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333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3화
* * *
그날 밤하늘은 유난히 괴괴했다.
하늘을 보고 있으면 눈가루처럼 흩뿌려진 별이 노도와 같은 강물에 휩쓸려 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십여 개의 별이 각양각색의 빛을 뿜어내고, 쉴 새 없이 유성우가 떨어졌다,
천기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판단은 보는 사람마다 각기 달랐다.
“아아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늘이 저리 광란한단 말인가.”
“혼돈의 대란이 다가오는 것인가?”
“오오오, 멸망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도다!”
“경배하라! 천신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니……!”
“말세로다. 가진 재물을 모두 신께 바치고 용서를 빌지 않으면 지옥에 가리니…….”
“드디어…… 구천구지(九天九地)가 열렸구나!”
자시 무렵, 장천운도 하늘을 보았다.
지붕에 편안히 누워서.
“정말 멋진데?”
본래는 구천대평의회를 하루 앞두고 마음을 정리할 겸 고요한 지붕 위에 올라왔다. 호위를 꼭 안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본래의 목적을 잊을 만큼 하늘에서 멋진 광경이 펼쳐졌다. 그래서 편하게 드러누워 하늘을 감상했다.
대자연의 위대한 광경을 보고 있으니 복잡하던 마음이 명경지수처럼 맑아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무지 진전이 없던 무적삼검 세 번째 초식이 마음속에서 절로 그려졌다.
입에서 멋지다는 말인 나온 것은, 지붕 위에 누워서 하늘을 감상한지 한 시진쯤 지났을 때였다.
그것은 초식이되 초식이 아니었다. 펼칠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수련을 한다고 해서 숙련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얻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종(無終). 그것은 깨달음, 그 자체로 존재했다.
장천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의 얼굴 전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이제 한 사람 정도는 상대해볼 수 있겠어.”
* * *
금룡신군은 침상에서 일어나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십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상하구나. 왜 이러지?’
곤혹스런 표정으로 침상에 앉아있던 그는 몸을 일으켜서 방을 나섰다.
호위무사들이 조용히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유지했다.
정원으로 나선 그는 무심코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이 보였다.
그는 하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늘이 저리도 성난 바다와 같단 말인가?’
천기를 읽을 수 있을 만큼 도를 닦지는 않았다. 그런데 초인의 경지에 오른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혼돈의 시기가 다가온 것인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내리고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하늘이 인간사를 좌우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일었다.
‘나는 하늘의 운명을 따르지 않을 것이니라. 그 누구도 본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 아무리 하늘이라 해도!’
이를 지그시 악다문 그는 몸을 돌려서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흐르던 별의 강물 한쪽이 요동쳤다. 방 안으로 들어간 그는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 * *
“청승 그만 떨고 들어와.”
방 안에서 사마경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자정을 넘어 축시가 다 된 시각. 요즘 독서에 심취해서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더구나 날이 새면 오시에 구천대평의회가 열린다. 잠이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지붕 위에 누워 있던 장천운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무척 강하고 기이했다. 마치 인간의 기운이 아닌 듯.
‘성 밖인가?’
성 안이라면 몰라도 밖이라면 나가기도 어정쩡했다.
사마경이 청승떨지 말고 들어오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가 말이다.
장천운은 일단 지붕 위에서 내려와 안으로 들어갔다.
사마경이 책을 덮어 놓고는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한쪽에는 연송하가 조용히 서있었는데, 반쯤 숙인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듯 보였다.
‘이 시간까지 시중을 드니 힘들기도 하겠지.’
류화가 당분간 시중을 들 수 없어서 이능능을 다시 데려왔다. 그래봐야 두 사람, 한 사람을 더 뽑기 전까지는 여섯 시진을 꼬박 일해야 했다.
장천운은 생각난 김에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소성주, 여자 호위를 한 사람 더 뽑아야겠습니다.”
“왜? 아아, 송하가 힘들까 봐?”
“쉬는 날도 없이 여섯 시진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아프기라도 하면 대체할 사람도 없잖습니까?”
“그건 그래. 어디 마음에 드는 여무사 있으면 말해봐.”
장천운은 사마경의 그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여무사 이름을 말하면 또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건 저보다 송하가 알아보는 게 나을 겁니다.”
“그건 그러겠네. 알았어. 그럼 송하가 알아봐.”
연송하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했다. 달아오른 얼굴이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송하야, 어디 아픈 거야?”
“아니에요.”
“아프면 말해.”
“괜찮다니까요.”
대답하는 연송하의 얼굴이 이제는 발갛다 못해서 빨개졌다.
“괜찮기는? 얼굴이 달아올랐는데. 열 있는 거 아냐?”
그때 사마경이 말했다.
“여기서 그러지 말고, 데려가서 살펴봐 주든가 해.”
“아, 아닙니다, 소성주님.”
연송하가 급히 대답하며 장천운을 흘겨보았다.
장천운은 그런 연송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소성주께서 송하를 괴롭히신 겁니까?”
이번에는 사마경이 째려보았다.
“그래, 괴롭혔어. 다 말했거든. 어차피 혼자는 힘드니까, 천운을 나눠 갖자고. 됐어? 쳇.”
“…….”
장천운의 입술이 달라붙었다.
‘설마 그걸 다 말한 것은 아니겠지?’
“차, 차를 새로 가져오겠습니다.”
연송하가 고개를 푹 숙이고 방을 나갔다.
장천운도 머쓱해져서 방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 하늘이 이상하던데, 아무래도 밖을 한 바퀴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 멀쩡한 하늘 핑계를 대? 송하 따라가고 싶으면 솔직히 말하지.”
솔직히 처음 말할 때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다. 무안하기도 했고.
