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0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5화
“구천성에 해가 되는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원주의 뜻에 따라달라는 부탁이 구천성에 해가 되는 명령인가? 어디 말해봐라.”
그에 대해선 반박이 쉽지 않았다.
나극이 소성주와 적대관계라 해도 아직은 장로원의 원주다.
구체적으로 내린 명령이 아닌, 자신의 말에 따라달라는 정도의 말은 해가 된다고 볼 수도 없었다.
장천운은 일단 구평추를 바라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장로.”
구평추는 먼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그러고는 소매로 입술의 피를 닦고 눈을 부라린 채 말했다.
“앞으로 사소한 일도 매일 상세하게 보고하라더군. 또한 호위무사도 원주가 허락한 자들 외에는 안 된다고 했네. 그래서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했더니, 명령불복종이라며 다짜고짜 제압하려고 하더군. 그래서 대항한 것이네.”
“그래요?”
장천운은 번개처럼 머리를 굴렸다.
교활한 의미가 숨겨진 명령이었다.
매일 상세한 보고를 하게 되면 일거수일투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거짓으로 쓰면 속였다며, 말을 하지 않으면 또 숨겼다며 죄를 물을 것이다.
게다가 호위무사를 나극이 승인한 무사로 바꾸면 목줄까지 쥐어주게 되는 셈이다.
그러니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데, 공손백과 나극은 교활하게도 그에 대한 거부를 명령불복종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놈!’
공손백은 조소를 지은 채 느긋이 지켜보기만 했다.
소성주가 문제 삼을 경우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 두었다.
목적은 일단 장로원을 완벽히 장악하는 것.
소성주를 따르는 자들은 장로원 안에 없는 것이 나았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쫓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후 자신에게 배타적인 호법원과 다른 조직들을 차례차례 손 안에 넣을 계획이다.
사흘.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소성주를 고립시킨 후 구천대평의회를 소집하면 모든 게 끝이 난다.
구천대평의회에서 소성주의 임시성주 지위를 박탈하고, 대령주의 지위를 강화시킬 것이니까.
명분도 있다.
전쟁 중 사적인 일로 많은 수하들을 죽게 한 죄!
‘그러고 보면 종리성학이 헛일을 한 것은 아니군.’
그때 장천운이 말문을 열었다.
“원주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따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장 대주!”
구평추가 흠칫 놀라서 장천운을 바라보았다.
반면 공손백은 득의의 표정이었고, 나극은 별반 표정변화가 없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설마 대장로께서 무리한 명을 내리겠습니까? 안 그래도 소성주께서 장로원의 체계를 바꾸려고 하시는데, 이번 일로 시기가 앞당겨질 것 같군요.”
생각지 못한 말에 공손백의 표정이 달라졌다.
“장로원의 체계를 바꾼다?”
“구천성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
“강적과 싸우기 위해서 힘을 합쳐도 부족한 판에 애들처럼 편 가르기나 하면 되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아예 새롭게 개편하는 게 낫지요.”
졸지에 애들 취급 당해버린 공손백은 분노로 얼굴이 벌게졌다.
“네놈이 정녕 못하는 말이 없구나!”
“저보다 더 큰 문제는, 임시성주이신 소성주님을 개똥처럼 취급하는 분들 같습니다만.”
“흥! 네놈이 이제 소성주를 믿고 막나가는구나!”
“천외의 세력 중 하나인 암천문의 힘을 내부로 끌어들인 분이 하실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장천운은 적절한 때에 천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뭐야?”
“아니라면 구천성을 농락하는 암천신마라는 자에 대해서 욕이라도 한번 시원하게 해보시지요.”
“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다.”
“듣지 못했다 해도 욕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욕한단 말이냐?”
“정말 암천신마라는 사람을 모른단 말입니까?”
“모른다고 했잖느냐?”
“이상하군요. 엊그제 죽은 모진태라는 자가 암천신마의 수하인데 모르다니요?”
“글쎄, 모른데도!”
“그럼 풍령장의 독고광이란 분도 모릅니까? 경천단 독고태 단주님의 숙부 되는 분입니다만.”
“그와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엊그제 만나고 오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넘겨짚어서 해본 말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으니까.
천하의 공손백도 장천운이 워낙 당당하게 말하니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니까 인사차 만난 것뿐이다.”
“그럼 그분이 암천문의 간부인 것은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느냐?”
“모진태도 모르고, 독고광이란 분의 정체도 모르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셨으면서, 그들이 암천문의 간부라는 것도 몰랐다니. 그럼 대체 아는 게 뭡니까? 상대의 정체도 모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면…… 허어, 이런! 그럼 본 성의 기밀이 넘어갔어도 몰랐을 것 아닙니까?”
“이놈!”
공손백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래봐야 장천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한술 더 떴다.
“아무래도 대령주에게서 기밀이 유출되었는지 조사해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히 네놈이……!”
“유출된 기밀이 없다면 다행입니다만, 만에 하나 유출된 것이 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네놈이 감히 나를 모함하려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잘못한 것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인데, 왜 화를 내십니까? 혹시 마음에 걸리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공손백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주둥이로는 도저히 놈을 당해낼 수 없었다.
‘어디 나중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보자, 이놈!’
가까스로 분노를 누른 그는 서리가 내릴 것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장천운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시퍼런 노화가 활활 타올랐다.
“그거야 어디 네놈 마음대로 해봐라. 하지만 그 전에 소성주의 잘잘못부터 논해야만 할 것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며칠 후면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알아볼 것 다 알아봤으면 그만 가봐라. 네놈 말대로 구천률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니까.”
* * *
“장로원을 개편한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인데?”
사마경은 장천운이 장로원에서 급조해 한 말을 전해 듣고 눈빛을 반짝였다.
