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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호위 332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2,8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적호위 332화

탁무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상당히 높은 곳인 듯 첩첩이 펼쳐진 준봉의 봉우리들이 그의 발아래 부복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사람들은 가끔 그걸 잊지.”

“그러고 보면 장천운이란 놈이 대단합니다. 적이나 다름없는 청산궁과 금룡장을 우군으로 끌어들였지 않습니까? 도대체 공손백은 뭘 하고 있었는지…… 암군께서 당하는 것도 막지 못하고…….”

“아마 그도 넘어갔을 거다.”

“……예?”

“공손백, 그도 사마경과 모종의 협약을 맺었을 거야. 자존심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었겠지. 본좌를 상대하려면 나극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즉시 그놈부터 처리하시는 게……!”

“본좌가 말했지 않느냐?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고. 후후후후.”

도악은 나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탁무겸을 보며 전율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과연, 과연 암천의 태천다우십니다!”

“도악. 하늘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 지금 이 시간부로, 금룡신군과 청산자가 신마와 맺은 모든 맹약을 파기한다.”

도악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붉은 얼굴이 격동으로 떨렸다.

“하오시면?”

“오래 전부터 본좌는 그 맹약이 마음에 안 들었다. 세 노인네가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맹약 따위, 개나 주라고 해. 적이 아니면 친구! 이제부터는 그 둘만 존재할 것이다!”

암천문은 수백 년 전부터 암중에서 천하 사마도를 좌우했다. 금룡신군과 청산자라는 희대의 괴물이 만든 금룡장이나 청산궁과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무력 역시 두 세력을 합한 것보다 훨씬 강했다.

그럼에도 맹약을 맺은 것은 금룡신군과 청산자라는 초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탁무겸 본인이 초인의 경지에 오르면서 마지막 단점마저 메워졌다.

오히려 수십 년 동안 키운 힘이 더욱 강해져서 이제는 폭발직전이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남자로 태어나서 한번쯤은 천하를 도모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천하에 암천의 위대함을 알려라, 도악!

격동에 떨던 도악이 납작 엎드렸다.

“명을 받드옵니다! 이제는 암천만이 진정한 하늘이옵니다!”

 

* * *

 

무 노인은 장산에게 돌아가는 상황을 전해 듣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

살아남은 천살군과 천위군 중 이십여 명이 구천성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은 구천성의 정보를 시시각각 수집해서 장산에게 전했다. 오늘은 모두가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백리호의 죽음. 그리고 섭가장을 피바다로 만든 세력의 괴멸.

그 소식은 무 노인을 정색하게 만들었다.

“일이 묘하게 흐르는구나.”

“암천문도 청산궁이 나섰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너는 그들이 은신해 있는 장소를 청산궁에서 알려줬을 거라고 보느냐?”

“천운은 그 전에 알고 있었을 겁니다. 몰랐다면 출동조차 안했을 겁니다.”

“맞다. 그 전에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럼 누가 알려줬을 거라고 보느냐?”

잠시 생각하던 장산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래, 아마 금룡장에서 먹이를 던져줬을 거다. 자신들에게는 손해가 없으니까.”

“그럼 천외삼세가 암중에 맺은 약속이 깨졌다고 봐야겠군요.”

“바로 그거다. 암천문이 섭가장을 치면서 이미 그들 간의 약속이 깨졌다고 볼 수 있다. 금룡신군은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이용한 것이지.”

“천외삼세의 맹약이 깨졌다는 건 저희에게 좋은 기회입니다만, 대신 혈풍이 더욱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겁니다.”

“그 일은 가슴 아프지만 어쩌겠느냐. 우리는 그저 더 많은 피가 흐르는 걸 막는데 최선을 다하면 된다.”

