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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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9화
진짜 암천신마라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는 만약의 경우 환술을 펼치기 위해서 심장의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 가볍게 생각했어.’
천외의 세 노괴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겁나지 않았다.
그런데 암천신마든 아니든, 이자는 자신보다 강하다.
영산자에게 우위를 점한 후 천외의 세 노괴들만 적수로 생각한 오만함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흥! 그래도 그냥 당하지는 않을 거다!’
그때 장천운을 휘감았던 암흑의 기운이 변화를 일으켰다.
조이던 기운이 약해진 대신 날카로움이 더해졌다.
한번 극한까지 밀어붙여볼 생각인 듯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변화가 장천운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칭칭 조이던 기운이 약해진 순간, 장천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대웅전 안에서 사라졌다.
환귀자의 환술 중 무영무종을 펼친 것이다.
“응?”
생각지 못한 상황에 탁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앞에서 그런 잔재주가 통할 줄 알았더냐?”
냉소를 터트린 그는 두 손을 엇갈려 쳐냈다.
장천운은 허공에서 순간적으로 세 번이나 방향을 바꾸었다.
환귀자의 환술이 아니면 천하의 그 어떤 신법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탁무겸은 자신의 공격이 허공을 쳤다는 걸 알고 눈을 치켜떴다.
하지만 화를 내는 대신 웃음을 지었다.
“그놈! 정말 재미있는 재주를 지녔구나!”
그 와중에도 그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어두컴컴해진 대웅전의 허공이 이지러지고 부서졌다.
아마 작정하고 공격했다면 대웅전이 산산이 부서져서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생사투가 아닌 시험에 불과했다.
공격범위를 제어했기에 건물이 웅웅거리며 떨어대는 정도로 그쳤다.
장천운도 무작정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탁무겸의 공세를 겨우 벗어나긴 했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방 벽과 천장 쪽에 은신하고 있는 자들이 호시탐탐 그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허리춤을 쓸어서 연검을 빼냈다.
환술이 약화되더라도 공격력을 강화시킬 작정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탁무겸을 상대하려면 뇌정무극수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가 검을 빼들자, 탁무겸이 그의 움직임을 보다 더 확실하게 잡아냈다.
그러나 장천운도 이제는 환술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쩌저저적!
어둠이 갈기갈기 찢겨지며 검강의 폭우가 탁무겸을 뒤덮었다.
콰과광!
두 사람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연이은 굉음이 대웅전을 뒤흔들었다.
와장창!
충격 여파에 불전의 문이 부서졌다.
동시에 갇혀 있던 물이 터진 둑을 통해 빠져나가듯 대웅전 안의 기운이 부서진 문으로 빨려나갔다.
장천운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빼낸 것이다.
“어딜 가느냐!”
탁무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암중에 은신해 있던 십이암귀 역시 포위망을 풀지 않고 뒤따라서 움직였다.
“훗! 그 정도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짧은 코웃음 소리와 함께 어둠이 회오리치며 장천운을 휘감았다.
탁무겸이 단순한 시험을 넘어서 본신의 힘을 개방한 듯했다.
장천운도 공력을 구성까지 끌어올려서 대항하며 일부 진기로 환술법 중 무영무종을 펼쳤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어둠 덕분에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대웅전처럼 한정된 장소가 아니어서 훨씬 자유로웠다.
그럼에도 탁무겸의 공세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탁무겸은 이미 눈으로 보는 경지를 넘어서서 느낌만으로도 장천운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초인이었다.
과거 손우곤이 그의 위치를 찾아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초감각.
콰과과광!
연달아 터진 폭음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그 직후, 장천운과 탁무겸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사 장여의 거리를 두고 마주서 있었다.
장천운은 안색이 창백했지만 눈빛만큼은 더욱 강렬했다.
“오늘 만남, 기억해두죠.”
탁무겸은 입술 끝을 묘하게 비틀었다.
“좋군, 아주 좋아. 너, 내 사람이 되어라.”
“죄송하지만…….”
“청산자와 금룡신군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걸 안다. 네가 거절했다는 것도.”
알면서도 강요하는 게 모르고 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말만 안했을 뿐 ‘거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말이나 같다.
장천운은 언제든 대응할 수 있게 만만의 준비를 한 후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구천성 소성주님의 호위무사입니다. 다른 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네가 내 사람이 된다면, 암천은 구천성에서 물러나겠다. 그리고 암천의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
‘빌어먹을!’
예상치 못한 말에 장천운은 쌍소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다른 두 노인네와는 생각이 다른 자다.
그만큼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자.
“지금 당장 대답하기는 어려운 제안이군요.”
탁무겸은 무심한 눈으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이는 수밖에 없다.
물론 놈의 기기묘묘한 신법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자신의 위엄은 지켜져야 한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탐나는 놈이다.
정파 나부랭이처럼 겉멋만 든 놈이 아니다.
저 밑바닥부터 아득바득 기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놈,
절벽 아래 던져진 호랑이새끼 같은 놈이다.
호랑이를 산에 풀어주면 다음에 더 잡기가 힘들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저런 놈을 얻기 위해서라면 한발 물러서는 모험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좋아, 이틀의 시간을 주마. 모레까지 결정을 내려라.”
나중에 보자는 거라면 마다할 것도 없다.
“좋습니다. 이틀 동안 깊이 생각해보지요.”
