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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0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7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04화

계단을 내려가던 그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눈 깜짝할 새에 밑으로 내려간 그의 눈에 짙은 운무로 가려진 사마경이 보였다.

옷은 제멋대로 풀어헤쳐져 있고, 머리카락은 산발해서 사방으로 휘날렸다.

칠채색의 운무가 그런 사마경을 중심으로 휘돌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사마경의 주위를 살펴보던 그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사마경에게서 일 장 정도 떨어진 곳에 뚜껑이 열린 하얀색 함이 있었다.

함이 하얀 것은 백사의 껍질로 감싼 것이기 때문인데, 전에 들어왔을 때 그도 본 함이었다.

그의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 함에는 정체불명의 단환이 들어 있었다.

전전대 성주인 구천무종 담광후가 무산(巫山)에 갔을 때 우연히 얻었다는 단약으로, 정확한 성분을 알지 못해서 이십여 년 째 보관만 하고 있었다.

담광후조차도 절대 남자가 복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여자라 해도 천음지체가 아니면 안 되고, 혼인하지 않은 여자는 복용해선 안 된다는 것 정도만 알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력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영약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복용해봐야 큰 득도 없고, 잘못 복용하면 큰일 난다는데 누가 모험을 하겠는가.

그러니 처박혀 있을 수밖에.

사마경이 장천운에게 줄 단약을 찾을 때 제외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다만 기이한 것은 이십 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썩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저 속에 있는 단약을 복용했나?’

아무래도 그런 듯했다.

그런데 왜 저런 모습일까?

옷이 반쯤 찢겨져서 속살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살결이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고혹적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제길,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다급히 정신을 가다듬은 장천운은 공력을 끌어올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도는 칠채색 기는 그녀가 익힌 봉황천신공으로 인한 봉황천신기였다.

그가 다가가자 칠채색 기운이 강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사마경의 봉황천신기로는 장천운을 막을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장천운과 사마경의 거리가 일 장쯤 되었을 때 사마경의 입이 열렸다.

“천운…….”

“조금만 참으십시오, 소성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가늘게 떠진 사마경의 눈꺼풀이 파들거렸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옅은 신음이 칠채색 기운과 함께 흘러나왔다.

“으으음…… 가슴이…… 이상해…….”

“곧 제가 내력을 주입할 겁니다. 받아들여서 진기를 다스리십시오.”

장천운은 거리가 다섯 자로 줄어들자 공력이 실린 손을 내밀었다.

그때였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사마경이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헉! 소성주!”

장천운은 엉겁결에 그녀를 끌어안았다.

역시나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다.

그녀의 온몸이 끓는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뜨거웠다.

게다가 기이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그 향기를 맡은 순간 장천운은 허공에 붕 뜬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묘해서 뭐라 형용하기 힘든 향기였다.

천상의 향기가 있다면 이런 향이 날까 싶었다.

“천운…….”

사마경의 입술이 그의 입술을 덮었다.

장천운은 무의식중에 그녀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솜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데다 기이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입안에서 나는 향기는 더욱 강해서 그나마 잡고 있던 정신의 끈마저 풀어져버렸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탐했다.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갑자기 불어온 열풍은 지하석실을 태워버릴 것처럼 더욱 뜨겁게 휘몰아쳤다.

 

한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소연추와 류화는 장천운마저 나오지 않고 더욱 초조해졌다.

“무슨 일이죠?”

“글쎄다.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그때 구양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선자?”

소연추는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구양명은 이마를 찌푸리고 고민하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왜 그래요?”

소연추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구양명은 손으로 그녀의 말을 제지하고 몸을 숙였다.

“잠깐만 기다려보시오.”

귀를 바닥에 댄 그는 공력을 운기해서 청력을 극대화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양명이 천천히 일어났다.

표정이 조금 이상했는데, 왠지 멋쩍으면서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무슨 소리라도 들었어요?”

“희미하게 들리긴 했는데…….”

구양명은 대충 얼버무리더니,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말했다.

“아, 잠깐 볼 일이 있으니 나갔다 오겠소. 그리고 너무 걱정 마시오. 아마 조금 있으면 나오실 거요.”

“정말요?”

“험, 그렇소.”

구양명은 대충 대답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연추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내실 쪽으로 바짝 가까이 가더니 구양명처럼 무릎을 꿇고서 귀를 바닥에 댔다.

류화도 그녀를 따라했다.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두 여인은 공력을 끌어올려서 소리를 좀 더 자세히 들으려 했다.

곧 소리가 좀 더 확실하게 들렸다.

입이 살짝 벌어진 두 여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둘 누구도 바닥에서 귀를 떼지 않았다. 귀를 떼기는커녕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청력에 집중시켰다.

“저…… 선자, 무슨 소리가 들려요?”

“그, 글쎄? 소리가 아주 작아서 잘 모르겠어. 넌 들려?”

“그게……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 같아서…….”

 

 

117장 터 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이름을 잘 지었나보다.

남들은 별 것이 아니라고 한 단약 덕분에 천운을 얻었으니 말이다.

“저, 괜찮습니까?”

장천운이 흐트러진 옷을 여미며 멋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사마경도 제멋대로 휘날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찢어진 옷자락으로 보일 듯 말 듯 감춰진 가슴보다 머리가 더 신경 쓰이는 듯했다.

하긴 뭐, 조금 전만 해도 별 짓 다했는데.

머리야 흐트러져 있으면 예쁘게 안 보이니까 먼저 손이 갈 수밖에.

“죄송합니다.”

“내가 약을 무턱대고 복용해서 그런 건데 뭐.”

“그러게 왜 복용하셨습니까?”

