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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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8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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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무원으로 돌아간 장천운은 솔직하게 모든 사실을 보고했다.
사마경은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금룡장과 청산궁에 다 떠넘겼다고?”
“예, 소성주. 아마 청산궁 쪽에서 맡은 문파 중 몇 곳은 무림맹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섭네, 무서워. 천운이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 줄 미처 몰랐어.”
사마경이 장난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진정한 감탄이 섞여 있었다.
말 몇 마디로 암천문의 예하세력 일곱 곳에 대한 공격계획을 마무리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구천성은 구경만 해도 되는 상황.
하지만 장천운은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끼리 싸우게 하고 우린 우리 일을 하면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멸천단을 만들었으니 써먹어야지요.”
대답하는 장천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담담하던 사마경의 눈에서도 차가운 별빛이 쏟아졌다. 목소리도 한겨울 북풍처럼 차가워졌다.
“무림맹에 정보가 전해지면 곧 공격을 시작하겠지?”
“그들은 곧 알게 될 겁니다, 자신들의 적이 얼마나 강한지.”
“그럼 천운은 그들이 싸우는 동안 암천문의 총단을 찾아봐. 풍혈곡인지 붕혈곡인지 그곳도 가보고. 암천문의 잔당을 만나면 손에 사정 두지 말고 목을 쳐버려.”
* * *
무 노인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한 동안 피비린내가 천하에 진동할 겁니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한번은 지나가야 할 소나기니라.”
담담히 말은 하지만 무 노인의 얼굴에는 착잡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장산도 그의 마음을 짐작하기에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구천성의 최선봉에는 천운이 설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그 아이가 천외의 노괴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얼마 전 청산궁과의 일을 봐서는 쉽게 밀리지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그게 의문이다. 그 아이가 아무리 천재적인 소질을 지녔다 해도 너무나 성장이 빨라.”
무 노인만큼이나 장산도 곤혹스런 마음이었다.
그 만큼 장천운의 성장 속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저도 의문이긴 합니다만, 구천성 성주의 지하비고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물들이 많으니…….”
“어쨌든 약해서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너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두도록 해라. 분명 그 늙은이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구천성을 삼키려고 할 것이다.”
“예, 어르신.”
129장 피의 계절
그 해 구월은 피의 계절이었다.
마도척결을 기치로 내건 무림맹은 오직 한 길로만 내달렸다.
눈에 보이는 마도의 무리는 누구든 그들의 도검을 피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곳곳에서 마도문파와 무림맹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살기가 솟구친 정파무사들은 손속에 정을 남겨두지 않았다.
한편에서는 이 기회에 마도를 쓸어버리자는 의견이 힘을 받고 세를 키워갔다.
그러한 의견을 주도하는 자들은 대부분 청산궁과 연관된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정도와 마도의 이념적 갈등을 철저히 이용했다.
‘정의롭지 못한 자는 검을 들 자격이 없다!’라는 신념으로 무장한 정파무사들은 마도무사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고, 마도무사들은 그에 대한 반발로 정파무사들을 공격했다.
그렇게 구월 중순이 되었을 때였다.
무림맹 군사전에 있던 제갈승조는 서찰을 접고 눈을 들었다.
드디어 암천문에 대한 정보가 들어왔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그 친구 말대로군.’
하루 앞서서 장천운에게 연락이 왔다. 청산궁 쪽에서 정보를 건넬 거라고.
아니나 다를까 그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암천문 예하세력 세 곳에 대한 정보가 정첩단을 통해서 들어왔다.
정첩단이 청산궁에 물들었는지, 아니면 청산궁이 정첩단을 이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외길이라는 것이었다.
이천에 달하는 무사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정보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종무진인을 찾아갔다.
종무진인은 제갈승조의 말을 듣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거짓이 아니라면 마다할 이유도 없겠지. 멸마지계를 진행시키게.”
“예, 맹주.”
* * *
조심스럽게 방안으로 들어간 도악이 무릎을 꿇고 보고를 올렸다.
