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11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11화
한억기는 바짝 긴장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두 여인 중 하나가 저번처럼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인은 목뼈만 부러졌습니다.”
각기 다르게 죽었다?
장천운의 눈이 가늘어졌다.
죽인 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죽은 여인의 정체는 밝혀졌소?”
“신월당주의 여식인 등민민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여인은 등민민의 호위를 맡고 있던 선화당의 조궁혜입니다.”
당주의 여식이 처참하게 죽었으니 분위기가 싸늘해질 만도 하다.
‘그런데 조궁혜라면 강련곡에서 송하를 못살게 굴었던 그 못된 계집이잖아?’
어쨌든 그냥 지나치기에는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혁련 조장, 난 율검당에 들렀다 갈 테니 먼저 가보시오. 내가 호위임무를 맡아야 할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소성주께는 율검당에 갔다 한 시진 이내에 돌아갈 거라고 말씀해 주시오.”
“알겠소.”
“아! 그리고 청목을 율검당 오대로 보내주쇼.”
* * *
율검당으로 간 장천운은 곧바로 전무궁을 만났다.
전무궁은 골치 아픈 일이 터진 때에 장천운이 찾아오자 반갑기만 했다.
장천운이라면 자신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몰랐다.
“어서 오게.”
“등 소저와 조 소저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후우, 지금 그 일 때문에 등 당주가 난리도 아니네.”
귀도당주 등가호는 딸의 시신을 보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아마 전무궁이 막지 않았다면 벌써 무슨 일이 났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네. 딸이 그렇게 되었는데 아비가 어찌 제정신일 수 있겠나.”
“단서는 나왔습니까?”
전무궁이 쓴웃음을 지었다.
“세세히 조사해봤는데, 특별한 것은 없었네.”
“죽은 시각은 언제쯤입니까?”
“시신의 상태로 봤을 때, 어제 해시(亥時 正:저녁 9시~11시) 쯤 살해된 것으로 보이네. 특히 등민민은 소진난과 비슷한 살해수법에 당했네.”
해시. 죽은 시각까지 소진난과 비슷하다.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거야말로 전무궁이 바라는 바다.
“따라오게.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아서 시신을 옮겨 놓지 않았으니까.”
“일단 오대 이조원들을 데려가겠습니다.”
“마음대로 하게. 오대 이조는 지금 유 대주가 직접 관리하고 있으니까.”
유진생은 장천운을 보고, 마치 죽은 자식 살아서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했다.
“하하하, 이제 얼굴 보기 힘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는구나.”
“조사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조원들을 빌리고 싶습니다만.”
유진생이 그 말에 씩 웃었다.
“나까지 빌려가라. 네가 없으니까 따분해.”
“에이, 제가 어떻게 대주님을 빌려갑니까? 그냥 대주님이 지휘하십쇼. 그럼 허드렛일은 제가 하죠.”
“흐흐흐, 그럴까?”
유진생은 천하무적의 호위무사 장천운을 지휘한다는 것만으로 흥이 절로 났다.
“흑월대에서 청목이 오면 현장으로 가보도록 하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목이 혁련기와 함께 도착했다.
혁련기는 자신의 의지로 동행한 것이 아니었다.
“소성주께서 함께 가라고 하셨소. 소성주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대주 혼자 날뛰다가 또 다칠지 모르니 조사가 끝나면 함께 돌아오라고 하셨소.”
사실은 끌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 * *
등민민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북서쪽 청송림 근처의 식당 뒤에 있는 창고 안이었다.
장천운과 오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율검당 삼대의 조사가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
삼대주 백남평은 전무궁에게 간략한 보고를 올렸다.
그 역시 소진난의 살해범과 동일한 자에 의한 살해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문제는 시신의 상태가 동일하다는 것 외에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고를 다 들은 전무궁이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겠나?”
“저희가 시신을 살펴보겠습니다.”
