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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08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8화

“뭐요?”

“만나려면 저쪽으로 가보고, 싫으면 그만 꺼져.”

아예 드러누워 있던 구산이 고개만 살짝 들고 짜증내듯 말했다.

백리우진은 눈을 치켜떴다.

구천멸혼수를 익힌 터였다.

이제 구산 정도는 자신의 적수가 아니었다.

“많이 건방져졌구나, 구산. 설마 내가 상관이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

고개만 살짝 들고 있던 구산이 상체를 세웠다.

“상관? 훗! 이봐, 백리우진. 흑월대는 지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

모르진 않았다.

흑월대는 언제 어느 때든 소성주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에게 지위로 억압받으면 임무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 때문에 사마경의 특명으로, 허락받은 자가 아니면 흑월대에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그 허락받은 자의 이름 중 백리우진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무시당할 위치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구산! 오늘 너에게 본 성의 위계를 가르쳐주마! 일어나라!”

백리우진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화악 피어났다.

그때였다.

“우진, 왜 소리를 꽥꽥 지르고 난리야? 뭐 잘못 먹었어?”

백리우진은 홱 고개를 돌려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장천운이 건물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도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치켜떴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석양을 등지고 다가오는 장천운을 보고 있으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해일이 밀려드는 느낌이랄까?

아니, 끝 모를 거벽이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장천운이 이 장 앞까지 다가와서 다시 물은 후에야 압박감이 풀렸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등지고 있던 석양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나?

‘그래, 그랬을 거야.’

백리우진은 그렇게 자위하며 나름 차갑게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다. 그런데 대원들의 정신이 엉망이군.”

“정신이 엉망? 특별교육을 오랜만에 해서 좀 지쳤을 뿐이야.”

“특별교육?”

“너도 받고 싶으면 말해. 다음 교육 때 참가시켜줄 테니까.”

“정말이냐?”

“물론이지.”

축 처져 있던 흑월대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걸레처럼 늘어져 있던 조금 전과 눈빛부터가 달랐다.

먹이를 앞에 둔 독사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

백리우진은 왠지 모르게 불길했지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잘하면 흑월대원들의 면면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지도…….

“좋아, 그럼 다음에는 나도 참가하지. 흑월대의 교육이 얼마나 대단해서 저 꼴이 되는지 알고 싶군.”

씩, 웃은 막소광이 탄성을 터트렸다.

“햐아! 이제 보니 백리 대주도 화통하군.”

목진화와 수은귀도 그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보기보다 멋진데요?”

“생긴 것도 잘생겼잖아.”

“소성주가 괜히 백천대를 맡겼겠수?”

갑작스런 칭찬공세에 백리우진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흑월대원도 그렇게 재수 없는 놈들만 있는 건 아니군.’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

“이제 말해봐. 왜 나를 찾아온 거지?”

“아! 깜박했군.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백리우진은 무화원 작은 연못가에 도착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 가보겠나?”

“누군데?”

“그건 가보면 알 거다. 설마 겁이 나는 건 아니겠지?”

“네 눈에는 내가 겁내는 것처럼 보여?”

“아니라면 망설일 것 뭐 있나?”

“어딘데? 너무 먼 곳이면 갈 수 없어.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걱정 마. 약속장소까지 이십 리니까. 한 시진 안에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거다.”

“좋아, 그럼 잠깐만 기다려. 손님 만나는데 땀내 나는 옷을 입고갈 순 없지.”

돌아선 장천운의 입가에 차디 찬 미소가 피어났다.

작은 웅덩이라도 맑은 물에서는 맨손으로 고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

자신이 보는 만큼 물고기도 보니까.

그러나 웅덩이를 뒤집어서 흙탕물이 되면 자신도 고기를 못 보지만 고기도 자신을 못 본다.

웅덩이라는 한계에 갇힌 이상 언젠가는 눈먼 고기가 휘젓는 손에 걸리기 마련.

제 때 낚아채면 생각보다 쉽게 고기를 잡을 수 있다.

