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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06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9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6화

영산자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던 장천운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차만 음미했다.

“어디서 가져온 차인지 정말 좋군요. 시간이 가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 말을 할 때는 진짜 도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빈도가 직접 덖은 차네.”

“역시 도를 닦은 분이 만든 것이어서 맛이 더 청아했나 보군요.”

“허허허허, 고맙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차를 만드시는 분이 왜 속세의 일에 뛰어드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영산자의 수염이 살짝 살랑거렸다.

바람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그만이 알 일이었다.

“허허허, 가슴이 뜨끔한 말이구먼.”

“뭐, 우민들이 좀 더 살기 좋게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나온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네.”

“내기만 하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다시 한 번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따끔거렸다.

“청산진인께서도 차를 덖으십니까?”

“빈도도 사형께 배웠네.”

“그랬군요.”

가벼운 말 한 마디였지만 영산자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그런 분이 왜 이런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꼭 그렇게 들리는 듯했다.

영산자도 더는 밀릴 수 없다 생각하고 장천운을 직시한 채 말했다.

“시주는 강호가 지금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가?”

“안 돌아가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힘없는 무사들은 싸움에 나가 제일 먼저 죽네. 그러나 정작 힘 있는 자들은 뒤에서 명령만 내리지. 힘없는 무사들만 피해를 보는 세상이 결코 바른 세상은 아니라고 보네만.”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삶이 있습니다. 누가 강제로 억제한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불공평한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야 그렇지요.”

장천운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영산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빈도의 사형은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어 했네. 물론 완벽한 세상은 힘들겠지만 말일세.”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이해해주니 고맙구먼.”

“그런데 그런 세상은 내기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느닷없는 한 수에 영산자의 웃음이 쓴웃음으로 변했다.

“그야 물론이지. 내기는 그저 그분들의 유흥거리일 뿐이네.”

“사람들의 삶을 담보로 유흥을 즐긴다? 아무리 뜻이 좋다 해도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큰 뜻을 펼치다 보면 약간의 일탈도 있는 법이네.”

“그 일탈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좌우한다면 함부로 해선 안 될 일이지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모두가 좋아질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거네.”

“그분들이 나선지 삼십 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좋아졌습니까?”

“아직 목표한 만큼 안 되었기에 직접 나서신 걸세.”

“하나만 묻지요.”

“말해보게.”

“사람이 모두 같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결코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없겠지가 아니라, 없습니다. 그래서 하고자 하는 일도 다르고, 원하는 일도 다르고,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다고 봅니다. 최선을 위해서 노력은 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잘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노력도 하지 않고 잘되기만 바라는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들로 인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것입니까?”

“공평해지기 위해서는 약간의 피해도 감수해야 하네.”

“심성 역시 각양각색입니다. 선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욕심을 부려서 남의 것을 탐내는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노력하는 대신 노력하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을 빼앗습니다. 진인의 말씀대로라면, 그 정도 피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감수해야겠군요.”

다그침처럼 들리는 말이 계속되자, 영산자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건 너무 심한 비약이네.”

“심한 비약이라…… 이제 보니 산에 살며 도만 닦으셔서 그런지 사람 사는 세상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영산자의 하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처음으로 상한 기분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빈도가 비록 오랜 세월 도를 닦았지만, 세상에 대해서 알 만큼은 아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은 가장 평범한 것에 불과합니다. 진실은 그보다 백배, 천배 더 험악하지요.”

“그래서 최대한 바꿔보려는 것 아닌가? 노력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배척만 해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네.”

“물론 진인의 말씀처럼 최대한 노력하다 보면 어느 정도 바꿔질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렇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흐음, 이제야 이해했나 보군.”

“하지만 말입니다. 지금 천외의 세 분처럼 해서는 절대, 조금도! 바꿔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무슨 말인가?”

“아무리 뜻이 좋다 해도, 기본적인 마음이 잘못 되었는데 결과가 좋을 리 있겠습니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나만이 할 수 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못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서는 피해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어! 이렇게 지독한 아집과 욕망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데 결과가 어찌 좋겠습니까?”

영산자가 버럭 소리쳤다.

“젊은 시주가 지나친 편견에 사로잡혀 있구나!”

“하하하하! 저야 어차피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니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심오한 뜻을 펼치겠다는 분들이 사람의 삶을 걸고 내기나 한다? 정말 웃기는 일 아닙니까? 약간의 유흥? 개나 주라지요!”

“갈—!”

화아아악!

영산자에게서 폭발하듯 터져나간 기운이 방 안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촤아아악!

방의 입구 쪽에 서 있던 두 중년인이 동시에 몸을 날려서 장천운을 공격했다.

참고 참았던 분노를 장천운의 피로 대신하겠다는 듯.

“여긴—!”

타앙!

도도한 자세로 앉아 있던 장천운이 일갈을 터트리며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탁자가 폭발하듯 부서지며 부챗살처럼 퍼졌다.

“구천성이야!”

얼음이 터지듯 울리는 냉랭한 목소리!

촤라라락!

장천운이 손을 젓자, 휘몰아치며 밀려들던 기운이 갈가리 찢어지며 터져나갔다.

와장창! 콰광!

창문은 창문대로 부서지고, 방문 역시 산산조각 나서 바깥쪽으로 비산했다.

콰르르르르릉.

건물 전체가 흔들리면서 천장이 무너질 듯 울어댔다.

마치 방 안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했다.

콰당! 퍽!

장천운을 공격했던 두 중년무사 중 하나는 벽을 뚫고 반쯤 처박혔고, 하나는 부딪친 후 떨어져서 피를 토했다.

장천운과 영산자는 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있던 원목 탁자는 보이지 않았다.

