진 않을 거야.”
사마경은 코웃음을 치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장천운이 전에 한 말처럼 공손백은 이번 대평의회를 최대한 이용하려 할 것이다.
천외의 삼대세력도 더 이상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고.
과연 자신이 버텨낼 수 있을까?
상대는 너무나 거대했다. 생각만으로도 숨을 쉬기 힘들 만큼.
답답해진 그녀는 시선을 돌려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고요히 서 있는 그를 보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래, 나에게는 천운이 있잖아? 마지막까지 포기해선 안 돼.’
장천운이 남궁호와의 만남에 대해 말한 것은 그때였다.
“정오쯤 남궁호가 찾아왔었습니다.”
“남궁호가?”
장천운은 눈이 커진 사마경에게 남궁호와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마경은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눈을 흘겼다.
“그 이야기를 왜 이제야 해?”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잖습니까?”
장천운은 구원을 청하듯 연송하를 바라보았다.
연송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모른 척했다.
“송하는 왜 봐? 내가 걱정하기 전에 말해줬으면 더 좋았잖아?”
연송하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이, 진짜. 이젠 아예 둘이 척척 잘 맞는군.’
심통이 난 장천운도 딴청을 부렸다.
“좌우간 결정은 소성주께서 내리십시오.”
“실컷 다 결정지어놓고 왜 책임을 나에게 떠넘겨? 그 일은 천운이 알아서 해.”
“하지만…….”
“어차피 무림맹과의 일도 천운이 진행했잖아. 그러니 그쪽에 대해서는 천운이 알아서 결정해.”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게 나을 것 같아. 일일이 허락받는 것보다 직접 결정을 내리고 사후보고를 하면 그만큼 진행이 빨라질 거 아냐.”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결정력 면에서는 사마경의 판단이 뛰어나다.
물론 믿음이 전제되어야 내릴 수 있는 결정이지만.
“알겠습니다, 소성주. 그럼 그쪽은 제가 책임지고 진행시키겠습니다.”
장천운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진행만 빨라지는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또한 만에 하나 그 일이 문제가 되었을 때, 사마경의 책임이 덜어질 수 있다.
‘차라리 잘 됐어.’
120장 조건(條件)
그날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밤이 찾아왔다.
그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밤이 깊어 사위가 고요해졌을 때였다.
<잠깐 얼굴 좀 보자. 청송림 옆에 서고로 와라.>
장천운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 영감이…….’
금룡신군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마도 서고 쪽에서 천리전음을 보낸 듯했다.
장천운은 시선을 돌려서 사마경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요즘에는 시간만 나면 책을 봤다. 무공서는 기본이고, 병법에 대한 책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왜 봐? 볼일이라도 보려고? 가봐?”
어떻게 알았지?
책 중에는 눈치에 대한 것도 있나 보다.
사실 찻잔에 비친 모습을 보고 안 것이지만, 장천운도 그것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누굴 좀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시간에 호위임무도 미루고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뜻.
“가보라니까? 그럼 내가 뭐 쉬하는 일로 가보라고 한 줄 알아?”
갈수록 말투가 어째 이상하게 흐른다.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오히려 어색해진 사람은 장천운이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철 대협, 부탁합니다.”
오랜만에 천장에서 철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네.”
* * *
서고는 보통 술시 말까지 열어두었다. 그러나 여름에는 해가 길기 때문에 사람이 있으면 해시 말까지 열 때도 있었다.
그날도 해시가 다 되었는데 서고에서 대여섯 명이 책을 보고 있었다.
장천운이 들어가자 두어 사람이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서고에 들어온 사람이 흑월대주 장천운인 걸 알고 흠칫하더니, 보던 책을 놓고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구천성에서 가까이해봐야 좋을 것 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압도적으로 일위를 차지할 사람이 장천운이다.
공손백과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와 마주 앉는 것조차 피하는 게 상책이다.
덕분에 서고가 더 한산해졌다.
“저, 무슨 책을 찾으시오?”
서고의 새로운 책임자가 된 양 노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문으로는 이전 책임자인 석 노인을 장천운이 죽였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 양 노인에게는 그가 저승사자처럼 보일 수밖에.
“용이 쌈질하는 책을 좀 보려고요.”
“예?”
“기왕이면 금색 용이 나오는 책이 있으면 더 좋은데. 있습니까?”
양 노인이 주름진 눈을 껌벅였다.
“글쎄올시다. 이층에 올라가서 서쪽 서대에 보면 용쟁호투에 대한 이야기책이 있긴 한데…….”
장천운은 더 묻지 않고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양 노인은 속으로 ‘이제 보니 웃기는 놈이군.’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듣던 것보다 순한 놈 같았다.
이층의 서쪽 서대에서 한 사람이 책을 보고 있었다.
황의를 걸친 노인이었는데, 노인치고는 키가 훤칠했다.
머리카락도 자세히 보면 노란색이 섞여 있는 듯해서 기이한 분위기가 풍겼다.
장천운은 그의 옆으로 가서 책을 골라보았다.
“뭐가 재미있습니까?”
“여기 암천의 제왕 어쩌고 하는 잡기책이 볼만하구나.”
“그보다는 이쪽에 있는 미친 용에 대한 전설을 늘어놓은 광룡의 기록이 볼만하겠는데요?”
“그건 조금 전에 봤는데, 어떤 웃기는 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적어놓았더구나. 맞아, 그걸 쓴 놈도 너처럼 장씨더군.”
“여긴 왜 오셨습니까?”
“왜 오긴? 책 보러 왔지.”
“그럼 많이 보십시오. 더 이야기하실 거 없으면 가보겠습니다.”