“천외 세력 간의 균형이 깨지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상황에서 균형이 깨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함께 몰락하지 않으면 어느 한쪽으로 흡수될 테니까. 그럼 상대하기가 더 어려워져.”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면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어르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무 노인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장산의 계책은 자신 못지않았다. 표를 내지 않는 것 뿐. 특히 큰 줄기를 보는 능력은 자신을 앞서 있었다.

파천회의 군사가 된 것도 그러한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허락하신다면…… 금룡신군의 팔다리를 하나 자르겠습니다.”

 

* * *

 

장천운은 백리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곳을 찾아가보았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리호가 왜 산신당에 갔을까?

그는 그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더구나 구천대평의회를 앞두고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시기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만나러 갔다는 건데…….’

 

백리호가 발견되었다는 산신당에는 율검당 무사 둘이 남아 있었다. 이미 조사는 끝난 상태였고, 두 무사는 당분간 사건 발생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남겨진 상태였다.

둘 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 무사였는데, 그들은 장천운을 알아보고 몸이 바짝 굳었다.

“대, 대주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뭐 좀 알아보려고. 여기서 백리호 전주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바로 저곳 담에 기대어져 있었습니다.”

장천운은 율검당 무사가 말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백리호가 있었다는 산신당 벽과 바닥이 피로 인해서 검붉었다.

그런데 잠시 그곳을 바라보던 장천운이 눈빛을 반짝였다.

“정말 저기에 시신이 있었나?”

“예, 그렇습니다.”

장천운은 시신이 있었다는 곳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말렸다.

그가 다시 율검당 무사에게 물었다.

“시신은 어디로 가져갔지?”

“율검당으로 가져갔습니다.”

 

장천운은 율검당으로 가서 시신을 확인해보았다.

시신은 관에 들어 있었다. 여름이어서 시체가 빨리 부패할까 봐 숯과 회를 잔뜩 넣어놓은 상태였다.

“왜 그런가?”

삼대주 백남평이 조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류화의 일로 인해서 산평이 장천운에게 박살난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굳이 오래 볼 것도 없었다. 백리호의 시신을, 정확히는 상흔을 본 순간 지금까지의 의문이 풀렸다.

‘백리호는 산신당에서 죽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자에게 죽었어.’

그는 백남평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직은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게 없었다.

가슴의 상흔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장천운은 몸을 일으켰다.

“천혼전은 조사해보셨습니까?”

“해봤네. 혹시라도 전주를 밖으로 불러낸 자에 대한 단서가 있나 싶어서 전주의 집무실과 방을 뒤져보았지. 그런데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네.”

“알겠습니다. 청을 들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별 말을…….”

백남평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젊은 놈이 무공 강하다고 목에 힘주는 것처럼 보였었는데, 생각처럼 건방진 놈은 아닌 듯했다.

“아, 혹시 천혼전에도 무사를 남겨두셨습니까?”

“둘이 있을 거네. 천혼전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혹시라도 이상한 점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네.”

 

장천운이 천혼전에 갔을 때에도 율검당 무사 둘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장천운을 대하고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장 대주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백리 전주의 집무실과 내실 좀 살펴보고 싶어서. 백 대주에겐 말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그렇습니까? 그럼 들어가 보십시오.”

먼저 집무실을 일 각 동안 살펴본 장천운은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은 침상과 각종 가구가 들어가고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넓었다.

세밀하게 살펴보았지만 백남평 말대로 별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물건이 깔끔한 백리호의 성격답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을 나서기 위해 돌아서던 그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내려다보던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름대로 깨끗이 닦아냈다고 하나 스며든 것까지는 어쩌지 못한 듯했다. 제법 넓은 면적에서 희미하지만 검붉은 기가 느껴졌다.

‘핏자국이 분명해.’

 

* * *

 

청산자가 영산자를 찾아온 것은 유시가 거의 다 지나갔을 때였다.

그는 영산자에게 오늘 하루 발생한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에게 당했군. 아마 탁무겸은 응한곡 공격을 우리가 주도했을 거라 생각할 거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일 거다.”

