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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4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43화

“너무 걱정 마십시오. 파천회의 백년대계를 위한 일인데,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저보다는 모용 아우가 걱정입니다.”

“으음, 나도 고민이네. 저번에 외출을 다녀온 후 사람이 달라졌어. 뭐랄까, 소심해졌다고나 할까?”

“혹시 노야를 만난 것 아닐까요?”

이천릉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가 달라졌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네.”

“만약 모용 아우가 우리와 다른 길을 가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계속되는 질문이 이천릉을 압박했다. 이천릉은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고민했다.

모용문태는 파천회의 핵심고수 중 하나다. 명망 역시 자신에 비해서 뒤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쏘아진 화살이다.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용문태의 세력이 크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몰락한 모용가의 인원은 삼사십 명 정도. 우호적 관계에 있는 무사들까지 합해도 기껏해야 백 명 정도다. 그들이 없다 해서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할 수 없지. 가슴이 아프지만…… 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 * *

 

그날 밤, 무적장 뇌옥에서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귀독마종이 간수를 죽이고 탈출한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간수는 독살을 당했다.

귀독마종의 몸에서 독이란 독은 모두 수거했거늘.

심지어 손톱 사이에 낀 독 등 은밀하게 숨겨진 독을 제거하기 위해서 몸 전체를 물에 이틀 동안 담가 놓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독살을 시켰단 말인가?

조금 수상하게 보이는 것은 썩은 음식물과 말라비틀어진 벌레들의 잔해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것으로 무사를 몰래 죽인다는 건 아무리 그가 독의 대가라 해도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렇게 무적장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귀독마종이 괜히 중원제일을 다투는 독의 대가인 줄 아나?

그는 독의 효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천하의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두세 가지 별 볼일 없는 독도 그의 손을 거쳐서 합쳐지면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무적장에서 소란이 일고 있을 때 오십여 리 떨어진 마을을 한 사람이 지나쳐가고 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꼭 밝히고 말 것이다.’

그가 판 뇌혈산은 치명적인 극독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독과 섞일 경우 몇 배의 독기를 뿜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섞을 수 있는 독과 섞는 비율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천하에 두어 명밖에 없었다.

‘분명히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다. 냄새가 아주 고약해.’

 

* * *

 

지난밤에는 별이 총총하고 달빛만 밝았는데 아침이 되자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아침식사가 끝나자마자 암천문 척결을 위해서 파견될 멸천단원이 소집되었다.

출동명단에 이름이 올라간 사람은 모두 삼십여 명.

장천운과 단승, 사공명신, 혁련기, 두양양, 하후경, 모후, 유진생, 그리고 비령각의 묵조와 영조 등 소성주파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은 열다섯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공손백과 나극의 사람들이었다.

동백과 추산도 그중에 속해 있었고, 오종과 언동교, 적두, 배청 외에도 새롭게 장로가 된 인태충과 마홍도 포함되었다.

정식 단원 외에는 흑월대에서 청목과 진명산을 데려가기로 했고, 비령각에서는 사군사 중 비교적 젊은 우경을 내주었다.

구산은 류화 때문에 제외시켰다.

구천호령을 이끄는 영호관에게도 사마경에 대한 철저한 호위를 재삼재사 당부했다.

 

사시 말, 출동이 예정된 고수들은 비가 쏟아질 것처럼 보이는 하늘을 짜증스런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구천대전으로 모여들었다.

하필 이런 날씨에 출동이라니.

공손백과 나극의 사람들이 더 짜증나는 것은 수장이 장천운이라는 것이다.

새파란 애송이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불만을 장천운 앞에서 말하지 않았다.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런 표정만 지을 뿐.

어쨌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라는 구천금령주 아닌가 말이다.

장천운은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짧게 말했다.

“구천성을 나서면 곧장 신양 섭가장까지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상황을 살펴본 후 다음 행선지를 정하도록 하지요. 질문 있는 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무언의 저항이라도 하듯.

장천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보다 입 닫고 있는 게 나았다.

“지급된 물품은 챙겼습니까?”

각자 등에 작은 보따리를 하나씩 메고 있었다. 비상식량과 옷 등이 들어 있는 보따리였다.

