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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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4화
손우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눈을 한번 깜박이는 사이 그 말뜻을 깨달은 것이다.
“뭐……?”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가 일장을 쳐낸 걸 보고도 대항할 수가 없었다.
퍽!
눈을 부릅뜬 손우곤의 몸이 훌훌 날아가서 장산의 앞에 떨어졌다.
장산은 고개를 숙여서 손우곤을 내려다보았다.
손우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서, 설마 저자가……?”
장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목숨과 바꾸어도 될 만한 비밀일 거요.”
그 말과 함께 장산이 손을 저었다.
손우곤의 몸이 풀썩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마지막 떨림이 멈추기 전, 손우곤이 안간힘을 다해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정말…… 멋진…….”
그것이 끝이었다. 손우곤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그 후 심장도 멎었다.
장산은 죽음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후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섰다.
그때 구천성 쪽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날아오는 게 보였다.
놀라운 속도. 거리가 급속히 줄어들었다.
다가오는 자를 바라보던 장산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서 말했다.
“소천, 어서 여길 떠나세.”
그러고는 땅을 박차고 소천과 함께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장산과 소천이 사라진 직후, 한 사람이 공터에 내려섰다. 구천성에서 달려온 장천운이었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거기 서라!”
하지만 더 쫓지 못하고 멈칫했다.
정자 앞쪽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었다. 얼굴이 머리카락으로 가려지긴 했어도 밝은 달빛 덕분에 반쯤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손우곤에게 다가간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억!’소리를 냈다.
“이게 누구야?”
구천성을 나왔을 때쯤에는 가공할 기운이 사라진 후였다.
그래도 확인을 하고 싶어서 기운이 충천한 장소를 찾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우곤이 시신으로 변해서 쓰러져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아까 그자들이?”
장천운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십오륙 장까지 솟구친 그는 감각을 최대한 개방했다.
잠깐 사이에 이미 백 장 이상 멀어진 듯했다.
동북쪽 어딘가에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 마저도 바로 끊어져서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조금만 빨리 왔어도…… 그런데 그들이 누구기에 손우곤을 죽인 거지?’
아쉽지만 당장 범인을 찾겠다고 구천성 일대의 가옥을 다 뒤질 수도 없는 일.
땅으로 내려온 그는 손우곤의 몸을 살펴보았다.
겉은 멀쩡했으나 혈맥이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다.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가 그렇게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무서움을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굉장한 장력에 당했어.’
천하에서 손우곤을 이렇게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섯 명 정도?
설령 두 사람이 협공해서 죽였다 해도 가능한 사람의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좌우간 금룡 노인네가 열 좀 받겠군.’
장천운은 잠시 고민하다가 손우곤을 그대로 둔 채 그곳을 벗어났다.
손우곤의 죽음은 구천성에 실보다 득이 많았다.
손우곤은 금룡장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자다. 그가 죽음으로써 천외삼세의 균형이 다시 비슷해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못 믿게 될 것이다.
‘서로 간의 불신이 깊어지다 보면 어디선가 치명적인 틈이 생길 거다.’
* * *
장천운이 구천무원으로 돌아왔을 때 사마경은 내실로 들어간 후였다.
장천운은 창문가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러다 손우곤을 죽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두 사람에 이르렀을 때 이마를 찌푸렸다.
누굴까? 누군데 손우곤을 죽였을까? 무슨 이유로?
그들이 이번 천외삼세와의 전쟁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시간도 잊은 채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사이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일단 구천대평의회부터 집중하자.’
공손백, 나극과 협정을 맺었다 해도 이번 구천대평의회는 이전에 열려던 평의회와 그 무게가 천양지차다.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 큰 쟁점 사안이 있다.
장로원의 개편에 대한 논의와 소성주의 임시성주에 대한 불신임여부.
외적으로는 천외삼세라는 존재에 대해서 구천성의 공식적인 공포가 있을 것이다. 물론 천외삼세에 대한 입장표명도 함께할 것이고.
불신임 문제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비밀회담을 통해 양측의 의견이 조율되었으니까.
문제는 천외에 대한 입장표명이다.
암천문과는 전면전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금룡장과 청산궁은 아직 극한의 적대적 관계가 아니지만, 언제 어느 때 어떤 관계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구천성의 간부 중에서도 그들과 연관된 자들이 있을 거다. 그것도 상당수가.
그들과 전면전을 선포하면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어느 선까지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야말로 구천성의 현재와 미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내려질지 모른다.
‘하루가 십 년처럼 흘러가겠군.’
거꾸로 하루가 촌각처럼 흘러갈지도…….
* * *
금룡신군은 금룡장으로 옮겨진 손우곤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해가 동산 위로 떠오른 후였다고 한다.
정자 인근에 살던 사람이 시신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침마다 구천성을 한 바퀴 도는 금룡장 순찰무사가 호기심에 가보지 않았다면, 시신은 구천성 벽호당이 수습해갔을 것이다.
“도대체 왜 우곤이 그곳에서 죽어 있었단 말이냐?”
“위사의 말에 의하면, 축시가 되기 전에 알아볼 것이 있다며 나가셨다고 합니다.”
이적문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하고 금룡신군의 표정을 살폈다.
금룡신군은 분노를 억누르며 손우곤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무명장에 있었다면 손우곤이 마음대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죽지도 않았겠지.
그래서 더 아쉽고 분노가 치밀었다.
“최소한 두 놈에 의해 죽었다. 둘 모두 상당한 실력을 지닌 놈들이야. 우곤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이적문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손우곤과 비슷한 고수가 천하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그 정도의 고수 둘이 합공해서 손우곤을 죽였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인근에서 그런 실력의 고수를 보유한 세력은 몇 되지 않습니다.”