영산자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늘 오후 장천운과 만났을 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던 이유가 청산자의 말에 시원하게 풀렸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졌냐 하면 정반대였다.

머리가 아예 터질 것 같았다. 짐승처럼 포효라도 터뜨려야 속이 시원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충격이 강하면 말을 잊는다고 했던가?

자신의 심정이 지금 그러했다. 이제는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을 뿐.

“무량수불. 죄송합니다, 사형.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자책할 것 없다. 그 아이는 너의 상대가 아니다. 도하도 그걸 몰라서 달려들었다가 당한 것이고.”

“어린놈이 구미호 뺨치는 잔머리를 굴릴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쯔쯔쯔, 그래서 네가 그 아이를 잘못 보았다는 거다.”

“예?”

“언제부턴가 천기가 혼돈에 휘말렸다. 그 가운데 유독 빛을 발하는 별들이 보였다. 그 중 하나는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으면서도 나머지 별들을 좌우하며 삼성을 압박하고 있었다.”

영산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도 오십 년 동안 도를 닦은 사람이다. 천기를 볼 줄 아는 눈이 없지 않았다.

“설마…… 천괴?”

“그 아이가 단순히 잔머리나 굴리는 아이였다면 결코 너나 도하가 그렇게 어이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영산자도 그 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머리 잘 굴리는 것은 그저 장천운의 장기 중 하나일 뿐이다. 무공만 해도 자신보다 훨씬 강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 아이의 능력은 이제 삼성의 아래가 아니다. 조금 뒤쳐지는 능력도 곧 따라올 것이고. 그러니 제거하려면 보다 일찍 제거해야만 하느니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영산자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제 제거하고 싶어도 제거할 수가 없었다.

청산자도 모르지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

“할 수 없지, 이제 노도가 나서는 수밖에.”

영산자의 눈빛이 오랜 만에 활기를 띠었다. 청산자가 나선다면 그놈도 더 이상 활개 치지 못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동방 늙은이는 아직 찾지 못했느냐?”

“면목이 없습니다. 도하가 맡기로 하였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라…….”

“알았다. 그 일은 청운령에게 맡길 것이니 너는 구천성 내부의 일만 신경 써라.”

영산자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청운령(靑雲令)은 청화령(靑和令), 청호령(靑護令), 청무령(靑武令)과 함께 청산궁의 사대령 중 하나로 청산자의 손발처럼 움직이는 전위무력이었다.

“청운령이 왔습니까?”

“지금쯤 도착했을 거다.”

 

* * *

 

백리우진은 공손백이 부른다는 말에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가라앉혔다.

전이었다면 들뜬 마음에 그 즉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처지가 달랐다.

이제 곧 천혼전의 주인이 될 사람 아닌가.

“알겠습니다. 임무가 끝나고 교대하면 바로 가겠습니다. 아마 늦어도 한 시진 이내에 갈 수 있을 겁니다.

 

해시 초. 청묵전을 방문한 백리우진은 공손백 앞에 서서 포권을 취하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대령주.”

“짧게 말하마. 사제의 조카면 나에게도 조카가 된다. 앞으로 사제를 대신해서 네가 나를 도와줘야겠다.”

백리우진은 흥분을 최대한 억누르고 대답했다.

“성심껏…… 대령주를 보좌하겠습니다.”

“공을 세운다면 그만한 대가가 돌아갈 것이다. 너는 젊으니 보다 더 큰 꿈을 꾸어야겠지. 본좌 역시 너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대령주!”

“먼저 네가 천혼전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마.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

“예, 대령주!”

 

청묵전을 나서는 백리우진의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는 재삼재사 각오를 다졌다.

‘이제 시작이다. 세상은 구천성에 장천운뿐만 아니라 백리우진도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때 하늘에서 기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멋지군! 꼭 나를 위한 축제가 벌어진 것 같구나. 후후후.”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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