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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35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7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5화

* * *

 

둥! 둥! 둥! 둥……!

고루에서 북소리가 울렸다.

구천성 사방에서 거처를 나선 간부들이 하나 둘 구천대전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웃기는커녕 대부분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병사처럼 잔뜩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광혈단주 탕추강이 맨 처음 구천대전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일각이 지났을 때쯤에는 팔 할에 가까운 인원이 구천대전을 메웠다.

공손백과 나극이 측근 장로들을 대동하고 등장하자 대전 안이 조용해졌다.

이제 검왕문과의 싸움 등 국지전에 파견 나가있는 간부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성주님께서 드십니다!”

위사의 외침과 함께 사마경이 들어섰다. 장천운과 구양명, 흑월대 삼조장이 그녀를 호위했다.

일어선 간부들이 석상이 된 것처럼 멍하니 서서 사마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색 하늘거리는 장의를 걸친 그녀의 모습은 진정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했다.

거기다 긴장한 다른 사람과 달리 밝게 웃는 모습은 대부분이 남자인 간부들의 넋을 빼기에 충분했다.

상석의 태사의 앞에 선 그녀가 돌아서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간부들 상당수가 황급히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소성주를 뵈오!”

“임시성주를 뵈오!”

두 가지 호칭이 동시에 나왔다.

하지만 사마경은 신경 쓰지 않고, 맑고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평의회의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서 몇 분을 이 자리에 초대했어요. 본 성에 와계신지 며칠 되었으니 아마 모두들 아실 거예요.”

간부 대부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는 구천대평의회에 외부 인사를 초빙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초빙인사가 누군지 짐작하고 있었기에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먼저 교왕 노선배님과 패왕 노선배님, 그리고 환마 노선배님과 복우쌍노 노선배님이에요.”

이미 짐작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이름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간부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 직후 거대한 교왕을 필두로 초빙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갑작스런 초빙에 조금은 어색한 표정이었다. 복우쌍노는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서는데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표정이었다.

그들은 무사들의 안내를 받아서 별도로 마련된 좌석에 둘러앉았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마경이 그들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그러고는 전면의 간부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회의 시작 전에 먼저, 천혼전주이신 백리호 전주의 사망에 대해서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장례는 내일부터 열흘 동안 치를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들떴던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때가 때인지라 천혼전의 전주자리를 비워둘 수 없어서, 백리호 전주의 조카이자 후계자인 백리우진 공자를 전주로 임명했어요. 아직은 경험이 부족할 수 있으니 모두들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사마경이 손을 들어서 한쪽을 가리키자, 백리우진이 일어나서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소성주. 모자란 면이 많습니다만 전심전력으로 천혼전을 이끌겠습니다.”

간부 중 일부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사마경은 모른 척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담담한 표정으로 답한 그녀가 다시 군웅들을 향해 말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섭가장을 피로 물들인 자들이 숨어 있는 염천산 응한곡을 공격해서 형제들의 복수를 해주었습니다.”

이미 소문이 성 내에 쫘하게 퍼져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구천성 무사들은 소성주의 단호하고 쾌속한 대처에 환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는 처단하지 못했어요.”

“그들이 암천문이라는 문파의 하부조직이라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소성주?”

풍운산장의 대표로 온 모증이 큰 소리로 물었다.

“맞아요. 오늘 그 일 역시 논할 것이니 좋은 의견 있으면 기탄없이 이야기하세요.”

사마경도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우문각을 바라보았다.

“총사, 이제 시작하세요.”

그 직후 우문각의 목소리가 구천대전을 흔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구천대평의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장내가 숨소리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아시다시피 오늘 회의는 조직개편과 소성주에 대한 불신임안, 그리고 천외삼세에 대한 본 성의 입장을 논의하기 위해서 열렸습니다. 될 수 있으면 일찍 끝내고 정시에 점심식사를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모두의 바람이었다.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일 같았지만.

“그럼 먼저 조직개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조직개편은 실질적인 지위와 연관된다.

간부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우문각의 입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 현 천경전주이신 육선기 전주께서 서열 상 상관이라 할 수 있는 구천대령주를 모욕하고 무력으로 대드는 일이 있었습니다. 소성주께서는 그 말을 듣고 고민 끝에 천경전의 전주를 교체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간부들 일부가 웅성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모욕적인 말을 했기에 전주를 교체한단 말인가.

그러한 모욕을 받고도 공손백이 참았다니.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 아닌가.

공손백 쪽의 간부들은 조소를 지으며 ‘그러면 그렇지, 지가 별 수 있어?’하는 표정이었다. 누가 되든 강성 중의 강성인 육선기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탕!

우문각이 탁자를 내리치자 장내가 다시 조용해졌다.

“소성주께서는 천경전의 신임전주로 구평추 장로를 임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육선기 전임전주는 부전주로 지위를 강등해서 구평추 전주를 보좌토록 조정하셨습니다.”

“뭐?”

“보좌라고?”

“부전주?”

거의 절반쯤의 간부가 입을 살짝 벌렸다. 다른 간부 중 일부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쨌든 전주 자리에서 해임하시긴 하셨네, 뭐.”

“구평추 장로라면 충분히 자격이 되시지. 아암.”

반면 조소를 지었던 간부들은 땡감을 씹은 표정이 되었다.

소성주파를 쳐내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더 보강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소성주! 상관에 대한 모욕을 너무 가볍게 처리하신 것 아니오?”