“무림맹의 정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또한 금룡장도 안휘 쪽에 있는 본 문의 지부를 공격할 거라 합니다.”
붉은 어둠 속에 앉아 있던 탁무겸이 눈을 떴다.
하얀 이가 드러난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올 가을에는 혈우(血雨)가 내리겠군.”
“혈하(血河)가 흐르고 혈향(血香)이 진동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알려줘라. 어둠의 세상에서는 본 문이 하늘이란 것을.”
“예, 주군.”
“그런데 구천성이 조용한 것이 의외야.”
“그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른 자들은 신경 쓸 것 없다. 장천운, 그놈만 지켜보면 돼.”
장천운의 이름을 말할 때만큼은 탁무겸의 평정심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도악은 그 차이를 느끼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잖아도 이중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독고민은?”
“어제부로 마령혼의 전이가 끝났습니다. 명을 내리시면 언제든 움직일 수 있습니다.”
“후후후, 마령혼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 도악, 독고민을 등주의 양가장으로 보내라. 놈을 시험해봐야겠다. 그리고 이제부터 놈을 독고악이라고 불러라. 천하에서 가장 극악한 마인이라 불릴 테니까. 후후후후.”
* * *
암월당의 이응이 장천운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구월 보름이었다.
장천운은 이가 빠진 검 하나를 골라들고 대장간으로 이응을 찾아갔다.
이응은 그를 뒷방의 밀실로 안내했다.
“무슨 일이오?”
“무적장의 장주 일행이 장강을 건너서 마성에 도착했습니다, 령주.”
마성에서 구천성까지는 삼백 리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달려올 수 있는 거리.
“그래요? 인원은 몇 명이나 되오?”
장천운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모두 백오십 명쯤 된다고 합니다. 삼장무적 단리황 노대협이 직접 나섰다고 합니다.”
드디어 무적장이 장강을 건너왔다. 단리황까지 나섰다는 건 최고의 정예가 왔다는 뜻.
“알았소. 일단 그곳에서 대기하며 연락을 기다리라 하시오.”
아직은 금룡장이나 청산궁에 무적장의 존재가 알려져서는 안 된다.
“예, 령주.”
“아, 현재 구천성에 들어와 있거나 인근에 있는 암월당 정보원이 모두 몇 명이나 되오?”
“저를 포함해서 열두 명입니다.”
“구천성 내부든 외부든, 혹시라도 이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연락하라 하시오.”
“안 그래도 조금 이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상한 움직임?”
금룡장과 청산궁 때문에 하는 말인가?
장천운은 그리 생각했다.
지금은 암천문 예하세력을 치기 위해 떠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룡장과 청산궁의 많은 무사들이 무명장과 객잔에 기거했다.
그런데 이응의 대답은 그가 생각한 것과 방향이 달랐다.
“수상한 자들이 은밀하게 성 외곽을 철저히 수색하고 있습니다.”
“수색? 누군지 알아보았소?”
“수색하는 자들은 청산궁 쪽 사람들입니다.”
청산궁에서 구천성 외곽을 수색한다? 그것도 은밀하게?
왜?
“그들이 수색하는 목적은?”
“칠십대로 보이는 노인을 찾고 있다 합니다.”
칠십대 노인?
설마 금룡신군을 찾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다. 금룡장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묘한 느낌은 또 뭐지?
장천운은 자신의 느낌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를 찾는지 한번 알아보시오.”
“예, 령주.”
* * *
천하가 긴장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그 무렵.
시현에 진을 친 무림맹이 암천문 예하세력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첫 번째 제물로 삼은 곳은 방성에 있는 마종방이었다.
마종방은 인원이라고 해봐야 기껏 백여 명에 불과한 중소문파였다. 강호에는 그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흑도문파.
사람들은 마종방쯤이야 무림맹의 정예무사 일백 정도면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제갈승조는 삼백 무사를 보냈다. 게다가 장로도 다섯 사람이나 동행시켰다.
무림맹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갈승조를 비웃었다.
“군사가 구천성에 한번 당하더니 쫄았군.”