“내가 뭐 알고 먹었어?”

혹시나 해서 먹었다. 설마 나쁜 약은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서.

“그래도 조심하시지.”

“피이.”

“밖에서 안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석벽이 얼마나 두꺼운데.”

두 사람은 누군가가 바닥에 귀를 대고 들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말이다.

“안 좋은 약은 아니었나 봅니다.”

“맞아. 공력이 많이 늘은 것 같아.”

그건 사마경의 사정이었다.

“저는 공력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내상이 다 나았습니다.”

“그래? 정말 다행이네.”

내상만 나은 것이 아니다.

그래도 다른 부분은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자신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저 뭔가 나아진 것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뿐.

“밖에서 기다릴 것 같은데, 그만 나가시죠.”

“알았어. 나는 옷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먼저 나가.”

다행히 수련실에는 예비용 무복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를 예상하고 준비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지하수련실에서 나온 장천운은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한 후 집무실로 나갔다.

시간이 두 시진이나 흘러서 어느새 오시 초입이었다.

소연추와 류화가 그때까지도 있었다.

“저, 다행히 별 일은 없었습니다. 소성주께서도 곧 나오실 겁니다.”

“그, 그래? 다행이네. 난 또 아가씨께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소연추는 어색한 표정으로 얼버무리고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책을 들었다 놓고, 붓통도 다시 정리했다.

“저는 차를 다시 데워와야겠어요.”

류화도 허둥지둥 찻주전자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장천운은 자신의 모습에 신경 쓰느라, 두 여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어디 표 나는 곳은 없지?’

그때 밖에서 혁련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성주! 장로원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들어오쇼.”

장천운이 우선 명을 내렸다.

문이 열리고 혁련기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대령주 쪽에서 소성주를 따르는 장로들을 쳐낼 생각인 모양이오. 트집을 잡아서 싸움을 벌였소.”

“흥! 마음이 다급해졌나 보군.”

“대주, 가봐야 하지 않겠소?”

마침 내실에서 사마경이 나왔다.

“가봐, 천운.”

그녀의 겉모습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기 힘든 기이한 분위기가 풍겼다.

이유를 정확히 모르는 소연추와 혁련기는 소성주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마음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걸 해서 그런가? 뭔가 달라지신 것 같아.’

‘소성주께서 나날이 커지시는구나.’

하지만 장천운은 그 이유를 알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정말 하루사이에 많이 달라졌군. 운이 좋았어.’

그가 제때 들어갔기 때문에 얻은 행운이었다.

아마 그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혈맥이 터져서 죽든지, 아니면 또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예, 소성주. 갑시다, 혁련 조장.”

 

* * *

 

구천성의 많은 무사들이 장로원 입구에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간부들도 있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안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장천운과 흑월대 일조가 접근하자, 장로원 앞에 있던 무사들이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무사들은 장천운을 알아보고 당황한 표정이었다.

“소성주의 명으로 왔다. 설마 앞을 막겠다는 건 아니겠지?”

장천운은 평소와 달리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막으면 무력으로 뚫고 들어가겠다는 의사가 명백한 표정.

경비무사들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는지 길을 터주었다.

그들도 전에 경비조장이 소성주의 앞을 막았다가 장천운에게 목이 잘린 일을 모르지 않았다.

장로원 안쪽은 살기마저 감돌았다.

내부의 경비무사들은 장천운과 흑월대를 알아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장천운의 앞을 막지 못했다.

 

장로원 중앙의 연무장에는 삼십여 명이 대치하고 있었다.

말이 대치지 일방적인 상황이었다.

공손백과 나극을 위시한 이십여 명이 구평추를 비롯한 장로 넷과 그들을 호위하는 측근무사들을 반원형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이미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듯 대여섯 명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모두 소성주파 쪽 장로와 측근무사들이었다.

구평추가 소성주파 무리의 맨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역시 부상을 당한 듯 안색이 창백했다.

“멈추시오!”

장천운이 몸을 날려서 그들 중간에 뛰어들었다.

오종과 배청 등은 장천운이 내려선 걸 보고 불에 데인 사람처럼 황급히 물러섰다.

하지만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무사 하나는 미처 장천운을 알아보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네놈은 누군데 감히 나서느냐!”

최근 장로원에 보강된 신임 장로 중 하나로, 청혼마수 번곽이라는 자였다.

그는 장천운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나이가 어린 걸 알고 쌍장을 휘둘러서 공격했다.

“비켜라, 이놈!”

막 땅에 내려선 장천운은 몸을 비스듬히 돌리면서 좌수로 뇌정무극수를 쳐냈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일수.

그러나 번곽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순간.

쾅!

단발의 굉음이 울리고, 번곽의 몸이 붕 떠서 이 장을 날아간 후 바닥에 떨어졌다.

놀라운 광경에 연무장 안이 고요해졌다.

마도의 내로라하는 고수 중 하나인 번곽이 일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뒹굴다니!

장로들도 부릅뜬 눈매만 잘게 떨릴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대령주?”

장천운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손백을 보며 말했다.

공손백은 번곽이 패한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번곽은 애초부터 장천운의 상대가 아니었다.

‘멍청한 놈. 내가 왜 참고 있는지도 모르다니.’

그는 장천운의 등장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갑게 대꾸했다.

“너는 신경 쓸 것 없다. 장로원 내부의 문제니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장로는 구천성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우리 장로들끼리 해결할 테니 빠지라는 거다.”

“아무리 장로들 간의 문제라 해도 구천률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 모르시진 않겠지요?”

“구천률? 말 잘했다. 장로원의 장은 원주다. 장로가 장로원주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이란 걸 모르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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