백남평은 기분이 상한 듯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소성주의 시비인 소진난과 동일한 살해수법에 의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니 구천무원에서 조사를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자신들이 이미 철저하게 살펴본 후였다.
장천운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더 발견할 것이 있을까 싶었다.
장천운은 일단 시신 주위부터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흐트러진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시신을 많이 건드리지는 않은 듯했다.
장천운은 시신을 살펴보는 일에 청목의 기억력을 동원했다.
등민민의 상태는 소진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흐른 피가 많지 않다는 것도, 가슴이 찢기고 심장이 뽑혔다는 것도, 피부가 거칠어졌다는 것도.
“흔적이 같습니다. 동일인이 손을 쓴 게 분명합니다, 대주.”
시신을 세세히 살펴본 청목이 말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말이었다.
“여기 보이시지요? 가슴을 뜯어낼 때 파고든 손가락의 굵기가 그때와 같습니다. 그리고 비스듬히 파고든 위치도 똑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기 살에 묻은 피 보이죠? 비록 극히 일부분입니다만, 이 피에 지문이 희미하게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지문 문양이 저번에 본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 몇이 등민민의 가슴과 배에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지문이 찍혀 있다는 거야?’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찾아보았지만, 희미한 자국만 보일 뿐이었다.
“역시 동일범이군.”
장천운은 청목의 말을 듣기도 전에 이미 결론을 내린 터였다.
청목의 말은 그저 확인사살일 뿐.
굳이 따져볼 것도 없었다.
세상에 미친놈이 널린 게 아니라면 이런 악귀 같은 짓을 할 놈이 여럿일 리 없었다.
문제는 조궁혜였다.
그녀는 들은 대로 목뼈만 부러진 채로 죽어 있었다.
“이상하군. 왜 조궁혜는 단순하게 죽였지?”
유진생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장천운은 조궁혜의 부러진 목을 보며 말했다.
“놈으로서는 조궁혜를 소진난이나 등민민처럼 죽일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왜?”
유진생이 다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장천운은 조궁혜의 목에 난 자국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시퍼렇게 변한 손가락 자국이 제법 확실하게 남아 있었다.
목뼈를 부러뜨릴 정도였다면 상당한 힘이나 진기가 가해졌을 터, 그로 인해 남은 자국이었다.
“이미 하나를 죽였고, 자신이 원하던 목적을 달성했다면, 굳이 시간을 지체하면서 같은 방식으로 죽일 이유가 없지요.”
“목적을 달성했다고?”
이번에는 전무궁이 눈빛을 싸늘하게 빛내며 되물었다.
장천운은 천천히 일어나며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놈에게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같은 방식으로 두 여인을 죽이지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으으음, 일리가 있는 말이군.”
“문제는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요.”
“네가 봤을 때는 무어라 생각하느냐?”
“흡정(吸精). 여인의 음기를 취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무궁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흡정에 대한 것은 오래 전부터 금기시되었다. 너무나 사악하기 때문이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볼 문제가 아니구나.”
“범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파급력이 더 커질 겁니다.”
“혹시 짐작 가는 자라도……?”
장천운은 답을 미루었다.
“아직은 확실치 않습니다만, 의심 가는 자가 있긴 합니다. 좀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리죠.”
* * *
막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던 독고태는 멈칫하더니 눈을 부릅떴다.
아들인 독고민이 벽에 붙어 있던 책장을 젖히고 그 안쪽에 있는 비밀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독고민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차가운 표정에 눈빛이 붉게 물든 듯 느껴졌다.
“쓸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태연해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감히 애비의 서랍을 뒤지다니, 네놈이 미쳤구나!”
“어차피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다 제 것이 될 텐데, 미리 좀 본다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뭐야? 이노오오옴!“
“은묘라는 첩년에게는 이것저것 다 주셨으면서 뭘 아까워하십니까?”
은묘의 목숨을 거둔 것은 독고태에게 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그녀가 유일했었으니까.