“나에게 무사 열 명만 주면 당장 달려가서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이러니 마도문파들이 우리 무림맹을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
그날 오후, 제갈승조를 비웃던 사람들의 안색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출정한 무림맹 정예무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들은 예상했던 했던 대로 마종방을 무너뜨렸다.
문제는 죽은 자가 일백이 넘고, 부상자 역시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장로 역시 둘이나 시신이 되었다고 했다.
무림맹 지휘부는 그 소식을 받고 충격에 휩싸였다.
제갈승조는 곧바로 비상간부회의를 소집했다.
커다란 회의실에 삼십여 명에 이르는 간부와 장로들이 둘러앉았다.
“군사, 장로 두 분이 돌아가시고, 일백이 넘는 피해가 났다 들었소. 그 말이 사실이오?”
종남파의 정소도장이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쳐 물었다.
이번에 출정한 무사단에 종남파 장로인 정구도장은 물론이고, 종남파의 제자 삼십여 명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제갈승조가 무거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서신에 거짓을 써서 보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럼 마종방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구려. 정보가 정확했다면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한단 말이오?”
“정보는 정확했습니다. 현재로선 정보의 불확실성보다 마종방을 공격한 무사들의 정신상태가 더 문제로 보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럼 장로와 제자들이 게으름이라도 피웠단 말이오?”
정소도장은 제갈승조를 노려보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둘러 앉아 있던 사람 중 대여섯 명도 기분이 상한 듯 제갈승조를 흘겨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제갈승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분명히 절대 그들을 얕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상대하라 했습니다. 또한 최대한 몰아붙여서 빠른 시간 안에 싸움을 끝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지시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서신을 가져온 자가 말했다. 공격하기 전에 항복을 요구하고, 밖에서 이각이나 기다렸다고.
심지어 무사단을 이끄는 수장들은 객잔에서 차를 마시며 마종방이 항복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다 마종방이 항복 대신 욕설을 퍼붓자, 먼저 무사 일백 명을 보냈고, 그들이 절반 가까운 피해를 보고 후퇴한 후에야 전력을 다 투입했다는 것이다.
제갈승조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리고 최후의 통첩처럼 몇 마디 덧붙였다.
“앞으로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처단할 것입니다.”
장로와 간부 중 다수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제갈승조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지그시 이를 악다물었다.
일개 하부조직 하나 없애면서 일백이 넘는 피해가 나다니. 그럼 본진을 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피해를 각오해야 한단 말인가.
‘어쩌면 구천성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이 무림맹 지휘부에 전해졌다.
마종방을 무너뜨린 후 부상자 치료를 위해 방성에 남아 있던 무림맹무사들이 밤사이에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시신은 아침에서야 발견되었다.
객잔이 온통 시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닥이 시뻘건 피로 흥건했다.
객잔 안에 있던 숨 쉬는 모든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뒷마당에 있던 개 두 마리도 목이 잘린 채 죽었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이 언제 어떻게 죽어갔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공포였다.
* * *
초광이 돌아온 것은 방성이 피로 물든 날 밤이었다.
얼굴이 홀쭉해진 걸 보니 고생 좀 한 것 같았다. 그래선지 얼굴의 상처도 더 깊어진 듯했다.
오죽하면 장천운조차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을까.
“수고했소.”
장천운이 그렇게 말했지만, 초광의 구겨진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그 대머리 회주가 이걸 전하라 했수.”
초광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서신을 하나 내밀었다.
장천운은 웃음을 겨우 참고 서신을 받았다.
대머리 회주.
왕규를 지칭하는 말인 듯했다.
이제 그나마 조금 남았던 머리가 다 빠졌나보다.
서신을 펴서 읽어본 장천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호양청과 왕규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서신의 내용대로라면 이제 흑월회는 구천성의 십이지부 중 하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전력이었다.
짧은 시간에 상당한 성과였다.
“서신을 하나 써줄 테니 호양청에게 전해주시오.”
장천운의 말에 초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또…… 가란 말씀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