방바닥에 잘게 부서진 나무 찌꺼기가 쌓여 있었는데, 이쑤시개나 하면 될 듯했다.

“이제야 속 터놓고 이야기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군요.”

장천운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영산자는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앞에 있는 놈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신음조차 속으로 삼켰다.

‘으으음.’

창백한 안색, 비릿한 피냄새가 목구멍에 가득했다.

작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다.

청산궁의 이인자인 자신이. 천외삼성 외에는 누구도 위로 두지 않았던 자신이 말이다.

그런데 뭐라? 이제 이야기할 환경이 되었어?

“무슨 일이오, 대주!”

밖에서 영빈각을 지키는 경비무사들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별 거 아니오. 속이 안 좋아서 방귀를 뀌었더니 이렇게 됐소.”

“…….”

누구도 웃지 않았다.

농담도 그 정도면 한여름 더위를 밀어낼 만큼 썰렁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감정이 없어. 좀 웃지 말이야.”

장천운이 여전히 영산자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제야 영산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량수불, 세상이 정말 재미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 것 같군.”

“다행입니다. 지금이라도 아셨다니. 어떤 분들은 그 재미도 모르고 내기만 하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속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창문도 터지고 방문도 터졌으니, 저와 진인도 속을 터놓죠. 탁자까지 없어졌으니 경계도 없지 않습니까?”

환경이란 게 그런 뜻이었나?

아무 것도 아닌 말 같지만, 참으로 고상하고 심오한 뜻이 담긴 듯 느껴졌다.

도사가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했겠지만.

“빈도가 자네를 잘못 봤군.”

장천운은 씩, 웃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그래,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겠나?”

“그야 주고받을 것에 대한 이야기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아네만.”

“거래라는 게 어디 항상 같을 수 있습니까? 상황이 바뀌면 조건도 바뀔 수 있는 거죠. 아실만 한 분이 왜 이리 딱딱하십니까.”

“약속을 어기겠다?”

“청산궁도 상황이 바뀌면 거래조건을 바꿨을 것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어디 원시천존을 걸고 말씀해 보시죠.”

“험, 험…….”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영산자는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입술 사이에서 피가 튀었다.

“거, 몸도 안 좋으신 것 같은데, 빨리 끝내고 쉬시죠.”

영산자의 얼굴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러잖아도 내상을 입었는데 속이 다시 끓기 시작했다.

길게 이야기해봐야 좋을 꼴 보기는 틀린 터.

그는 장천운을 노려보며 흔쾌히 대답했다.

“좋네! 그럼 다시 이야기해보지.”

“아! 그럴 게 아니라, 청산자 어른이 오시면 이야기할까요?”

“지금 하자니까!”

 

 

118장 탁무겸

 

 

금룡장의 지부역할을 했던 일원장에서 백여 장 떨어진 곳에 아담한 장원이 하나 있었다.

평범한 노학자가 머물던 조용한 장원이었는데 하루 전에 주인이 바뀌었다.

새로 주인이 된 사람도 노인은 노인이었으나, 결코 이전 주인처럼 평범한 노학자는 아니었다.

“장천운이 영산자를 만났단 말이지?”

“예, 태군.”

금룡신군은 반쯤 감은 눈으로 정원을 바라보았다.

배롱나무 붉은 꽃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우곤, 너는 그놈이 청산자와 손을 잡을 거라 보느냐?”

손우곤은 금룡신군의 등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현재로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

금룡신군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겠구나.”

“아마 그럴 것입니다.”

“됐다.”

“예?”

“나는 그놈을 안다. 모두가 그리 알게 되었다면 그게 바로 그놈의 의도일 거다.”

“하오면……?”

“내 피가 뜨겁다는 걸 오랜만에 느껴보는구나. 그놈 덕분이야.”

금룡신군의 수염 사이로 하얀 이가 보였다.

눈가의 주름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손우곤은 숨을 멈추었다.

금룡신군이 저리도 밝게 웃는 날이 있다니.

장천운에 대한 질시와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 그는 가슴에 쇳덩이가 들어찬 듯했다.

‘장천운,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놈이로구나.’

그때 금룡신군이 그를 불렀다.

“우곤.”

“예, 태군.”

“내일, 구천성에 들어가 봐야겠다.”

“직접 말씀입니까?”

“내 눈으로 한번 둘러봐야겠어.”

“정 그러시다면 준비해놓겠습니다.”

“준비는 무슨?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지금의 이름 없는 장원은 일원장보다 구천성에 더 가까웠다.

나들이 하듯이 슬슬 걸어갔다 와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오나 무지한 자들이 무례라도 범하면…….”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오랜만에 시골노인 흉내 좀 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들어간 김에 기회가 되면 그놈도 만나봐야겠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손우곤의 눈매가 가늘게 흔들렸다.

‘결국 또 그놈인가?’

 

* * *

 

장천운을 째려보는 사마경의 눈매가 구미호조차 눈길을 돌릴 만큼 매서웠다.

“하여간…….”

“다친 곳 없이 잘 돌아왔잖습니까?”

“정말 괜찮아?”

“소성주 몸이나 걱정하십시오.”

“내 몸은 걱정 마. 아주 좋으니까. 그게 그렇게 좋은 줄 몰랐어.”

움찔한 장천운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건 약 덕분일 뿐입니다. 그거 때문이 아니고.”

“그게 그거지 뭐. 그걸 해서 약기운을 제대로 받은 거잖아.”

“그보다 천경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육 전주님을 계속 놔두면 대령주가 그걸 핑계로 삼아서 소성주를 몰아붙일 겁니다.”

장천운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사마경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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