심지어 독고민의 어미조차 나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략적으로 혼인을 한 것일 뿐,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독고민이 은묘를 욕보이는 발언을 하자 분노가 솟구쳤다.
“네놈이 정녕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디서 감히 애비에게 그 따위 말대꾸냐!”
독고민은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못할 건 또 뭐 있습니까? 그 계집을 죽인 건 아버지이지 제가 아니잖습니까?”
“여기서 나가라! 어서!”
“나가라면 나가죠.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그렇게 명령하듯 다그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부터는 저도 무작정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독고민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끝내 독고태의 인내심이 무너졌다.
“이노오옴!”
몸을 날리며 우수를 들어서 독고민을 내리쳤다.
그러나 독고민도 순순히 맞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독고태를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콰앙!
일성 굉음이 울리더니, 바닥에 어지럽혀져 있던 물건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공격했던 독고태도 서너 걸음 물러선 뒤 치켜뜬 눈으로 독고민을 노려보았다.
“네, 네놈이……!”
독고민도 두어 걸음 물러선 뒤 냉소를 지었다.
“마지막이라고 했잖습니까? 자식 손에 안 좋은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지내십시오.”
독고태는 핏대가 터질 것만 같았다.
자식에게 저런 소리를 들을 줄이야!
하도 기가 찬데다 분노까지 더해져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사이 독고민은 입꼬리를 비틀며 조소를 지은 채 방을 나섰다.
독고태는 부들부들 떨면서 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숙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했기에 민아가 저리 변했단 말입니까?”
이를 갈며 중얼거리던 그는 비밀서랍을 바라보았다.
비밀서랍 안에는 많은 물건이 있었다.
그가 이십여 년 동안 모아온 비밀스런 물건들이.
하지만 자식을 잃은 마음에 비하면 그 어떤 물건도 하찮게 느껴질 뿐이었다.
힘없이 걸음을 옮긴 그는 서랍 안을 살펴보았다.
비밀서랍장 안에는 대부분의 물건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보물이라 해도 될 만한 물건들도 있었는데 가져가지 않았다.
그런데 딱 하나가 없었다.
그가 십여 년 전에 얻었던 손바닥만 가죽책이.
사교집단의 교주를 죽이고 얻은 가죽책인데, 안에는 사이한 마공에 대한 구결이 적혀 있었다.
그 구결을 읽어본 그는 내용이 너무 섬뜩해서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었다.
“이놈이 설마 그걸 노리고……?”
하지만 아들은 그 물건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숙부 뿐.
“혹시 숙부가 민아에게 그 책자에 대해서 알려준 것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대뜸 비밀서랍을 찾아내서 뒤진 것이겠지.
“숙부, 제 인내심을 시험해보고 싶으셨다면 성공하셨소.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생각하셨나 모르겠소.”
독고태는 잇새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두 눈은 이미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고, 움켜쥔 손은 회칠을 한 것처럼 창백했다.
* * *
장천운은 전무궁에게 몇 가지 일을 부탁하고, 비령각으로 가서 우문각을 만난 후 구천무원으로 돌아왔다.
장천운의 보고를 들은 사마경은 이마를 찌푸렸다.
“흡정(吸精)?”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어떤 놈이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거지?”
장천운은 사마경에게조차도 독고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확실치 않은 의심은 자칫 엉뚱한 일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었다.
“전 당주께 몇 사람을 감시하라고 말씀드렸고, 총사께도 첩밀각을 움직여 달라고 했습니다. 곧 범인의 꼬리가 잡힐 겁니다.”
“율검당과 첩밀각이 움직이면 범인도 꼬리를 감추고 숨을 거 아냐?”
“총사께선, 범인이 이미 흡정에 대한 맛을 들였으니 쉽게 멈추지는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 놈은 잡아서 사지를 잘라버려야 돼.”
사마경은 분노를 잘근잘근 씹어 뱉고 나서야 화제를 돌렸다.
“모용문태에게서는 연락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