“그럼 출발하지요.”

 

구천성을 나선 멸천단원들은 곧장 신양을 향해 달렸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구름이 점점 옅어지더니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불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도중에 별 다른 일도 없어서, 그들은 서쪽 하늘이 누런 황금빛으로 물들어갈 즈음 섭가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사밀령 일령주 위곤과 초췌한 안색의 섭중화였다.

섭중화는 그날 밤새 기루에서 질펀하게 논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대신 섭가장 무사들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

 

일단 회의청에 들어가자, 위곤이 그간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섭가장은 대충 정리가 끝났네. 시신은 모두 마차에 실어서…….”

시신을 처리하는데 며칠이 걸렸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피비린내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듯했다.

“암천문과 무림맹 쪽의 소식은 들어온 것 없습니까?”

“무림맹의 지휘부가 남양으로 이동했네. 숫자가 많아서 남양성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외곽에 있는 진평장에 진을 친 모양이네. 그리고 이동하면서 마도에 속한 중소문파 두 곳을 멸문시켰다고 하네.”

그로 인해 마도 무사 백여 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오종이 코웃음 쳤다.

“흥! 지들은 얼마나 깨끗해서? 정파의 무공을 익힌 놈들 중에 오히려 마도인들보다 더한 놈들이 많거늘…….”

장천운은 그 말에 대해서 어떤 반론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이 그러니까.

“괜한 화풀이에 엄한 사람들만 당했군요.”

“정파무사들의 분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크네. 그들이 척마멸사의 기치를 내걸고 광분한다면 상황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르네. 예를 들면 본 성의 지부가 된 대봉문을 친다든가…….”

장천운도 위곤이 우려하는 바를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림맹의 군사가 제갈승조라면 냉정함을 잃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일단 지켜봐야지요. 그건 그렇고, 우린 내일 아침에 동백산 쪽으로 갈 겁니다. 청산궁과 무림맹이 암천문의 지부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바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네.”

 

* * *

 

황혼이 핏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등주의 동쪽 어귀에 한 사람이 들어섰다.

안색이 창백하게 느껴지는 청년이었다.

짙은 회색 무복을 걸친 그는 이제 이십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초점이 잡히지 않은 듯 보이는 눈은 허공에 머물러 있었고, 걸음은 빠르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보폭을 유지했다.

그 청년은 장한 하나가 앞쪽에서 마주 걸어오자 짧은 질문을 던졌다.

“양가장이 어디에 있지?”

나이도 어린 청년이 불쑥 반말을 하는 데도 장한은 어깨를 움츠렸다. 앞에 선 것만으로도 온몸에 한기가 들었다.

“저, 저쪽으로 쭉 가시면 커다란 장원이 보일 겁니다요.”

청년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장한이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곧 장한이 말했던 커다란 장원이 보였다. 정문 위에 ‘양가장’이라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청년은 마치 자기 집을 찾아가듯 태연한 걸음걸이로 양가장을 향해 다가갔다.

양가장 정문을 지키던 위사가 그의 앞을 막았다.

등주 일대에서 양가장은 최고의 권력자였다. 누구도 양가장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군사나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백 년 역사의 양가장은 등주 최고의 부자이면서 최강의 무력단체다.

잘못 보이면 관리고 뭐고 하루아침에 험지로 쫓겨났다.

그러다 보니 위사도 양가장의 힘을 믿고 거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군데 본 장을 찾아온 건가?”

청년은 위사의 질문에 대답대신 손을 뻗었다.

콰직!

위사의 목뼈가 으스러지면서 혀와 눈이 튀어나왔다.

“뭐, 뭐야? 저 미친 새끼가!”

다른 위사가 대경실색해서 검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퍽!

청년은 가벼운 손짓 한번으로 상대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려친 호박처럼 으깨버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머리가 으깨져서 꼬꾸라진 위사의 옆을 지나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장원 안에서 그 광경을 본 무사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저놈이 위사들을 죽였다!”

장원 안을 오가던 무사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위사 둘이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한 사람은 머리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고, 한 사람은 참혹하게도 머리 반쪽이 으깨진 상태였다.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해라!”

너도나도 악을 쓰며 청년을 향해 달려갔다.