장천운은 정말로 더 할 말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나는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포기했지.”
툭 던진 이야기에 장천운이 다시 돌아섰다.
“다행입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데요.”
“영산자가 사마경과 손을 잡은 모양이더군.”
어차피 속일 생각도 없었다.
속인다고 해서 속을 사람도 아니고.
“잘 아시잖습니까? 소성주께서 힘들게 버티고 계시다는 걸. 그래서 과거는 잠시 접어두고 상부상조하자고 했지요.”
“그리고 암천문에서도 무겸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너를 만났다는 것도.”
장천운은 금룡신군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그 사람이 암천신마입니까?”
금룡신군의 입꼬리가 묘하게 틀어졌다.
“무겸이 암천신마냐? 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
탁무겸이 했던 대답과 비슷했다.
장천운은 그 대답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유추해냈다.
“암천신마라는 이름을 대물려서 이어받는가 보군요.”
“역시 너와는 이야기하기가 편하구나. 맞다. 무겸은 신마의 이름과 권한을 이어받았다. 전대 신마 늙은이는 암천의 모든 걸 무겸에게 넘겨준 후 골방에 처박혀버렸고.”
이제야 궁금증 하나가 해소되었다.
대신 가슴은 더욱 무거워졌다.
탁무겸은 금룡신군이나 청산자보다 젊었다.
젊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이 남았다는 뜻. 그리고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뿐이 아니다. 골방에 처박혔던 우물에 처박혔던 전대 암천신마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다.
결국 상대해야 할 암천신마가 둘이라는 뜻.
‘갈수록 태산이군.’
그때 금룡신군이 책을 놓고 고개를 돌려서 장천운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본래는 그저 구천성의 상황이나 알아보고 너와 잠시 노닥거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겸이 너를 만났다는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느니라.”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그냥 놔두면 아무래도 내기에서 질 거 같아. 그래서 너에게 무겸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줄 생각이다.”
사실이라면 굉장한 소득이었다.
탁무겸은 강하다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초인의 능력을 지닌 자였다.
그를 이길 수 있다면 청산자나 금룡신군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힘을 그냥 주지는 않을 터.
“조건이 있겠군요.”
금룡신군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무겸을 죽여라.”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나머지 말도 마저 해보시죠. 가령 힘을 주긴 하는데 제약이 있다든가…….”
“허허허, 그 녀석, 정말 말이 잘 통한단 말이야.”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청산자나 탁무겸이 노리기 전에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컸다.
욕심만으로는 차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노부가 너의 공력을 지금보다 배로 늘려줄 것이다. 대신 백일 안에 그 공력을 온전히 너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기가 폭주해서 온몸의 기혈이 터져 죽을 거다. 어떠냐,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한번 해보겠느냐?”
장천운의 무심하던 표정이 흔들렸다.
금룡신군이 정확히 짚었다.
현재 자신에게 모자란 것은 공력이다.
공력이 배로 늘어난다면 탁무겸과 한판 벌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청산자나 금룡신군과도.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호의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아마 그 공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 공력을 늘리는 일보다 배는 더 힘들 것이다.
어쩌면 탁무겸을 쓰러뜨리고 자신 역시 죽을지 모른다.
금룡신군이 던진 주사위판 위에 올라선 신세.
원하는 수가 나오면 살고, 반대의 수가 나오면 죽을 것이다.
원하는 수는 하나고, 반대의 수는 다섯이 될 수도 있다.
평상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모험이다.
그러나 너무 강렬한 유혹이었다.
―내 능력이라면 그 정도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런 자신에 대한 믿음.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천외의 노괴들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자신에 대한 불신도 평정심을 흔들어댔다.
‘그래,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흑도 저 밑바닥에서부터 살아온 그다.
지금 죽는다한들 아쉬울 게 뭐 있을까.
이 정도면 성공했잖아?
게다가 앞으로도 백일의 삶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공력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말씀, 정말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이지. 내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느니라. 아마 청산자에게 물어보면 알 거다.”
원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곧잘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못 믿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제안을 거부할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해 두었을 테니까.
“좋습니다. 사실이라면…… 받아들이죠.”
금룡신군의 눈빛이 금빛으로 번들거렸다.
“죽는 게 두렵지 않느냐?”
“제가 지금까지 죽을 고비를 다섯 번 정도 넘겼습니다. 한번 더해진다 해서 달라질 것도 없지요.”
구천성으로 끌려오기 전에도 이미 한번 죽었다. 얼마 전에는 지옥에도 다녀왔다.
아쉬운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물러설 마음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좋아, 그럼 이것을 너에게 주마.”
금룡신군이 품속에서 누런 유지로 싼 뭔가를 꺼냈다. 마치 커다란 알을 누런 유지로 감싼 것 같았다.
“뭡니까?”
장천운이 묻자, 금룡신군이 묘하게 웃었다.
“너의 공력을 높여줄 영약. 천하에 다시없는 아주 귀한 영약이니라.”
“예? 그 큰 게 약이라고요?”
솔직히 약이라기보다 거의 알이라고 하면 더 어울릴 듯했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한번 복용하면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 그걸 한 번에 다 먹어야 하는 겁니까?”
“좀 크지?”
“잘못하면 기가 폭주해서 죽기 전에 약이 목에 걸려서 죽겠군요.”
“걱정 마라, 목에 걸릴 일은 없으니까. 입안에 들어가서 침과 섞이면 바로 녹아버릴 거다. 단, 복용 후에는 반드시 하루에 한 시진 이상 운공을 해서 기운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 잊지 말고.”
장천운은 유지로 싼 약을 받아들었다.
어쩌면 목숨과 맞바꿀지 모를 운명이 그의 손으로 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