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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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7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6화
구천대전 내의 모든 사람들이 나극을 주시했다.
나극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이 곤두섰다.
천천히 간부들을 향해 포권을 취한 그가 사마경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다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노부는…… 소성주에 대한 불신임에 대해서 모든 걸 대령주에게 일임하는 바요.”
모두의 시선이 자동으로 공손백 쪽으로 돌아갔다.
우문각 역시 공손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대령주께서 고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공손백이 어깨를 떡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르는 많은 간부들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는 뭐라고 할 것인가.
나극이야 금선장에 다녀온 후 조금은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공손백은 처음부터 소성주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 아닌가 말이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었다. 공손백은 곧바로 공격적인 어조를 사용해서 사마경을 몰아붙였다.
“소성주는 별 다른 이득도 보지 못한 채 무림맹과 협정을 맺어서, 본 성을 위해 싸우다 죽어간 무사들을 실망시켰소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몇 사람이 동조해서 소리쳤다.
“옳소!”
“대령주의 말씀이 맞소이다!”
“또한 위험함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대운사에 갔다가 죄 없는 호위무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소! 그로 인해 백 명에 달하는 정예무사들이 죽었으니, 소성주에게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하지 못할 거요!”
“당연히 소성주께서 책임을 져야 하오!”
“소성주는 물러나시오!”
공손백과 나극 쪽 간부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쪽에서는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아니 그럼, 부친과 조부의 신위를 모신 곳이 불에 탔는데 모른 척했어야 한단 말이오?”
“그 말씀이 맞소이다! 불효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 일을 모른 척할 수 있겠소?”
“소성주의 책임을 운운하기 전에, 당시 소성주를 공격한 자들을 잡아서 누가, 왜 소성주를 죽이려 했는지부터 밝혀내야 할 거요!”
“듣기로는 소성주를 공격한 복면인들이 본 성의 누군가와 관련된 자들 같다고 하던데, 왜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거요?”
“흥! 그들이 누구든, 소성주로 인해서 본 성의 무사들이 죽어간 것은 사실 아니오?”
장내가 시끌벅적해지자, 공손백이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후후후, 사마경, 약속은 지키마. 하지만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을 거다. 어디 한 번 버텨봐라.’
소란이 점차 가라앉더니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때 손을 내리던 공손백이 이마를 찌푸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어찌 보면 이를 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눈은 장천운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시퍼런 분노의 불길이 일렁거렸다.
장천운의 전음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어제 응한곡에 갔다가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전서구로 보낸 서신인데…… 놀랍게도 대령주께서 보낸 것이더군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서신을 공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하시지요.>
그 말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래, 언젠가 암천의 사자가 가져온 전서구에 서신을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설마 그 전서구가 응한곡으로 갔단 말인가?
‘그 전서가 지금 공개되면 안 돼.’
현재 사마경과의 세력차이가 크지 않다. 조금만 이동해도 전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암천문과 자신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증거가 나온다면……?
그로 인해 표결에서 패한다면?
이를 악문 그는 장천운을 노려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속에서 열불이 터졌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나…… 본 구천대령주 공손백은…… 소성주에 대한 불신임 표결을 연말까지 미루고자 하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공손백과 나극을 지지하던 간부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 숨을 멈췄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그에 대해서 대답하듯 공손백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구천성의 미래를 위해서 임시성주인 소성주의 자격을 박탈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소.”
그래! 그래서 오늘 잔뜩 긴장하고 나온 것 아닌가?
“그런데 본 성의 지부인 섭가장이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당했고, 그들의 정체가 암천문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세력이라는 게 확인되었소.”
소성주파 간부들은 조소를 지었다.
알려지지 않은 세력? 흥! 자신이 속했던 문파 이름도 잊었나? 죽은 독고 노인이 저승에서 배꼽을 잡고 웃겠군.
그 와중에도 공손백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세간의 소문대로 천외라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하며,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오. 그러므로 본인은 일단 그들을 먼저 무찔러서 구천성의 위엄을 지킨 후 불신임에 대한 논의를 했으면 하오.”
그제야 공손백과 나극 쪽 간부들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외부의 적이 노리고 있는데 우리끼리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그들을 물리친 후 싸우자, 그 말 아닌가 말이다.
“대령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일은 올해 말로 늦추어도 될 것 같소!”
“옳소!”
“좋은 생각입니다! 대장로와 대령주야말로 진정 구천성의 기둥 같은 분들이외다!”
간부들이 너도나도 그를 칭송하듯 말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공손백은 속이 끓었다.
당장 쫓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밀어붙여서 임시성주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했다. 그게 오늘 그의 가장 큰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틀어졌다.
‘도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 전서를 파기하지 않고 보관했단 말인가!’
그때 철혈단주 위지행이 벌떡 일어났다.
“굳이 미룰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외라는 적을 상대하려면 지금 확고하게 성주의 권위를 세워야만 합니다. 그런데 불신임을 뒤로 미룬다 해서 권위가 세워지겠습니까?”