어차피 공손백과 나극의 손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장로원이다.
자신을 따르는 장로들이 그곳에 머물다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오늘만 해도 자신을 지지하는 장로 넷이 부상을 입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수상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어제 오늘 일인가?”
“어쨌든 천외에 대해서 까발렸으니 어떤 식으로든 곧 반응이 있을 겁니다.”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나도 이판사판이야. 나오려면 다 나오라고 해.”
분위기만 달라진 게 아니라 겁도 없어졌다.
장천운은 사마경을 빤히 바라보다가 화제를 돌렸다.
“소성주, 영산자를 만나볼 생각입니다.”
움찔한 사마경이 장천운의 눈을 직시했다.
“괜찮겠어?”
상대는 천외삼세 중 하나인 청산궁의 이인자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외의 세 괴물 외에는 저를 어쩌지 못합니다.”
“그놈의 자신감은. 그래서 장로원에 들어가 그렇게 다친 거였어?”
사마경이 핀잔을 주었다.
장천운도 할 말은 있었다
“그때 제가 상대한 사람이 몇 명입니까? 그 중 한 사람이 공손백이었다고요.”
“좌우간 조심해. 함부로 나대지 말고.”
사마경의 걱정하는 마음을 왜 모를까.
“알겠습니다, 소성주.”
집무실을 나온 장천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시간은 백리우진과 백천대가 경비를 설 때.
자신이 안에 있을 때는 더더욱 자리를 비우지 않는 백리우진이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뒷간에 갔나?’
그럴 수도 있는 일.
장천운은 그러려니 하고 구천무원을 나섰다.
* * *
장천운이 구천무원을 나설 때 백리우진은 백리호를 만나고 있었다.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간 그는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는 백리호를 보고 의아한 마음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숙부님?”
백리호는 평상시와 다르게 들뜬 표정이었다.
평생 바라던 보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오늘밤에 장천운을 칠산사로 데려가라.”
“예?”
“중요한 것은 아무도 몰래 데려가야 한다는 거다. 아주 자연스럽게.”
칠산사(七山寺)는 구천성 동쪽 이십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찰이다.
왜 그곳에 데려오라는 걸까? 죽이려고?
그 또한 의문이다.
죽일 생각이라면 굳이 그 먼 곳에 있는 사찰까지 데려갈 이유가 없다.
죽이고 나서 극락왕생을 빌어줄 것이 아니라면.
십 리만 가도 죽이기 좋은 장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대령주의 명령입니까?”
“후후후후, 아니다.”
“하면……?”
“사형보다 더 위대한 분께서 내린 명령이다.”
백리우진은 눈을 부릅떴다. 자신도 모르게 눈초리가 떨렸다.
공손백보다 위대한 분.
전이었다면 무슨 말인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외라는 하늘 밖의 힘이 알려진 지금은 무슨 뜻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 천외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부르는 건가?’
공손백은 암천문이라는 곳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암천문의 주인이 부른다는 뜻.
알 수 없는 전율에 온몸의 털의 올올이 솟구쳤다.
‘정말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들일까?’
하늘처럼 여겼던 공손백조차 고개를 숙이는 자다.
만약 자신이 그를 만날 수 있다면?
‘그래, 어쩌면 나에게 또 다른 기회일 수 있어!’
주먹을 움켜쥔 그는 내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숙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행하겠습니다.”
“명심해라. 혹여 그분을 만나더라도 절대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예.”
“헛된 욕심 부리지 말고.”
그 말에 백리우진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차가운 비수가 머리에 꽂히는 듯했다.
백리호 역시 자신과 같은 욕심을 내고 있나보다.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다. 평생 공손백과 사마중천에게 눌려서 살아온 사람 아닌가.
아마 이번이 공손백을 넘어설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숙부. 저는 제 그릇을 압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대신 내가 가진 마지막 힘을 너에게 주마.”
백리호는 품속에서 작은 서책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누런 양피지로 된 얇은 책자였다. 잘해야 열 장이나 될까?
“구천멸혼수로 펼칠 수 있는 구천삼절이다. 비록 삼초식에 불과하지만, 완성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거다. 이 숙부도 삼십 년을 익혔는데 팔성 경지를 넘어서지 못했느니라.”
백리우진의 눈 깊은 곳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구천멸혼수를 익히며 가장 아쉬웠던 게 초식이다.
구천멸혼수는 위력이 강한 반면, 이상할 정도로 초식과 상생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아직 완성을 못해서 그런가 했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음험한 자. 결국 반쪽만 줬던 거였어.’
그래도 감격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숙부!”
“후후후후, 앞으로 내 것은 결국 너의 것이 될 거다.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아니더냐?”
그를 알지 못했다면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리우진은 백리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면 내일이라도 자신의 머리를 부술 수 있는 사람이 백리호라는 걸.
“제가 어찌 숙부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저에게 내린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 * *
영산자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앞에 앉아 있는 놈, 반각 전쯤 찾아온 장천운 때문이었다.
장천운은 찾아왔을 때 인사한 것 외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차만 마셨다.
자신도 그를 살펴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길 반각.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는 자신의 가슴이 답답해진 이유를 깨닫고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이가 없군, 이제 겨우 이십대인 아이의 선천지기에 빈도가 눌리다니.’
청산자의 손에서 벗어날 정도로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백운과 여강이 함께 손을 쓰고도 그를 막지 못했다는 말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선천지기에서 자신이 밀릴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상대는 이제 겨우 이십대 아닌가.
오랜 세월 대자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선천지기가 쌓여봐야 얼마나 쌓였겠는가.
더구나 자신은 도를 닦는 도인, 육십 년이나 선천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도를 닦은 사람이다.
그런데 밀렸다.
‘어쩌면 사형이 하고자 하는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장천운을 바라보는 영산자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