“후후후후, 허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네가 피하면 피하는 만큼 많은 사람의 피가 너를 대신할 테니까. 그럼 이틀 후 여기에서 다시보자.”
나직한 웃음소리와 함께 탁무겸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 후 칠산사를 뒤덮고 있던 어둠의 기운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장천운은 이를 악물고 대웅전을 바라보았다.
삼존불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부처님이 진짜로 있다면 내 사정 좀 봐주쇼. 왜 이런 힘든 일만 저에게 몰아주는 겁니까?’
그가 속으로 투덜거리는데 뒤쪽 건물에서 스님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암천의 무리가 피를 뿌리지는 않은 듯했다.
한편, 백리우진은 칠산사 밖에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쯤 놈은 죽었을까?
‘조용해진 것 같은데, 한번 들어가 볼까?’
그때 갑자기 눈앞에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흠칫한 그는 두어 걸음 물러서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네가 백리우진이란 아이냐?”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음성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단순한 목소리이건만 온몸이 수만 근 바위에 짓눌리는 듯했다.
백리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예, 어르신. 백리우진이라 합니다.”
“그리 나쁘진 않군. 가르쳐놓으며 제몫은 하겠어.”
“감사합니다. 가르쳐주시면 혼신을 다해 배우겠습니다, 어르신!”
백리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인연을 이어놓아야 했다.
“좋아, 저 아이가 내 사람이 되면 수발을 들 놈이 한둘은 있어야겠지.”
뭐?
백리우진은 번쩍 쳐들려던 고개를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저 아이’가 설마 장천운?
그럼 자신더러 장천운의 수발을 드는 하인이 되란 말이잖아?
‘이…… 썅…….’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그는 울컥 솟구친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기 전에 재빨리 머리를 숙이며 억눌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위에서만 보면 영락없이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백리우진은 참고 또 참다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하고 있어? 설마 나를 걱정한 것은 아니겠지?”
장천운의 조소 섞인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고개를 번쩍 쳐든 백리우진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제기랄, 되는 일이 없군. 왜 이 새끼를 죽이지 않고 그냥 놔둔 거야?’
119장 또 다른 살인
거처로 돌아온 장천운은 급히 좌정하고 운기부터 했다.
탁무겸이라는 흑포인과 백리우진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지만 그의 내부는 정상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탁무겸이란 자는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전력을 다해서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험을 할 때도, 객기를 부릴 때도 아니었다.
‘아직은 안 돼. 빌어먹을! 이제 어느 정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최소한 한 늙은이 정도는 정면으로 상대해서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천외와의 건곤일척 승부에서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다.
‘제길, 그보다 소성주가 알면 또 도끼눈을 뜰 텐데…….’
그는 천외의 세 노괴보다 소성주의 잔소리가 더 걱정되었다.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내부가 진정되었다.
장천운은 내친 김에 대주천을 한 바퀴 더 돌렸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살벌한 시기다.
한 올의 기운이라도 더 사용할 수 있게 몸을 만들어놓아야 했다.
다행인 것은 오늘 하루 사마경의 호위를 구양명에게 맡겨서 시간이 많다는 점이었다.
“대주. 들어가도 되겠소?”
막 대주천을 마친 장천운이 눈을 뜨고 일어나는데 밖에서 혁련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곧 혁련기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대주를 찾는 자가 있다 하오.”
장천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모용예 때문에 만나려는 파천회, 무림맹, 그리고 무창의 사람들. 거기다 어쩌면 천외의 무리까지.
“누군데 아침부터 찾아왔답니까?”
굳어 있던 혁련기의 표정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정체를 말하지 않고 동문 밖의 홍산객잔에서 기다린다는 말만 전해왔소. 그리고…… 지금 해가 중천에 떴소. 곧 정오요.”
“어? 벌써 그렇게 됐나?”
쓱, 장천운을 훑어본 혁련기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어제 백리우진과 함께 가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이무기를 만나고 왔지요. 아주 시커먼 이무기를.”
“어떤 이무기인지 몰라도 아주 대단했나 보군.”
“그 이무기가 나를 걸레처럼 비틀어 짜려고 해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죠.”
혁련기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비교를 포기한 장천운이 그리 말할 정도면 도대체 어떤 자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장천운은 반쯤 굳어 있는 혁련기를 보며 씩 웃었다.
“가봅시다. 누가 나를 찾는지 몰라도, 객잔이면 점심은 얻어먹을 수 있겠군요.”
* * *
홍산객잔은 구천성 동문에서 오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었다.
위치도 골목 안인 데다 크기도 작아서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도 한산했다.
장천운과 혁련기가 들어가자 절반쯤 차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두 사람은 일단 빈 탁자에 앉았다.
찾아온 자가 있다면 알아서 접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점소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저, 혹시 장씨 성을 쓰시는 분입니까?”
“내가 장씨 성이네.”
“저 안쪽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천운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점소이를 따라갔다.
객잔의 뒤쪽에는 객실이 몇 개 있었는데, 점소이는 두 사람을 그 중 맨 끝자락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이십대 청년이었고, 두 사람은 삼사십대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그 중 청년이 방으로 들어서는 장천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남궁 형 아니오?”
장천운의 눈이 커졌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자는 다름 아닌 남궁호였다.
그는 장천운이 위명을 떨치고 있음에도 전과 다름없이 대했다.
장천운은 그래서 남궁호가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잘 지냈나?”
“덕분에. 소성주께서도 남궁 형 덕에 무사히 돌아와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