그런데 사마경의 말을 듣고 나니 가슴 한 구석에서 묘한 느낌이 일었다.
그것은 불길함도 아니었고, 찝찝함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쾌감이나 기분 좋은 전율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돈의 느낌.
마치 오늘 밤의 하늘과 같았다.
구천대평의회 때문인가?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공손백과 나극이 비밀협정을 제안하면서 구천대평의회에 대한 긴장감은 절반 이상 누그러진 상태였으니까.
장천운은 못들은 척하고 방을 나섰다. 이런저런 말을 해봐야 모두 핑계처럼 들릴 테니까.
집무실을 나온 장천운은 찜찜함이 느껴졌던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가공할 기운이 충천했다.
지붕 위에서 느꼈던 그 기운과 비슷한 느낌.
그는 즉시 구천무원을 나와서 그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127장 비밀의 주인
장원을 나선 손우곤은 미간을 좁힌 채 걸음을 옮겼다.
‘누가 보낸 걸까?’
술시 말쯤 방에 들어가니 작은 화살이 벽에 꽂혀 있었다.
창문에 구멍이 난 걸 보면 밖에서 창문을 향해 화살을 쏜 듯했다.
그 화살에는 작은 전통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전통 안에는 작게 접힌 서찰이 들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서찰을 빼서 펼쳐보았다.
서찰에는 놀라운 사실이 적혀 있었다.
[사마중천의 비밀을 팔고자 하오. 사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해시쯤 창문을 열었다 닫으시오.]
이미 죽은 자에 대한 비밀이 뭐 그리 중요할까.
하지만 손우곤은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사마중천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정말 가치가 있는 비밀이라면 사마경을 이용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었다.
그 동안 장천운으로 인해서 몇 번이나 체면을 구기고 사마경 척살에도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는 어떤 식으로든 손상된 체면을 복구하고 싶었다.
결국 고민하던 그는 해시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로부터 정확히 일각 후, 전통이 달린 화살 하나가 또 날아들었다.
전통 안의 서찰에는 만날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었다.
[장원에서 동쪽으로 이백 장쯤에 있는 작은 정자가 있는 공터를 아실 거요. 축시 초에 그 정자로 나오시오.]
그래서 그는 축시가 가까워지자 장원을 나선 것이다. 호위도 대동하지 않고서.
장원에서 먼 거리도 아니고 장소도 아는 곳이었다. 호위를 대동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자존심 때문에라도 혼자서 가기로 했다.
‘저기 있군.’
멀리 어둠 속에 서 있는 정자가 보였다.
정자 주위의 공터는 제법 넓었다. 인근 이십여 장 안쪽은 바닥이 온통 바위여서 집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자 앞에선 손우곤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따라 참으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둥! 둥! 둥!
구천성 고루에서 축시를 알리는 북이 울렸다.
북소리가 끝날 즈음, 손우곤은 등골이 서늘한 느낌에 뒤를 돌아다보았다.
동시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군.”
어둠 저편, 십 장쯤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손우곤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저자가 나타나는 걸 알지도 못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되랴.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혼자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리가 오 장쯤 되었을 때 그가 물었다.
“그대가 나에게 서찰을 보냈는가?”
“그렇소.”
“사마중천에 대한 비밀을 팔겠다고?”
“맞소.”
“과연 나에게 팔 만한 비밀이 있을지 모르겠군.”
“실망하지는 않을 거요.”
“그래야 할 거다. 나는 놀림 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 역시 누굴 놀리는 걸 좋아하지 않소.”
“다행이군. 그럼 말해봐라. 어떤 비밀을 팔겠다는 것이냐?”
“내가 바로 사마중천의 관을 턴 사람이오.”
손우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사마중천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 그런데 범인이 직접 나에게 접근할 줄은 몰랐군.”
“상황이 좀 그렇게 되었소.”
“사마중천을 넘겨주겠다는 건가?”
“비슷하오.”
“비슷하다? 거래를 하려면 명확히 해야만 한다.
“물론이오. 나 역시 귀하와 같은 생각이오.”
“좋아, 대가는 무엇을 바라는가?”
“그에 대해서는 잠시 후 말하겠소.”
“그럼 팔고자 하는 비밀부터 자세히 말해봐라.”
“소천, 시작하게.”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손우곤이 홱 돌아섰다.
눈을 부릅뜬 그는 공력을 끌어올리고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향해서 독수리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하늘의 어둠이 그림자를 중심으로 휘도는 듯했다.
“감히!”
노성을 내지른 손우곤은 두 발을 땅에 굳게 딛고 쌍장을 뻗었다.
태천금룡장의 가공할 장력이 그림자를 향해 밀려갔다.
그림자도 두 손을 뻗으며 태천금룡장의 장세 속으로 날아들었다.
콰르르릉! 콰광!
한밤중에 굉음이 연이어 울렸다.
찰나에 이어진 삼초의 공방.
손우곤의 부릅뜬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뚫리지 않을 철벽을 치는 듯했다. 쇠몽둥이에 얻어맞는 듯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상대의 얼굴은 인간 같지가 않았다. 충격도 안 받았는지 상대의 공격은 위력이 줄어들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주춤주춤 물러서던 그가 결국 철벽에 부딪쳐서 튕겨나가듯 뒤로 날아갔다.
이 장을 날아가서 겨우 두 발로 딛고 선 그의 몸이 폭풍 앞에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핏물.
경악과 암담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겨우 목을 뚫고 흘러나왔다.
“너, 너는 누구……냐?”
그 말에 답하듯 한 줄기 전음이 고막을 흔들었다.
<그가 바로 내가 팔려는 비밀이었소. 그리고 그 대가로…… 그대는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그가 바로…… 그대가 알고자 하는 비밀의 주인이오.>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