어릴 때 그렇게 해서 웅덩이에 있는 고기를 많이 잡았었다.

그리고 이제는 구천성이라는 웅덩이를 뒤집어 놓았다.

자신은 그저 안으로 뛰어든 고기들이 손가락에 걸리기만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청산궁에 이어서 또 다른 누군가가 걸려든 듯했다.

‘딴에 머리 좀 굴린다는 사람도 웅덩이의 고기랑 다를 게 없어.’

 

* * *

 

칠산사는 구천성 동문에서 정확히 십팔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오밀조밀하게 일곱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진 산자락에 일곱 채의 건물로 지어진 사찰이었다.

서서히 밤이 깊어가는 시각.

장천운과 백리우진이 도착했을 때까지도 산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산문을 지나 천왕전에 들어서자, 사천왕상이 눈을 부릅뜨고 서서 두 사람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정교한지 나쁜 마음을 먹고 지나가면 들고 있던 칼로 머리를 내리칠 것만 같았다.

“속에 시커먼 마음을 먹고 있는 놈은 지나가기도 겁나겠군.”

장천운이 사천왕상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백리우진은 마치 자신에게 한 말 같아서 속이 뜨끔했다.

하지만 목상으로 된 사천왕상이 무슨 해를 입힐 수 있으랴.

슬쩍, 장천운을 흘겨본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려 노력하며 천왕전을 통과했다.

 

노란 대황초가 켜진 대웅전 앞마당에는 삼 장 높이의 석불과 칠층탑이 마주보고 서있었다.

장천운은 탑과 석불 사이에서 사찰 내부를 둘러보았다.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크기로 봐서 스님이 최소한 이삼십여 명은 있을 듯했다.

그런데 저녁공양 시간임에도 오가는 스님들이 보이지 않았다.

단체로 단식을 하는 건 아닐 텐데…….

대신 수상한 암류가 불전 곳곳에서 흘렀다.

개중에는 예사롭지 않은 기운도 서너 줄기나 되었다.

느릿하게 석불과 칠층탑을 둘러본 장천운의 시선이 커다란 대웅전에 고정되었다.

약간 뒤로 처져 있던 백리우진이 조심스럽게 장천운에게서 멀어졌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천운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역할은 안내까지가 전부인 듯했다.

“들어와라.”

대웅전 안에서 나직하고 묵직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만으로는 나이를 짐작키 힘들었다.

걸음을 뗀 장천운은 대웅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아홉 개의 계단을 올라가자 대웅전 문이 눈앞에 있었다.

그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황촛불로 환하게 밝혀진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이 있었다.

중앙의 아미타불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있는 형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 삼존불 앞에 짙은 흑의를 입은 흑포인이 등을 보이고서 서있었다.

키가 상당히 큰 자였다.

장천운도 큰 편인데, 그보다 두어 치는 더 클 듯했다.

몸매는 약간 마른 듯 보였다. 하지만 그 하나가 더해진 것만으로도 커다란 대웅전 내부가 꽉 찬 듯 느껴졌다.

장천운은 문이 열렸음에도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힘껏 움켜쥔 주먹 안이 땀으로 흥건했다.

“계속 서있을 거냐?”

조금 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하는 듯했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은 삼존불 앞에 서있는 흑포인이었다.

장천운은 대웅전 안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등을 돌리고 있던 흑포인이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를 바라보는 장천운의 눈이 절반 정도로 가늘어졌다.

흑포만큼이나 검은 수염이 코밑부터 턱밑까지 뒤덮고 있는 자였다.

눈은 눈동자가 어찌나 검은지 짙은 먹물이 고여 있는 듯했다.

무표정한 얼굴이어서 그런지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삼십대? 사십대? 아니 오십대?

나이도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저 자는 누구지?’

그 사이 흑포인이 완전히 돌아섰다.

그의 입가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역시 오길 잘했어. 기대했던 대로야.”

장천운은 흑포인과 이 장 정도 남겨 놓고 멈춰 섰다.