청년은 여전히 같은 보폭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술을 비틀었다.

“나는 독고악, 어둠의 하늘이신 주인님께서……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어 오라 하셨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온몸에서 짙푸르면서도 검은 빛을 띤 기운이 안개처럼 피어났다.

그때부터 한동안 등주를 공포에 떨게 할 아비규환의 지옥이 펼쳐졌다.

누구는 아수라의 재림이라고도 했고, 누구는 악마가 세상에 나왔다고도 했다.

양가장 사람들은 사지가 찢기고, 머리가 으스러지고, 심장이 뽑혀서 죽어갔다.

말단무사든 고위 간부든 죽는 모습은 비슷했다.

삼류무사도 일류고수도 처참한 시신으로 변했다.

살아있는 자들은 시간이 가면서 공포에 먹혀버렸다.

그러다 장주인 양호승마저 십여 수를 버티지 못하고 목과 몸이 분리되자, 남은 자들은 덜덜 떨면서 기다시피 양가장을 빠져나갔다.

안색이 창백한 청년 독고악이 핏물로 질척거리는 대지를 밟으며 양가장을 나섰을 때, 양가장 안에는 살아 있는 생명이 남아 있지 않았다.

 

 

 

130장 철혈마절(鐵血魔折)

 

 

무림맹은 남양에서 백여 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진평장에 진을 치고 있었다.

진평장의 주인은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민청양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원을 내주는 것은 물론 긴급히 십여 개의 커다란 천막을 쳐서 무사들의 거처를 마련했다.

양가장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휘부가 진평장의 내전에 앉아서 암천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회의 도중에 소식을 들은 무림맹 간부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장이라도 암천문을 무너뜨릴 것만 같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군사, 정녕 한 사람에게 그리 당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장로.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라 합니다. 오죽하면 시신을 처리하려고 장의사를 불렀는데 들어가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아미타불. 도대체 어떤 놈이…….”

소림사의 장로인 원각대사가 불호를 외며 탄식하듯 말하자, 제갈승조가 착잡하고도 분노에 짓 씹힌 목소리로 답했다.

“살아서 도망쳐 나온 자의 말에 의하면, 이제 겨우 이십대 청년이라고 합니다. 놈이 ‘어둠의 하늘’ 운운한 걸로 봐서는 암천문주와 관련된 자가 아닌가 합니다.”

“쳐 죽일 놈들!”

“무량수불. 반드시 놈을 찾아서 처단해야 하오. 놈을 잡지 못한다면 강호의 동도들이 우리를 손가락질 할 거요.”

오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도인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당파의 청화도장이었다.

모두들 그의 말에 동의하는 듯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갈승조가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면 전력이 흩어집니다. 그러니 이삼십 명 정도로 구성된 소수의 고수들을 파견해서 잡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이 팽모가 앞장서서 그놈을 찾아보겠소.”

위맹한 인상의 오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노인이 나섰다. 하북 팽가의 장로이자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알려진 도의 고수, 팽도원이었다.

“팽 장로님께서 나서주신다면 고맙지요.”

“그놈을 찾으면 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그로부터 반 시진쯤 지난 후 팽도원을 수장으로 한 스물두 명의 척살대가 진평장을 출발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저들이라면 악마 같은 놈이 제아무리 강해도 잡을 수 있으리라!

무림맹 사람들은 그렇게 기대하면서 그들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놈의 머리를 가져오시게, 팽 장로!”

“그 악마 같은 놈에게 강호의 정의를 보여주시오!”

“걱정 마시오! 내 반드시 그놈의 머리를 가져오리다!”

 

* * *

 

섭가장에 있던 멸천단에도 양가장의 소식이 전해졌다.

장천운은 사밀령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일각 후 회의를 소집했다.

“양가장이 단 한 사람의 공격에 참혹한 혈겁을 당했다 합니다.”

모두들 경악한 표정이었다.

양가장이 아무리 대문파가 아니라 하나 쉽게 대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그런 곳이 한 사람에게 멸문지경의 참화를 당하다니.

“범인의 정체는 밝혀졌는가?”

오종이 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독고악이라 밝혔다고 합니다.”

“독고악?”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독고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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