첫 번째 세력은 구천성이다. 두 번째 세력은 청산궁이고, 세 번째 세력은 암천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세력은 파천회다.
무림맹도 있긴 하나 그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 몇 되지 않지. 양적.”
금룡신군이 이름 하나를 불렀다.
그의 뒤에는 사십대 중년인과 오십대 중노인 둘이 서 있었다. 그 중 염소수염이 길게 늘어진 중노인이 대답했다.
“예, 태군.”
“누구 짓이라고 보느냐?”
“파천회는 아직 태사령을 살해할 만한 자격이 안 됩니다. 그리고 청산궁은 장천운에게 당한 후 태사령을 살해할 여유가 없는 상태입니다. 구천성은 오늘의 구천대평의회 때문에라도 움직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럼 남은 곳은 암천문 뿐인가?”
“저희가 정보를 제공했다는 걸 알았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탁무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명안대(明眼隊)에 연락해서 암천문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펴보고 여섯 시진마다 보고를 올리라고 해라.”
명안대는 금룡장의 눈이라고 한 수 있는 조직이다. 그들이라면 암천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리라.
“존명.”
“광호. 석문에 있는 아이들을 모두 불러들여라.”
이번에는 위맹한 인상의 사십대 중년인이 대답했다.
“예, 태군.”
“찬강. 맹약은 깨졌다. 앞으로 무한의 살계를 허락한다.”
작은 키에 눈이 실처럼 가느다란 중노인이 느릿하게 허리를 숙였다.
찰나 간, 중노인의 실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십여 년 동안 봉인되었던 천살마가 잠에서 깨어난 순간이었다.
* * *
태양이 뜨거운 햇살을 토해내기 시작한 사시 무렵.
사마경이 백리우진을 불러들였다.
백리호가 사망하는 바람에 구천대평의회를 앞두고 천혼전주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후계가 있는 이상 임시전주라도 임명해 놓는 게 나았다.
하지 않으면 공손백의 사람인 부전주 공호증이 권리를 행사할 테니까.
백리우진도 천혼전 전주가 되기 위해서는 소성주의 재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은 백천대주가 아니라 백리우진으로 사마경 앞에 섰다.
사마경도 그를 천혼전의 차기 전주로서 예우해주었다.
“숙부가 피살당했으니 축하한다고 하기도 애매하군요. 그래도 어쨌든 정식 전주로 임명하기에 앞서 천혼전의 임시전주로 임명하겠어요. 천혼전의 책임자로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주길 바라겠어요.”
“예, 소성주.”
“백리 대주가 이끌던 백천대는 앞으로 혁련 조장이 이끌게 될 거예요. 혹시라도 말해줄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그리하겠습니다.”
백리우진은 백천대원들을 천혼전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찔리는 게 있는 만큼 아직은 소성주의 의견에 토를 달 때가 아니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거죠?”
“예?”
“이전의 전주였던 숙부가 대령주의 사람이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거예요. 신임 전주도 그럴 것인지, 그걸 묻는 거예요.”
아주 위험한 질문이었다.
백리우진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백천대주로서 소성주를 호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소성주를 배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라겠어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양다리를 걸칠 생각이라면 지금 말하세요.”
백리우진뿐만 아니라 구양명과 소연추, 이능능도 사마경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렇게 묻는데 하겠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백리우진은 이마에 맺힌 땀도 닦지 못하고 말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대령주 쪽으로 가긴 해도 양다리를 걸치지는 않겠다?”
“그게 아니라…….”
“농담이에요.”
백리우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 천혼전에서 거주하겠군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천혼전의 내실 바닥에 피가 많이 배어있나 봐요. 천운 말로는, 심장이 뚫리거나 동맥이 뜯기면 그렇게 피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거주하려면 피부터 닦아내는 게 좋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녀의 말에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백리우진은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는 해쓱해지려는 안색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대답했다.
“미처 몰랐습니다. 소성주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백리 숙부의 살해범을 찾는 건 어떻게 할 건가요? 율검당에만 맡길 건가요?”
“천혼전의 무사들로 하여금 율검당을 지원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그래야죠. 좌우간 숙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든 밝혀지지 않든…… 앞으로 천혼전의 주인은 백리 공자라는 점, 변하지 않을 거예요.”
묘한 말이었다.
백리우진도 그녀의 말에 뭔가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을 정신도 없었고.
그때 사마경이 조금 전까지와 달리 차갑게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단, 구천성에 충성을 다했을 때의 이야기죠. 백리 공자는 영리한 사람이니 무슨 말인지 잘 알 거예요. 그럼 가보세요. 잠시 후 구천대평의회에서 봐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백리우진은 땀에 젖은 손을 맞잡고 예를 취한 후 방을 나갔다.
사마경은 그가 나간 방문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실 쪽으로 돌렸다.
내실의 문이 열리더니 장천운이 나왔다.
사마경이 그를 향해 뜬금없이 물었다.
“확실해?”
“밤새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십중팔구는 연관이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장천운이 내실에서 전음으로 사마경에게만 말해주었으니까.
“제법이네. 백리우진이 그런 결심을 다하고.”
“아마 어제 저녁에 공손백을 만난 후 들은 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소성주의 말로 인해서 백리우진은 설령 공손백이 불신임안을 강행한다 해도 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겁니다.”
“좋아, 그 정도만 되어도 나쁘지 않아. 이제 시간이 얼마 남았지?”
“반 시진 정도 남았습니다.” /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