탕추강이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공손백파 간부들이 눈에 힘을 주고 사마경을 노려보았다. 무형의 압박.

그러나 예전의 사마경이 아니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도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가볍게 처리했다? 탕 단주께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랫사람이 상관을 모욕하고 명령을 무시하면 위계가 무너지는 법이오. 그러한 사람은 절대 누군가를 지휘하는 자리에 두어서는 안 되오.”

“흠, 그렇군요. 그럼 본 성의 임시성주를 무시하고 모욕한 사람들도 똑같이 처리하면 되겠군요.”

“그…….”

“아! 성주를 무시하고 모욕했으니 뇌옥에 가두어야 하나요, 아니면…… 목을 쳐야 하나요?”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사마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든 잘못을 범할 수 있어요. 입으로 하는 말은 쏟아지면 담을 수가 없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중벌을 주었다면…… 이곳에 앉아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차가우면서도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누구도 그녀가 말한 테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슴에 찔리는 것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탕 단주, 전주의 지위를 박탈하고 부전주로 내린 것은 벌인가요, 아닌가요? 말씀해 보세요.”

탕추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벌입니다.”

사마경이 미소를 지었다. 서릿발이 내릴 것처럼 차가운 웃음.

“다행이군요. 아니라고 했으면 탕 단주를 부단주로 내려 보려고 했는데요. 요즘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달빛을 즐기느라 바쁘시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일그러졌던 탕추강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는 최근 기루를 자주 오갔다.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루의 기녀 하나에게 혼이 반쯤 빠진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을 말하는 듯했다. 그 기루의 이름이 월하루(月下樓)였으니까.

“어쨌든 탕 단주께서도 벌로 인정하셨으니 그 일은 넘어가도록 하죠. 총사, 계속 진행하세요.”

사마경은 비령각에서 전해준 수많은 정보 중 하나를 적시에 써먹고 자연스럽게 공을 우문각에게 넘겼다.

우문각은 감탄의 눈으로 사마경을 바라보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곳에서는 일일이 반론을 받을 수 없으니, 결정에 불만이 있는 분은 차후 그에 대한 내용을 서류로 작성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또한 헛웃음 나올 일이었다.

결국 ‘불만 있으면 서류로 작성해서 가져와!’ 그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서류를 작성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공손백과 나극의 반응을 궁금해 하며 두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상석을 노려볼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간부 임명은 성주의 고유권한이었다.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거나, 만들어서라도 다시 끌어내리면 된다. 그 전까지는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교활한 년! 그런 꼼수를 쓰다니!’

‘공손백이 한대 맞았군. 허어, 어린계집이 갈수록 더 커지는구나.’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소성주의 임시성주에 대한 불신임안이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이다. 소성주의 임시성주에 대한 권한이 박탈되면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사안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소이다.”

우문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웅성거리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두 번째 사안은 장로원에 대한 개편이었다. 그에 비하면 천경전주에 대한 건은 그나마 가벼운 사안이었다.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만, 장로님들의 나이가 많게는 이십 년 이상 차이 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 드신 장로들께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하여 장로 중 육십 세 이상은 원로로 추대하고, 장로원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원로원에 모실 것입니다. 원주는 당연히 대장로이신 마제께서 맡아주시고…….”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이 든 장로들을 우대하여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좋아보였다.

그러나 공손백과 나극은 눈을 치켜떴다.

현재의 장로 중 육십 세 이상 장로는 모두 열둘이다. 당연히 나극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결국 나극의 권한을 절반으로 축소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반발하기 힘든 것이, 그 동안 장로들의 나이에 대해 많은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장로가 같은 대우를 받다 보니 당연히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장로원은 대령주께서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로들은 구천사자로서 일 년에 한 번씩 의무적으로 본 성 휘하 지부를 살펴보게 할 생각이십니다. 그때에는 성주님을 대신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도 주어질 것이며…….”

공손백은 득실을 계산하느라 바빴다.

파견된 장로가 간 곳이 적대적인 지부면 자칫 당할 수도 있었다. 반면 적이나 다름없던 지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

이후로 우문각이 장로들에게 대한 권한과 지위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설명했다.

전과 대동소이했기에 큰 이견이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장로원이 둘로 쪼개졌다는 것인데…… 어차피 아직은 같은 편이니 그걸로 트집을 잡기도 애매했다.

* * *

 

구천성에서 구천대평의회가 열리던 시각, 복우산 동쪽 기슭에 있는 아름다운 장원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넓이가 수만 평이나 되는 대장원에는 칠백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개중에는 무사만 해도 오백 가까이 되었는데, 싸움이 시작된 지 일각 만에 절반 이상이 죽음을 당했다.

그 후로도 처절한 비명은 이각 이상 이어졌다.

비명이 잦아들 때쯤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참혹한 시신과 더욱 짙어진 피비린내만이 장원을 뒤덮고 있을 뿐.

 

* * *

 

피의 폭풍이 강호의 어느 한 곳을 피로 물들고 있을 때, 구천대전 안은 침 삼키는 소리조차 조심해야 할 정도로 묵직한 긴장감에 짓눌렸다.

모두의 시선이 단상으로 향하자, 전각 안을 쓱 둘러본 우문각이 입을 열었다.

“이제 소성주님의 임시성주 불신임에 대한 논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장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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