구천성은 강한 힘을 지닌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사마경 같은 어린 계집보다는 공손백이나 나극이 백번 나았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신임안이 뒤로 미뤄지는 게 짜증났다.
“그럼 표결을 오늘 하자는 건가?”
구평추가 소리쳐 묻자, 위지행이 턱을 쳐들고 말했다.
“못할 것도 없지요. 대령주 말씀대로 소성주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소이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오!”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공손백도 가만 놔두었다.
자신이 못한 일, 위지행이 해주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 어디 마음껏 해봐라.’
그는 고의로 사마경과 장천운을 쳐다보지 않았다.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간부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소리쳤다.
“그래요, 합시다!”
“칼을 뺐으면 무라도 잘라야지요. 합시다!”
“하다못해 성주의 전권 중 일부라도 이양해서 보다 더 효율적으로 적에 대응해야하지 않겠소이까!”
반대파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대령주와 대장로가 미루자고 하는데, 왜 그대들이 나서서 난리요, 난리는!”
“뭐야? 그럼 우리는 말도 못한단 말인가?”
“설마 이 안에 있는 분 중에 소성주를 해치려 한 자들과 관련된 분이 계신 것은 아니겠지요?”
“뭐야? 지금 우리를 의심하고 있는 건가?”
“의심을 안 하려고 해도 의심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갈! 육선기, 소성주를 믿고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날 것처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미 일어선 사람만 삼사십 명. 분노가 살기로 바뀌기 직전이었다.
공손백은 앉아서 그 광경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기만 했다.
차라리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속이 다 시원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대립한 간부들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
탕탕탕!
사마경이 탁자를 내리치며 외쳤다.
“좋아요! 그럼 표결을 하도록 해요!”
그녀의 말에, 천장을 뚫을 것 같던 장내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 일은 분명히 저의 잘못이에요. 부인하지 않겠어요. 단, 그 전에 반론할 기회를 주었으면 해요. 엊그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밝혀졌는데, 여러분이 꼭! 반드시! 아셔야 할 일이니까요!”
그녀가 힘이 실린 목소로 말하며 공손백을 쳐다보았다.
제풀에 놀란 공손백이 벌떡 일어났다.
“위지 단주! 때로는 힘보다 지혜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오. 그리고 지금은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외다!”
잔뜩 힘이 들어간 공손백의 눈빛에 위지행도 꼬리를 말았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본인의 생각도 대령주와 같소. 어차피 일 년이라는 한시적 기간을 두고 임시성주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잘잘못은 나중에 따져도 될 일이오.”
나극마저 공손백의 손을 들어주었다.
위지행은 이마를 찌푸리고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험, 대령주와 대장로께서 정 그러길 원하신다면야…….”
우문각이 그 틈을 타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일단 점심을 드신 후, 천외세력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해보겠습니다. 특히 섭가장 형제들의 목숨을 앗아간 암천문에 대한 공격을 논의할 예정이니, 미시 정까지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간부들은 그 점을 위안 삼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배부터 채우세.”
“제기랄,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난들 아나?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몰라. 소성주의 저 모습을 보라고. 성주자리에서 쫓겨나면 볼 수 없잖아?”
소곤거리는 소리였지만 공손백 같은 절대고수의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공손백은 싸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놓치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은 것이다.
간부들도 남자라는 걸.
만약 자신이 강행해서 불신임안을 표결에 붙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이 생각지 못한 이탈표가 있었다면?
가슴이 서늘해졌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자신이 패배했다면 그 동안 따르던 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사마경에게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차근차근 처리하자.’
장천운은 공손백의 표정 변화를 솜털 하나의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았다.
‘표결을 했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래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긴다 해도 구천성의 힘이 갈라질 테니까.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아쇼. 똥통에 처박으려다 참았으니까.’
128장 차도살인(借刀殺人)
식사 후에 시작된 구천대평의회는 천외삼세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특히 암천문에 대해서는 철천지원수처럼 성토했다.
“암천문과 관련이 있는 문파도 용서하면 안 됩니다!”
“누구든 암천문과 관련이 된 자는 철저하게 가려내야 하외다!”
“비령각과 첩밀각은 암천문의 위치를 찾아내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거요!”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 중에서도 십이지부의 대표들은 더더욱 강력하게 주장했다.
섭가장 혈겁이 언제든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공손백은 예상보다 더 강한 적개심의 표출을 보고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각쯤 지났을 때, 철기보주 하후등안이 일어나더니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대령주, 대령주께서 반드시 해명해주셔야 할 사안이 하나 있소이다!”
마침내 화살이 공손백에게로 향하자, 간부들도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공손백을 바라보았다.
“말씀해보시오. 내 아는 것은 모두 말씀드리겠소.”
“항간에 대령주가 암천문 사람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소. 사실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