“뉘십니까?”

정말로 궁금했다.

저 정도의 인물을 그는 지금까지 두 사람 보았다.

청산자와 금룡신군.

앞에 있는 자 역시 그 두 노괴에 비해서 뒤지지 않을 듯 느껴졌다.

“나는 탁무겸이라고 한다.”

“저는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지.”

“제 목을 가져가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설마 숨어서 눈치나 보는 자들을 믿는 건 아니시겠죠?”

그 순간, 대웅전 사방의 벽과 천장에서 어둑한 기운이 출렁거렸다.

지독한 살기.

하지만 장천운은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주인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졸개들이 나대다니. 수하들을 잘못 가르쳤군요.”

출렁거리던 기운이 멈칫거렸다.

공포에 질려야 할 어린놈이 설마 그런 식으로 대들 줄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장천운이 그들에게 한방 더 먹였다.

“주인을 무시하는 수하는 언제든 사고를 치는 법이죠. 앞으로 철저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출렁거리던 기운이 뒤로 물러나더니 조용해졌다.

그들의 주인은 교육이란 게 없었다.

그저 말을 안 들으면 죽일 뿐.

흑포인, 탁무겸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놈이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십이암귀를 말 몇 마디로 갖고 놀다니.

하지만 표정과 달리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안다. 쉽게 죽일 놈 같았으면 이미 죽었겠지.”

“혹시 암천문에서 오시지 않았습니까?”

장천운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탁무겸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다면?”

“암천의 주인, 암천신마십니까?”

솔직히 너무나 젊었다.

그래도 혹시 알아? 주안공이라도 익혀서 껍데기가 젊게 보이는지.

왜, 반로환동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이 오히려 의문만 키웠다.

“편한 대로 생각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까.”

뭔 대답이 그래?

재차 묻기도 어정쩡해진 장천운은 질문을 돌렸다.

“왜 대령주나 독고 노선배를 찾아가지 않고 저를 찾으셨습니까?”

“어떤 놈인지 보고 싶었다. 본문의 꿈을 망쳐놓고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

장천운은 바짝 긴장해서 슬그머니 기운을 일으켰다.

겉으로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단순히 제가 보고 싶어 오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하실 말씀 있으면 해보시지요.”

“그래, 말을 돌리는 것은 내 성격과 맞지 않으니 솔직히 말하마. 그 전에…… 우선 너부터 알아봐야겠다.”

장천운은 탁무겸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뒤로 다섯 자가량 미끄러지며 거리를 일장 반 이상으로 벌렸다.

하지만 그 정도의 거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탁무겸은 온기 없는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폭사했다.

장천운은 반사적으로 두 팔을 가슴에서 교차시켰다.

순간적으로 대웅전 안이 캄캄해지며 거대한 철벽이 덮쳐 오는 듯했다.

그도 잠시, 탄력이 강한 밧줄이 그의 몸을 휘감기라도 한 듯 가공할 압박감이 느껴졌다.

‘제길, 뭐 이리 강해?’

무형의 기운이 그를 똘똘 말아서 쥐어짜는 듯했다.

그러나 청산자와 금룡신군을 상대하며 자신보다 강한 기운에 대응할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장천운이다.

그는 탁무겸의 공격에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기운이 흐르는 대로 자신의 기를 순응시켰다.

탁무겸의 시커먼 눈동자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장천운을 쥐어짠 걸레처럼 만들 것 같던 암흑의 기운이 겉돌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놈이군. 자신의 기운을 암흑천신기의 기류에 순응시키다니.’

그냥 죽여야 하나?

이런 놈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급격히 성장하는 법이다.

얼마 안 지나서 위협이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

불길한 싹은 더 크기 전에 잘라버려야 한다.

‘하지만 이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수백 명을 벌레 잡듯 죽이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던 그다.

그런데 난생 처음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장천운 역시 고민했다.

좀 더 압박이 강해지면 방어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할 터.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진짜 껍데기만 젊은 암천신마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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